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지치기 전에, 순례길 #6. 에스테야를 지나 아예기

by 순례자 현황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5일 차, 푸엔테 라 레이나에서 아예기 23.86km


푸엔테 라 레이나 ~ 아예기
Puente la Reina ~ Ayegui



선선한 아침이었다.


푸엔테 라 레이나의 공립 알베르게에서 느지막이 눈을 떴을 때 태양이 잠시 쉬어감을 느꼈다. 새벽에 이슬비가 왔는지 공기가 촉촉한 느낌이 들었다. 상쾌한 기분으로 일어날 수 있었다.


바로 길을 걷지 않았다.


선선한 공기에 상쾌하게 일어난 오늘, 오늘은 바로 길을 걷기 시작하기보다 순례길을 시작하기 전에 숨을 크게 들어마쉴 여유를 갖고 싶었다. 지나가는 순례자들과는 다른 방향으로, 마을을 한 바퀴 둘러보기 시작했다. 전날에 아름답게 봤던 여왕의 다리. 푸엔테 라 레이나로 들어오고 나가는 그 다리를 보러 갔다. 가까이서도 보고 멀리서도 보고 반대편으로 가 아치를 그리는 다리 그 위로 건너는 순례자들을 바라보았다. 이들과는 조금 다른 하루의 시작에 설레기 시작했다. 우리는 줄곧 걷느라 많은 마을을 놓쳐왔다. 삶의 현장에서 볼 수 있는 것들도 많을 텐데 모두를 놓치고 오직 걷고 쉼에만 집중해 온 것 같다.


골목길을 휘저으며 또 그들의 삶의 영역에 방해를 주지 않으며 조심스레 나란 사람의 발걸음을 남겨두었다. 그리고 한 벽화에서 리얼리즘 그 자체의 고양이 한 마리를 만났다. 아 저 앞에 차가 없었으면.. 하는 큰 아쉬움이 들었다. 누가 봐도 이건 고양이다!!!! 할 수 있을 생동감 넘치는 고양이다. 귀여운 고양이 벽화를 끝으로 남들보다 조금 늦은 (평소에도 늦지만) 순례길을 시작했다.



전반적으로 시골길을 끊임없이 걷는 기분이 드는 하루다. 저 멀리 서는 트랙터가 움직이는 논과 밭이 이어지다 어느덧 포도밭이 나와 보라보라 + 초록 초록한 길이 펼쳐진다. 설이나 추석에 시골에 내려가 그 한적한 농촌길을 걷는듯한 길이 여기저기 펼쳐져있다. 그러나 우리가 걷게 될 길을 한 길로 이어져 쭉 따라가야 하는 길.




하늘이 높고 구름이 많았다.


여름 스페인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태양만이 강렬하게 내려다보는 날이 대부분이었는데, 이렇게 구름이 많은 날은 예전 윈도우 바탕화면이 떠올랐다. 자연 자연한 모습이 활짝 펼쳐져있고 그 위에 구름이 가득한 모습은 마치 영화 "리틀 포레스트"처럼 평온함을 가득 안겨준다. 이렇게 평온함을 가득 주는 곳이 어디에 또 있었을까?


하늘이 맑고 좋았다. 날도 많이 덥지 않았고 거리도 부담이 없었다. 감상에 젖어서인지 지나고 그날의 일기를 보니 다른 날들에 비해 무척 짧았다. 걷기 전부터 동네 구경을 하고 걷다 보니 그날의 감성에 빠져버린 날이었나 보다. 회사를 다니던 시절엔 이런 여유를 갖기가 힘들었다. 가벼운 동네 구경도 주말에 하루쯤 시간을 내어야 할 수 있었다. 합정에서 잠실까지 사람을 빈 공간 없이 가득 채운 지하철 2호선, 매일 그 지하철을 타고 50분의 시간이 걸려 좀비 떼같이 우르르 내려 잠실역 7번 출구로 올라왔다. 그리고 회사에서 그날의 업무를 처리하며 주에 몇 차례씩 스크럼을 갖고 또 주기적으로 실적을 보여 줄거리를 만들어놨다. 야근이 많진 않았지만 퇴근 후에는 다시 2호선을 타고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부업으로 작은 온라인 쇼핑몰을 했었다. 가족의 빚이 나에게까지 왔기 때문에 부지런히 살았었고, 또 취미이자 가끔 들어오는 페이 작업으로 사진 찍으러 다니곤 했다. 어딘가 산책을 간다고 해도 머릿속을 비우는 산책이라기보다 사진 찍을 장소를 알아두는 로케이션 헌팅에 가까웠다.


지칠 때 한 번씩 " 아 이날은 정말 아무도 만나지 말고 혼자 쉬자! " 하고 날을 잡아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항상 무언가를 고민하고 구상하며 일종의 '살아남을 궁리'를 무의식적으로 하게 되었다. 아마 대부분의 2,30대들이 이런 불안정함 속에 또 고민 속에 빠져 살아있지 않았을까?





단순하다. 이 길, 너무 단순해서 난 행복했다.


그냥 걷기만 하면 된다. 중간에 배고프면 바에 들르고 걸음을 멈춘다. 알베르게에 가선 새 친구들과 어울리면 된다. 얼마나 행복하던지... 그렇네, 사람이 단순해지면 행복해지는 거였구나? 이날 새로 깨닫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 행복해지고 있구나~ 하고.


단순해지자!!




오늘 길은 다양한 색채로 분위기를 밝게 해 주었다.


