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지치기 전에, 순례길 #7. 그늘 없는 자갈길

by 순례자 현황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6일 차, 아예기에서 산솔 26.42km


아예기 ~ 산솔
Ayegui ~ Sans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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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예기 산솔2-side.jpg 내가 걷는 거리로 고도표 찾기가 힘들다 ㅠ.ㅠ
IMG_4050-side.jpg 아예기 100KM , 대장장이 , 산솔 알베르게 쎄요

100km 돌파 인증, 아예기


아예기라는 마을은 에스테야 다음에 나오는 작은 마을이다. 이곳 공립 알베르게에서는 100km 인증 쎄요를 받을 수 있다. 프랑스 생장으로부터 엄밀히는 120km 정도이지만, 론세스바예스에서부터 대략 100km라고 한다. 많은 순례자들이 에스테야에 머물렀지만 나는 조금 더 지나가 아예기마을에 왔다. 조금은 작은, 하지만 경사가 살짝 있어 저녁에 바라보는 노을이 정말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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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아예기 공립 알베르게에서는 쎄요 뿐 아니라 100km 지점 순례자 인증서를 준다고 한다. 나는 굳이 그런 게 필요하겠나? 하는 생각으로 넘어가긴 했는데 어떤 친구들은 그 증서를 받아갔다. 과연 산티아고에 가는 날까지 종이가 빳빳하게 잘 살아있을까? 그리고 이 근처에 데카트론도 있었다. 순례길 시작 후 필요한 물품이 생겼다면 하루쯤 이곳에 머물러봄도 괜찮을 듯!



길의 흔적을 남겨두는 대장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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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의 초반에 발길을 사로잡은 이곳은 대장장이의 역사가 있는 곳이다. 무언가를 끓이는 듯한 연기가 피어오르고, 망치로 내려치는 쿵쿵 쾅쾅 소리도 들려온다. 순례길에 바로 위치해있기 때문에 지나가는 모든 순례자들이 이곳을 지나게 될 텐데, 그 안에는 다들 둘러보고 나올까?

가격은 생각보다 무거운 편이었다. 그러나 장인이 만들어 준비해놓은 작품들을 보면 과연 그만한 가치가 보인다. 인테리어 하기에 좋은 작은 크기의 소품들부터 큼지막한 것들까지- 순례길에 절대 짊어지고 갈 수 없겠다... 싶은 그런 크기까지. 눈으로만 감상하고 마음에 담고 지나갈 수밖에 없었다. 작은 소품이라도 가방에 하나 둘 쌓여간다면.. 아직 얼마 시작도 안 한 이 길에 발걸음이 얼마나 무거워질지 겁이 먼저 앞섰다. 아쉬운 마음으로 장인의 작품들을 눈으로만 감상하고 걸음을 다시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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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정수기, 수도꼭지를 틀면 와인이 나온다.


이라체 수도원. Bodegas Irache

순례자들이 지나는 길에 고풍스러운 느낌의 약수터(!)가 박혀있는데 , 이것이 바로 와인이 퐁퐁 퐁퐁 나오는 수도꼭지다.


물론 이 와인은 항상 나오진 않고 아침 8시부터 선착순 게임이다. 너무 이르게 지나가는 순례자들은 인증샷만 건질 수 있고, 나처럼 게을러 늦게 나오거나 조금 뒤편에서 시작한 순례자들은 그 와인의 맛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나는 술을 전혀 못한다. 그런 사람이 느지막이 나와 이라체 수도원의 와인 약수터를 만났고, 아주 조금 맛만 보고 다른 이들에게 자랑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예기 공립 알베르게에서 만난 대부분의 친구들은 아침 8시 이전에 이미 모두 지나가버려 입맛만 다시고 갔다고 한다. 나는 그저 오오 와인이 수도꼭지에서 나와!! 하며 신기해하고 아~주 조금 맛만 보고 진나갈 수밖에 없었다. 왠지 슬프기도... 아쉽기도.. 한 애매모호~한 그런 기분이랄까?


모든 순례객들의 체크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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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럽 폭염주의보 -> 자꾸자꾸 쉬어줘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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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부터인가, 손목부터 팔꿈치까지 두드러기 같은 게 올라오기 시작했다. 주변 어르신들 말씀들 들어보니 햇빛이 너무 강해 두드러기가 올라온 것 같다고 쿨링 크림이나 알로에 젤을 발라주면 좋다고 하셨다. 이 길을 걷던 7월 초는 서유럽 폭염주의보가 내려와 있었다. 한낮의 기존이 39도까지 올라가던 시기로, 프랑스 파리에 에펠탑 앞에 있는 호수공원에서 사람들이 비키니와 수영복 차림으로 분수대 안에 들어간 모습이 인상적인 뉴스를 보았다. 그만큼 미친 듯이 더운 날씨였고 많은 이들이 지쳐 걸음을 멈추는 간격이 좁아지고 있었다.


