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퍼플슈룹 Oct 13. 2024

다이어트 약을 먹겠다는 11살

난 아무래도 쓸모없는 인간인가 봐요.

동글동글한 얼굴에, 눈이 크고 서글서글한 승우에게 고민이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다이어트! 또래에 비해 키가 크고 덩치도 큰 정수는 늘 살이 쪄서 고민이란다. 하물며 다이어트 약을 사려고 여기저기 알아보고 있다는 말에 급하게 할머니를 찾았다.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승우가 왜, 다이어트에 사활을 거는지 알게 됐다. 


할머니에게 승우가 집에서 무엇을 먹는지 물었는데, 대뜸 승우 때문에 못 살겠다고 말했다.  “집에서 얼마나 잘 먹는지 몰라요. 용돈이 넉넉하니까 편의점에서 잔뜩 사 먹고 집에 오나 봐요. 센터에서 밥 먹고, 편의점에서 간식 사 먹고 집에 와서 또 먹고 살이 안 찔 수가 있어요?” 먹지 말라고 해도 계속 먹고, 운동을 시키는데 잘 안 빠진다며 이야기 하는 내내 정수를 질책했다. 


그런데 승우가 살이 찐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승우 엄마는 재혼을 했다. 그런데 남편이 승우와 사는 걸 반대해서 어쩔 수 없이 따로 살고 있었다. 같이 살지 못하는 승우에게 미안한 마음뿐이었던 엄마는, 승우를 만나는 날 대부분 외식을 했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메뉴, 피자, 치킨, 파스타 등 고열량 음식이었다. 한편, 엄마랑 살지 못하는 손자가 불쌍했던 할머니는 승우가 먹고 싶다는 걸 대부분 사줬다. 이렇게 11년을 살아온 승우는 식습관이 굳어져버렸고, 과체중이 된 건 당연한 결과였다. 그런데 고작 4학년 밖에 안 된 어린 승우에게 살을 못 뺀다고 질책하는 데 무척 불편했다. 차마 아이가 다이어트 약을 먹으려고 생각한다는 말을 꺼내지도 못했다. 다만, 집에서 살쪘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어서 위축되어 있으니 식단을 바꾸고 운동을 하는 방향으로 갔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집에서 큰 변화를 기대하기란 쉽지 않을 것 같아서, 내가 대신해 줄 있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스트레스 받지 않으면서 운동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센터 한쪽에 운동 ZONE을 만들어서 훌라후프, 아령, 줄넘기 등 운동기구를 갖다 놓았다. 정수는 운동을 귀찮아했다. 고맙게도 아이들 모두 재밌게 운동을 하니, 승우도 거부감 없이 함께 할 수 있었다. 시작은 좋았지만, 원하는 결과로 이어지지 못했다. 승우의 과체중은 식습관 문제도 있었지만, 심리적인 원인이 더 컸다. 승우에게 가장 의미 있는 어른인 엄마와, 할머니가 너는 살쪄서 보기 싫다, 그렇게 살찌면 앞으로 어떻게 살래? 등 끝없는 비난을 받았기 때문에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었다. 불안하고 자존감이 무너져있어서 가난한 마음을 엄마의 사랑을 채우는 게 우선이었다. 


어른이 생각하는 것보다 아이는 부모를 정말 많이 사랑한다. 무조건적인 사랑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부모도 아이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준다. 그러나 가장 많은 상처를 주기도 한다. 아이는 부모에게 다가가지도 뒤로 물러나지도 못하고 안절부절 하고 있다. 이처럼 많은 아이들이 어른의 흉기 같은 말에 마음이 다치고 있다. 때리는 것만 폭력이 아니다. 송곳 같이 뾰족한 말로 아이를 몰아가도 폭력이다. 더 이상 비난의 말로 아이를 벼랑 끝으로 몰지 않길 바란다. 아이가 스스로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가? 그렇다면 아이의 존재 그 자체를 인정해 주길 바란다. 

이전 09화 나의 생활은 아침형 vs 저녁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