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철렁했던 순간을 회고하며..
아이들과 한국사 공부를 마치고 교실에서 나온 나에게 동료 사회복지사가 말했다. “방금 진서 아빠한테 전화가 왔었는데, 대뜸 하는 말이 센터에서 아동학대 신고했냐고 묻는데요?”
‘와, 이렇게 빨리 연락이 온다고?’ 아동학대 신고를 한 건 내가 맞지만, 이렇게 금방 찾을 줄 몰랐다. 앞으로 아동학대 신고를 어떻게 할지 두려움이 몰려왔다.
진서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우리는 처음 만났다. 약간 찢어진 눈매, 부정확한 발음, 또래보다 마르고 작은 체구. 소심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모습이 어딘가 이상했지만, 생글생글 웃는 미소 때문에 의심하는 마음이 금방 사라졌다. 진서를 의뢰한 학교 담당자는 엄마가 아프고, 아빠는 바빠서 양육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설명했다. 지역아동센터에 입소할 조건이 잘 맞았기에 빠르게 입소 절차를 서둘렀다.
진서는 특별히 눈에 띄거나 어려움 없이 센터에 잘 적응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또래와 묘하게 다름을 느꼈다. 사용하는 언어가 또래와 달랐고, 지적 수준도 점검이 필요해 보였다. 보통 초등학생들은 연예인, 학교, 선생님, 친구 이야기를 주로 한다. 그런데 진서는 우주, 법 등 아이들이 관심 갖기에 다소 어렵고 생소한 분야에 관심을 보였다. 특이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냥 넘길 수 없었던 부분은 바로, 또래 관계였다. 센터 뿐 아니라 학교에서도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겉돌았다. 아이는 오히려 “혼자 있는 것이 편해요”라고 말했지만, 솔직히 열 살 아이 입에서 나올만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진서에 대해 궁금증이 커져서 부모님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진서 아빠는 바빠서 오지 못했고, 엄마가 왔다. 입소 면담 때 함께 만났던 엄마는 점잖고 말이 없었지만,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기운을 강력하게 풍겼다. 그날의 모습을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긴장하며 진서 엄마와 만났다.
면담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진서 엄마가 대뜸 이런 말을 꺼냈다. “선생님, 내가 고등학교 때 집을 왜 나온 지 알아요? 부모가 나를 홀대해서 친정집에 불을 지르고 나와 버렸거든요. 지금은 가족들과 연락이 전혀 안 돼요.”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인지 도통 알 수 없었다. 설마 하는 마음에 재차 확인했지만, 같은 말만 반복했다.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면서 대화를 이어갔다. 진서가 센터에서 어려운 말을 많이 쓰는 데 집에서 어떤 책이나 영상을 보는지 물었다. “내가 일부러 사전을 보게 해요. 어려운 말을 많이 알아야죠, 그리고 남자가 300만 원은 벌어야 하지 않겠어요? 그 정도도 못 벌면 무시당하잖아요?” 대화를 나누면 나울수록 진서 엄마가 다름을 확신할 수 있었다.
진서 가정에 대해 정확한 정보가 필요해서 진서를 의뢰했던 선생님과 면담을 나눴다. 오래전부터 진서 엄마는 정신질환을 앓았고, 항상 집에서 게임을 하거나 TV만 봤다. 태어나면서부터 걷지 않았던 진서는 소근육, 대근육이 발달하지 않아 10살이 됐어도 걷거나 뛰는 걸 힘들어했다. 아이의 식사를 제대로 챙겨주지 않거나, 진서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채지 못했다. 엄마는 오로지 자신에게 집중했다. 엄마의 행동을 이상하게 본 주변 사람들이 아동학대 신고를 했었지만, 가정 내 큰 변화가 없이 지나가는 일이 전부였다. 아빠가 주양육자였지만, 현장에서 일하는 탓에 진서를 가까이서 돌볼 수 없었다. 사실 이런 가정은 흔하지 않다. 하지만 아예 없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외면할 수 없었다. 엄마의 영향을 최대한 덜 받게 하려고 우리는 더욱 더 애썼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진서는 중학생이 됐다. 변함없이 친구들과 어울리기 어려워했고, 언어 이해능력이 낮아 학업을 따라가는 데 한계가 있었다. 감사하게도 수학을 잘해서 학업을 포기하지 않았는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공부가 어려워지면서 좌절하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사실 진서는 지독한 노력을 해야 했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얼음판을 걷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보내던 어느 날, 진서가 다니는 중학교에서 연락을 받았다. 기말고사를 치르고 결과를 받았는데, 시험점수가 마음에 안 든다며 칼로 필통을 난도질했고, 그대로 둘 수 없어 담임 선생님이 학교 상담실로 보냈다고 했다. 필통의 모습을 직접 봤는데 가슴이 철렁했다. 평소 내가 아는 진서는 이런 행동을 할 아이가 아니었다. 이번 일로 부모님과 면담이 필요했다. 아빠에게 사진을 보여줬는데 놀란 눈치였다. 그런데 아빠는 이보다 더 놀랄 만한 이야기를 꺼냈다.
