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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퍼플슈룹 May 16. 2024

보고 싶은 선생님이 있나요?

선한 영향력

비도 오고.. 바람도 세차게 불던 어제 오후, 인스타에서 DM이 왔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하며 시작되는 글에 핸드폰을 냉큼 부여잡고 확인했다.

연락한 친구는 내가 근무했던 지역아동센터에서 함께 지냈던 친구였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만나 지금은 중학교 2학년이 됐다. 평소 무뚝뚝하고 뭘 물어도 시큰둥했던 아이라 마음을 자주 나눌 수 없었는데, 스승의 날이라고 처음 연락을 했다. 무척 반가우면서도 놀란 마음이 더 컸다.


25년 전, 난 대학에서 일본어를 전공했고 일본 관광 가이드를 3년 했었다. 덕분에 난 한국사를 좋아하게 됐고, 한자를 많이 안다. 이런 장점을 살려 지역아동센터에 근무하는 동안 초등학생들에게 한국사와 한자를 가르쳤다. 공부하는 내내 아이들은 어려워했다. 하지만 어렵게 쌓인 내공이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빛을 보게 됐다.

"센터에서 배운 한국사 내용이 학교 수업 때 나와서 저 혼자 대답했어요. 친구들은 모르는데 저만 알아서 기분 좋았어요. 선생님들한테 칭찬도 많이 받았어요."

"한자 배울 때 힘들긴 했는데, 중학교 올라가 보니 국어뿐 아니라 여러 과목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었어요. 친구들이 저한테 와서 많이 물어봐요."

이야기하는 내내 아이들의 어깨는 하늘을 향해 한껏 치솟았다. 웃음이 끊이지 않는 우리 아이들을 보면서 내 기분도 덩달아 들뜨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했었다.




실은 나도 같은 경험을 했었다. 6학년 때 담임선생님 때문에 억지로 천자문을 공부했다. 선생님을 많이 원망했었는데 중, 고등학교 내내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리고 전공까지. 나에게 감사한 선생님이 아닐 수 없다. 그저 배운 그대로 아이들에게 했을 뿐인데, 좋은 결과로 이어지고 있음에 감사했다.

난 센터를 그만뒀고,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는 중학생들이라 모른척해도 상관없다. 하지만, 잊지 않고 아이들이 연락을 한다.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이런 연락을 받을 때마다 내 학창 시절을 수놓았던 선생님들에게 연락도 한번 못 드리고 죄송하다. 보고 싶은 선생님들.. 안녕하신지요..




문득, 올해 초 새해 인사와 함께 당분간 연락을 드리지 못하겠다고 연락했던 아이가 생각났다.

나와 7년을 동고동락했던 아이였다. 공부도 잘하고, 어려움을 겪는 친구들을 잘 돕고 리더십 있던 아이였다. 한국사 선생님이 되기 위해 사범대학교를 꼭 가겠다고 나에게 말했던 아이였는데.. 수능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했는지 재수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재수가 얼마나 힘든 길인지 아는데, 그 길을 선택한 아이의 마음에 깊이 공감했다.

나한테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는데, 당분간 연락을 못 하게 됐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1년을 잠수에 들어갔다. 인생을 길게 펼쳤을 때, 1년이란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조급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아이의 선택을 지지하고 격려했다.

성장해서 돌아오겠다는 아이의 말에 오늘도 난.. 연락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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