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순례길] 0_프랑스 파리에서 생장 도착까지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가보니, 그곳엔 인연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by 순례자 현황

0일 차, 프랑스 파리에서 바욘 그리고 생장 Saint Jean Pied de 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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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지금 무엇에도 쫓기지 않아.

프랑스 파리에 들어온 지 어느덧 일주일. 철저히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나서서 동행을 구하지도 않았으며 일어나고 싶은 시간에 일어나 자고 싶은 시간에 잠을 자고, 걷고 싶은 길을 걸었으며 멈추고 싶은 곳에 멈추었다.


무엇에도 쫓기지 않고 서두르지도 않았다.

온전히 내 마음이 향하는 대로 시간을 보냈다. 철저히 의무감을 내려놓고 자유함을 만끽하였다.


에펠탑 앞에 앉아 삼삼오오 모여있는 일행들을 보며 몰래 남들의 이야기를 엿듣기도 하고 새벽에 어두운 거리를 걸으며 모험 아닌 모험을 하기도 했다. 차분한 밤의 시간만큼 내 마음까지 고요해지는 시간은 없었다.

몽마르뜨 언덕에서 석양을 바라보며 지나간 연인들에 대한 아쉬움 일지 미련 일지 모를 것들을 날려 보냈고 반짝이다 적막에 감싸이는 에펠탑 앞에서 외로움에 대한 겁일지 모를 것들을 날려 보냈다.

철저히 혼자의 시간을 보냈다. 기약 없는 이 여행에서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순례길을 향하기 전 마음의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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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이 휩쓸려 떠나거나 무언가를 결정하고 싶지 않았다. 주변 요인에 의해 결정을 강요당하기보다 나 스스로에게 집중하여 내면의 목소리가 들리기 기다렸다. " 이제 그만 됐어, 가자! " 바로 이 말을


혼자임과 동시에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친구 같았다. 언제든 누구에게든 말을 걸 수 있었고, 밥 먹다 자연스럽게 대화를 시작할 수 있었다. 밤에 에펠탑을 바라볼 때 주변에 있는 누구든 친구가 될 수 있었고, 몽마르뜨 언덕에 앉아 노을을 볼 때, 서로에게 맥주 한 캔씩 권할 수 있었다. 무엇에도 소속되지 않았지만 무언가에 소속되어있는 듯한 느낌. 바로 그런 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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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휴식은 다른 의미이지만 서로 멀어질 수도 없는 의미였다. 휴식을 원했지만 결국 찾아온 곳은 자유라는 곳이었다. 자유함 속에서 휴식을 얻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 역시 유통기한이 있었던 것일까.


6일이 지났다, 독립문 위에 올라가 가지런하게 놓인 파리의 블록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 내 마음도 이렇게 가지런히 정리되면 좋겠다. "


자유로운 발걸음을 끝낼 때가 되었음을 조용히 나에게 알렸다. 한 가지 할 일이 생겼다.

나 스스로 가지런히 정리하기. 나에게 집중하고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자 내가 해야 할 일이 정리되었다.

생각도 마음도 정리하자.


그날 저녁, 바욘으로 향하는 야간 버스를 예매하고 그렇게 훌쩍 산티아고 순례길을 향한 걸음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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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적이 울렸다.

종일 파리 시내에서 마지막 날을 즐기고 밤 10-11시쯤 야간 버스를 탑승했다. 다음날 9-10시쯤 프랑스 남부에 있는 작은 마을 바욘에 도착. 후에 안 사실이지만 바욘에 도착하면 가볍게 도시를 구경하거나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12시간의 야간 버스를 타는 경험은 해본 적이 없었다. 거기에 버스 기사님 바로 뒷자리.. 였다. 다른 좌석보다 조금 더 좁은 앞뒤. 버스는 약 2시간마다 정차해서 10-15분가량 쉬었다 출발한다. 왜 이렇게 자주 정차하는지 물어보니 이곳의 법규라고 한다. 기사의 피로도 관리와 사고 방지를 위한 법규였다. 이용객에게는 일정이 늘어지게 될 수 있지만 모두에게는 가장 안전한 법규. 간혹 발생하는 졸음운전과 같은 사고를 예방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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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욘에서는 기차를 타고 생장_으로 간다. 아직까지 나는 마을을 둘러봐야지 하는 여유로운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지나고 나니 이 여정 동안 달라진 내 모습이 보인다. 점차 마을을 둘러보고 여유를 갖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점차...