“요즘 진서가 이상해요. 집에서도 자기 마음대로 안 되면 머리를 벽에 찧거나 소리를 질러요. 아무리 말려도 소용이 없어요.” 언제부터였냐고 물었는데, 최근에 더 심해졌다고 했다. 이대로 두면 큰일이 벌어질지 모르겠다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고, 하루라도 빨리 진서를 가정에서 분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진서를 기숙사가 있는 학교로 보내면 좋겠다는 생각에 아빠한테 제안을 했다. 그런데 아빠의 답변이 의외였다.
“센터장님, 요즘 학교를 어떻게 믿어요? 급식실이 깨끗할까요? 급식 먹다가 우리 애 탈이라도 나면 어떻게 하죠? 기숙사는 깨끗할까요? 자다가 건물이 무너지면 어떻게 해요? 기숙사 있는 학교는 불안해서 못 보내죠. 그냥 집에서 가까운 고등학교 보낼 거예요.”
‘기숙사가 깨끗하냐고? 무너진다고?’ 진서 아빠는 무슨 뜻으로 이런 말을 했을까 계속 생각했다. 대화하면 할수록 아빠는 7년 전과 달랐다. 엄마와 같이 왜곡된 생각으로 자녀를 양육하고 있었다. 분명히 아동학대가 의심됐고, 확인이 필요했다. 진서가 다니는 학교, 심리상담센터와 의논해서 학대 신고를 결정하기로 했다. 이렇게 다각도로 확인해서 신고를 했는데 진서 아빠에게서 확인 전화가 온 것이다.
“우리 집안 상황을 자세히 아는 건 지역아동센터랑 치료 센터밖에 없는데, 둘 다 학대신고를 안 했다고 하면 대체 어디서 신고했을까? 진짜 이상하네.”
사실 진서 네처럼 외부와 소통이 거의 없는 단절된 가정은 신고자를 찾기란 식은 죽 먹기지만, 신고자인 내 안전을 보호 할 수 있는 건 나뿐이기에 필사적으로 모른 척 해야 했다. 신고 이후 경찰, 구청, 아동보호전문기관 등에서 발 빠르게 움직였고, 신고자인 나에게 여러 차례 연락이 왔다. 모든 공유가 끝나고 진서를 도와줄 수 있는 여러 관계기관(정신보건센터, 구청, 아동보호전문기관 등)이 가정방문에 나섰다. 나또한 그 중 한명으로 가정방문에 동참했다. 먼저 집을 이곳저곳 살펴본 후, 방에 앉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진서 부모님에게 많은 질문이 쏟아졌다. 이야기를 나눈 지 중반쯤 됐을 때 진서 엄마와 정신보건센터 담당자와 실랑이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왜 병원에 입원해야 해요?”
진서 엄마는 자신이 왜 입원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며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진서 엄마를 처음 만난 전문가들은 그녀의 돌발행동에 난감해 하고 있었다. 누구도 쉽게 나서지 못할 입장인 건 분명했기 때문에 7년 간 지켜봤던 진서 네 가족을 지켜 본 내가 나설 차례였다. 먼저 진서 가족을 도와주러 온 분들인데 소리를 지르지 말 것을 강하게 요청했다. 그리고 그동안 알면서도 모른 척 넘어갔던 이야기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협조를 하지 않겠다고 하면 당장 집 나가셔야죠? 온라인 게임하면서 만난 남자랑 눈 맞아서 가출했고, 그 남자랑 살다가 마음에 안 들어서 나왔는데 갈 곳 없다고 여기로 다시 들어왔잖아요. 그리고 이미 이혼까지 당했는데, 여기 살 이유가 있나요? 하물며 진서도 엄마가 집에 있는 거 싫다고 하는데 어쩌려고 이러세요? 병원 다니기 싫으면 당장 나가세요! 지금 엄마가 이렇게 당당하게 소리치고, 화낼 입장 아닌 거 모르세요?”
