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퍼플슈룹 Sep 16. 2022

6년의 기다림

괜찮아, 천천히 해도 돼!

선생님! 우진이 울어요. 어떻게 해요?


화장실 쪽에서 아이들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화장실 앞에서 소리없이 울고 있는 우진이를 발견했다. 우진이는 평소에 긴장을 많이 하는 편이었기에 직접 묻지 못했다. 주변 아이들에게 물었지만, 아무도 몰랐다. 할 수 없이 직접 물어야했다. “우진아, 무슨 일 있었어?” 우는 아이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열심히 살폈다.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 뭐가 문제일까 생각하던 그때 우진이 손을 봤다. 샴푸, 트리트먼트, 샤워용품까지 정리가 잘 돼 있는 목욕용품이 있었다. 들어가서 씻기만 하면 될 텐데 왜 울고 있는지 이상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다시 물었다. “우진아, 집에서 혼자 목욕해 본 적 있어?”


말없이 고개를 가로젓는 우진이 등을 쓰다듬어줬다. 아마도 우진이는 목욕을 혼자 해 본 경험이 없는데, 자신의 씻는 순서가 다가올수록 무척 긴장하고 있었을 것이다. 긴장을 많이 하다보니 주변에 도움을 청하지도 못하고 안절부절못했을 아이를 생각하니 안쓰러웠다. 함께 있던 사회복지사가 우진이와 함께 목욕탕에 들어가서 씻는 것을 도와줬다. 씻는 방법, 혼자 씻을 줄 알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한결 가벼워진 표정으로 나온 우진이를 보니 안심이 됐다. 다음부터는 도와달라고 말하라고 했더니, 금방 표정이 굳는 아이를 보며 머리만 쓰다듬어줬다. 



이렇게 한고비를 넘겼지만, 집에 가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걸 잘 안다. 우진이 엄마는 아이가 하는 걸 기다리지 못하는 어른이다. 학부모상담 때 캠프 때 있었던 일을 전했지만, 그럴 줄 알았다며 아이 탓을 하기 바빴다. 해 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생긴 일이니, 집에서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시간을 달라고 부탁했다. “애가 하는 걸 기다리느니 자신이 하는 게 훨씬 빠르고 정확하죠. 언제 기다려요”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 아닌가? 아이가 하는 것 보다 어른이 하는 게 훨씬 빠르다. 그런데 아이가 할 일을 어른이 먼저 해버린다면, 아이는 언제 경험하고 언제 실패하고 다시 일어난단 말인가? 눈앞에 답답함을 못 참고 아이가 경험해야 할 것을 삼켜버린다면 그 아이의 미래는 어떨까?


부모님들 면담할 때 자주 듣는 말이 있다.

 “바빠 죽겠는데, 애들이 하는 걸 언제까지 기다려요? 그냥 빨리해 주는 게 낫지 않아요?“

 “애들이 하는 걸 그냥 뒀다가 실패하면, 그 모습을 어떻게 지켜봐요.”

 "애들 하는 거 지켜보고 있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요?“

 “어차피 크면 다 할 건데 힘들게 뭘 벌써부터 시켜요?”


부모님들 말에 불안이 깊이 묻어있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 때문에 불안하고, 그 불안 때문에 아이들이 경험할 모든 권리를 빼앗는다면 과연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 걸까? 어른이 하면 빠르고, 어른이 아이의 안전을 지킨다는 말도 맞다. 아이는 미성숙하고, 성장하는 중이라 모르는 것이 많고 실수가 잦다. 설령 기다려 준다고 해도 잘하리란 보장도 없다. 온 힘을 다해 기다렸다 하더라도 해내지 못하는 아이들이 더 많다. 기다림은 멀고 험한 길이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게 있다. 내 아이가 태어나 죽을 때까지 겪을 불행, 실패, 좌절 등 모든 걸 부모가 막아줄 수 없다. 아프고 힘든 일과 마주했을 때, 피하지 않고 이겨내는 힘을 키워주는 것이 훨씬 빠르고 안전하다. 물론 아이가 겪을 시행착오 시간이 길 수 있다. 이때 부모는 옆에서 든든하게 자리를 지켜주면 된다. 아이가 괴롭고, 힘든 일을 겪었을 때, 부모님 곁에서 위로를 받고 다시 일어설 수 있게 곁을 내어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어차피 아이가 겪어야 할 일이니까. 아이의 인생을 좌지우지 하지 않아야 내 아이가 단단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걸 잊지 않길 바란다. 


지금 나는 내 아이의 인생을 대신 살아주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하는 시간을 갖길 바란다.  


이전 14화 우리 엄마, 아빠가 이혼한대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