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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일한 사대생 Oct 13. 2023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야식




 삼수생의 일기를 연재한다는 사실을 주변에 알린 뒤, 기숙학원 동지들에게 다양한 소재거리 제보를 받았다. 그중 보자마자 '아 이건 또 무조건 한편 써줘야~'했던 아주 군침 싹 도는 주제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야식! 먹는 얘기!!


결국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주제가 빠지면 또 섭하지 않겠는가? 그럼 바로 시작하겠다.


(삼수생의 일기에 언급되는 모든 이야기는 n년 전 강남대성기숙학원과 그 인근 학원들을 기준으로 합니다. 현재와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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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숙학원 급식은 정말 화려하다



사실 화려할 수밖에 없다. 무조건 맛있어야만 한다. 삼시세끼를 전부 학원에서 먹는데 급식이 맛이 없으면 가뜩이나 광기 어린 재수생들이 집단 쿠데타를 일으키거나 집으로 탈주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기에.



경기도 이천에 위치한 나의 기숙학원은 갓 공수한(?) 이천쌀로 이천쌀밥을 지어줬다. '이천 쌀이라고 진짜 뭐가 달라?' 처음엔 반신반의하며 먹었지만 실제로 밥이 정말 맛있었다. 아님 그냥 강대기숙 급식실 조리사분들이 밥 짓기의 달인이었던지. 



원하는 만큼 퍼가고 자유롭게 남기는 뷔페식이었고, 메인반찬, 김치류는 꼭 두 가지 이상씩 있었다. 신선한 과일, 빵 등등 후식도 늘 다양하게 준비됐다.



학교 급식에 있는 '맛있는 거 나오는 날' (보통 수요일, 이른바 수. 다. 날: 수요일은 다 먹는 날, 특식데이 등등) 급의 메뉴가 매일매일 준비됐다고 상상하면 쉽다. 웬만큼 입 짧은 소식좌들도 학원 급식이 상당히 잘 나오는 편이었다는 건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기숙학원으로 외근을 오는 외근직 강사님들께도 '여기 급식소 참 맛집'이라고 소문이 자자해 시간이 부족해도  밥을 챙겨드시고 가셨었다. 






급식만 잘 나오는 게 아니라
매일매일 간식도 줬다.



오후 10시, 자습 종료 30분 전 종이 울리면 당번들은 식당으로 가 각 반에 해당되는 간식상자를 가져왔다. 흡사 초등학생 때 우유급식 할 때 쓰이던 플라스틱 상자에는 그 당시 가장 유행 타는 인기 간식이나 신제품 1종+음료로 구성된 세트가 들어있었다.


요즘에는 탕후루, 약과 뭐 이런 거 나오려나?



아직도 기억나는 건 이거다.

[쁘띠첼 아이오아이 에디션]


참으로 내가 입시하던 시기를 투명하게 예측해 볼 수 있는 간식이다; TV도 인터넷도 못 하는 문외한 재수생들끼리 인기 멤버 띠부씰 나오면 좋아하고 그랬다. 그때도 김세정은 인기가 많았고, 전소미가 솔로로 이렇게까지 성공할 줄은 아무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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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먹을 음식을 내가 결정할 수 없을 때, 즉 식사메뉴에 대한 결정권을 박탈당했을 때 가장 주기적으로 생각나는 음식이 어쩌면 가장 맛있는 음식인 것 아닐까?



이렇게 아무리 맛있는 식사와 간식들이 365일 다른 메뉴로 준비된다 해도 재수생들이 늘 주기적으로 노래를 부르는 야식이 딱 한 가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국민 소울푸드 [라면] 되시겠다.



나는 라면은 '저렴한 가격과 손쉬운 접근성' 때문에 맛에 비해 평가절하된 대표적인 한식이 아닐까, 종종 생각한다. 흔히 '밥값이 부족해서 라면밖에 못 먹는다' or '먹을게 마땅치 않을 때 어쩔 수 없이 먹는 음식'이라고 표현되는 대표적인 서민음식이 라면이라지만, 재수학원에서의 실상은 다르다. 


수생들은 그렇게 라면을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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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기숙학원에는 한 달에 한번 라면데이가 있었다.


 그날은 다른 날처럼 당번이 간식상자를 들고 올라오는 게 아니라, 식사 시간처럼 다 같이 식당으로 내려갔다. 오후 9시 반, 라면이 가장 맛있어지는 시간에! 내려가는 길은 이미 온 복도에 라면 향기가 가득했다. 식당에 도착하면 그 넓은 공간에서 컵라면 800개가 동시조리되고 있는 진풍경이 펼쳐졌고. 


학생들은 알루미늄 포일컵에 소분된 김치까지 포함된 야무진 1인 1 라면 세트를 받아 들고는 행복해했다. 컵라면 종류는 매달 달라졌기 때문에 무슨 라면인지 향으로 유추해 보며 계단을 내려가던 그 길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사실 그때는 공부 빼고 다른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기쁨이다.



라면이 가장 맛있는 시간 밤 9시에,

친구들과 다 같이 먹는

 남이 끓여준 컵라면의 맛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입시가 끝난 뒤부터, 신기하게도 나는 라면을 별로 먹지 않는다. 먹어도 그때만큼은 맛이 없다.


추억을 미화하는 기능은 참 신기한 것이다.





#삼수생의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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