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지치기 전에 순례길 #10. 산페르민 축제(+노숙)

달려라!소에게 치이고 싶지 않다면!

by 순례자 현황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9일 차, 산 페르민 축제 즐기기 2일 차

로그로뇨 ------> 팜플로나 (후진하다)
Logrono -----> Pamplona


나는 지금 산 페르민 축제 한가운데에서 즐기고 있다!



용사의 언덕? 얼마나 용맹한 언덕인 걸까?
스크린샷 2021-05-07 오전 2.09.50.png

산 페르민 축제를 즐기기 위해 로그로뇨에서 팜플로냐로 돌아온 둘째 날


오늘 오전은 지난 길에서 건너 띈 [ 용사의 언덕 ]을 경험해보고자 길을 나섰다. 순례길 생장 사무실을 가던 중 흘린 여권을 주워준 그 친구, 해태와 함께 슬렁슬렁 걸어 나갔다. 6월 7일은 여전히 더웠고 태양은 팔과 다리를 벌겋게 태우는 날씨였다.


팜플로나 -> 푸엔테 라 레이나 가는 길에 [ 용사의 언덕 ]이라는 곳이 있다고 들었다. 스페인 현지 이름으로는 Sierra del Perdón. 처음에 듣고는


' 와 얼마나 빡센 길이 길레 용사의 언덕이라고 하지?'

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괜히 용사라는 전투적인 말이 붙지 않았을 거란 느낌에서였다. 이날은 팜플로나에서 출발해 [ 용사의 언덕 ]까지 다녀오는 일정으로 오전 시간을 사용했다.


.


언제부터인가 DIA 같은 매장이 나오면 이렇게 생오렌지 주스를 찾아간다. 2-3유로의 가격으로 정말 생과일 오렌지 주스를 착즙기로 쥬르르르르- 한 통 가득 채워준다.


그 어디서 먹었던 맛도 이 맛을 따라올 수 없을 것이다. 혹여 이 팬데믹이 끝나고 자유로운 시대가 찾아와 스페인을 간다면, 순례길을 걸으러 가는 이가 이 글을 읽는 사람이 있다면...



꼭 꼭! 이 오렌지 주스를 찾아가 보길 권한다. 와인(아예기-산솔 편 참조)과 마찬가지로 오렌지 주스의 맛을 따라갈 수 있는 곳은 그 어디에도 없다




가벼운 가방에 순례자 여권, 보조배터리, 인스턴트커피 하나와 DIA에서 구입한 빵, 오렌지주스를 들고 걸음을 나섰다. 가면서 [ 용사의 언덕 ]에 대해 대화를 하던 중 갑자기 멈추더니


" 행님, 여 이름이 용사입니까 용서입니까? "


나는 자신 있게 용사의 언덕이다! 길이 험하니 그런 거 아닐까!? 봐봐 계속 언덕길에 그늘 한 점 없이 힘들잖아~라고 했다. 잠시 뒤 내 말을 못 믿은 해태는 검색해보니 헐... [용서의 언덕]이었다.


[ 용서 ]라는 조금 무거울 수 있는 묵상의 주제가 나의 오해로 인해

[ 용사 ]라는 용맹한 느낌이 되어버렸다. 마치 군대에서 전투행군 나가는 날 아침처럼 마음을 다지고 나온 것이 부끄럽게 조금 테마를 다르게 해야 했다. 용사에서 용서로.... 조금은 멋쩍게...


DSC02944.JPG
DSC02946.JPG
DSC02949.JPG
DSC02956.JPG


이 언덕에는 바람이 많이 불어온다. 등에서 밀어주는 바람이라면 정말 감사하겠지만 언덕을 올라가는 길에 맞바람이라면 배로 걷는 길이 힘들다. 허나 이렇게 더운 날 바람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것 또한 고역이었다. 바람... 어디에서 불어오는지..


IMG_8268.jpg
IMG_8269.jpg

한 없이 넓은 해바라기 밭을 지나면 언덕길이 시작된다. 언덕길을 걷기 시작하고 얼마지 않아 등이 축축해져 온다. ' 아 벌써 땀이 나기 시작하나?' 날이 더워서 그런가 보다 했다. 조금 더 걷는데 동행자 (해태)가 걸음을 멈추고 내 가방에서 뭔가 흐른다고 한다. 웁스, 가방에 챙겨둔 인스턴트커피가 터져서 질질질 세고 있었다. 커피로 적셔진 것보다 그 안에 들어있는 순례자 여권부터 번뜩 생각이 난다. 움직이다 혹여 더 젖을까 조심이 가방을 내려놓고 여권을 꺼내보니... 일부는 이미 젖어있었다. ㅠ.ㅠ 이미 젖어버린 거 활짝 펼쳐 햇빛에 말리며 걷자~! 하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다시 시작!


