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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Oct 17. 2020

김애란의 <잊기 좋은 이름>(열림원, 2019)

잃은 것들을 생각한다


올해 내가 잃은 것들을 떠올린다. 손가락 사이로 모래가 빠져나가듯 나를 빠져나간 것들을 무력하게 바라본다. 그리고 생각한다. 잃었다고 여겼던 것들이 사실은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이러한 생각들을 짐처럼 짊어진 어느 날, 그녀의 이 책이 나를 찾아왔다.


그녀의 글을 읽으며 생각했다. 내가 쓰고 싶은 이유, 써야 하는 이유는 ‘떠나보내기’ 위해서다. 내 안에 묻어둔 채로는 이 생을 끝까지 살아낼 자신이 없다. 그러므로 내 삶에 두 발을 딛고, 내 삶이 나의 것이라는 얼굴을 하기 위해서는, 아니 최소한 주어진 이 생을 비겁하지 않게 끝까지 '살아내기' 위해서는 떠나보내야만 한다. 떠나보내기 위해 나는 써야만 한다.


그녀를 키운 팔 할은


때론 교육이나 교양으로 대체 못 하는구매도 학습도 불가능한 유년의 정서가그 시절뭘 특별히 배운다거나 경험한단 의식 없이 그 장소가 내게 주는 것들을 나는 공기처럼 들이마셨다.(p10)”


이 책을 한 마디로 말한다면 그녀의 ‘구성 성분’이다. 그녀의 팔 할은 내가 처음 한 말그리고 평생 쓸 말을 가르쳐준(p110)” 부모님과 가족이고 나머지 이 할은 작가로서의 만남들이 아닐까 싶다. 이 책 곳곳에 그녀의 부모님에 대한 애정과 사랑, 감사의 마음, 자신의 뿌리에 대한 인식이 담겨 있다. 

그녀의 소설 속에는 언제나 적나라한 삶의 민낯이 드러나 있었다. 옆에 아무도 없음에도 지나친 민낯에 나도 모르게 주변을 둘러보고 마는 그러한 민낯이다. 하지만 그녀의 소설에는 언제나 온기가 있었다. 답도 출구도 없는 삶의 절망을 그린 소설 속에서조차 알 수 없는 희미한 희망이 있었다. 내가 그녀의 글을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지금 이 글을 쓰며 알게 된다.


어머니는 가방끈이 짧았지만 상대에게 의무와 예의를 다하다 누군가 자기 삶을 함부로 오려 가려 할 때 단호히 거절할 줄 알았고내가 가진 여성성에 대한 긍정적 상이랄까 태도를 유산으로 남겨주셨다나는 내가 본 게 무언지 모르고 자랐지만 그 공간에 밴 공기를 오래 쐬었다.(p14)”


삶이 제 것이라 느끼는 사람의 얼굴(p11)”이 무엇인지 보고 자란 사람. 삶에는 생존만이 아닌 사치와 허영, 반짝이는 것들을 밟고 건너야만 하는 시절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자식들에게 책을 사주고 피아노를 사 주신 어머니가 있는 사람.


나의 팔 할은 무엇일까. 가끔씩 찾아오는 삶의 지진에 매번 쓰러지고 마는 것은 그녀와 같은 이러한 안정감이 내 안에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한 아이의 부모가 될 법한 이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변명하고 있는 내가 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나를 생각한다. 나를 키운 팔 할은 무엇일까.


그녀의 책 서평을 쓰기 위해 하얀 바탕 화면을 바라보고 쓰고 지우고를 반복하다 문득 알게 된다. 나에게도 나를 키운 팔 할이 어쩌면 나의 부모일 수 있겠다는 것을 말이다. 삶에 생존만이 아닌 사치와 허영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준 엄마는 어려운 살림에도 비싼 화장품을 바르고 타지 않으려고 여름이면 하얀 양산을 꼭 쓰던 사람이었다. 엄마를 불러본 기억이 없는 시절에 딸 셋을 두고 집을 나간 엄마는 어느 날 갑자기 어른들의 이유로 다시 집에 돌아왔다. 엄마가 필요했던 긴 시기 중 잠시 한 때를 있었던 나의 엄마가 알려준 ‘삶의 생존 이외의 허영과 사치가 필요하다'는 것은 아직 엄마는 젊고 ‘엄마’로서의 삶보다는 ‘여자’로서의 삶이 더 중요하다는 선택이었다. 생각해 보면 그때의 엄마와 아빠는 지금의 나보다 젊었다. 엄마도 아빠도 태어날 때부터 누군가의 엄마나 아빠는 아니었다. 늘어나는 새치를 보며 가끔 엄마를 생각한다. 나보다 젊었던 엄마가 장롱에서 몰래 꺼내 바르던 비싼 화장품이며 어려운 살림에도 주기적으로 했던 염색. 늘 반짝이던 얼굴. 엄마는 여자였다. 엄마가 아니었다. 그래서 내 삶에 엄마는 없었던 게다.


