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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Oct 17. 2020

강판권의 <나무철학>(글항아리, 2015)


회사 내, 사무실에서 나와 화장실로 향하는 복도 정면에는 커다란 통유리 문이 있다. 그리고 그 문 너머에는 하늘을 향해 두 팔을 올리고 있는 커다란 나무가 있다. 복도를 따라 걸으며 그 나무를 바라본다. 안으면 내 팔로는 도저히 닿지 않을 만큼 넓고 큰 나무. 그 나무를 보며 걷는 그 길,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많은 나무를 생각하곤 한다. 나의 나무와 그늘. 너의 뿌리. 그 시간을 떠올린다. 나무를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올려다보게 된다. 나에게 나무는 그런 존재다. 나무를 보면 나도 모르게 달려가 두 팔을 뻗어 안고 싶어지고 올려다보고 싶어진다. 그럼 나무가 가만히 안아주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 줄 것만 같다.






버린다고 없어지지도 않고 얻는다고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




마음이 혼란할 때면 무언가를 버리고 싶어진다. 나를 혼란스럽고 괴롭게 하는 것은 나의 ‘가짐’으로 인한 번뇌라고 생각해서 그런 것이라 믿지만 어쩌면 버림으로써 나를 더 상처 주려고 하는 자학일지도 모른다. 다만 나의 괴로움의 대부분은 아마도 두 손에 꽉 쥔 그 무엇을 놓지 못한 탓이란 생각을 한다. 무언가를 놓을 줄 모르기에 그 집착이 짐이 되어 나를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게 아닐까 한다.




그때 너의 ‘나는 잃을 게 없기 때문에 두려울 게 없어’라는 그 말이 슬프게 들렸다. 지금도 그 말을 하던 너의 얼굴을 떠올리면 눈이 시큰해진다. 그 말을 하던 너의 마음을 나는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너를 지켜주고 싶었다. 네가 잃을 것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그만큼 소중한 무언가가 너에게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도 한다. 


너는 나보다 훨씬 용기 있었다. 잃을 게 없기에 너는 너의 감정에 솔직했고 당당했다. 나 또한 너처럼 잃을 게 없다고 생각하지만 너만큼 용기는 없었다. 두려운 것 또한 없으면서 용기 또한 없었다. 그리고 지금도, 없다.




무언가를 많이 소유한다는 것은 상대적이지만절대적인 기준은 자신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 소유하느냐의 여부다(중략나무가 한 해 동안 목숨을 걸고 만든 잎을 가을에 떨어뜨리는 것은 그 이상 잎을 소유하는 순간 자신의 목숨을 유지하기 힘들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p47)”




나의 가짐을 생각해 본다. 몇 년에 한 번씩 이력서를 쓸 때마다 나의 과거가 낯설다. 점점 남의 일처럼 느껴지는 과거를 한 줄 한 줄 정성스레 적으며, 한 줄이라도 읽는 이를 멈추게 만들 무언가를 적고 있는 내가 구차해 보인다. 과거를 보내지 못하고 소유하려는 집착과 욕심으로 느껴질 때도 있다. 어쩌면 나는, 내가 소유할 수 있는 능력 이상으로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나 자신을 유지할 수 없을 만큼의 무게이기에 그래서 이렇게 추억이 무거운 건지도 모른다.




버린다고 없어지지도 않고 얻는다고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p51)”




회사 뒷자리에 앉던 동료가, 조금 떨어진 곳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동료는 책상을 정리하며 말했다. ‘처음에 입사할 때는 맨 손으로 왔는데 이렇게 짐이 많이 늘었네요.’ 아무렇지 않게 한 그 말이 계속 기억난다. 항상 난 가진 것이 없다고 생각해 왔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잃을 게 없다고도 생각한다. 그럼에도 막상 짐을 정리하려고 하다보면 도저히 보낼 수 없는 것들이 나온다. 시간을 붙들어 두고 싶은 추억들 앞에서 손을 놓지 못하게 된다. 현실에 뿌리를 내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얼마 안 되는 돈에도 집착하게 된다. 버리는 것을 좋아했던 게 아니라, 어쩌면 버림받지 않기 위해, 버림받기 전에 먼저 버리려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결국 난 아무것도 버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잎을 만들 때는 오직 만드는 데 골몰한 나머지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부족한 것이다나무는 잎을 떨어뜨리는 순간 비로소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볼 시간을 갖는다. (중략나무는 잎을 버린 뒤 하늘을 향해 온전히 자신의 몸을 드러낸다.(p47~48)”




버려야 보인다. 내가 무엇을 가지고 있었는지, 내가 무엇에 집착하고 있었는지. 저자는 말한다. 나무가 잎을 떨어뜨리는 행위는 나무의 자기 성찰(p48)”이고 그 성찰의 핵심은 자신을 정확하게 보는 것(p48)”이라고. 버리고 싶은데, 버리고 있다고 믿었는데, 사실은 아무것도 버리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에, 막막해진다.






