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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일한 사대생 Jul 23. 2023

종합병동의 학생들




재수 정규반 개강이 딱 3개월쯤 지나면

기숙학원은 종합 병동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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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리 재수 생활이라도, 새로운 환경과 사람들에 둘러싸여 지내다 보면 초반에는 도파민, 아드레날린, 기타 등등이 마구 폭발한다. 거기에 집보다 불편한 환경 탓에 온몸은 항상 긴장 상태, 덕분에 아직까지는 크게 힘들지도 않고 버틸만하다. 공부하기 싫어 미치겠는 마음은 있어도 집에 가고 싶어서 미치겠는 마음은 양심상 아직  든다. 아직까지는


 그렇게 어찌어찌 한두 달이 지나면 점점 몸에 들어간 힘이 풀리고 차차 적응을 한다. 급식도 매끼 잘 먹고 간식도 잘 챙겨 먹는다. 역시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다. '나는 기숙 체질인가?' 이런 실없는 생각도 가끔 해본다.










그리고 딱 이렇게 긴장이 풀릴 시기 즈음부터,

놀라울 만큼 많은 학생들이 시름시름 앓기 시작한다.









 보건실에는 병든 닭 마냥 축 처진 환자들이 이리저리 누워있고, 한 명뿐인 보건쌤을 번갈아가며 달달 볶는다. 그렇다고 사실 뭐 대단한 병들에 걸리는 건 아니다. 속이 불편하고 쓰리다(제일 많다), 몸살감기에 걸렸다, 피곤하고 무기력하다, 눈이 아프다(은근히 많다) 등등.


*외진(=외부진료) 수는 급격히 증가한. 분위기를 타 교무실에서 "나도 !아무튼! 뭔가 아픈 것 같다"앓는 소리를 내는 공감 능력자들도 속출하곤 한다.


역시, 대단한 전우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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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보건선생님과 나란히 앉아 통계를 낸 건 아니기 때문에, 여기부터는 순전히 작가의 2년간의 긴 관찰만을 통해 얻은 뇌피셜입니다.







[스트레스성+면역력 저하]

두 가지 키워드만 있다면

웬만한 재수생은 진단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대부분의 증상은 그 앞에 > 스트레스성 <이라는 만능 키워드를 달고 나타난다. 거의 무적의 키워드다.


 기숙학원 근처에 위치한 외진용 병원들은 우리 학원의 파랑보라 단체복을 본 순간부터 기본적으로 > 스트레스성 <이라는 단어를 붙이고 진단을 시작했다. 스트레스성 위염, 장염, 구내염, 몸살, 감기, 두통 등등......


???:

아, 항생제 받아가시고요, 재수 끝나면 나으실 겁니다^^





+) 거기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 면역력 저하 < 까지.


[스트레스성+면역력 저하] 


두 가지 키워드만 있으면 웬만한 재수생은 진단이 가능하다는 이 놀라운 사실! 역시 레몬 한 개엔 자그마치 레몬 한 개 분량의 비타민C가 들어있다는 팩트처럼 재수생 한 명에게는 재수생 한 명분의 스트레스가 쌓여있는 법이다. 만병의 근원이 되는 그 스트레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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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부 진료를 나가고 싶어서 꾀병을 부리는 경우도 잦다. 한 달에 한번 있는 휴가를 제외하면 오직 외진 만이 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 방법이었다. 이 불쌍한 기숙학원생들은 외진을 나가 약국에서 텐텐이라도 사 먹고 싶어서 기꺼이 꾀병 진단비 3000원가량을 지불하곤 했다. 검은 봉다리에 박카스, 텐텐, 곰돌이 구미, 비타민 워터 등을 종류별로 사 들고 들어와 약국 쇼핑 내역을 자랑하면 수업을 듣고 있던 학생들은 진심으로 부러워했다.


식중독 위험 때문에 외부 음식을 철저히 금지시켜 학원 내 매점에 팔지 않는 군것질거리가 너무나도 귀했던 탓이다. 외부진료 다녀오면 혹여다 약국 용품 외 다른 것을 샀을까 봐 짐 검사도 실시했다. (*요즘은 외부음식 반입에 이 정도로 엄하진 않다고 함)

+) 라떼 제일 유행했던 외부 군것질거리는 바로 이 요구르트 젤리였다. 지금은 편의점에 널려있어도 잘 안 사 먹는데 그때는 왜 그렇게들 이 젤리에 환장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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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꾀병진단비 3천 원을 지불하러 온 학생이어도 의사와 간호사 선생님들은 우리에게 친절했다. 앞서 말했듯이 재수생 한 명에게는 재수생 한 명분의 스트레스가 쌓여있는 상태이므로, 엄밀히 말하면 아예 없는 병을 지어낸 꾀병은 아닌 셈이다. 비타민 영양제라도 처방해 주거나, 피로회복 주사/링거 등을 놔주실 수 있었다. 진정한 이 시대의 플라시보 효과랄까? 그리고 수업을 째고 바깥공기를 마시러 나와있다는 그 짜릿한 사실만으로도 회복이 많이 된 상태기도 했다. 




'건강이라는  어릴 때(?)처럼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구나'라는 슬픈 사실을 일찍이 인지한 재수생들은 이때부터 자발적 약방 노인네들로 돌변한다.


각자 본인의 전용 무기마냥 커다란 다이소 약통(요일별로 나눠져 있는)이나 종류별 영양제통을 나열해 놓고 시간대별로 섭취했다. 대학생들이 '이 화장품이 좋대, 저 맛집/카페가 유행이래' 할 때 재수생들은 '이 영양제 효과가 좋다, 몸에 열이 많으면 홍삼은 안 받는다더라, 역시 비싸도 공진단이 최고다'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대생들이 서로 립스틱 색깔을 칭찬하며 돌려 써보듯이 서로서로 각자 먹는 영양제를 공유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마음에 쏙 드는 2017 SS컬렉션 신상 영양제가 생겼다면? 부모님께 쪽지를 써서 생활 담임께 전달하면 된다. 재수생들의 부모님들은 쿠팡 로켓배송처럼 이튿날이면 그 영양제를 학원에 도착시켜 주시니까!





역시 건강이 최고다.

성적과 대학이 모든 것인 이 시기에도, 건강은 항상 그에 앞서는 중요함이다. 다들 아프지 말고 공부하세요!






#삼수생의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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