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퍼플슈룹 May 09. 2022

우리 엄마, 아빠가 이혼한대요

여덟 해의 사연을 받아들이기까지

까만 얼굴에 까까머리 도하는 1학년 때 우리에게 왔다. 마음이 따뜻하고 웃음이 넘치던 아이였다. 밝고 건강한 모습과 달리, 아이가 감당하기에 무거운 사연을 안고 있었다.


“요즘 애들은 한글 다 떼고 학교 가지 않나요?” 


도하 공부를 가르치던 보조 선생님 목소리에 의문이 가득했다. 과거와 달리 요즘 아이들 대부분 한글을 알고 입학한다. 모르는 아이를 찾기 어려운데, 도하는 드문 경우에 해당됐다. 한글을 모르면 학교생활 전반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 도하는 입학 후 여러 어려움에 직면하게 됐다. 선생님이 보여주는 알림장을 읽고 쓸 수 없었고, 준비물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수업 시간에도 교과서를 읽지 못할 뿐 아니라, 필기는 더더군다나 어려웠다. 도하에게 한글공부가 시급했다. 빨리 한글을 가르쳐야 했는데 큰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8년을 살면서 공부란 걸 제대로 해본 적 없던 앉아서 공부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공부가 하기 싫으니까 배우려고 하지도 않았고 "모르겠어요."만 무한 반복했다. 아무래도 학습지도 방향을 부모님과 의논해야겠다는 생각에 가정방문을 요청했다. 


도하 어머니는 가정방문을 내켜하지 않았다. 사람마다 달라서 흔쾌히 승낙하는 사람도 있고, 절대 안 된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억지로 진행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가정방문을 통해 집안 분위기를 파악을 하고, 아이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받기 때문에 가급적 방문하는 편이다. 가정방문을 가는 입장도 쉽지 않다. 대부분 무난하게 진행하지만, 대화내용이 무겁거나 부모님이 정신질환을 갖고 있을 경우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불안하다. 그럼에도 오로지 아이만 생각하면서 위험을 감수하고 진행한다.  



도하 집 가정방문하는 마음이 무겁긴 했지만, 아이만 생각하며 가정에 찾아갔다. 부모는 선생님 앞에 가면 죄인이 되거나,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거나 둘 중 하나인 것 같다. 도하 엄마는 전자였다. 우리가 자리에 앉자마자 "선생님, 제가 한글을 못 가르쳤어요, 애가 공부하기 싫다고 난리를 치는데 감당이 안 되더라고요, 그리고 보면 아시겠지만 공부할 분위기도 안 돼요.“ 집을 둘러보니 엄마 말이 맞았다. 단칸방에 부모님, 4살 동생과 함께 살고 있는 집에서 도하가 공부하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특히 도하 아빠는 공부를 봐주지 않아도 아이에게 놀기만 한다고 화를 내기 일쑤였다. 4살 동생은 형이랑 놀자고 칭얼거리기만 했다. 가족 상황을 모두 고려해도 뭔가 부족했다. 분명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이 들어서 부모님에게 질문을 계속 했지만 궁금증을 해결할 만한 답변을 듣지 못하고 왔다. 도하 아빠의 말과 태도가 가족들을 얼어붙게 한다는 걸 확인하는 좋은 계기였다.


힘겨운 가정방문을 마치고 복잡한 심경으로 다음 날 아이와 마주했다. 어떻게 공부하면 좋겠는지 이야기를 나누는데, 도하가 허공에 대고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엄마랑 아빠가 이혼할 것 같아요”


뜬금없는 고백에 깜짝 놀랐다. 가만 생각하니, 도하가 평소와 다르게 멍하니 허공만 쳐다보는 날들이 많아 걱정이 많던 때였다. 요즘 무슨 일이 있는지 진지하게 도하와 이야기를 나눠야했다. 아이는 나와 마주앉자마자 말했다. “엄마, 아빠가 자주 싸워요.” 부모님이 싸울 때 진수와 동생은 어떻게 있는지 물었다. “저보다 동생이 더 불쌍해요. 동생이 아직 어려서 엄마, 아빠가 싸우면 많이 울거든요. 그러면 제가 안아주고 이불을 덮어줘요. 이렇게 있으면 동생도, 저도 덜 무서워요.”


