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인데 팀원은 없습니다 - 2
출근 기록 시스템도 없고 눈치 볼 직원도 없지만 C는 철저히 출근 시간을 지킨다.
근무 시간 30분 전 도착, 10분 전에는 자리에 앉아 할 일들을 쭉 정리하는데, 오늘 주요 업무는 수출 전시회 참여다.
전시장에 전시할 제품을 챙기는 것, 제품을 운반해줄 용달차를 예약하는 것, 그 와중에 급한 업무 메일을 처리하는 것, 혹여나 사무실 전화가 울리면 그에 응대하는 것, 모두 C의 일이다. 점점 빠른 속도로 내려오는 테트리스 벽돌 조각에 쫓기듯, 휘몰아치는 업무를 연이어 깨부순다.
"벌써 도착하셨다고요?"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기사님 전화를 받은 C는 먹던 밥을 씹으면서 짐을 챙겨 화물용 엘리베이터에 탔다. 한쪽에는 먼저 타고 있던 택배 기사님의 카트, 한쪽에는 C의 카트가 들어서니 엘리베이터 안이 꽉 찬다. 지하 1층을 누르고, 잠시 눈을 붙이고 있는데 지상 1층에서 문이 열렸다.
"대리님, 엘리베이터 왔어요! 어? 아이씨..."
'...아이씨?'
앞을 보니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고 선 여자 두 명, 공간이 꽉 찬 엘리베이터가 지하로 내려가는 걸 확인하고는 짜증이 났나 보다. C는 마치 자신을 짐짝 취급하는 듯한 느낌에 동공이 떨렸다. 욱하는 마음으로 한 마디 하려는데 문이 닫힌다.
물론,
문이 계속 열려 있어도 아무 말 못 했을 거란 걸 안다. 결정적인 순간엔 늘 말문이 턱 막히는 C니까.
마음속으로 식식거리며 용달차 기사님 옆자리에 탔다. 전시장까지는 1시간. 좀 전의 장면들이 괜히 서러워 눈을 감으려는데, 발밑에 커피캔 박스가 자꾸 치인다. 금세 알아차린 기사님이 커피캔 박스를 뒷좌석으로 옮겨주시며 하나 마시라고 권하시는데, 뒷자리를 슬쩍 보니 커피 캔들이 꽤 많다.
"차에 커피가 많네요"
"다 자판기에 들어갈 커피예요. 새벽에 나와서 친구네 기계에 옮기는 일 도와주고 있거든요"
그렇게 대화가 시작됐다.
용달차, 30년간의 직장생활을 끝내고 올해부터 시작하신 일이라고 한다. 기사님의 애증이 담긴 회사 생활 이야기 중 C의 귀에 꽂히는 단어는, 단연 연봉이었다.
기사님은 6년간 요지부동인 연봉에 회사의 말만 믿고 기다렸다고 한다. 하지만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본인보다 입사 1년 차의 연봉이 높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결국 참지 못했다고 한다. 그 길로 회사를 박차고 나왔으나, 다시 돌아가 끝까지 남은 일을 해결해 주고 나왔단다. 그러곤 젊은 사장놈에게 다신 그렇게 살지 마라고 했다는 기사님.
"아니 근데 왜 연봉 협상을 안 하셨어요? "
"그냥 내가 눈치껏 얘기를 안 한 거지."
"아니 왜요? 그래도 얘기하셨어야죠!"
함께 분해하며 툭 내뱉은 말에 C자신도 뜨끔한다.
'나도 얘기 못하면서 무슨...'
한참 이야기를 늘어놓던 기사님이 C의 얼굴을 흘깃 보더니 한 마디 던지신다.
"그런데.. 그쪽도 할 말 못 하고 살 것 같은 인상인데?"
C는 웃음이 터졌다. 그 한 마디에 묘한 동지애를 느끼며, 아침부터 바짝 긴장했던 몸이 풀렸다. 급기야 서로가 더 우유부단하다며 우스운 경쟁을 하기도 했다. 말도, 마음도 똑 부러지지 못하는 물렁한 사람을 오랜만에 만난 것 같았다.
한 편으로는 덜컥 겁도 났다. 연봉 인상이 6년간 없었다니, 3년 차 동결인 C도 금세 따라잡을 세월처럼 느껴져서다. 만약 지금 이 우유부단함을 끊어내지 않는다면 10년이 되어도, 20년이 되어도, 회사의 상황에 끌려다닐 수도 있겠구나.
하루빨리 나는 이 연봉이 괜찮지 않다는 걸 말하지 않으면 회사는 진짜 모른 채 넘어갈 수도 있겠구나.
이번 전시회만 잘 끝내고 나서는 꼭 이야기를 해야겠다, 그리고 되뇐다.
"저 대표님, 이 연봉으로는 조금 어렵겠는데요."
[팀장인데 팀원은 없습니다]
2화) 6년째 연봉 동결이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