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손녀에게 맞는 할머니
"선생님! 할머니가 잠깐 보자고 해요"
오늘따라 어정쩡한 모습으로 센터에 들어오는 지수가 쭈뼛쭈뼛 내 눈치를 살폈다. 분명 뭔가 있는데 말을 하지 않아서 먼저 물었다. “무슨 일 있어?” 주춤하던 지수는 할머니가 1층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지수와 7년을 함께 지내는 동안, 할머니를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는데 이상했다. 긴장하며 1층으로 내려가서 할머니는 만났다. 초조한 모습으로 기다리던 할머니는 나를 보자마자 손목을 잡고 편의점 옆 전봇대 뒤로 다급히 몸을 숨겼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도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센터 쪽을 바라보며 몸을 숨기기 급급했다. 덩달아 나까지 안절부절못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니 할머니는 안도하며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센터장님이라고 했죠?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지수가 어른 말을 듣는 걸 본 적이 없는데, 센터장님 얘기는 잘 듣더라고요. 그래서 말인데 내 부탁 좀 들어줄 수 있어요? 그리고 부탁인데, 오늘 우리가 나눈 이야기를 지수가 알면 절대 안 돼요. 비밀 지켜주세요. 꼭!"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것 같은 할머니는 몸들 부들부들 떨면서 이야기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절대 비밀로 할게요.”라고 말하며 할머니 손을 꼭 잡아드렸다. “선생님, 지수를 센터에 오래 있게 하면 문제가 되나요?” 의아한 질문이었지만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고 답했다. 할머니는 안심이 되셨는지 그제야 그간의 일을 하나씩 털어놓기 시작했다. 엄마에게 듣지 못했던 이야기를 할머니 입으로 듣는데, 지수와 함께 한 7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흘렀다. 지금까지 쏟아 부었던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된 듯 깊은 좌절과 함께.
비록 10년 전 일이지만, 지수와 처음 만났던 그때를 생생하게 기억한다. 왜소하고 가느다란 팔과 다리, 하나로 질끈 묶은 머리카락, 안경을 연신 올리며 쫓기듯 주변을 살폈던 지수. 매일 긴장된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아주 가끔 볼 수 있는 지수의 미소는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지수는 안타깝게도 친구가 없다. 이유는 딱 하나! 폭력이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욕하고, 소리 지르고, 때리고, 기분 나쁘면 상대방의 머리카락을 잡아 뜯기까지. 특히 자신보다 약한 친구나 동생은 무조건 꼬집고 괴롭히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수는 친구를 만들기 위해 항상 노력했다. 사탕, 초콜릿, 젤리 등 간식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친구들에게 나눠줬다. 용돈도 넉넉하게 들고 다녀서 친구들이 사달라고 하는 건 사줬다. 이렇게 자신의 것을 나눠야 잠시라도 친구가 옆에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친구들은 멀어져갔다. 지수는 지독한 외로움, 그리고 따돌림에 시달려야 했다.
한편, 지수는 어른들 말은 안 듣기로 유명했다. 어른이 자기 말을 들어주지 않으면 괴력을 뽐내며 소리 지르고, 생떼 쓰며 드러눕기 일쑤였다. 지수를 퇴소시키라고 당부한 전임 센터장의 말이 이해될 정도로 감당하기 어려운 아이였다. 그런데 궁금했다. 분명 아이의 행동에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지수를 가만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 관찰 끝에 고슴도치 같은 지수 행동에서 이유를 찾았다.
지수의 공격성의 원인은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갔다. 지수 엄마는 중국에서 살다가 한국에 왔다. 쉽지 않았지만, 억척같이 생활하면서 한국에 자리 잡았고, 지금의 남편을 만나 지수를 낳았다. 지수 엄마는 오로지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만 했다. 그래서 지수를 가족에게 맡기고 가게 일에 전념했다. 식품 가게를 운영하다가 중국인들만 드나드는 도박장으로 업종을 변경하고 상황이 더 나빠졌다. 엄마는 늦은 오후부터 새벽까지 가게에 있었고, 아이를 만나는 건 아침 등교할 때뿐이었다. 엄마는 지수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다. 넉넉한 용돈과 아이가 원하는 것을 대부분 들어주는 걸로 대신했다. 엄마는 자신의 마음을 내어주지 않고 오로지 돈으로만 해결했다. 지수도 헛헛한 마음을 돈으로 해결하면서 왕처럼 자랐다. 안타깝게도 세상 밖은 지수 뜻대로 되지 않았다. 모든 것을 받아줬던 식구들과 달리 친구들은 자기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지수는 끊임없이 화를 냈다. 결국 모두의 외면을 받고, 지수는 고립됐다.
그런데 더 걱정인 건 지수가 지적 장애가 있었는데, 가족 누구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부모는 장애가 있다는 것을 외면하기 급급했다. 아이가 성장할수록 폭력성과 폭언은 심해졌고, 가족들이 말릴 수 있는 지경을 넘어선 상태였다. 아이를 조용히 시키기 위해서 ADHD 약을 먹기고 있는 엄마에게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는 희망을 품고 지역아동센터에서만큼은 지수가 외면 받지 않도록 나서야 했다. 아이들의 협조가 시급했다. 지수가 없을 때 고학년들과 모여 지수를 함께 돌봐줄 것을 부탁했다. 의외로 아이들은 공감을 잘 해줬고, 함께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이들의 노력과 달리 지수의 행동은 여전했다.