너의 이름은 부사(副詞)


그녀의 이 책을 읽고 난 후 나는 너의 이름을 부사副詞로 바꾸었다. 너는 나의 부사다.


세계는 만날 줄 몰랐고 만날 리 없는 것들이 만나도록 프로그래밍돼 있다 했던가.(p43)”


여러 번의 헤어짐과 만남으로 인해 너와 관련된 사진과 물건들이 제대로 남아 있지 않다. 어쩌면 이 글 속 너의 이야기가 언젠가 추억이 될지도 모른다. 그런 날이 온다면 이 글이 너에 대한 ‘물건’으로 남을지도 모르겠다. 버릴 수 있는 물건들이 떠나간 자리에 새겨진 글로써.


부사는 가장 먼저또 가장 많이 버려지는 단어다부사가 있으면 격이 떨어지는 것 같고 말의 진실함과 긴장이 약해지는 것 같다. (...) 나는 부사가 늘 걸린다부사가 낭비된 걸 보면 나도 모르게 그 문장을 고쳐 읽게 된다. (...) 나는 내 문장에 부사가 있었다는 걸 부사가 없는 자리를 보며 기억한다부사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지 모른다. (...) 부사는 동사처럼 활기차지도 명사처럼 명료하지도 않다. (...) 부사는 명사나 동사처럼 제 이름에 받침이 없다그래서 가볍게 날아오르고허공에 큰 선을 그린 뒤 그게 뭔지 알 수 없지만 바로 그거라고 시치미를 뗀다부사 안에는 뭐든 쉽게 설명해버리는 안이함과 그렇게밖에 설명할 수 없는 안간힘이 들어 있다. ‘’, ‘’, ‘아주’ 최선을 다하지만 답답하고 어쩔 수 없는 느낌이 말을 바라보는 느낌부사는 마음을 닮은 품사다. (...) 부사는 세계를 우아하게 만들어주지는 못하지만 흥미롭고 맛깔나게 해준다그러니 부사가 있을 곳은 지옥이 아니라 이 말도 안 되는 다급하고 복잡한 세상유려한 표현 대신 불쑥 부사를 내뱉을 수밖에 없는 속세그 세속에서 쓰이는 소설 안일 것이다부사를 변호했다기분이 굉장히’ 좋다.(p86~90)”


너는 나의 부사다. 너는 나의 현재다.


계절이 바뀐 뒤에야 바람이 나무에게나무가 우리에게 무슨 일을 한 건지 알게 되는 것처럼.(p55)”


밑줄 그은 사람


그리고 그 책은 밑줄 그은 사람을 떠나 있었다.(p62)”


밑줄 그은 책을 선물해 준 사람이 몇 명 있다. 대개는 선물하는 책이라면 새 책을 건넨다. 하지만 언제나 그녀는 당당하게 밑줄까지 그어진 책을 선물하던 몇 안 되는 사람이었다. 밑줄 그은 책을 선물하는 한 명이 내 삶에서 떠나갔다. 밑줄이 그어진 책을 선물한다는 것은 나로서는 큰 일이다. 내게는 그건 일기장을 훔쳐보도록 허락하는 일이다. 읽고 읽는 책 제목을 누군가 들여다보기만 해도 얼굴 붉혀지는 나로서는 마음이 머문 문장까지 들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떠난 그 사람은 언제나 당당하게 건네곤 했다. 밑줄만이 아니라 흘겨쓴 글자까지 그대로 남겨져 있었다. 어쩌면 그녀는 그녀의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며 공감해 주길 바라며 그렇게 밑줄과 글자가 새겨진 책을 건넸던 것인지도 모른다.