되돌아보니 신기한 그리고 소중한 만남들

바욘 앞에서 우연한 만남을 갖게 되었다. 기차역 앞에서 흡연 중인 누가 봐도 순례길을 가는 어린 한국인 두 명이 있었고, 그들에게 담배를 구걸하는 청년, 자세히 보니 조금 전 다른 사람들에게도 담배 구걸하고 있던 그 사람이었다. 한국은 몰라도 캐나다나 유럽에선 높은 담배 가격 때문에 미성년자나 젊은 청년들의 담배 구걸이 흔하다. 잠시 뒤 그 한국인들에게 앞으로 유럽에서 이런 일이 흔할 테니 모두 응할 필요 없다는 말로 대화를 시작했다. 모두 스페인 순례길을 가는 중이었으니 후에 다시 만나자 하며 각자의 열차칸에 올라탔다.


열차의 같은 칸 안에는 미래의 동료들이 타고 있다. 주변을 둘러보자, 주변에 있는 그 사람들이 앞으로 당신의 일정에 항상 포함되어있을 것이다. 내 건너편에 있는 장발의 남자, 저 뒤편에 있는 한 가족, 저 멀리 가방에 태극기를 달고 있는 내 나이 또래.


참 재밌는 일이다. 그때 같은 열차 칸에서 같은 곳을 향하면서 서로가 누구인지 관심도 갖지 않던 우리가 하루 이틀 걸어 나가며 동료가 되고 서로의 사연을 궁금해하고, 한 방에서 같이 잠을 자기까지도 한다. 여행을 마치고 난 뒤에도 이어지는 인연들이 있다.


생장에서 내려 순례자 사무실로 가는 길이었다. 생장 기차역에서 내린 99%의 사람들은 모두 같은 목적지를 향해 걸어간다. 비슷한 차림새를 하고 다들 긴장과 설렘 가득한 표정으로 걸어간다. 서로 어색하게, 말도 없이.

전날 파리에서의 여행에 이어 12시간의 야간 버스를 타고 바욘에 도착해 바로 눈 앞에 있는 기차를 타고 막 도착했다. 캐나다에서 온 직후라 캐리어를 한 손에 쥐고 어깨엔 순례길을 위한 배낭을 메고 있었다. 캐리어 위에 작은 가방을 올려둔 체 순례자 사무소를 향하여 걸어가던 중 뒤에서 누군가 부른다.


" Hello, excuse me sir! "


익숙한 부름에 뒤를 돌아보니 누군가 나를 부르며 한 손엔 무언가를 쥐고 있다. 가까이 다가가니 캐리어 위에 올려놓은 작은 가방이었다. 캐나다 ID와 여권 그리고 혹시 모를 한국 신분증이 들어있는 가방이었다. 어처구니없게도 그 중요한 물건을 캐리어 위에 아무렇지 않게 올려둔 채 터덜터덜 걸어가던 것이었다. 이 친구 아니었으면 시작도 전에 내 순례길은 끝이 났을 테고, 모든 여정은 여기서 끝나는 순간이었다.

참담한 기분과 감사한 마음이 동시에 들며 너무 다행스럽다는 안도와 함께 그 친구에게 감사를 표했다. 동양인으로 보였는데 나를 외국인으로 보았는지 어색한 영어 몇 마디 건네고는 먼저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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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그들을 따라 올라갔다. 생장이라는 프랑스 남부의 작은 마을. 스페인 순례길이라는 이름은 이곳의 주요 관광수입이다. 낯선 이방인들에게 자연스레 친절할 수밖에 없는 이들. 이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보아왔을까? 지도 한번 보지 않아도 사람들을 따라가면 자연스레 순례자 사무실까지 갈 수 있다. 이곳에 도착하자 아까 바욘역 앞에서 본 두 한국인 친구와 가던 길에 내 가방을 주워준 젊은 친구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이때는 몰랐다, 이 이후 여정의 마지막 날까지 이들과 함께 하게 되었을 줄은...


생장에 도착해 사람들을 따라가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생장 순례자 사무소였다. 도착한 시간은 마침 점심시간이라 문을 닫고 그 앞에 순례자들이 차례차례 배낭을 내려놓고 줄 서있기 시작했다. 이 시간이 점심시간이었는지, 시에스타였는지는 모른다. 걷다 보니 낮에 왜 상점들이 닫지? 하고 나서야 '시에스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앞에 짐을 놔두고 한 켠에 마련된 흡연구역에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조금 뒤 아까 내 보조가방을 주워준 청년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혹시 한국인이시냐고, 그렇게 대화를 시작했고 잠시 뒤 바욘 기차역에서 만난 두 친구도 다가왔다. 사무실 오픈을 기다리며 그렇게 순례길에서 첫 친구를 사귀게 되었다.


