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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일한 사대생 Jul 17. 2023

신병 800명, 전입신고 완료



기숙학원에 다닌다는 것은 거주지가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학원을 다니는 게 아니라, 학원에 살게 된다.



기숙학원에 처음 입소하면 그 분위기는 마치 수련회장 같기도 하고, 논산 훈련소 군입대 현장 같기도 하다. 수련회는 1박 2일이지만 기숙학원에서의 생활은 최소 300일 이상 지속된다는 점에서 수련회보다는 군대와 더욱 닮았다. 그래서인지 실제로 기숙학원에서는 군 용어를 많이 쓴다. 수백 명의 학생들을 컨트롤하기에 역시 군대식보다 나은 것은 없는 까닭일까?



입소 즉시 학생들은 단체복을 배부받고 전부 똑같은 옷을 입는다. 내가 다닌 학원의 경우 남학생은 란색, 여학생은 보라색이었다. 선생님들로부터 똘똘이 스머프, 보라돌이라는 애칭을 얻을 수 있다. 멋이라고는 없는 디자인에 촌스러운 코발트블루와 원색의 퍼플은 1km 전방에서도 눈에 띄는 미친 존재감을 자랑했다. 단체복을 세련되게 제작하는 것은 아무래도 불법쯤 되나 보다.



그리고 내부에서는 어떠한 전자제품의 사용도 금지된다. 유일하게 허용된 것은 전자사전이었는데, 그마저도 부가적인 기능(mp3, dmb, e-book 등)을 사용하다 걸리면 가차 없이 압수당했다. 국가에서 허용한 유일한 마약인 음악마저 강탈당했다는 점에서 이미 많은 분들이 미간을 찌푸렸을 것 같다. 당연히 휴대폰마저 금지였으니 심지어 요즘 군대보다도 못한 구식 군대였다. 



그렇다면 외부와 어떻게 연락을 했냐고?


인터넷 편지를 받았다. 답장은 할 수 없는 일방향 소통이었다. 주로 부모님이나 형제자매, 이미 대학에 간 친구들이 편지를 보내주면 생활담임이 하루 일과를 마무리할 때 즈음 그것을 전달했다. 편지를 많이, 자주 받는 학생은 부러움 대상 1호였다. 가끔 연애편지는 정신 빠진다고 전달에서 제외되기도 했다. 아 가혹해라-!



참고용 이미지/ 이와 비슷했다


기숙학원 재수생은 인간도 아닌가요?
그럼 대체 뭘로 스트레스를 풀죠? 뭘 하고 노나요?



우리도 놀 수단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종이신문이었다. 아주 너그럽게도 보수 진보 중도 스포츠 가리지 않고 다양하게 준비해 주셨다. 벌써부터 편협한 시각을 가지면 안 된다나 뭐라나~


'그걸 누가 봐...'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종이신문 쟁탈전은 굉장했다. 뉴스 연예면에 아이돌이라도 인쇄된 날이면 서로 오려가려고 다투는 일은 매우 흔한 광경이었다. 자극과 쾌락은 역시 노출될수록 무뎌지는 법이다. 모든 자극에서 차단당한 우리들은 작은 일에도 굉장히 즐거워하는 상태로 점점 회귀하고 있었다.


불쌍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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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이 대목쯤에서 "야! 군대보다 더하다!"라는 말씀들을 하신다. 동의하는 바다. 총 대신 펜 잡았다는 점 빼고 정신적인(?) 규제로는 더욱 빡셌다. 실제로 우리 반에는 군필 오라버니가 한분 계셨는데, 아무래도 군대가 더 나은 것 같다고 하셨다. 거긴 싸지방이라도 있었다고, 종이신문 가지고 서로 먼저 보겠다고 싸우진 않았다며!







루 일과를 마치면 기숙사로 돌아가 점호를 할 시간이다. 주로 3인 1실이나 4인 1실을 사용했다. 단 30분 안에 4명 또는 3명은 전부 씻고, 잘 준비를 마치고 방 문 앞에 쪼르르 앉아 대기해야 한다. 사감 선생님이 인원을 전부 확인하면 소등했고 그 뒤로 소음이 들리거나 이동하면 벌점, 몇 차례 이상 반복되면 얼차려였다.


다음 날 오전 6시 반이면 어김없이 울리는 끔찍한 기상 송(사실 기상 '송'보다는 거의 비상대피음에 가까운 시끄러운 알람음이 들렸다)과 함께 주어진 시간은 역시 단 30분. 전부 준비하고 기숙사에서 쫓겨나듯이 나가서 아침을 먹었다. 


  초반에는 어떻게 30분 안에 화장실 하나 있는 방에서 4명이 전부 씻고 준비를 하란 거야? 하던 학생들이 후반부 생활부터는 매우 여유롭게 준비를 마치고 서로 친해져서 노닥거리는 모습은 마치 이등병이 말년 병장이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행위예술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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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한 번은 휴가를 나갔다. 지역별로 같은 학원 버스를 타고 2박 3일간 나갔다 다시 학원버스를 타고 돌아오곤 했다. 개인 선택으로 휴가를 반납하고 외출로 만족하는 학생도 더러 있었다. 단 군대처럼 휴가를 반납하면 후에 몰아 쓰거나 전역일을 앞당기는 방도는 없었다.



일괄로 모두가 수능일에 전역해야만 했다.



수능 원서접수일이 가까워져 오면 신병, 아니 학생들은 기숙학원 주소로 전입신고를 했다. 수능을 학원 근처 학교에서 보기 위함이다. 주민등록등본을 발급받으면 세대주 학원장님 성함 아래 약 700명 이상이 기묘한 동거를 했던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혹시나 이 글을 읽는 세대주 이규응 씨(강남대성기숙학원 전 원장님) 아래 생활했던 강대기숙인이 있다면 댓글을 남겨주세요!


수능이 끝나고 다시 동사무소로 달려가 본가로 주소이동을 할 때의 그 짜릿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90년대생 가슴을 울렸던 이 짤을 기억하는가?


성인이 되고 다시 보면 그저 웃긴 이 짤은, 기숙학원 재수생에게 대입하면 시간이 지나고 봐도 그다지 웃기지는 않고 꽤나 리얼하다. 수능이란 석방을 기다리는 죄수생 여러분을 전직 삼수생은 오늘도 응원하는 바다.







#삼수생의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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