나무 이름을 갖는다는 것은 그 나무처럼 살아가겠다는 것이다




쥐똥나무. 그 누구보다 나무를 사랑하는 저자의 나무 이름은 쥐똥나무다. 그에게 있어 나무 이름을 갖는다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자나무와 평생 함께하려는 원대한 꿈의 표현(p182)”이다. 그가 쥐똥나무를 자신의 나무 이름으로 정한 이유는 그 나무처럼 자신의 키가 작아서 뿐만은 아니다.




울타리 역할을 하면서 살아가는 쥐똥나무의 위대함은 타인의 고통과 어려움을 보호하면서도 자신을 결코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이다이 점이야말로 내가 쥐똥나무를 나무 이름으로 삼은 가장 큰 이유다. (중략나는 쥐똥나무처럼 남 앞에 나서지 않으면서도 묵묵하게 자신의 역할에 충실한 사람이고 싶다쥐똥나무처럼 살아가는 것이 나의 인생철학인 셈이다.(p188)”




그가 쥐똥나무라는 나무 이름을 지은 것은, 쥐똥나무처럼 살고 싶다는 마음이요, 마이너스가 될 수 있는 작은 키조차 인정하고 사랑하겠다는 자신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다. 저자의 나무 이름을 읽고 계속 고민했다. 나무처럼 살고 싶은 나, 나무를 사랑하는 나, 기념일마다 나무를 심고 나무 아래에 묻히고 싶은 나, 그런 나에게는 어떤 나무이름이 어울릴까 라고.




버드나무의 잎과 가지는 바람에 몸을 맡기고 이리저리 흔들린다만약 버드나무가 흔들리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면 결코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버드나무가 강한 것은 부드럽기 때문이고 부드러운 것은 흔들리기 때문이다.(p62)”




버드나무에 관한 이 부분을 읽고 정했다, 나의 나무 이름은 ‘버드나무’다. 버드나무는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하다. 또한 자정력이 있어서 하천이나 늪을 맑게 하는 힘도 있다.




아무리 위대한 사람일지라도 평생 흔들리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나무가 하늘을 향해 곧게 자랄 수 있는 것도 바람에 수없이 흔들리면서 살아가기 때문이다그러나 오직 흔들리기만 한다면 살아남을 수 없다나무는 흔들리면서 뿌리를 튼튼히 만든다바람에 꽃과 열매를 잃어버릴 때도 많지만 그럴 때마다 뿌리는 한층 더 튼튼해진다.(p65)”




청소년기를 지탱해 준 종교를 떠나던 이십 때 초반. 나는 말 그대로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아니 정말 실제로 나의 하늘이 무너졌다. 내 삶의 모든 기준이 사라졌다. 벌거벗겨진 채로 길가에 버려진 듯했다. 그때 홀로 일어서기 위해 내가 붙들었던 것은 자기계발서였다. 하면 된다는 책들, 희망을 긍정하는 책들에 악착같이 매달렸다. 살기 위해 매달렸다. 흔들리지 않기 위해 발악했다.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세우기 위해 나를 흔드는 모든 것들로부터 도망쳤다. 흔들리면 부러지는 것이라 믿었다. 그렇게 이십 대를 보내왔다.




결정적인 순간에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흔들려야 한다.(p65)”




이제 자기계발서는 읽지 않는다. 무엇이든 노력하면 다 된다는 거짓 희망도 믿지 않는다. 여전히 흔들리는 것 또한 두렵다. 하지만 이제는 흔들림을 피하지는 않는다. 흔들려도 부러지지 않는다는 걸 안다. 세찬 비바람에 버드나무는 부러지지 않지만 지나치게 곧은 나무는 부러진다. 나의 이십 대를 지탱했던 곧음, 그 곧음의 잣대로 주변 사람들을 내 마음대로 판단하고 비난하고 단정 지었다. 나의 곧음이 옳음이었고 정답이었다. 약했던 것이다, 그만큼.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무너질 거라 믿었다. 그만큼 나 자신에 대한 믿음도, 신뢰도 없었다.



지금도 여전히 흔들리는 것은 두렵다. 나를 흔들리게 하는 생각들과 마주쳐, 내 안이 엉클어지면 정신 차리지 못하고 주저앉는 건 예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흔들림을 무작정 피하지는 않는다. 흔들려야 보이는 것들이 있고 흔들려야 나의 옮음만이 정답이 아니라는 사실을 배울 수 있다는 것, 끊임없이 변화하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흔들려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무리 흔들려도 중심은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는 나 자신에 대한 믿음도, 예전보다는 조금은 더 생겼다.