개울가가 나올 때마다 발을 식혀주어야 했고, Bar에서 시원한 코카콜라를 들이켜는 간격이 잦아지고 있었다. 체력이 힘들어지기보다 몸에 열이 차올라 괴로움이 느껴지는, 그런 시기였다. 열사병이 올라 하루 이틀 알베르게에 남아 계시는 어른분들도 계셨다. 누군가 이 한여름에 걸음을 시작하고 또 뜻하지 않게 폭염주의보 같은 녀석들이 찾아온다면 무엇보다 본인의 건강을 먼저 챙기고 절대 무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더위에 두꺼운 등산화를 신고 걸어보니 발에 열이 차오르는 그 기분은 좀처럼 느껴보지 못했던 종류의 고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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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파랗고 햇빛은 뜨거웠다. 그럼에도 많은 순례자들은 걷고 또 걸었다. 잔뜩 지칠 무렵 아버지와 아들로 보이는 사이가 자전거를 타고 조심스레 지나갔다. 사람이 없는 곳에선 나란히 자전거를 타고 가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순례자가 있는 구간에서는 일렬로 서서 조심스럽게 페달을 밟아갔다. 자전거를 타고 오는 경우도 자주 있다고 들었는데 거기에 부자지간이 이 길을 오다니! 가족적인 모습이 내 유년시절에는 없는 기억들이다. 한편으론 부럽기도 하고 또 저렇게 먼길을 떠나온 부자지간엔 어떤 대화를 나누게 될까?


내가 아버지와 이렇게 온다면... 나는 무슨 대화를 하게 될까? 생각만 해도 어색하고... 참 쉽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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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 아르코스에 도착할 때쯤은 몸이 많이 지쳤다.


태양은 여전히 뜨겁고 배낭을 메고 있는 어깨는 열이 차면서 가방의 마찰로 조금씩 쓰라리기 시작했다.


조금 늦게 시작한 걸음으로 알베르게에는 자리가 없었고 다음 마을로 계속해서 가야 했다. 순례자들의 하루하루 걷는 구간이 짧아지면서 알베르게의 만실 시간은 조금씩 앞으로 당겨지는 듯하다. 로스 아르코스의 그늘에서 걸음을 멈추고 잠시 휴식을 취하며 슈퍼마켓에서 과일을 사러 들어갔는데 이전에 있던 마을과는 가격이 2배 가까이 비싸게 팔고 있었다.






지금까지 스페인의 슈퍼마켓에서 만나는 모든 과일은 정말 "와- 저렴하다"라는 생각만 하게 했다. 마치 고정관념처럼 서유럽 = 과일! 이렇게 공식이 만들어졌었다.

그래서 늘 큰 고민 없이 먹고 싶을 때 사 먹곤 했는데, 이곳에서 갑작스레 두배 가까이 차이 나는 가격에 지갑을 다시 닫아두었다. 이 마을이 원래 비싼 걸까? 또 갑자기 더워져서 비싸질 수 있는 걸까? 이 두 가지 모두 납득이 되지 않았다. 왜 다른 마을들과 가격이 이렇게 다른지는 알지 못한 체, 걸음을 다시 시작해야 했다.


그렇지만 그 이유는 로스 아르코스를 떠나면서 바로 깨닫게 되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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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하다면 이 마을에서 오늘의 걸음을 멈추어야 했다. 로스 아르코스에서 산솔로 향하는 다음 코스는, 이전과는 비할 수 없이 정말 힘든 길이었다. 온통 논과 밭, 과수원으로 이루어져 시골 자갈밭길을 걷는 길이다. 그늘은 구경도 할 수 없었고 마을 간격이 상당하여 Bar는 구경도 할 수 없었다. 중간에 딱 한번 쉴 수 있었는데 그게 유일한 나무 그늘이었다. 이때쯤에서야 로스 아르코스 마을의 Bar, 슈퍼 물가가 조금 남달랐던 것을 납득하게 되었다.


다음 마을 산솔까지의 길이 쉽지 않은 탓에 많은 이들이 이곳에 멈추거나 재정비를 하고 걸어가야 하는 길이었다. 이전에 물 한 통조차 사지 않은 나 자신은 이미 중반부부터 탈진에 가까운 상태에 이르렀고 같이 걷던 일행들 모두 마실 물이 거의 바닥난 수준이었다. 정말 마지막 한 모금만 남기고 걷던 중이라 모두가 극기주를 지내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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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이 아파서, 어깨가 아파서 쉬고 싶었지만 내가 서 있는 이곳은 그늘 한점 없이 태양이 내리쏟는 자갈밭길이었다. 감히 쉬고자 해도 쉽게 쉴 수 없는 상황이었다. 누구 하나 쉽사리 입을 열수도 없이 마치 군대에 다시 온 것처럼, 가야 할 길을 가야만 하는 패잔병처럼 땅만 쳐다보고 꾸역꾸역 걸어 나갔다. 다음 마을에 도착해서 나타나는 아무 알베르게나 먼저 들어가자. 오직 그것만이 지금의 목적이다 하는 마음으로 걸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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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 아르코스 -> 산솔.. 도착!