도대체 염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진서 엄마 태도가 미워서 그 민낯을 낱낱이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말하다보니 감정이 격해졌고, 분노에 휩싸여 이성을 잃고 말았다. 지금 생각해도 ‘침착하게 말할 걸‘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어쨌든 내 말을 들은 각 기관 담당자들은 깜짝 놀라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결국 진서 엄마는 꼬리를 내렸고, 모든 상담이 순조롭게 이뤄졌다.
가장 큰 숙제였던 엄마의 입원이 무산됐다. 대신 의사와 상담 및 약물치료를 지속해서 받기로 했다. 소리를 지른 보람은 없었지만, 정신과 치료를 받을 수 있음에 만족했다. 가장 기쁜 소식은 진서네 이사였다. 주택지원 사업을 통해 진서 네가 이사를 할 수 있게 됐다. 단칸방에 가족이 함께 있는 것이 계속 마음에 걸렸었는데, 진서에게 방을 만들어 줄 수 있어서 무척 기뻤다. 진서 엄마가 결국 집에 주저앉게 됐고, 나는 더욱 더 세심하게 진서 네 가정을 살피기로 했다. 물론 함께 있던 기관들도 모니터링을 하기로 약속했다. 이만하면 아동학대 신고한 보람이 있는 편이라 내심 만족했다.
아동복지시설에 근무하는 사회복지사는 신고 의무자로, 매년 1회 아동학대신고 의무교육을 반드시 받아야 한다. 교육받고, 신고하면서 신고 의무자로 역할을 다한다. 그러나 신고를 해도 변화가 없을 때가 더 많다. 112에 신고하면 접수하고 관할 경찰서로 넘어간다. 이후 관할 경찰서에서 신고자에게 사실 확인을 위해 질문한다. “신체학대인가요? 혹이 아이 몸에 맞은 흔적이 있나요? 신체학대가 아니면 가정에서 분리하기는 사실상 어렵습니다. 우리도 어쩔 수 없어요.” 아동보호전문기관 반응도 비슷하다. “정서학대로 부모와 분리되는 것은 쉽지 않고, 혹시 분리되더라도 아이들이 갈 곳이 없어요. 정말 큰 문제입니다.”
이것이 현실이다. 아동학대는 음지에서, 정교하게 상상 이상으로 많이 벌어지고 있는데 아이를 도울 방법이 거의 없다. 차라리 부모에게 두들겨 맞아서 멍이 들어야 조치가 이루어진다. 학대는 대부분 정서 학대부터 시작된다. 우리가 늘 간과하고 있는 정서 학대가 큰 문제다. 더욱 안타까운 점은, 자신이 정서학대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아이는 무방비로 언어폭력(욕, 폭언, 적대적 말), 정서적 위협(겁주기, 윽박지르기, 시설 등에 버리겠다) 등 부모로부터 정서 학대를 먼저 경험한다. 정서 학대와 신체학대가 동시에 일어나는 건 흔하디흔한 일이다. 학대를 겪는 아이들을 구하고 가정을 살리는 길이 아동학대 신고라면, 신고자 존재가 발각되더라도 나는 지금처럼 신고할 것이다. 그러나 신고가 답이 아니기 때문에 근본적인 변화가 시급하다.
다양한 분야에 근무하는 사람들이 의무적으로 아동학대예방 교육을 1년에 1회 받는다. 그런데 정작 받아야 할 부모들이 받지 않는다. 그 이유는 아동학대 가해자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결혼을 앞두고 있거나, 임신, 출산 후 등 1년에 1번씩 아동학대예방 교육을 의무적으로 받게 해서 자신의 양육 태도를 점검하게 해야 한다. 지금도 아무도 모르게 학대로 고통 받는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모두 발 벗고 나서길 당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