인생의 예기치 않은 순간과 마주치고무언가를 배우고잃어버리며 삶의 앞통수와 뒤통수옆통수를 보았습니다.(p131~132)”


어쩌면 요즘은 밑줄 그은 책이 아니라 책 자체를 주고받거나 책 이야기를 나누고 하는 행위 자체가 낯설어진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나에게는 이런 쓺의 행위가 더 더욱 중요해진다. 나에게 책은 한 통의 편지였는데 이제 나에게 책은 일기일 뿐이다.


언어가 순결하지 않아 좋다


기다림만큼 견딜 수 없는 것이 있을까. 기다림을 견디지 못하고 이별을 선택하던 순간들이 있다. 하지만 김애란 작가의 신간은 오랫동안 설렘으로 기다려온 일이었다. 우연히 바람이 너무 시원해서 혹은 어느 날 견딜 수 없을 만큼 너무 외로워서 핸드폰의 지인 목록을 하염없이 훑어보다가 이내 닫고 마는 날, 그런 날이면 그녀의 신간 소식을 찾아보곤 했다. 이 책의 발간예정일도 그렇게 우연히 나에게 찾아왔고 신간예약을 통해 발간 다음 날 내 손에 들어 왔다.


활자 속에 깃든 잔인함과 어쩔 수 없는 아늑함에도 불구하고 ’ 안에는 늘 이상한 우스움이 서려 있다멋지게 차려입고 걸어가다 휘청거리는 언어의 불완전함 같은 것이언어는 종종 보다 잘 번식하기 위해 보다 불완전해지기로 결심한 어떤 종처럼 보인다.


(...) 나는 이곳이 낙원이 아니라 기쁘다인간끼리 소통이 잘 안 돼 다행이고 언어가 순결하지 않아 좋다.(p100)”


나는 그녀가 언어를 바라보며 얼굴을 갸우뚱하며 골몰해 있는 듯한 모습이 너무 좋다. 세상은 아름답다는 동화 속 이야기를 하지 않고 삶의 민낯 앞에 건강하게 당당한 그녀의 글이 좋다. 멀리 있던 연인을 기다리듯 그녀의 새 글을 기다리고 기다리다 만나니 한층 더 반갑다. 그녀의 팔 할을 키운 이야기들을 읽으며 친구가 된 듯한 기분마저 든다. 그리고 그녀의 이야기를 통해 나는 나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된다. 나에게도 떠나간 사람만이 아닌 나를 안아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된다. 엄마 옆에서 수제비 반죽을 얻어내어 소꿉장난하던 시절이 있고 하얀 천과 하얀 실로 인형 침대와 베갯입을 만들어준 엄마가 있다는 사실. 아빠 품에 꼭 안겨 잠들던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된다.


아는 이야기를 다 쓰면 그다음엔 어떤 글을 지어야 하나 근심한 적이 있다바보같이 몸도 글도 한결같을 거라 생각하던 때의 일이다단어 하나가 몸을 완전히 통과한 후에는 그 전과 전혀 다른 뜻이 된다는 걸 몰랐다안다고 믿었던 말쉽게 끄덕인 말남 몰래 버린 말...(p123~124)”


말은 제 이름을 닮기 마련인데 겨울을 발음할 땐 입 주위가 바싹 쪼그라들지 않는다말이 추위를 타지 않아 좋다.(p116)”


나는 그녀의 글이 좋다. 그녀가 호호 거리며 ‘겨울’이라는 단어를 손 위에 올려놓고 차가워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이 좋다. 그녀의 글은 내 마음에 지문을 남긴다. 


너를 안고 나는 내 팔이 두 개인 것을 알았다나는 몰랐던 사실을 깨달은 듯 그래나는 팔이 두 개였지’ 중얼거렸다나는 곧 내 다리가 두 개 인 것과 내 입술이 하나인 것도 알게 될까 두려웠다그러다 정말 내 이름을 알게 될까 봐.


발은 넘어지지 말라고 두 개지만 나는 한 발로도 설 수 있고거꾸로 두 팔로도 설 수 있었다그렇게 하는 것이 더 힘들었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더 아름다웠다.(p76)”


나는 내 이름을 알게 하는 그녀의 글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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