햇빛이 강렬한 오후의 약 7km 거리는 이렇게 끝이 보였다. 평소 한 시간 반 정도면 도착했을 거리를 3시간 가까이 걸려서야, 이윽고 산솔에 도착했다.

IMG_8009.jpg 저 멀리.. 산솔 마을이 보이기 시작한다.

알베르게는 조금 더 가까이 들어가야 했지만 산솔 마을에서 만나는 첫 그늘과 벤치에서 더 이상 걸어갈 수 없었다. 여기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가방을 벗어던지고 신발과 양말 모두를 벗어던지고 그 벤치 위에 뻣어버렸다. 마치 이곳이 종착점인 것처럼

바로 눈 앞에 알베르게가 보이지만 저 안으로 들어갈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글로 풀어쓰는 그날의 힘든 시간은 비록 몇 줄만으로 끝나지만 그날 로스 아르코스를 떠나 산솔로 걸어가는 몇 시간에 길은 마치 하루 종일 걸었던 기분이 든다. 어쩌면 평소 같았으면 ' 아 조금 힘드네' 하고 지나갔을 수도 있다. 그런데 서유럽 폭염주의보라는 친구와 함께, 더 이상의 마실 물도 없이 걷는 기분은 그날 하루에 아주 강렬한 인상을 남겨주는 날이 되어버렸다. 그늘에서 잠시 쉬고 들어간 알베르게에는 족욕을 하는 곳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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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욕탕 사진이 없어 구글리뷰로 대체 ; 출처: 구글리뷰


족욕이라니!!!!


알베르게 중에서 족욕이 가능한 알베르게가 있다면 반드시!! 꼭 머물렀다 가시길 강력 추천한다. 특히나 저 안에서 마시는 칵테일, 맥주, 코카콜라 한잔은 한여름 스페인의 뜨거운 태양 아래 어찌나 달콤하던지, 그날의 추억을 잊을 수 없다.

이날 세상 그 무엇보다 가장 필요한 것이었다. 팔에는 두드러기가, 어깨는 쓸려오고, 발에는 열이 힘껏 차 퉁퉁 부어오르는 그런 날이었다.


알베르게 1층은 식당으로 2층은 숙소로 사용되며 대형 강당에 2층 침대가 빼곡히 놓여있었다. 화장실은 남녀 공용! 처음으로 공용 화장실 겸 샤워실을 만나서 조금 어색했지만 고단한 하루에 그것들은 중요하지 않았다. 얼마나 힘들었던지 로스 아르코스 이후로는 사진이 정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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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맛본 순례자 정식... 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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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정말 으음,,,?이었다. 초등학생 입맛에게 현지 음식은 확실히 무리였다. 차츰 적응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마음에 어려움이 찾아오곤 했다.


뜨거웠던 여름날의 순례자는... 밤의 여유를 즐길 새도 없이 순식간에 잠들어버렸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꿀팁 7

⭐️⭐️⭐️6,7월 스페인은 정말 미친 듯이 덥고

특히 로스 아르코스 -> 산솔 코스는 자갈길에 그늘 한점 찾기 힘들다. 유의해야 할 코스!! 물 미리 챙기자!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꿀팁 6

⭐️⭐️⭐️ 반드시 아침 일찍 걷기 시작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조급함도 금물, 남과 비교도 금지!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꿀팁 5

⭐️⭐️⭐️⭐️⭐️ 장 볼 때 필요한 식재료 단어, 수량을 공부해가자! 식탁의 퀄리티가 올라간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꿀팁 4

⭐️⭐️⭐️ 일과 후 에너지가 된다면 알베르게에서 나와 마을을 둘러보자! 어떤 재밌는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설레는 마음으로,, ( 단, 무리하지 말기)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꿀팁 3

⭐️⭐️⭐️⭐️ 허기보다 당이 문제. 캔디류를 챙겨나가길 추천 (청포도 캔디 강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꿀팁 2

⭐️⭐️⭐️⭐️⭐️ 등산화는 등산을 위하기보다, 부상을 피하기 위해서 더 중요하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꿀팁 1

⭐️⭐️⭐️⭐️⭐️발에 열이 찬다~ 느껴지면 한 번씩 멈춰서 신발, 양말 다 벗고 열을 식혀주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발가락 사이에 밴드로 마찰을 줄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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