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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Oct 17. 2020

마리엘라 자르토리우스의 <고독이 나를 위로한다>

고독이란 단어는, 외로울 고(孤)와 홀로 독(独)으로 이루어졌다. 한때 이 단어를 이렇게 해석한 적이 있다. 옛 고(古)와 독 독(毒)이 합쳐진 단어. 즉 오래된 독. 고독은 멋있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나에게는 오래 된 독처럼 뭔가 아리고 쓰린 느낌이 있다. 그럼에도 고독이 없는 정신없는 일상이나 사람들과 온통 부대껴야만 하는 시간 속에서는 숨이 막힌다. 혼자 있는 시간을 갖지 않으면 나를 잃어버리는 것만 같아 불안해지기도 한다. 고독에 대한 나의 이런 아이러니한 태도는 꽤 오래된 듯하다. 홀로 있는 걸 원하지도 않으면서 홀로 있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


살다보면 누구나 지독하게 외로운 순간과 마주친다.”


이 문장이 참 아프게 들린다. 지독하게 외로운 순간. 그 순간은 늘 혼자다. 마음을 나누던 친구도 없고 날것의 모습을 보여도 되던 가족과도 사소한 이유로 등을 보게 되며 오로지 적들에 둘러싸인 듯 혼자가 된다.

나는 언제 가장 외로운가. 아무도 나를 모르는 타인들 속에 있거나 혼자 방 안에 있을 때는 오히려 외롭지 않다. 적당히 안면이 있는 무리들 속에 있을 때, 마음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야만 할 때 그때 나는 지독하게 외로워지고 피로해진다.


이 책은 외롭고 싶다외떨어진 섬에 가고 싶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외로움을 고독으로 승화시킬 준비가 되어 있는 당신이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자신을 위해 투자하겠다고 다짐하는 당신고독이라는 섬으로 갈 수 있을 만큼 성숙한 당신을 위한 것이다.

내가 안내할 그 섬은당장 친구도 버리고 가족도 버리고 집도 직장도 버리고 떠나는 사막이나 고산이 아니라친구와 가족들과 더불어 보내는 평온한 일상 속에서’ 더러 떠날 수 있는 낙원 같은 섬이다.”


위의 문장이, 이 책을 설명하는 가장 적절한 내용인 듯싶다. 어쩌면 내가 알고 싶던 고독, 나의 고독과는 조금 다른 것이기도 하다. 꽤 오랫동안 나를 관찰해 온 결과, 나는 혼자만의 시간이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사람들과의 부대낌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마음이 통하는 사람에 대한 집착과 고집이 남들보다 더 큰 지도 모른다. 나만의 시간을 흔들림 없이 즐기기 위해서는 사람들과의 교감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 교류가 에너지가 되어 혼자의 시간을 충실하게 보낼 수 있다.


마음이 통한다는 것은 이런 느낌이다. 내 온 몸을 통과한 바람이 상대의 온 몸을 훑고 나와 다시 나에게로 들어오고 그 바람은 다시 상대에게로 들어간다. 그렇게 계속해서 순환하는 느낌. 거스름이 없고 부자연스러운 흐름이 없는 상태다. 그런 느낌을 주고받는 소수의 사람들을 만나고 오면 혹은 그런 사람들과 대화를 하거나 연락을 주고받고 나면, 태양을 흠뻑 받아들여 쑥 자란 식물처럼 싱싱해진다. 배터리를 100% 충전한 느낌이기도 하다.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충만함은 밖에서 퍼부어 채울 수 있는 게 아니다보물상자를화수분처럼 마르지 않는 생의 샘물을 고이 간직한 충만함이니까.”


위의 문장에서 저자가 말하듯 혼자만의 시간, 고독을 통해 내면에서 나오는 무언가를 흡수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저자는 여러 표현을 통해 혼자됨, 고독의 아름다움과 중요성, 의미를 예찬한다.


고독자만큼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자기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진정한 외톨이는 혼자의 삶에도 대가이지만 늘 사람에 대한 호기심을 잃지 않는 적극적인 관찰자이기도 하다.

인생의 기술은 혼자의 삶을 유일한 가능성으로 생각하지 않는 데 있다혼자의 삶을 적절히 배치하고 신중하게 선택하여 힘껏 즐기는 것이 진정한 삶의 기술이다.”


물론 혼자 있기를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다. ‘고독사’라는 단어가 있는 것을 보면, 고독은 곧 지독한 외로움이며 죽음과도 같은 이미지가 있다. 외롭지 않기 위해 빽빽하게 일정을 짜고 소비를 하고 혼자 있는 자기 자신을 보지 않으려고 아등바등하는 느낌도 있다. 고독은 곧 혼자, 외로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말한다. 고독은 혼자 있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과 있는 시간이라고.


친밀함소속감푸근함은 인간의 기본 욕구이다그 욕구를 충분히 만족시키지 못하면 몸과 마음의 병을 얻게 된다. (중략혼자서 인생길을 걸어간다고 전부 다 애정 결핍에 시달리는 것이 아니다고독자들은 혼자 살아도 친밀함과 소속감푸근함을 느끼며 살아간다왜냐하면 그들은 관계를 중시하고 우정을 가꾸며 살아가기 때문이다그들은 충분한 애정과 소속감을 느낀다사랑하는 지인들에게서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게서.