4살 동생의 불안한 마음을 보듬느라, 정작 자신의 불안을 외면하고 있는 도하가 안타까웠다. 덤덤하게 말을 이어갔다. "엄마, 아빠가 싸우는 건 자주 있어서 괜찮아요. 동생이 더 걱정이죠. 그런데 언젠가 엄마가 저한테 엄마랑 아빠가 이혼하면 누구랑 살 거냐고 물었어요. 그래서 저는 엄마랑 살겠다고 했어요. 아빠는 무서워서 같이 못 살아요. 그런데 아빠가 엄마처럼 똑같이 물어보면 무서워서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한글 공부가 우선이 아니라 엄마를 만나 상황을 알아보는 게 우선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가정방문했을 때 진수 아빠의 언행이 마음에 걸렸다. 아무리 센터에 다니는 아이라고 해도 이런 일을 쉽게 물어볼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마음이 급했던 나는 앞뒤 잴 여지도 없이 급하게 도하 엄마와 약속을 잡았다. 다급한 내 목소리에 엄마도 긴장된 모습으로 왔다. “어머니, 도하가 오늘 부모님이 이혼하실 것 같다고 말했어요. 가정사를 이야기하기 어려우시겠지만, 도하 생각해서 솔직하게 이야기 나눠요.”


엄마의 깊은 한숨이 현재 상황을 알려줬다. 엄마는 어렵게 이야기를 꺼냈다. 도하 아빠는 성격이 급하고 폭력을 휘두를 때가 종종 있어서 남편이 무섭다고 했다. 특히 아이들은 더 많이 무서워하는데, 앞으로 같이 살아야 할지 고민 중이라고 털어놨다. 막상 이혼할 생각을 하니 직장도 없는데 아이들이랑 어떻게 살지, 도움 받을 만한 곳이 전혀 없어서 걱정이 많았다. 가정폭력이 있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이들을 때리지 않지만, 도하 엄마는 남편에게 몇 차례 맞은 경험이 있다고 털어놨다. 아이의 한글 공부로 시작된 면담이 가정 내 깊숙한 내용까지 알게 된 시점이었다. 진수가 많이 불안해하고 있으니 함께 방법을 찾자고 말했고, 많이 힘들고 괴롭겠지만, 진수를 잘 보살펴 달라고 부탁하고 면담을 마쳤다. 


면담을 마치고 나오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도하가 겪고 있을 감정에 깊게 공감했던 이유는 나도 도하처럼 부모님 싸움 때문에 고통스런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이다. 기억으로는 사이가 무척 좋은 사이는 아니었지만, 사이가 틀어지면 심하게 싸웠다. 아버지가 술을 마시고 들어오는 날이면 늘 다툼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문에 귀를 대고 부모님 목소리를 들으며 바깥 분위기를 파악하는 정도가 다였다. 특히 부모님의 싸움이 극에 달했을 때, 문고리를 붙잡고 불안에 떨며 울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30년, 40년이 흘러서 이젠 괜찮은 줄 알았는데,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아이를 보니 다시금 떠오르는 그 시절 기억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난 이혼을 지지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막지도 않는다. 아이들은 화목한 가정 안에서 성장해야하는데, 매일 부모가 싸우고 폭력이 난무해서 그 장면을 보고 자라느니 차라리 부모님 중 한 명과 건강하게 사는 게 낫다. 

부부싸움은 어느 집이나 하기 마련이다. 아이들이 없는 곳에서 싸우라고 많은 전문가들이 말한다. 그러나 감정이 격해지거나 이성을 잃었을 때 아이들을 생각할 여유가 없다.

이전 13화 내 딸 어딨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