마을은 알록달록했고 서울 근교를 걷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농촌의 길도 나오고 읍면리 느낌의 마을이 나오기도 했다. 그래서 점심은 바나나와 레몬맛 요플레를 선택했다. 걷다 보니 먼저 출발한 일행들을 잠시 마주칠 수 있었고, 지난번에 인사하고 가족사진을 찍어준 엄마와 아들딸을 만났다. 사춘기의 아들딸을 데리고 혼자 오신 어머니. 아이들은 걸핏하면 어머니에게 짜증을 부렸고 엄마는 그런 아이들을 달래며 걸으셨다. 중학생 남짓 돼 보이는 아들은 항상 가족과 거리를 두고 걸었고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딸은 언제나 엄마의 옆에 있었다. 나도 어릴 때 그러지 않았을까? 사춘기란 참 무서운 시기였다. 마음이 가장 뾰족해지는 시기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도, 또 낯선 타국에서 함께 있는 가족에게도 기대는 방법으로 투정을 부린 게 아니었을까? 안타깝게도 지나고 나서야 후회하는 시기라는 이름의 사춘기.


800km의 길을 걸으면서 함께하는 이 가족의 유대감이 변하는 모습이 뜻깊었다. 웃음기 하나 없던 아들에게 점차 웃음이 생기고, 낯가림이 심해 "부엔 까미노"하는 인사에 수줍게 숨는 어린 딸도 점차 인사를 하기 시작하던 모습들이 아직 기억에 남아있다. 그리고 그 어머니의 힘든 표정은 점차 편안함과 행복함으로 차올랐다. 걸어가는 이 길에서 아주 깊게... 기억 속에 남아있다. 지금도 어디선가 행복하게 잘 살고 있었으면 좋겠다.




화개장터 4 총사 누님들도 사진에 보이는구나.

그날 먹었던 레몬맛 요플레

낮게 깔린 구름들을 바라보며 걸었던 그날의 운치 있던 기분들



중간에 있던 간이 쉼터에서 먹었던 수박,

도네이션 바라는 새로운 개념을 알게 되었던 곳

서로가 양보하며 관리가 잘 되던 곳

이렇게 운영이 된다는 사실에 감탄했다. 오묘하고 신기한 이 길이다.



걷는 길 중간중간마다 프레임에 담고 싶은 곳이 있다면 언제든 멈춰 선다. 남들과는 조금 다른 속도로 걷다 보니 이런저런 사람들과 만나 대화도 할 수 있었고, 어울리는 스펙트럼이 넓어질 수 있었다. 서로의 흔적을 남겨주고, 또 함께 노래 부르며 힘내어 걷기도 한다. 이날의 추억을 함께 했던 모든 친구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잠시, 식혀주자


길을 걷다 보면 하천, 개울이 나올 때가 있다. 이때가 바로 휴식 찬스!

여름의 까미노는 몸과 발에 열이 차오르기 쉽다. 특히나 발에 열이 차오르는 기분은 바로 느낄 수 있다. 뜨끈뜨끈함이 발가락 끝에서부터 종아리까지 타고 올라온다. 참고 걷다 보면 마치 신발 속에 전기장판을 틀어놓은 듯하다. 그럴 때마다 신발과 양말을 벗어버리고 열을 잠시 식혀줘야 한다. 안 그럼 발에 쉽게 병이 든다고 들었는데..(자세한 내용은 모르고 주워 들었다 :-) )


에스테야 Estella인가 아예기 Ayegui 인가?


푸엔테 라 레이나에서 출발한 많은 순례객들은 에스테야에서 멈춰 섰다. 규모도 적지 않고 마트가 편리하게 위치해있기 때문이었을까? 나도 이 마을을 지나면서 짐을 풀고 밖에 나온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아예기라는 마을은 마을이라기보다... 조금 애매한 감이 있었다. 분명 근처에 Dia와 데카트론이 있긴 한데 마땅한 알베르게라 할 것보다는 큰 공원과 주유소가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공립 알베르게는 체육관을 알베르게로 이용하는데 운이 좋으면 10,20명이 함께 있는 배드룸이 아닌 창문 딸린 2인용 침대가 들어있는 비상 공간을 사용할 수 있다. 아마 이번엔 운이 좋았던 케이스였다. 마지막 2자리를 받게 되었는데 오히려 이곳이 별도의 공간으로 아늑함을 주었다.

혹시 아예기에 들른다면 요 작은 공간을 요구해 보시는 것도 좋을 듯하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꿀팁6

⭐️⭐️⭐️ 반드시 아침 일찍 걷기 시작해야하는 것은 아니다! 조급함도 금물, 남과 비교도 금지!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꿀팁5

⭐️⭐️⭐️⭐️⭐️ 장볼 때 필요한 식재료 단어, 수량을 공부해가자! 식탁의 퀄리티가 올라간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꿀팁 4

⭐️⭐️⭐️ 일과 후 에너지가 된다면 알베르게에서 나와 마을을 둘러보자! 어떤 재밋는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설레는 마음으로,, ( 단, 무리하지 말기)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꿀팁 3

⭐️⭐️⭐️⭐️ 허기보다 당이 문제. 캔디류를 챙겨나가길 추천 (청포도 캔디 강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꿀팁 2

⭐️⭐️⭐️⭐️⭐️ 등산화는 등산을 위하기보다, 부상을 피하기 위해서 더 중요하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꿀팁 1

⭐️⭐️⭐️⭐️⭐️발에 열이 찬다~ 느껴지면 한 번씩 멈춰서 신발, 양말 다 벗고 열을 식혀주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발가락 사이에 밴드로 마찰을 줄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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