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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종갓집 07화

5일 장

장보는 남자들

by 위공

"용해야! 오랜만에 장에 오니 좋지?" 수재가 들뜨서 묻는다.

"그래, 좋네." 가볍게 응수한다.

"순덕 씨와는 화해했어?" 용해가 넌지시 묻는다.

"화해할 게 뭐 있냐? 그냥 조용히 있으면 되지." 수재는 별일 아니란 듯 말한다.

"청국장 사가자!" 수재는 난장에 쪼그려 앉아 있는 할머니 앞에 있는 청국장을 보며 말했다.

"아니, 청국장은 왜?" 시장에 오자 말자, 벌써 청국장부터 산다고 하니 궁금했다.

"마누라가 좋아할 것 같아서..." 청국장을 받고 돈을 건넨다.

"순덕 씨 점수 따겠네?" 용해가 웃는다.

"아버지 생전에는 시골에서 메주를 받아 직접 장을 담고, 된장, 고추장, 청국장 등 일절 다했어."

"대단하네~ 일이 많을 텐데..." 감탄한 듯, 용해는 답한다.

"마누라도 부모님께 전수받아, 전통방식, 옛날 것을 중시해!" 아내 자랑하는 말투다.

"나도 그래서 거들어 주지."

"약초와 산나물도 사가자!" 추가로 살 것이 있는가를 둘러본다.

"난, 별로 살 게 없네..." 용해는 두리번거리며 먹거리 집을 쳐다본다.

"수재야! 국수 한 그릇 먹고 가자!" 국숫집을 가리킨다.

"그래, 먹고 돌자! 금강산도 식후경이잖아." 수재는 즉시 동의한다.



수재는 용해를 오랜만에 만나, 5일장에 나왔다.

다양하고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좋았고, 아버지와 함께 자주 찾았던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아버지는 선짓국과 돼지껍질을 사 주시며, "수재야! 무엇을 갖고 싶냐?"라고 내게 물었다.

"저기 강아지 한 마리 사주세요." 박스 안에 3마리 중 한 마리를 선택했다.

"그래, 귀엽게 생겼네." 아버지는 흔쾌히 사줘서 집으로 데리고 왔다.

이름은 킹이라고 지었다. 용맹스럽고 동네 개들과 싸워 이겨, 동네 개들의 왕이 되라고 했다.

그런데 슬프게도 두 달 만에 닭고기 먹다, 뼈에 걸려 앓다가 죽고 말았다.

킹을 안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킹뿐만 아니라, 메리, 토끼, 꼬꼬 등 내가 기르고 좋아했던 동물들이 즐비했다.

장에 가면, 꼭 동물들을 아버지가 사주셨다.

그 동물들과 놀았던 추억이 눈앞에 선했다.



어느새 옛날이야기를 하다 보니 국수는 다 먹고, 선짓국과 소주 한 잔 하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용해야! 진짜, 피는 못 속인다고 동물 좋아하는 것도 우리 집 둘째가 나와 똑같아."

용해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다.

"저번에 장에 갈 때도, 아빠! 강아지 한 마리 사 오세요! 이러잖아."

"그래, 사줬어?"

"아니, 제 엄마가 아파트에서는 절대 키울 수 없다고 했어."

"딸이 많이 섭섭했겠네..." 자기 일인 양, 안타까운 표정이다.

"물러설 둘째가 아니지, 내게 귀에다 살짝 말하면서 병아리라도 사 오래."

"하하하! 병아리는 작아서 키울만했겠네, 사줬어?" 사뭇 궁금하다.

"3마리를 사서 집에 가져와서, 제 엄마 몰래 박스 안에서 키웠지." 자랑스럽게 말한다.

"베란다에서 키웠는데, 2마리는 죽고 지금은 한 마리가 제법 컸지."

"그래서?" 재미있다는 듯, 다음 말을 재촉한다.

"맨날 싸우고 전쟁 중이지, 너무 커서 베란다가 좁아 거실로 들어오게 했더니 엉망진창이야."

"순덕 씨가 정신없겠네, 감당 못하겠어." 이해가 가는 듯, 웃는다.



수재는 혼자 집안 이야기를 신나게 하다 보니, 머쓱했다.

"용해도 이야기해봐!"

"뭐라, 이야기할 것도 없는데..."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

"아버님은 5일장에 가셨어?" 자꾸 재촉한다.