변함없기 위해서는 변해야 한다




소나무처럼 자신의 색깔을 변함없이 지키기 위해서는 역설적이게도 변화가 필요하다소나무의 잎이 늘 푸른 것은 처음부터 푸른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잎을 푸르게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변한다는 사실을 모른다.(p90)




아무리 큰 가치를 지닌 것일지라도 변하지 않고서 지킬 수는 없다나무는 죽을 때까지 잎을 갈면서 살아가기 때문에 큰 덩치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p322)”




물이 고이면 썩듯이사람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는 변하지 않으면 죽어버린다.(p323)”




예전의 나였다면 나의 나무이름은 아마 ‘소나무’였을 게다. 변함없음, 영원함에 집착하던 시절의 나였다면 말이다. 변한다는 것은 잃음이요 죽음이라 생각했던 시절이 있다. 아무도 나를 지켜주지 않았다는 유년시절의 아픔으로 인해, 변함없음, 영원함에 집착했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변해가는 것들을 이해하지 못했고 용서하지도 못했다. 영원함에 대한 집착으로 변함을 거부하고 영원함의 반대말이 변함이라 믿었다.



하지만 영원하기 위해서는 변해야 한다. 고인 물은 썩는다.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 변함없음, 영원함에 대한 나의 집착도 어쩌면 소유에 대한 욕심, 흔들림에 대한 두려움에서 기인한 것일지도 모른다. 떠나가는 것들을 볼 용기가 없어서 떠나가는 것들,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피하기 위해 소중한 것은 아무 것도 만들지 않고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으려 했다.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어쩌면 그런 마음 때문에 제대로 버리지 못했던 것이고 제대로 비우지 못했기에 아무것도 진정으로 채우지 못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가진 것을 모두 오로지 나만의 것으로 만들려는 집착. 소유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소유하겠다는 집착. '가려진' 집착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무는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갈 이다.(p121)




저자가 그러하듯, 나 또한 나무를 통해 삶의 철학을 배운다. 배우고 싶고 배우려 한다. 나무를 통해 내가 살아가고 싶은 길을 본다.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수많은 것 중 하나는 ‘살아갈 뿐’이라는 이 자세다. 나무는 묵묵히 살아간다. 왜 사느냐고 묻지 않고 그저 주어진 삶을 묵묵히 살아낸다. 삶도 죽음도 내 것이 아니다. 나의 선택이 아니다. 나무는 왜 나를 이곳에 심었냐고 탓하지도 않고 환경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자살하지도 않으며 그저 묵묵히 살아간다. 햇볕이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환경에 순응하며 그저 ‘살아갈 뿐’이다.






나무의 삶은 나의 삶을 바꾸어놓았다




나무의 삶은 나의 삶을 바꾸어놓았다나무는 위로 향하면서도 옆으로 몸집을 불린다나무는 시간의 삶과 공간의 삶즉 종적인 삶과 횡적인 삶을 동시에 사는 존재다그러나 인간은 대부분 시간의 삶에 집중한다그래서 나이에 집착하고나이에 집착하는 삶은 행복할 수 없다. (중략종횡의 삶은 가치와 의미를 추구할 때 실현될 수 있는 것이다.(p6)”




자주, 나는 내 삶이 길고 길고 길게 느껴진다. 책을 읽는 중간중간에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앞질러 들춰보듯, 마지막 페이지를 들춰 보고 싶은 욕망에 휩싸인다. 나무의 삶이 자신의 삶을 바꾸었다고 말하는 저자. 나 또한 내가 사랑하는 나무를 닮고 싶어 나무를 바라본다.



회사 내 화장실로 가는 복도에서 보이던 그 나무는, 사실 실제로는 큰 나무가 아니었다. 7개월이나 착각하고 있었다. 두 팔로 안지도 못할 만큼 크고 하늘에 가까울 만큼 커다란 나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 글을 쓴 이후 처음으로 제대로 본 그 나무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 낯설 만큼 크지 않았다. 아마 내 마음 안에서의 나무의 크기였던 모양이다.



내 안에 나무는 언제나 그렇게 크고 높다. 언제나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며 나에게 그늘을 만들어 주고 뿌리 근처의 나를 쓰다듬어 주는 존재다. 가끔 나는 나무라는 단어, 뿌리라는 단어가 슬프게 들린다. 아마도 당분간은 그 단어들을 떠올릴 때면 눈물이 맺힐 것 같다. 그러나 시간을 더이상 소유하지 않게 되고 진정으로 비울 수 있게 된다면 가벼워지고 자유로워져서 더 이상 나무를 보며 아파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나무에 대한 나의 사랑은 변함없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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