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섭섭하다.
엄마는 갱년기에 돌입했을 즈음 운동장을 뛰기 시작했다. 이후 등산을 다니고 전보다 훨씬 건강한 중년을 보내셨다. 그러던 중 몸이 아프고 잘 못 움직이더니 결국 희귀병, 램버튼-이튼 증후군 진단을 받으셨다. 중증근무력증처럼 근육이 점점 약화되면서 일상생활이 무너지는 건 기본이고, 암 등 각종 합병증을 유발하는 무서운 병이다. 이 병 때문에 세상 겁날게 없던 엄마가 집에 눌러앉게 됐다.
꼼꼼하고, 무엇이든 본인이 해야 마음이 편한 엄마는 점점 집안일하는데 어려움을 느꼈다. 특히 손가락에 힘이 없어지면서 반찬 하는데 어려움을 느꼈던 엄마는 결혼 한 여동생에게 이런 말을 종종 했다.
"너는 엄마가 아픈데, 반찬 한 번 안 해오냐!"
여동생은 기가 차듯 고개를 뒤로 젖히며 헛웃음을 지었다. 불안함을 감지한 내가 동생을 지원했다.
"엄마, 기억 안 나요? 반찬 해 오면 뭐 해. 맛이 있네, 없네 따지고 유기농 아니면 안 먹는다며 타박하면서 반찬을 해 오네, 마네 말하시면 어쩌지?"
민망해진 엄마는 "아니, 밑반찬 같은 건 맛있게 잘하던데 안 해오니까 그러지."
엄마는 기본적으로 남을 인정하지 않고, 칭찬에 무척 인색하다. 자식들한테도 마찬가지다. 동생이 반찬을 해 오면 "돈 없어서 좋은 재료 안 썼을 텐데.." 하면서 못마땅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길 수차례 동생인들 반찬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 리가 없다.
기분 상한 동생은 투덜투덜하다가 집에 가면서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친정이라고 와도 불편해. 다시는 반찬 안 해 올 거야."
다신 해 오지 말라고 토닥토닥 달랜 뒤 동생을 보냈다. 그렇게 보내고 나니 내 마음은 한없이 불편했다. 그런데 엄마는 엄마대로 아픈 부모에게 소홀하다며 서운하다고 투덜이니, 중간에서 난감했다.
미안하지만 난 동생 편이었다. 아픈 엄마를 보면 안쓰럽고 속상하지만, 무심코 쏟아낸 막말에 상처받은 자식을 보지 못하고 탓만 하니.. 미운 마음이 더 컸다.
나이가 아무리 먹어도 부모에게 섭섭한, 아니 섭섭했던 마음은 지워지지 않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