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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튤립 Feb 03. 2021

초승달이 먹고 싶어

크루아상: 손 끝에서 부서지는 달 조각에 대하여


일요일 아침은 언제나 같은 생각을 하며 눈을 뜬다.


'초승달이 먹고 싶어.'


졸린 눈을 비비고 목욕재계를 한 뒤 제일 좋아하는 립스틱을 바른다. 약속이 있냐고? 있기는 하다. 세상에서 가장 바삭하고 고소한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자주 가는 양과점은 오전 열 시 반에 연다. 빵이 나오는 시간은 열한 시, 그리고 열두 시 삼십 분. 내가 좋아하는 초콜릿 크루아상은 첫 번째 타임에 나온다. 열 시 조금 넘은 시간 집을 나서서 골목길을 요리조리 걷다 보면 도착하기도 전에 바람에 실려오는 고소한 냄새를 맡을 수 있다. 봄에는 벚꽃잎이 흩날렸지만 지금은 눈발이 날리는 가게에 도착하면 귀여운 눈사람이 반겨준다. 문 옆의 작은 고양이집은 비어있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 어딜 간 걸까? 고등어 줄무늬의 고양이는 대략 세 번에 한 번꼴로 마주칠 수 있다. 딸랑-하는 소리와 함께 나의 일요일의 약속이 시작된다.


가볍게 목례를 하고, 일단 샷 추가한 차가운 아이스 라떼를 시킨다. 여름에도 겨울에도 음료는 차가운 것을 고집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나도 그 종족에 속한다. 커피를 기다리는 동안 빵 냄새를 실컷 맡는다. 작은 공간은 페이스트리 반죽을 구울 때 나는 특유의 고소하고, 달짝지근하고, 짭조름한 냄새로 가득하다. 테이크아웃 잔에 커피를 받아 들고 빵을 둘러본다. 결국 크루아상 하나와 다른 빵 하나를 담는 일이겠지만 정성스럽고 꼼꼼하게 진열대를 두 바퀴 돌아보며 하나하나 눈맞춤을 한다. 식빵, 몽블랑, 소시지빵, 뺑 오 쇼콜라... 진갈색의 먹음직스러운 빵들로 진열대가 촘촘하다. 오늘은 갓 구워낸 초승달 친구와 이따 오후에 먹을 크랜베리 스콘을 골랐다. 망가질세라 조심조심 집게로 들어서 포장을 부탁한다. 매장에서 여유를 만끽하며 먹던 것이 언제인지 까마득하지만 어쩔 수 없다. 찬 공기를 들이키며 문을 열고 나가면 재빨리 골목으로 향한다. 돌아가는 길은 서둘러야 한다.


집으로 냅다 달릴까 하다가 텅 빈 골목을 마주하자 마음이 바뀐다. '한 입만 먹을까?' 

주변에 아무도 없는지 둘러본 후 바스락거리는 종이봉투를 연다. 몰래 골목길에서 빵을 먹는 꼴이 장발장 같아 보여도 어쩔 수 없다. 집까지 걸어가면 그새 맛이 덜하기 때문에 갓 구운 빵에 대한 예의를 지키기 위해선 여기서 한 입 먹어줘야 한다. 겹겹이 결을 따라 부서지는 크루아상을 음미하며, 종이봉투에 남아있는 고소한 버터향을 마지막으로 한 번 들이키고, 봉투를 고이 접어 다시 집으로 향한다. 한 입 뜯어먹어서 좀 못생겨진 크루아상과 라떼를 즐겨야 하니까. 일요일의 약속을 지킨 빵순이의 발걸음은 가볍다. 





크루아상을 생각하면 흔히 프랑스를 떠올리지만 그 기원은 오스트리아에서 시작한다. '킵펠(Kipferl)'이라고 불리는 초승달 모양의 아침 식사용 빵으로, 전해져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1683년 비엔나에서 일어난 전투에서 오스만 제국에 대한 오스트리아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킵펠을 이슬람의 상징인 초승달 모양을 본떠 만들었다고 한다. 지하 터널을 뚫어서 성을 침공하려고 했던 오스만 군의 소리를 새벽에 일어난 제빵사들이 듣고 그들보다 먼저 공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때의 킵펠은 지금의 크루아상과는 다른 좀 더 부드럽고 덜 바삭거리는 반죽으로 만들어진 빵이었다. 이 킵펠이 프랑스에 전해진 것은 비엔나 출신인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그녀의 모국에서 먹던 빵이 그리워 궁정 제빵사에게 만들게 했다는 것이 가장 유력한 설이다. 그 이후 킵펠은 프랑스 상류층에 유행하게 된다. 물론 명확하게 크루아상에 대한 기록이 남은 것은 1838년 블랑제리 비엔누아즈를 운영하던 제빵사 어거스트 장으로, 원래의 킵펠보다 훨씬 바삭한 페이스트리 반죽으로 만들어졌으며 초승달을 닮은 모양 때문에 프랑스어로 초승달을 뜻하는 크루아상(Croissant)이라고 불렸다. 


