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인영 Oct 15. 2022

우울

이인영, <무거운 마음>, 종이에 수채, 21x30cm, 2022.10.



유난히 발걸음이 무거웠던 어느 퇴근길.

아, 우울하다,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묘하게 이 기분이 조금 가식적으로 느껴졌다. 그건 내가 우울한 기분으로 길을 걷고 있는 자신을 그림 속 풍경처럼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풍경이 그림으로 그릴만한 소재일까, 이 기분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라고 고민하면서 자신의 우울을 감상하고 있었다. 그림을 완성할 때까지는 이 기분이 유지돼야 하는데,라는 이상한 걱정하고 있었다.

나는 그때 그림을 그리는 일이 내포하고 있는 함정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 자신의 감정에 대한 애착이 지나쳐 그것을 액자 속에 박제해 놓고는, 그 액자 속 감정에 (이미 변한) 자신의 감정을 다시 끼워 맞추는, 그런 가식적인 감정으로 그림을 그리게 되는 함정.







내가 자꾸 자신의 우울함을 감상하는 건 그럴만한 심적 여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것이 우울한 기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자신과 거리를 두어 그 감정을 조금이라도 무덤덤하게 혹은 즐겁게 바라보고 싶은 것이다. 그 행위를 연극적이라고, 지나친 자아도취라고 무조건  폄하하거나 억제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동네 카페에 나와 있다. 아침부터 계속 비가 내려서 낮인데도 창밖 풍경이 온통 잿빛이다.

맞은편에 앉아 있는 두 여인. 40대 중후반쯤으로 보인다. 얼핏 들리는 말.

"너무 우울해요, 일도 너무 힘들고... 집에 가도... 정말 혼자만의 시간이 좀 있었으면 좋겠어요..."

하다가 벅차오르는 듯 말을 잇지 못한다. 울음소리가 카페의 적막을 뚫고 나지막이 울려 퍼진다.

"그렇죠. 회사 일이라는 게 참 힘들죠." 하면서 다른 여인이 어깨를 토닥인다.

갑자기 나의 우울은 좀 엄살이라는 생각이 든다.

(2022.7)



매거진의 이전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