첫 번째 친구는 한국에서 과자회사 영업을 하다 그만두고 건너왔다. 영업직으로 스트레스로 퇴사 후 잠시 여행을 즐기고 돌아가 이직할 생각이라고

두 번째 친구들 두 명은 어린 친구들이었다. 갓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 준비 중에 오게 되었다고. 아직 하고 싶은 것이 명확하지 않고 취업시장의 어려움을 알기 전에 여행을 하고자 한다고 했다. 서로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했다.

사무소가 문을 열고 차례차례 사람들을 받기 시작했다. 대다수는 기차에서 본 사람들이었고, 일부는 이미 도착해서 숙소에 짐을 풀고 나온 가벼운 차림이었다. 먼저 온 그 친구들을 보내고 내 차례가 되어 사무실에 들어갔다. 사무소 직원은 순례자 2명씩 짝지어 여권을 만들어주고 간단한 여정과 근처 숙소, 내일 있을 코스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나처럼 스페인 하숙의 영향인지 한국인이 많이 보였다. 나와 짝지어진 친구도 내 나이 또래의 한국인이었는데 영어에 어려움이 있어 직원의 설명을 이해하고 서류를 작성하는데 어려움을 겪자, 직원이 나에게 설명해 줄 수 있을지 요청하여 차례차례 알려주고 마지막 가리비를 받은 뒤에 한켠에서 일정과 숙소, 내일에 대한 설명을 차례차례 알려주었다. 특히나 내일 피레네 산맥이라는 아주 높고 중간 마을이 지나면 목적지까지 다음 마을이 없기 때문에 자칫 위험할 수 있는 일정이 될 수 있다며 이에 대해 꼭 알려주어야 한다는 이야길 듣고 더 상세히 전달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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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소를 나오자 먼저 온 친구들은 어디론가 갔고, 나는 직원의 추천대로 55번 알베르게로 향하였다.

나와 짝지어진 친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두리번거리기에 아직 숙소를 정하지 않았다면 나와 함께 가자고 권하여 나의 첫 알베르게로 입장하였다.


군대의 내무실과 같은 차가운 분위기, 모든 이들의 어색함 속에 들어가 순례자 등록을 하였고 순례자 여권에 첫 도장을 찍었다. 지정된 침대로 가 짐을 내려놓고 같이 온 친구에게 저녁을 함께하자 하고 앞으로 나왔다. 아니 이 마을의 길은 모두 일방통행인가... 나오고 금세 아까의 과자회사 친구와 취준생 동생들을 만났다. 그렇게 우리는 다 같이 식사를 하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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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의 첫 모임이 순례길 가는 여정에서 가장 큰 힘이 되었다. 후에 각자의 일정을 마치고 함께 피스테라와 묵시아로 넘어가기도 했으며, 함께 공항에서 노숙을 하기도 하였고, 바르셀로나에서 에어비엔비에 모여 편안하고 든든한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서로의 안부를 묻고 누군가의 취업을 축하하며 내가 한국에 돌아갔을 때 고맙게도 다 같이 시간 맞춰 모여주기도 했다.


이날의 일기를 보면 사람의 인연이란 것이 이렇게 신기하고 감사하다는 것을 느낀 하루였다. 각자의 발걸음으로 혼자 찾아온 이 곳에서 담배 구걸을 목격하고, 가방을 흘리며, 영어에 어려움이 있어서 등 이유로 모이게 되었고 황당한 이유로 나를 구심점으로 모두가 함께 첫날부터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다. 마을에서 잠시 여유를 취하다 보니 홀로 다니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자발적으로 혼자이길 원한 사람이 있을 지라도 모두들 누군가 챙겨주거나 불러주어 삼삼오오 첫날의 긴장을 푸는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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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장, 세인트 진 피에드 드 포트. 난 아직 이날을 잊을 수 없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가벼운 손빨래를 하고 야외 건조대에 널어놓고 의자에 앉아 해가 지던 풍경을 보던 그날의 공기와 기분을

저녁 시간에 나와 마을을 둘러보며 내일 내가 이 길을 걷기 시작하겠구나... 하고 잠시 감상에 젖던 그 시간을 잊을 수 없다. 나에게 생장이란 마을은 생기 넘치고 아름다운 출발점이다. 55번 알베르게는 과하게 차분하고 어둡고 어색한 공기가 가득했지만 그 안에 무엇보다 가장 큰 설렘이 가득했던 방이었다.


분명 이 곳에 나는 잠시 쉬러 왔고 무거웠던 머리를 가볍게 만들고 싶었다. 생각은 조금 덜어내고, 걱정 덜어내고 몸도 마음도 가볍게 만들고자 왔다. 불필요한 계획을 세우지 않고 흘러가는 상황에 일정을 맡기며 기약 없는 여행을 시작해본다. 한 번쯤은 흘러가는 대로 따라가도 괜찮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며 이 발걸음을 옮기려 한다.


그렇게, 오늘을 마치고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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