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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튤립 Mar 23. 2021

진짜 어른은 커피를 마시는 법이지

블랙커피: 인생의 쓴 맛에 대하여


 교복을 입고 다니던 시절의 나는 점심시간마다 우르르 사원증을 목에 걸고 손에는 한 잔씩 커피를 든 직장인들을 동경했다. 무언가 전문적인 이야기에 열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그들의 모습이 너무나도 멋져서, 나도 어른이 되면 꼭 저런 멋진 오피스룩과 함께 아메리카노를 마셔야지!라는 결심과 함께 더 열심히 학업에 매진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웬걸. 막상 직장인이 되고 나니 알게 되었다. 그들이 점심시간에 나와서 커피를 마셨던 것은 그렇게라도 하지 않는다면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뎌낼 수가 없어서였던 것이다! 1분 1초라도 더 오래 회사 바깥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멋지다고 생각했다니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철이 없었나 싶다. 그들이 손에 든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MP를 유지하기 위해서 마시는 마법사의 포션과도 같았다. 남은 오후를 견딜 수 있게 만드는 카페인 파워!


 경쟁사회의 표본을 보여주는 대한민국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우리 모두 카페인에 익숙해져야 한다. 수험생 시절에는 시험공부를 위해 에너지 음료를 들이켜기 일쑤고, 대학생이 되면 과제와 취업 준비 때문에 커피와 밤을 새운다. 그렇게 고생 고생해서 취직을 해도, 여전히 쓰디쓴 그 맛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우리는 커피로 인생의 쓴 맛을 배운다.


 내가 진짜 원하는 꿈은 뭘까, 어떤 대학을 갈 수 있을까, 학점을 잘 받아야 장학금을 탈 텐데, 이번에 준비하는 시험에 붙을 수 있을까, 이력서를 몇 장을 더 써야 하는 걸까, 왜 나만 도태되는 것 같지, 적성에 안 맞는 것 같은데 퇴사할까, 이 사람과 결혼해야 하는 걸까, 아이가 대학에 들어가는데 돈 들어갈 데가 많네, 부모님을 요양원에 모셔야 할까, 목을 타고 넘어가는 차갑고 쌉싸름한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각자의 한숨과 슬픔을 흘려보낸다,


 하루하루를 견디는 사람들에게 커피 한 잔은 잠깐 도망칠 수 있는 휴식이기도, 쓰디쓴 현실로 돌려주는 각성제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커피를 마시는 이유는 모두가 다르겠지만, 단 한 가지 알 수 있는 것은 그들 모두, 좀 더 나은 내일을 위해서 커피를 마신다는 것. 오늘을 잘 버텨내면, 지금 쏟아지는 졸음을 이겨내면, 내일의 내가, 미래의 내가 더 멋진 모습일 거라고 생각하며 마지막 남은 한 모금을 털어 넣는다. 그리고 전쟁터 같은 일상으로 돌아가 다시 치열한 싸움을 시작한다.



오늘따라 더 씁쓸한 커피를 마실 때, 우리는 비로소 어른이 된다.




 커피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기원 후 9세기 무렵 에티오피아의 고산지대에 살던 칼디와 커피 열매 이야기이다. 성실한 목동이었던 칼디는 염소들이 빨간 열매만 먹기만 하면 신이 나서 점프를 하며 평소보다 과한 움직임을 보이는 것을 목격한다. 대체 왜 그런지 궁금했던 칼디는 자신도 그 열매를 먹어보게 되는데 정신이 맑아지고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느꼈다.

 

 이 사실을 신기하게 여긴 칼디는 동네 수도원에 커피 열매를 가져간다. 수도승들은 이 열매를 볶아 끓여 마시면 잠이 줄어든다는 것을 발견하곤 야간 기도 시에 졸음을 쫓는 용도로 사용한다. 시간이 흘러 15세기 무렵 커피는 아시아 대륙으로 퍼지게 되고 17세기 무렵에는 유럽에, 오늘날은 전 세계 구석구석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커피를 즐기고 있다.