중간에 [ 용서 ]라는 수정된 제목을 인지하고 조금 무거운 마음으로 묵상하며 걸어보자 했다. 그러나 커피가 터지고, 여권이 젖고, 날이 타오를 듯 더운데 그늘 한 점 없는 길에서 "용서"에 대해 묵상할 마음의 여유는 없었다. 그저 그 언덕은 대체 어디인가... 하는 생각뿐


DSC02932.JPG
IMG_8265.jpg


마침내 [용서의 언덕 Sierra del Perdón ]에 도착했다. 차마 용서할 수 없는 날씨였다. 이 태양 아래 젖은 순례자 여권을 들고 울면서 올라왔는데 용서란 생각이 어디 들까!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서]라는 단어를 마음속에 계속 되뇌었다.


IMG_8254.jpg
IMG_8266.jpg
IMG_8253.jpg


IMG_8255.jpg
IMG_8257.jpg
IMG_8256.jpg



와인을 넣은 물총 아니 와인 총이라고 들어봤니?


용서의 언덕을 다녀와 마을을 둘러보며 즐기다 보니 어느덧 저녁이 찾아왔다.

오늘 저녁은 노숙. 거리에는 온통 축제에 취한 사람들로 가득했다. 어디를 둘러봐도 흰 티셔츠에 빨간 아이템을 하나씩 두르고 거리를 가득 채웠다. 광장에서는 테라스의 사람들이 와인으로 물총을 쏘고 거리에 사람들은 큰 음악소리와 함께 흠뻑 빠져있다.


테라스의 사람들은 더운 열기를 식히게 물을 뿌려주고 물총을 쏘기도 한다. 밑에서 축제를 즐기는 이들은 더 환호하며 분위기를 후끈하게 달군다. 아, 진짜 축제의 한가운데에 있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나에게 많은 사람들이 그 앞에서 포즈를 취해주고 같이 사진을 찍어간다. 물론 빠지지 않는 질문은 "Do you love BTS?" 나에게 되려 BTS를 아냐 좋아하냐, 그중 누구를 가장 좋아하냐는 질문을 한다. 허허, 사실 누가 있는지도 모른다 ㅠㅠ


IMG_9418.JPG
IMG_9419.JPG
IMG_9421.JPG
IMG_9424.JPG
IMG_9422.JPG



순례길 노숙, 아니 팜플로나에서 노숙한 썰


첫 노숙이다.

담날 오전에 있을 소몰이 축제 (Bulls running)을 보기 위해 우리는 다 같이 노숙을 강행했다. ( 이 시기의 숙소비가 너무 비싸...)


IMG_9407.JPG 정말 노숙을 했다!


정말 이러고 잤다.

처음 마땅한 장소를 찾느라 오래 걸렸다. 거리의 어디를 가도 사람이 가득했고, 온통 술판이었고 그나마 빈자리는 술병이 뒹굴고 있었다. 남녀가 같이 있다 보니 안전한 장소를 찾는 것이 가장 최우선이었고 다행히 투우 경기장 뒤편의 어느 코너 자리를 찾아 돗자리를 피고 돌아가며 잠을 청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술 혹은 약에 취한 애들이 주변을 자꾸 어슬렁거렸다. 주변에서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었다. 아무래도 다른 이들처럼 축제의상이 아닌, 정말 전형적인 순례자의 모습으로 이곳에 있는 모습이 낯설었겠지? 거기에 정말 몇 안 되는 아시안이 우리였다. 돌아다녀도 축제에 함께 와 있는 아시안을 보기가 쉽지 않았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분위기와는 너무 상반되기 때문인 걸까...


주변에서 자꾸 어슬렁거리고 괜히 옆에 와서 대마를 피우는 모습에 잠을 청할 수 없었다. 결국 나와 태권보이 둘이서 불침번 아닌 불침번을 서게 되었다. 도난 문제도 있었고, 주변엔 온통 흥과 술, 약에 취한 사람들이 많아 위험해 보였다. 낮에 보았던 평화롭고 흥 가득한 축제 분위기와는 다르게 지금은 마치 위험하다고 소문난 할렘가에 오아 있는 기분이었다. (ㅠㅠ)

IMG_8311.jpg
IMG_8304.jpg


스페인 3대 축제로 불리는 팜플로나의 산 페르민 축제


투우장은 충격


소몰이 축제는 일단 기대

밤거리는 정말 충, 충격!!!


음, 남녀노소 모두 나와 즐겁게 즐기는 축제의 분위기는 정말 보기 좋았고 평화로웠다. 모두가 음악에 흥에 취해 즐거운 분위기였는데, 밤의 풍경은 사뭇 달라졌다. 약간의 긴장감을 온몸에 두르고 있었어야 했었다. 캐나다에 있다 보니 대마는 친숙했지만 그 외에 다른 약을 거리에서 하는 모습에 놀랐다. 혹여나 사고가 생기지 않을까 싶었달까


이렇게 노숙을 하며, 뜬 눈으로 밤을 보냈다.

즐거운 듯 즐겁지 않았던 산 페르민의 밤이었다.


그저 내일 있을 소몰이 축제를 기대해본다.



keyword
이전 13화더 지치기 전에, 순례길 #9.산 페르민 축제,팜플로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