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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종갓집 08화

우리 집 '황소'

사람이 타는 최고의 걸작품.

by 위공

"당신, 차 소리 한 번 들어봐요. 차가 문제가 있는 것 같아."

순덕은 수재에게 차를 점검하라고 한다.

"동네 카센터에 맡겨!"

아주 간단하게 답했다.

"여자라고 바가지 씌운다 말이야."

카센터를 못 믿겠다는 말투다.

"그래도 동네인데 제 맘대로 하겠어?"

버터 본다.

"아이, 내가 바쁘니까 그렇지, 해줘요?"

막무가내다.

"나도 출근하는데..."

투덜거리며 차 키를 받았다.



요즘 수재는 경비에 취직된 후로 거의 운전대를 잡을 일이 없었다.

평소에도 아내가 차를 이용하기에 도시철도를 이용했었다.

그런데 실컷 타고선, 고장 나면 자신에게 맡기는 것이다.

그래도 남자라고 믿는 모양인데, 솔직히 말해서 자신보다 아내가 강하다.

밖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강약이 서로 바뀌었는 것 같다고 늘 생각해 왔다.

새 차를 구입한 지 어느새 20여 년이 지났으니, 여기저기서 고장이 났고 수시로 정비소에 갔다.

지휘권 이양이 10년 전에 이루어졌지만, 아직까지는 재산목록 제1호이기에 애착이 갔다.

어쨌든 별 수 없이, 우선적으로 차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시동을 걸고 소리가 나는 곳을 찾기 시작했다.

엔진룸에서 이상 소음이 나긴 나는데, 딱히 종잡을 수가 없다.

눈에 띄는 현상은 잡겠는데, 엔진 내부 소음 같아서 잡기가 어려웠다.

할 수 없이 카센터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수재는 카센터에 차를 맡기고 집으로 오면서 차를 처음 살 때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여보! 차사라고 3년을 따라다니는 친구가 있는데, 한 번 볼까?"

"돈이 어딨어! 차값이 일이백도 아니고 천만 원 이상이야."

딱 잘라 말한다.

"아니, 한 번 구경이나 하자는 거지..."

수재는 말끝을 흐렸다.

"차가 필요할 때도 되긴 되었는데..."

순덕도 마음이 동요되었다.

"일단 구경하자고, 친구 말도 한 번 들어보자고."

설득한다.

"그럼, 구경만 하고 옵시다."

드디어 부부가 합쳤다.

친구 영업소는 서면 지점인데 출시된 신차종이 제법 많았다.

친구는 신나서 일사천리로 설명하고 판매에 열을 올렸다.

H사 S차가 잘 나가며 대폭 할인 행사까지 한다고 했다.

순덕은 구경 잘했다고 하며 집으로 가자고 했다.

친구가 순덕을 잡으며 얼마나 싸게 하면, 사겠냐고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

200만 원 깎아 준다고 한다.

순덕은 일단 집에 가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친구는 집까지 태워 주겠다며 달라붙었다.



이름은 '황소'라고 불렀다.

유선형으로 빼어난 몸매에 믿음직한 골격, 이쁜 엉덩이, 넓고 안락한 공간 등 딱 맞는 이름이었다.

'황소'라고 이름을 지었는 딴 이유가 있었다.

차를 처음 사서 첫 번째 공식행사가 부모님 태우고 드라이브를 즐겼고, 시골과 친지들을 두루 찾아뵈었다.

부모님께서 얼마나 좋아하셨는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장모님께서 나들이를 좋아하셨기에, 장모님 태워 산으로, 바닷가로 다니면서 꽃구경시켜드리고 바닷가에서 회도 드시게 하며, 계절이 바뀔 때마다 연중행사였다.

다만, 제일 안타까운 것은 장인어른을 못 태워 주었다는 것이 맘에 걸린다.

우리 집 '황소"를 타보기 전에, 돌아가셨기에 애석하기 그지없다.

또, 아들 군입대로 훈련소까지 수백 킬로를 거침없이 달려, 나라를 지키게 했었다.

그리고 딸들, 밤 귀갓길 안전하게 데리고 온 나날들도 수없이 많다.

'황소'는 이렇게 우리 가족과 친지 등 집안의 중대사에 큰 일을 다 해내는 믿음직한 일꾼이었다.

'황소'라는 이름이 지어졌는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시골에 갔을 때였다.


아버지가 도회지에 노동일 하러 내려오시기 전에, 할머니 모시고 시골에서 소 키우며 농사를 지었다.

아내와 결혼 후 수시로 올라가서 농사일을 도왔는데, 처음에는 멋모르고 시골에 올라갔었다.

아들과 딸 낳고, 애들 데리고 시골에 가는 것이 무척 힘들었다.

시외 직행버스는 마을 앞에 서질 않기에, 하루에 두 번 정도로 운행하는 완행버스를 터미널에서 기다렸다.

아마도 아내는 이런 연유로 차 사기로 결심한 것 같았다.

그리고 시골에서 아버지와 함께 농사일을 거침없이 하는 소가 대단한 일꾼이라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

소는 아버지와 함께, 해질 때까지 논과 밭을 다 갈고, 어둠이 내릴 때면 집으로 들어왔다.