“지수야! 친구들은 널 괴롭히려고 하는 게 아니야, 친구에게 욕하고 때리면 안 돼!” 변하지 않는 지수의 태도에 아이들도, 나도 지쳐갔다. 그러나 서로를 격려하며 열심히 노력하다보니 지수와 아이들끼리 다툼이 줄어들었다.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니지만, 지수의 감정기복도 줄어들고 폭력과 공격성이 눈에 띄게 사라졌다.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지수도 마음잡고 센터를 잘 다니고 있던 그때, 코로나19가 터졌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강력하게 시행됐던 시기, 지수는 학교도 센터도 갈 수 없었다. 정부에서도 맞벌이 가정 등 집에서 돌봄을 전혀 받을 수 없는 어린이(초등학교 저학년 위주) 위주로 센터 내 돌봄을 하라는 지침이 내려왔다. 지침대로라면 중학교 3학년이었던 지수는 집에 있어도 됐지만, 아이 특성상 혼자 있게 할 수 없었다. 지수에게 센터를 나오라고 말했으나, 다른 중학생들도 안 나가는데 왜 자기만 나가야하냐고 짜증을 냈다. 충분히 이해가 됐기 때문에 더 재촉할 수 없었다. 문제는 이때부터였다. 바쁜 엄마 대신 할머니가 지수를 돌봤는데, 지수 눈에 할머니는 마음대로 부려 먹을 수 있는 약한 존재였다. 도통 할머니 말을 듣지 않았고 오히려 할머니를 향해 폭언과 폭행을 일삼았다. 정도는 갈수록 심해졌고, 이를 견디다 못해 할머니가 센터를 찾아와 도움을 청한 것이다. 지수 엄마가 이 상황을 알고 있냐고 물었는데, 할머니는 손사래를 쳤다.
“딸한테 말해도 소용없어요. 오히려 나보고 참으라고 하는데, 거기다 뭐라고 말해요. 내가 여기 온 건 지수 엄마도 몰라요. 내가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왔어요. 지수가 자기 뜻대로 해주지 않으면 나를 때려도 너무 때려요. 할머니 팔과 다리에는 멍이 심하게 들어 있었다. 아파서 병원에 침 맞으러 가려고 해도 혼자 못 가게 해요.”
가족의 외면이 만들어 낸 명백한 노인 학대였다. 할머니는 절실한 마음으로 나를 찾아왔지만, 내가 해결해 줄 수 있는 건 아이를 센터에 데리고 있는 게 다였다. 더군다나 고등학교 진학과 동시에 센터를 졸업해야 하는데,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보다 근본적인 해결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부모가 나서지 않는 이상 답이 보이지 않았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완화되면서 일상으로 조금씩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수도 학교생활을 다시 시작하게 됐다. 어느 날, 단정하게 묶어있던 머리카락이 잔뜩 헝클어져서 왔다. 무슨 일인지 물었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수소문해 보니 학교에서 싸움이 크게 있었고, 부모님까지 학교에 다녀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수와 같은 초등학교를 다니던 친구들이 대부분 같은 중학교에 진학했다. 이들이 지수에 대해 좋지 않은 소문을 퍼뜨렸고, 지수를 잘 모르는 아이들까지도 지수에게 모욕적인 말과 행동을 했다. 이를 참다못한 지수는 욕과 폭력으로 대응했고, 결국 큰 싸움으로 번져서 부모님들까지 불려갔던 것이다. 지수의 학교생활은 전쟁터였다.
지수는 성장할수록 더 외롭고 고립된 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 누구든 자신을 공격하면 숨겨 둔 날카로운 칼을 빼들고 춤추듯 공격 할게 뻔했다. 나만 지수를 걱정했다. 지수 부모님은 심각성도 모르고, 외면하느라 바빠서 아이의 상태를 직면하지 않았다. 지수가 졸업하기 전, 지수 엄마에게 말했다. 할머니 옆에 지수를 두면 할머니까지 큰일 날 수 있으니 제발, 더 나빠지기 전에 엄마가 지수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아이 마음을 보듬어달라고 부탁했다. 엄마의 돌아온 답변은 이랬다.
“앞으로 지수가 살아가는 데 어려움 없이 살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 돈 벌며 노력하고 있는데, 왜 자꾸 나한테 뭐라고 해요? 나는요, 부모한테 크게 지원받지 않고도 지금 잘 살고 있어요. 지수는 걱정할 게 하나도 없어요. 죽을 때까지 쓸 수 있게 돈도 충분히 있어요.”
자녀를 키우는 데 가장 큰 목표는 자립과 독립이다. 아이의 장애 유무와 상관없이 부모가 아이를 끝까지 책임질 수 없다. 내 자식이 어디가서 기죽고 살까봐, 내 아이가 말 못하고 당할까봐, 내 자식을 감당하지 못해서.. 놓고 있는 부모가 있다면 다시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