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아이들에게 배운다
다른 날과 똑같이 아이들은 바쁘게 오후 일과를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바쁜 중에 내 눈에 아이들의 수상한 움직임이 보였다. 나한테 뭔가 숨기는 데 모른 척 지나갈 수 없을 정도로 티가 많이 났다. 아무리 봐도 수상했지만, 굳이 묻지 않고 동료 사회복지사에게 물었다.
오늘따라 아이들 행동이 이상하지 않아요?
뭔가 어색해. 뭐 아는 거 있어요?
내 말을 들은 그녀 또한 긴장하는 눈빛이었다. 아무리 봐도 나 빼고 전부 이상했다. 이상해도 너무 이상했다. 캐묻고 싶은 마음을 겨우 누르고 자리에 앉아서 일을 시작했다. 교실에서 갑자기 큰 소리가 나서 교실로 향했다. 내가 움직이자, 아이들 손놀림이 무척 바빠지면서 뭔가 분명히 숨기고 있었다. ‘대체 뭘 하고 있는데 내가 가면 숨기는 걸까?’ 궁금해서 참지 못하고 쪼르르 아이들 틈으로 들어갔다. “너희 뭐 해? 뭐 하는데 내가 가면 자꾸 숨기는 거야? 뭔데!” 물으니 아이들 얼굴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약간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 즈음 동료가 나를 말렸다. “센터장님, 아이들 지금 편지 쓰고 있어요. 곧 생일이시잖아요.”
‘아! 맞다.’ 매년 생일 때마다 동료와 아이들은 내게 줄 깜짝 선물을 준비했었다. 모든 준비 과정은 항상 내가 휴가 때 이루어졌는데, 그해는 일정이 맞지 않아 내가 휴가를 가지 못했다. 그런 탓에 아이들은 마치 007 작전처럼 몰래몰래 그림을 그리고 편지를 쓰고 있었다. 얼마나 조마조마했을까? 사실을 알고 나니 민망함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무엇보다 아이들을 믿지 못하고 추궁했던 나 자신이 부끄럽고 창피했다. 이런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아니, 그럼 그렇다고 말하면 될 걸 왜 숨겨!” 하며 오히려 짜증을 냈다. 아, 어른스럽지 못한 대응이었다.
평소 부모님과 선생님들에게 아이들을 믿어줘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힘든 일 있으면 언제든 와서 얘기하라고 아이들에게 말하던 나였다. 아이들이 믿고 의지할 어른이 되겠다고 큰소리쳤던 내가 한 행동이 이 정도밖에 안 됐다. 쥐구멍이 있다면 찾아 들어가고 싶을 정도였지만, 이렇게 상황을 끝낼 수 없었다. 용기 내어 아이들에게 다가갔지만, 겸연쩍어 말도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정말 어렵게 꺼낸 말,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너희들을 다그쳤어. 정말 미안해. 사실대로 말도 못 하고 얼마나 억울했니? 진짜 미안해.” 진심을 담아 사과했다. 내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아이들이 말했다. “저희 같아도 그랬을 것 같아요. 괜찮아요.” 내 못난 행동을 아이들은 이해하며 받아줬다. 오히려 아이들의 너그러움에 낯이 뜨거워진 나는 괜스레 너스레를 떨며 아이들 곁을 맴돌았다. 그리고 다짐했다.
아이들을 진심으로 믿기.
함부로 판단하지 않기.
같은 실수 반복하지 않기.
남들에게 말하기 이전에 자신이 먼저 실천하기,
얼마 지나지 않아 생일 당일, 아이들에게 생일 카드와 축하 영상을 받았다. 나 몰래 동료와 아이들은 아이디어를 모아서 그림과 축하영상까지 준비했다. 아직 한글을 제대로 쓸 줄 모르는 아이부터 중학생들까지 마음을 담아 편지를 쓰고 영상으로 메시지까지 남겼다.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도 17명의 아이들에게 받은 편지를 일일이 스캔해서 pdf 파일로 만들어준 동료의 고생이 눈에 선했다.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영상과 편지를 봤다. 아이들은 내 모습을 보며 키득키득 웃고 있었다. 아! 진짜 고생했을 아이들과 동료를 생각하니 미안함과 행복감에 눈물이 핑 돌았다.
“센터장님 운다.”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나를 보며 아이들은 웃음을 멈추고, 몸 둘 바를 몰라했던 아이들 모습이 생생하다. 어른인 나보다 훨씬 너그럽고 마음이 넓은 아이들을 향해 다시 한번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하루 중 종례 시간에 가장 활짝 웃었다는 아이들의 편지에 반성하며, 절대 잊지 못할 그날을 회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