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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Oct 17. 2020

에필로그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작가 김애란은 그녀의 책 <잊기 좋은 이름>(열람원, 2019)에서 자신의 팔 할은 내가 처음 한 말, 그리고 평생 쓸 말을 가르쳐준' 부모님과 가족이고 나머지 이 할은 작가로서의 만남이라고 말한다. 그녀의 글을 읽은 이후로 나는 무엇으로 이루어졌는가를 생각하곤 한다.


나는 삶의 마디마다 나를 살게 하는 책들이 있다.  이십 대 때 나를 지탱해 준 것은 자기계발서였다. 노력하면 된다는 믿음으로 나를 다그쳤다. 10대 때까지는 부모의 영향이 내 삶을 지배하기 때문에 20대가 된 이후 나는 나의 의지로 인생의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젊었던 것이다. 수많은 계획을 세웠다. 길고 촘촘한 계획이다. 분 단위로 하루를 나누고 분 단위로 기록하고 반성하고 분석했다. 평가했다. 이상적인 나를 그리고 그 이상까지 나를 끌어올리기에 온 힘을 쏟았다. 그러한 날카로운 잣대는 나 자신을 물론 내 주변사람들에게까지 들이대었다. 부모의 참된 모습부터 시작해서 친구의 바람직한 모습, 사랑의 이상적인 모습 등으로 말이다. 그렇게 나는 내 안에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세우고 그 기준을 나를 지켜주리라 믿었다. 


분명 자신 안에 기준은 필요하다. 하지만 그 기준이 절대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곧은 나무는 부러진다. 바람에 흔들릴 줄 알아야 하고 좋지 못한 환경에 있을지라도 환경 탓을 하기보다 바꿀 수 없는 환경이라면 그 안에서 살아가는 법을 찾아야 한다. 바꿀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무모한 싸움은 무기력을 낳을 뿐이다. 


나는 언제나 외로웠다. 늘 사랑이 고프다. 내 외로움과 고독, 삶의 허기짐에 몸부림치며 누구도 읽어주지 않는 일기를 쓰고 책을 읽었다. 삶의 문제들 앞에서 어떤 이들은 사람을 찾는다. 나는 그럴 때면 안으로 안으로 들어간다. 이런 나의 모습을, 쉽게 누군가와 공유할 수 없는 내 모습을 나는 책 속에서 위로 받았다. 나 혼자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때론 살게 만든다. 


나는 늘 존재의 의미, 살아야 하는 이유를 나에게 다그쳐 묻는다. 도대체 나는 어떤 사람이길래 이렇게 사람들 속에서 언제나 외로워야 하는가를 다그치듯 물으며 답을 구했다. 지나치게 진지한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있는 곳은 글이었다. 책이었다. 책 속에는 나와 같은 사람들이 많이 살았으니까. 


나의 나무 이름은 버드나무다. 바람에 맞서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폭풍이 몰아칠 때, '왜'라는 질문이 아니라 '어떻게 해야 하는가'로 질문을 바꾸어 순응할 줄 아는 지혜를 품고 싶어서다.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은 여전히 찾지 못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도 여전히 때론 외롭다. 얼마 되지 않은 사랑하는 지인이 삶에서 멀어지기도 한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생에서 누군가에게 내가 상처를 주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상처 받기도 하고 부모가 새긴 내 안에 새겨진 글자에 홀로 울기도 한다.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어떤 이가 말했다. 아직도 불완전하기에, 삶에 배워야 할 것들이 많기에 살아야 한다고. 만약 그 사람의 시선으로 본다면 나는 살아야만 하는 이유가 충분하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이 불완전한 나란 사람과 남은 생을 살아가야 한다. 가장 나와 오래할 사람, 가장 나를 자세히 바라봐 줄 사람, 어떤 순간에도 내 옆에 있을 나란 사람과 생의 마지막까지 함께 해야 하기에 책을 읽고 글을 쓰려고 한다. 이 삶의 여행 끝자락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알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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