조금 더 시야를 넓힌다면 전혀 다른 차원의 소속감도 느낄 수 있다진리에 대한 깨달음을 통해운명을 받아들임으로써혹은 신앙을 통해서 말이다여유와 통찰확신은 효과가 탁월한 사랑의 묘약이요 강장제다그것은 인생의 끝자락에서 누구나 혼자 떠날 수밖에 없는 마지막 여행길의 든든한 길양식이 되어 줄 것이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저자의 의견, 그 시간의 중요성, 가치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공감한다. 아니 크게 공감한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그리고 책을 덮으면서 씁쓸한 마음이 계속 들었다. 그 이유는 나 자신도 알지 못한다. 사람과 살을 부대끼며 사는 것보다는 혼자만의 시간이 중요한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이 둘은 비교할 대상이 아니다. 모두 필요하다.

각자의 공간, 시간을 존중하되 함께 하는 삶. 욕심이 지나치다 할지 모르지만 나에게 고독은 그럴 때 진정한 고독의 빛을 발휘한다는 생각이 든다. 365일 혼자 인 사람은 고독을 즐기기 어렵지 않을까. 그것은 그저 외로움일 것이다.


둘이어야 한다는누군가와 함께 있어야 한다는함께 하나가 되어 공생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릴 때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깨닫는 순간나는 그 깨달음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그리고 이내 혼자 있는 시간의 자유와 평화를 마음껏 누리고 음미하기 시작했다.”


반드시 누군가와 함께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분명 나쁘다. 그런 마음이라면 누구와 함께 해도 외로울 뿐이다. 홀로 설 수 있는 두 사람이 만나야 한다.


고독이 고통스러운 외로움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진실한 우정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런 표현이 나는 조금 아프게 들린다. 외롭지 않기 위해 우정이 필요한 게 아니라, ‘진실한 우정이 있기 때문에’ 고독을 즐길 수 있는 에너지를 받는다고 말하고 싶다.


우정이야말로 가장 건실한 인간관계이고그런 우정에 던지는 최고의 찬사는 이것이다!

혼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굉장히 마음에 든 문장이다. 생각할수록 수긍이 간다. 마음이 통하는 몇몇 사람들과의 시간은 혼자 있는 시간처럼 아무런 걸림이 없다. 내가 나로 있을 수 있는 그 시간, 호흡을 할 수 있다. 이는 사회적인 가면이 필요한 순간과는 다른 시간이다. 이런 시간이 나는 너무 좋다.


고독과 외로움을 구별하는 건 어쩌면 어려운 일일지 모른다. 나는 고독이라 명명하며 즐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타인의 눈에는 한낱 고집쟁이 외톨이로 보일지도 모른다. 사람들과 교류할 줄 모르는 인간관계 실패자로 보일지도 모른다. 친구 한 명 없고 동물이나 식물을 키우면서 그것만이 믿을 만한 곳이라고 굳게 믿고 사는 사람. 그런 사람은 진정한 고독자가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것은 고립이며 슬픔이며 우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문득 의문이 든다. 그런 사람들의 홀로됨은 그럼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그것은 저자가 예찬하는 고독과는 다른 것이며, 저자의 표현대로 감성 지능과 사회 지능의 결핍자들이라고 구분하면 그만일까. 어쩌면 그런 비뚤어진 형태도 모두 고독인 것은 아닐까. 혼자를 즐기지 못하는 외로움은 고독과 다르고 즐길 수 있는 상태만이 고독이라 부르려는 저자의 생각에 나는 조금 다른 의견을 내고 싶다.


고독에는 많은 형태가 있을 것이다. 즐기지 못하는 괴로운 상태의 외로움도 있고 스스로 선택한 자아와의 시간을 즐기는 고독도 있다. 또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잘 해내지 못해 도피처럼 혼자가 된 고독도 있을 수 있다. 모두 고독이다. 하지만 그 고독을 조금 더 ‘즐기고’ 유익하게 하기 위해 우리는 사람들과의 안정적인 관계가 필요하다. 사람들과의 따뜻한 교류가 밑바탕이 된 혼자됨일 때 안정적인 홀로서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고독의 시간은 인간 누구에게나 반드시 필요하다.

자아와 만날 수 있고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그 시간은, 회사에 치이고 집안일에 치이는 맞벌이 아빠, 엄마가 노동자도 아니고 누구의 엄마, 아빠, 아내, 남편이 아닌 한 사람의 '나'가 되기 위해 필요한 시간이다. 또한 학교생활과 공부에 치이는 아이들에게도 그 시간은 필요하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내면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며, 그 시간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연습 또한 필요하다.


고독이란 무엇일까. 혼란스러워졌다. 고독은 ‘오래된(古) 독(毒)’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고 서두에 썼다. 혼자를 좋아하고 혼자만의 시간이 없으면 현기증이 나듯 괴로워하는 나, 그런 나지만 그럼에도 고독은 오래된 독처럼 결코 밝은 이미지는 아니다. 이 책을 읽은 지금의 나에게 고독이란 무엇일까.

혼자서도 행복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혼자보다는 함께가 행복하고 함께가 행복하지만 혼자 있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단 생각이 문득 든다. 그것이 어쩌면 고독의 올바른 모습이 아닐까 싶다.

이전 04화 강판권의 <나무철학>(글항아리,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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