프랑스 사람들은 주로 매일 아침 먹기보다는 주말에 크루아상을 즐기는 편이다. 크루아상을 만들 때는 모양을 잡거나 매끈한 표면을 위해 브러싱을 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다만 맛있는 크루아상을 만들기 위해 중요한 것은 얼마나 균일한 층을 만드는지가 관건이다. 처음 크루아상을 만들어본다면 꼭 레시피를 똑같이 따라 하고 절대 여름에 도전하면 안 된다. 온도가 20 ºC 이하의 공간에서 만드는 것이 실패하지 않을 확률을 높여준다. 파리의 유명한 제과점은 모든 과정을 천천히 진행하며(발효도 냉장고에서 한다) 완벽한 크루아상을 만드는데 3일이 걸린다고 한다. 그러니 처음 만들어 보는데 완벽한 크루아상을 만들어야겠다는 욕심은 버리자.


홈메이드 크루아상


<재료>

- 강력분 500g

- 우유 125g

- 물 125g

- 설탕 50g

- 소금 10g

- 생 이스트 20g

- 버터 350g



<만드는 법>

- 체에 친 밀가루에 우유와 물을 섞고 설탕과 소금을 섞는다.

- 생이스트를 넣어주고 잘 반죽한다.

- 두 배로 부풀 때까지 1시간 정도 1차 발효를 한다.

- 반죽이 잘 부풀면 가스를 빼고 덧밀가루칠을 한 바닥에 반죽이 최대한 직사각형이 되도록 밀대로 밀어준다.

- 종이 포일에 반죽을 싸서 직사각형으로 접고 밀대로 다시 밀어준다.

- 최소 1시간 이상 반죽을 냉장실에 넣어둔다. (밤새 넣어두는 것이 제일 좋다)

- 반죽이 휴지 되는 동안 버터를 꺼내 두께를 1cm 정도로 썰어서 종이 포일 위에 정사각형으로 배열한다. 

  (바둑판 모양으로 촘촘히 놓는다고 생각하면 쉽다. 전체 사이즈는 반죽보다 작아야 한다.)

- 종이 포일로 감싼 버터를 밀대로 밀어 빈틈없이 조각들이 서로 밀착되게 만든다.

- 반죽을 꺼내 밑에 깔고 그 위에 버터를 다이아몬드 모양으로 놓는다. 

- 반죽의 네 귀퉁이를 접에 봉투처럼 버터를 잘 감싸준다.

  (여기서부터 중요한 라미네이션 작업 시 시작된다!)

- 반죽을 밀대로 밀어 긴 두루마리처럼 되면 반죽의 양 끝을 반반 나눠 안으로 접어준다(층이 두 겹). 

  그리고 그 반죽을 다시 반으로 접어준다(층이 네 겹). 냉장고에 반죽을 15분 정도 휴지 한다.

- 다시 반죽을 짧은 쪽으로 꼼꼼하게 밀대로 밀어준다.

  이번에는 한쪽은 안으로 접고 나머지 하나는 그 위로 덮이게 접는다. (층이 세 겹) 

  다시 1시간 냉장고에서 휴지 한다. (더 오래 휴지해도 상관없다)

- 반죽을 밀대로 밀어 기다란 피자 조각 모양으로 잘라준 뒤 돌돌 말아 성형한다.

- 계란물을 발라준 뒤(스프레이로 뿌리는 게 제일 좋다) 25 ºC 정도에서 2시간 정도 2차 발효를 진행한다.

- 오븐에 넣기 바로 직전에 한 번 더 계란물을 뿌려준다.

- 200 ºC로 오븐을 예열한 뒤 195 ºC에서 6분, 165 ºC에서 9분 동안 구워준다.



크루아상은 금방 구워서 먹는 것이 제일 좋지만 만약 만든 날에 다 먹지 못한다면 바로 냉동하는 것이 좋다. 냉동실에서 꺼낸 그대로 180 ºC로 예열한 오븐에 바로 넣어 7분 정도 구워주면 금방 만든 것과 거의 비슷하게 맛있는 크루아상을 먹을 수 있다. 이번 주말에는 고소한 친구와 약속을 잡아보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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