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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종갓집 06화

결혼과 요강

아들은 의무고, 딸은 선택사항?

by 위공

"오빠는 아직 결혼할 준비가 안되어 그렇다 치자, 그럼 너희들은 왜 결혼을 안 하겠다는 거니?" 순덕은 딸들에게 묻는다.

"안 하는 게 아니고 못하는 거지." 둘째가 즉시 답한다.

"응? 왜 못해? 맘에 드는 상대가 없어?" 순덕은 자못 궁금하다.

"그것도 그렇지만, 오빠부터 해야지." 당연한 듯, 말한다.

"그럼, 우리 막내는?" 막둥이를 바라본다.

"나도 언니와 똑같은 생각이야!" 제 언니와 의견 일치다.

"오빠 결혼하면 너희들도 하겠네?" 계속 채근한다.

"그때 가서 생각해 보겠어." 둘째와 막내가 이구동성으로 답한다.

"피는 못 속인다고 내가 낳은 삼 남매지만, 어찌 저리 부모를 닳았을꼬?" 순덕은 혀를 끌끌 찼다.



순덕은 지난날을 회상하면서, 남편이나 나 자신도 남들 잘하는 연애 한 번 못하고 맞선보고 결혼한 것이 그리 탐탁지 못했다.

어린 시절, 친정 엄마가 아버지에게 늘 하시던 말씀이 기억에 새롭다.

"내가 죄인이여~ 당신이 어디 가서 씨받이를 구하던, 연애를 하던, 사내자식 하나 쑥 낳아, 데리고 와요!"

순덕은 시집갈 때까지 이 말이 뼈에 사무쳤다.

친정 엄마가 아들 못 낳아, 우리 세 자매도 늘 기가 죽어 아버지 눈치만 보며 살았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팔자에도 없는 아들 생각에 늘 술독에 빠져 살았다.

순덕은 이를 악물고 여태까지 장녀로서, 부모님을 잘 봉양하며 살림도 잘 살았다.

딸도 아들 못지않게 잘할 수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 주었다.

"도대체 아들이 뭐길래, 남자들이 나를 우러러보게 만들 거야!" 가슴속 깊게 맹세했었다.

집안에서 순덕은 언제, 어디서나 가문의 선구자 역할을 몸소 거침없이 해왔다.

순덕은 결혼 당시 기억을 떠 올렸다.

동생 순애가 여고시절부터 사귀는 남자와 연애 끝에 애를 낳고, 결혼에 앞서 먼저 동거하며 살림을 차렸다.

그래서 부랴부랴 부모님들은 나의 결혼을 서둘렀던 것이다.

순덕은 순덕대로, 아들 낳지 못해 죄인처럼 살아야 했던 어머니와 아버지의 주벽을 지켜만 볼 수밖에 없었던 상태여서, 결혼은 이 지긋지긋한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라 생각이 들었다.

막내 복순이도 결혼 적령기에 다되어 갔기에, 이런저런 연유로 결혼을 받아들였다.


동네 아주머니가 참한 총각이 있다며, 맞선을 주선해 왔다.

맞선을 중매한 아주머니 집에서 아버지와 함께 총각을 봤다.

그리고 적극적인 총각과 아버지의 지원으로 순탄하게 결혼을 위한 단계를 밟아 갔다.

마침내 총각이 청혼 날짜를 정하자고, 우리 집에 제의해 왔다.

그러나, 순덕은 갑자기 결혼을 미루겠다고 선언을 했다.

둥생 순애 동거 생활을 보면서, 솔직히 결혼할 마음이 싹 달아나 버렸다.

불장난처럼 시작된 동생의 연애가 아기까지 낳다 보니, 부모님이 남자 집안과 남자를 정확히 모른 채, 받아들였는 것이 화근이었다.

'못된 송아지 엉덩이에 뿔난다.'라고 동거 후, 맨날 동생 순애는 남편에게 얻어 맞고 눈퉁이 밤탱이가 되어 친정에 쫓겨와 부모님 속을 썩였다.

무엇보다도 부모님이 보는 앞에서 인정사정없이 순애를 폭행하는 남편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정말 이래서 가정교육이 중요하고, 집안 내력을 잘 봐서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당분간 결혼을 미루고 인간성 파악부터 해야지, 무조건 결혼은 절대 어림도 없는 짓이라고 확신했다.


수재가 드디어 말했다.

"결혼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아이들도 고민이 많을 텐데..."

"당신은 아이들 결혼을 걱정하는 거요, 아니면 강 건너 불구경하는 거요?" 순덕이 다그쳤다.

"스스로 알아서 해야 된다는 말이지..." 말끝을 흐렸다.

"당신도, 우리 아버지가 서둘러지 않았다면, 결혼은 꿈도 못 꾸었을 거요." 순덕은 옛일을 떠올렸다.

"내가 결혼을 안 하려고 했지만, 아버지가 반 강제적으로 시켜, 성사가 되었잖아요?"

"..." 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당신 보고 결혼했겠어요? 당신 어머님 보고 이 집안을 선택했어요."

"..." 역시 할 말은 없고 인정하는 듯했다.

"정말, 결혼이 어렵게 성사되었지만, 당신은 복이 많은 사람이에요." 순덕은 핵심을 찔렀다.

"당신보다 부모님이 더욱 인자하시고 멋지다고 생각했기에, 내 마음이 움직인 거요."


수재는 결혼 당시, 집안 상황과 어머니의 당찬 행동이 생각났다.

동생 수기와 수열은 일찌감치 연애를 해서 결혼할 대상은 있었지만, 형의 처지를 보면서 부모님 분부만 기다리는 그런 상황이었다.