 

 기본적으로 커피를 내리는 방법은 에스프레소 머신을 사용해서 빠른 시간에 진하게 추출하는 방법과 목이 가늘고 긴 주전자를 사용하여 조금 천천히 내리는 부드러운 핸드드립이 있다. 이 외에도 유리로 만든 기구를 사용해서 찬 물에 아주 천천히 추출하는 더치커피 등이 있지만 우리가 흔히 마시는 아메리카노는 주로 에스프레소 머신을 사용한 것이다. 뜨거운 증기로 뽑아낸 씁쓸한 에스프레소에 얼음과 찬 물을 섞으면 지친 몸을 깨워주는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된다.


 이 에스프레소에 우유를 섞은 것이 라테, 우유 거품을 올린 것이 카푸치노, 라테에 초콜릿 시럽을 넣은 것이 카페모카, 캐러멜 시럽을 섞으면 캐러멜 마끼아또가 된다. 단 음식과 함께라면 아메리카노가 찰떡궁합이지만 단독으로 마신다면 (스트레스를 받은 날엔) 크림이 잔뜩 올라간 카페모카를 추천한다. 물론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인스턴트커피도 훌륭하다! 커피, 크림, 설탕이 황금비율로 들어간 노란색 믹스커피는 뜨겁게 먹을 땐 물을 좀 적게 잡는 것이 맛의 비결이고 차갑게 먹을 때는 2 봉지 이상 녹여서 얼음을 잔뜩 넣는 것이 맛있다. 커피 가루만 들어있는 카*같은 제품도 손쉽게 아메리카노를 마실 수 있도록 해준다.


 오늘은 비싼 머신이 아니더라도 집에서 손쉽게 에스프레소를 내릴 수 있는 모카포트(moka pot)를 이용한 방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탈리아 가정에서 흔하게 사용되는 모카포트는 에스프레소 주전자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맨 아랫칸에는 물, 중간 바스켓 부분에 커피 가루를 넣고 불 위에 올려놓으면, 물이 끓으면서 발생하는 수증기의 압력으로 커피가 추출된다.  


모카포트를 이용해서 에스프레소를 추출한 모습



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2인 분량/ 진하게 마시면 1잔)


<재료>

- 원두 혹은 원두 가루 20g

- 냉수 100ml

- 얼음 50g

- 모카포트 2컵짜리(온라인에서 4-5만 원대로 구매 가능)


<만드는 법>

- 원두는 에스프레소 머신용 보다는 살짝 굵게, 핸드드립용 보다는 가늘게 분쇄한다.

  (원두를 살 때 모카포트용으로 갈아달라고 하면 쉽다. 그게 아니면 고운 설탕 정도의 굵기로 갈면 된다.)

- 모카포트 하단 물탱크에 선을 맞춰서 물을 담는다.

- 중간 커피 바스켓에 원두를 담고 높이만큼 평평하게 깎아준다. 절대 누르지 말고 그냥 깎아준다.

  (머신보다 압력이 약하기 때문에 꾹꾹 누르면 제대로 추출이 되지 않을 수 있다)

- 잘 조립하여 약한 가스불에 올린다.

- 물이 끓고 추출되는 소리가 나면 불을 더 작게 줄이고 1분간 기다린 뒤 불을 끄고 30초 정도 더 기다린다.

- 추출된 커피를 컵에 따른 뒤 찬물을 섞고 얼음을 넣어주면 완성!



 블랙커피가 아니라 부드러운 라테가 마시고 싶다면 물 대신 우유를 더하면 된다. 꼭 거창한 바닐라 시럽이 아니더라도 설탕만 넣어주면 달짝지근하니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수 있다. 더 멋진 내일을 위해, 오늘의 커피 한 잔을 마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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