아버지가 새벽 4시에 일어나 여물 썰고, 소죽 끓여 소에게 먹이는 것도 감동적이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소를 두고는 외출을 엄두도 내지 못했다.

소를 굶기면 절대 안 된다고 하는 아버지는 그만큼 소를 애지중지 하셨다.

소는 아버지에게 재산목록 제1호였고, 아버지의 유일한 친구가 되었다.

아버지를 버티게 해 주었고 아버지와 함께 한 세월이 20여 년이 되었다.

그런데 이 '황소"도 나와 함께 한 세월이 20여 년이 되어, 기력이 빠져 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황소'를 살려야겠다고 다짐하고 카센터에 갔는데, 다시 생생히 회복되어, 내 곁을 지켜주고 있다.

수재는 카센터에서 '황소'를 찾아오면서,

"황소야! 우리 황소야,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라고 물었다.

왜냐면, 내가 얼마나 '황소'에게 각별히 신경을 써는지 주지시키고 싶었다.

운전이 끝난 후, 샤워시키고 깨끗이 청소해, 반짝반짝 윤이 나게 해 주었다.

그리고 배고프지 않게 항상 연료를 가득 채워서 주차장에 입고했었다.

이에 비하면, 아내는 애정이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다.

주차장에서 '황소'에게 상처를 내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닦아 주지 않은 채 그대로 주차장으로 입고시켰다.

상처가 나고 고장이 나면, 무조건 원상복구는 내 몫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큰소리치는 사람은 아내다.

지휘권 이양과 함께 주도권까지 뺏겼을 때는 나는, 다시는 '황소'와 밀애를 나누지 못할 줄 알았다.

그런데 세월 무심함이 '황소'를 쇠약케 만들고 결국 나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 것이다.

아직은 지휘권 이양이 다시 나에게 완전히 오지는 않았지만, '황소' 주도권을 다시 찾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감개무량했다.

주도권 싸움하니, 또 생각이 난다.

원래 '황소'는 나뿐만 아니라, 아내에게서 더 의미가 컸다.

부모님들께서 맏 며느리 고생 많아, 늘 염려하는 마음이 '황소'를 애지중지하는 마음과 일치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차를 사자말자, '황소' 이름을 아내가 지었고 '황소'를 부리는 것도 아내의 허가를 받아야만 했다.

더욱이 지휘권 이양할 때까지 '황소' 주도권 싸움은 늘 계속되었다.



아내가 '황소'를 몰던, 내가 몰던 꼭 기싸움이 일어났다.

"코너링할 때는 좀 속도를 줄여야지."

베테랑 선배로써 한마디 충고를 했다.

"......."

베스트 드라이브 조언을 전혀 무시한다.

"돌발상황, 방지턱을 넘을 때는 브레이크를 지그시 밟아야..."

그래도 주의를 환기시켰다.

"......."

역시 말없이 무시해 버린다.

수재가 몰 때는 상황이 다르다.

"아니~ 넓은 길 나 두고, 좁은 도로에 들어서냐고?"

소프라노 볼륨을 높이며 불만이 가득하다.

"지름길이라, 내가 잘 알고 있거든..."

자신만만하게 답했다.

"큰 길이 안전하지. 사람이 통이 커야지!"

갑자기 사람 주제를 가지고 태클을 건다.

"......"

진짜 할 말을 잃었다.

이렇게 부부는 주도권 싸움에 밀리지 않으려고 늘 핸들만 잡으면 싸운다.

아이들도 어쩌다 같이 합승을 하게 되면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엄마, 아빠 또 싸운다."

그러면서 까르르 웃는다.

그런데 지금은 '황소'가 오래되어 주도권 싸움도 희미해진다.

사람도 늙으면 힘이 없어지듯이...

여하튼 '황소'를 회복시켜 주도권과 지휘권 이양, 2가지를 다시 되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뿌듯했다.




수재는 '황소'를 찾아 집으로 오면서 새삼스럽게 느낀 점이 있었다.

자동차 기술이 엄청 발달되었다고 생각이 들었다.

카센터 정비업소에서 의료계가 사용하는 초음파, X-ray, 같은 고급 기술을 사용하며 수리를 하는 것이다.

처음 차를 구입했을 때, 자동차는 인간이 만든 최고의 걸작품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정비업소 기술을 보며 앞으로 자동차 관련 과학기술은 무한하게 발전될 것 같다.

옛날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소 시대부터, 자동차 시대까지 변화는 너무나도 급격히 이루어진다.

소는 사람과 함께, 사람의 말귀를 알아듣고, 숨 쉬며 울고 사람을 따른다.

그래서 아버지의 유일한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자동차 역시 사람이 만들었고 사람의 명령대로 움직이고 한다.

소는 한 사람의 주인을 섬기고 죽도록 일을 하지만, 자동차는 수많은 사람이 만든 수많은 기계가 하나로 조립된 완성체로 사람의 명령을 기다린다.

어쨌든 시대에 따라 변하는 운송수단이기도 하지만, 너무 닮은꼴이다.

옛날에는 소였지만, 지금은 자동차가 모든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소에 대한 기억은 희미해지고 자동차에 대한 애착은 강해진다.

그래서 소의 추억과 기계문명의 총아, 자동차를 합쳐 우리 집 '황소'가 탄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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