"갔지! 소 팔러 가서 노름판에서 소판돈을 거의 다 잃어버렸지." 표정이 어둡다.

"아니, 어떻게?" 처음으로 듣는 이야기라 놀랐다.

"그 바람에 엄마가 화병 나서 몇 년 앓다가 돌아가셨지." 쓸쓸히 말한다.

"아! 그랬었구나, 맞아! 어머님께서 너 어릴 때 돌아가셨지..."

수재는 용해 집안 내력을 어렴풋이 기억했다.

"그 후로 아버지는 노름을 끊으셨지만, 새엄마를 데리고 왔지." 회상하며 말을 잇는다.

"누나와 형들은 엄청 싫어했고 가족 모두 반대했지만, 결국 아버지는 막무가내였어."

"그런데 부전자전인지, 최근에 나도 도박에 큰돈을 잃었어."

"아내가 죽고 난 후, 끊었지만..." 풀이 죽었다.

수재는 더 이상 용해의 아픈 기억을 묻지 않았다.

"그래, 우리는 이제 그냥, 5일장만 즐기자!" 계산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재는 용해와 헤어지고 집으로 오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옛날에는 5일장이 서면 거의 남자들이 장에 갔었다.

소팔고, 송아지도 사고, 아버지처럼 장 구경하며 약주 한 잔 하는 게 낙이었다.

지금은 시장이 현대화되고, 마트 등이 동네 인근까지 진출하여 젊은 사람들은 굳이 5일장을 찾지 않는다.

평소 구하기 어려운 물건이나 산골에서 나온 약초, 산나물, 등 잡동사니를 사기 위해서 가끔 오는 편이다.

요즘 시장은 장 보러 온 사람들에게 놀 거리, 즐길 거리 등을 제공하며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렇게 현대화된 시장의 판매 전략에 5일장은 밀려난 느낌이지만, 그래도 남자들은 왠지, 5일장에 가면 향수 같은 그러한 그리움이 있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인지, 어린 시절 순수한 동심인지 몰라도 가고픈 생각이 일어난다. 그래서 5일장만큼은 살 것이 없어도 어슬렁거리며 돌아본다.



"어이구야! 의기양양하게 들어오셨네~ 어디 다녀오셨어?"

"당신 좋아하는 것 많이 샀어!" 어깨를 으쓱한다.

"봅시다! 뭐가 이리 구질구질한 게 많아, 나물은 뭐하러 이렇게 많이 사 왔어?" 수재를 째려본다.

"아니, 당신 다 좋아하는 거잖아? 청국장도 있고..." 사 와도 난리네~ 하며 중얼거린다.

"무슨 돈을 그리 펑펑 써! 돈이 하늘에서 떨어져, 땅에서 솟아나?"

"조금만 썼어, 2~3만?"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아이, 술냄새~ 약주도 한잔 하셨구려?"

"그래, 용해와 딱 한 잔 했어." 들킨 듯, 말을 최대한 줄였다.

"첫사랑 주막집에 갔어?" 또 그 소리다.

"아니야, 5일장 난장에 있는 주막이야." 단호하게 부인한다.

"술값은 누가 계산했어?" 집요하다.

"용해가 냈지!" 서둘러 둘러댔다.

"첫사랑이던, 아무거나 집이던, 이제는 사 오라는 것만 사와! 알았지?" 그래도 쉽게 넘어간다.

"알았어..." 일단, 공격 중지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순덕은 남편이 5일장 간 것에 막상 잔소리를 했지만, 은근히 지속적으로 다녀오기를 바라고 있었다.

아버님 생전, 평소 맏며느리를 많이 생각하셨다.

그래서 5일장이 서는 날이면, 며느리 몫은 꼭 챙겨 오셨다.

그런 아버님의 사랑을 남편이 대신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5일장이 열리는 날에, 사고 싶은 것이 있어도 직접 가기를 주저하고 모처럼 남편 콧바람도 쐬고, 아버님 정도 느낄 겸 해서 암묵적 승인을 하는 것이다.

평소에 말씀이 없으신 아버님이 장에서 약주 잡숫고 오면, 며느리에게 자상하고 넉넉한 이야기를 해주셨다.

이렇게 5일장은 아버지와 아들, 시아버지와 며느리 사이 정겨운 가교 역할을 아직까지 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5일장은 과거와 현재 세계를 연결 짓는 유일한 타임머신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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