삼 형제 다 결혼시키기에는 넉넉지 않은 집안 살림도 문제였다.

무엇보다 장남 결혼이 관건이었고, 최우선 과제였다.

아버지는 집안 형편상 나서기를 주저했고, 어머니가 전면에 나섰다.

그래서 장남 맞선을 주도했고 맞선을 보자마자, 아가씨를 무조건 데리고 오라고 했던 것이다.

수재는 이 사실을 순덕에게 전했지만, 답이 없고 순덕 부모님께 허락을 받아 내었다.

"아가씨! 참하게 생겼네~ 우리 아들이 순진해 말을 잘 못하지만, 이해심도 많고 아가씨를 엄청 위해 줄 거야." 순덕 손을 꼭 잡으며, 순덕 마음을 확실히 잡아당겼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결혼을 하려면 무엇보다 돈이 필요했다. 그것도 삼 형제 모두 결혼시킬 큰돈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렇지만, 어머니는 밀고 나갔다.

우선 돈을 빌리기 시작했고, 어머니가 워낙 동네 이웃과 친지들로부터 신뢰가 두터웠고, 신용이 확실했기에 큰돈을 빌릴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87년도 내가 결혼했고, 88년도 수기, 89년도 수열이를 결혼시켰다.

웬만한 부잣집도 삼 년 이어서 자식들 결혼시키기에도 힘들 텐데, 어머니는 그렇게 우리 삼 형제를 당당히 결혼시켰다.


둘째가 막내에게 말했다.

"엄마가 결혼하라고 하는데, 넌 어떻게 생각해?"

"언니는 지금 내게 말하는 거야? 언니, 자신 이야기 아냐?" 막내는 오히려 언니 이야기로 돌렸다.

"나는 절대 결혼 안 해!" 단호하게 말한다.

"나도 마찬가지야!" 막내도 덩달아 뱉는다.

딸들 방안에 들어서며, 대화를 듣고 순덕은 말했다.

"정말, 우리 집 딸들은 결혼 안 하겠다는 거야?"

"응! 난 절대 결혼 안 할 거야!" 둘째가 결심한 듯 말한다.

"우리 막둥이는 아직 나이가 있으니, 더 묻지 않을 테니 여기서 그만하자." 순덕은 체념했다.

"엄마! 언니는 결혼은 안 한다고 했지만, 외국에서는 또 다를걸?" 말해놓고, 언니를 빤히 쳐다본다.

"그건 내일 이야기지, 어떻게 내일을 알 수 있니? 안 그래?" 더 이상 말을 말자는 투다.

"언니, 그러면 국제결혼은 가능하다는 얘기네..." 끈질기게 잇는다.

"언니는 해외여행을 많이 다녀서 외국 사정을 잘 알고 좋아하기에, 외국사람은 또 다를 거야."

막내는 계속 언니 이야기로 이어간다.

"언니는 프랑스 가족문화 팍스 제도처럼 그런 제도가 되어 있으면, 아마도 결혼할 거야." 엄마를 쳐다본다.

"팍스가 뭐 하는 거야?" 순덕은 자못 궁금했다.

"응~ 한마디로 개인의 권리를 존중하며 모두에게 평등한 결혼이 되고, 육아도 아빠가 주도하는..."

막내는 일사천리로 팍스 제도를 설명해 주었다.

"중요한 것은 국가가 98% 정도 육아 지원을 거의 다해준다는 것이야." 이야기를 맺는다.

"여행과 결혼을 별개야!" 언니는 짧게 내뱉는다.

"알았다! 알았어~ 오빠는 꼭 해야 하니, 너희들이 오빠 짝이나 소개해 주거라! 어이구~우리 자식들은 아빠, 엄마 닮아 연애도 못하고..." 순덕은 화제를 아들에게 마무리 과제로 돌린다.


순덕은 아이들 결혼 문제에 대해 차분히 생각해 보았다.

딸들은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아들은 어떤 답도 내놓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아들 결혼은 시어머님이 해온 것처럼 자신이 전면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나서면 아들은 엄마 말을 잘 듣기에, 무조건 따라올 것이라 확신했다.

그래서 딸들에게 소개팅을 언급했고, 엄마 자신도 아들 중신 볼 곳을 두루 알아볼 것이다.

그런데, 딸들이 말하는 외국에 '팍스'라는 제도가 자세히는 잘 모르겠지만, 다 좋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이 들었다. 세상만사 모든 일이 좋은 점이 있으면, 나쁜 점도 있기 마련이다. 그게 세상 이치다.

'팍스' 제도가 외국에선 결혼 및 가족문화에 좋은 것이라고 한다면, 우리나라에는 그에 대응하는 '요강-단지' 문화가 있다.

순덕은 시어머님이나 친정 엄마가 시집올 때 '요강'을 꼭 지니고 왔다.

그 당시에는 '요강'은 시집 목록에 빠질 수 없는 필수 지참물 1호였다. 그리고 대 가족 제도에서 '요강'은 엄마들 뿐만 아니라, 아버님들도 사용했고 가족들 모두 사용했다.

한 밤중에 일어나 볼일 보려고 먼 화장실에 갔다 오면 잠 깨기가 일수였는데, '요강'은 이런 폐단을 즉시 처리해주는 해결사였다.

얼마나 좋은지는 이것을 사용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그래서 우리 전통문화도 좋은 것이 많기에, '팍스'를 운운하며 결혼 안 하겠다는 딸들에게 전적으로 동의를 못하는 것이다.

순덕은 '요강-단지' 문화가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 쉽게 잊혀 가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어쨌든 딸들은 그렇고, 아들 결혼을 위해 빨리 맞선부터 보도록 해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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