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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종갓집 05화

아버지 전상서

부의금도 서열이 있나요?

by 위공

"아직 너 아버지는 저승 문턱에도 가지 않았다. 도대체 너희들은 제대로 된 자식들이냐?"

둘째 며느리가 내뱉은 볼멘소리를 듣고 어머님이 한마디 하셨다.

둘째 며느리가 평소 불평불만이 많았다. 부모님들이 장남은 맏이라고 평소 잘 챙겨주고 막내는 막내대로 사랑이 극진히 가는 모습에 마음 쓰였다. 그렇다 보니, 소외감이 들었고 결국 마음속에 있던 말을 끄집어낸 것이다. 그것도 아버지 돌아가신 후, 부의금에 대한 내역에 대해서 왈가불가한 말이 불씨가 되었다.

수재는 아버지 돌아가시자, 빈소에 자리가 없을 정도로 문상객이 몰려들어 인사하며 자리로 모신다고 정신이 없었다. 직장 생활을 40년 가까이하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수재에게 찾아왔다.

둘째 수기는 사업을 한다고 했지만 신통치 않아, 늘 놀고먹는 일이 많았다. 그렇다 보니, 수재 손님은 별로 없었다. 그렇지만, 둘째 며느리는 아버님 초상 치례보다는 부의금에 더 관심을 보였다.

일이백도 아니고 수천만 원 들어왔으니 어디에 쓰였는지도 궁금했다. 그래서 아버님 초상 치른 후, 바로 부의금 내역을 밝히라고 했던 것이다.

"당신도 가만히 있지 말고 뭐라고 얘기해봐요?" 수기를 보며 채근한다.

수재와 순덕은 어머니 표정만 살피고 있었다.

"무엇을 어떻게 하란 말이냐?" 어머니도 단호한 말투다.

"아버님 장례비 등 계산 내역이 궁금하다는 말이죠?" 막내가 나서며 둘째 형수를 쳐다본다.

"수열이 너는 가만히 있어!" 어머니 언성이 높아졌다.

막내 동서가 수열에게 눈짓한다. 수열이는 못 이기는 체하고 어머니 분부만 기다렸다.

잠시 침묵이 흘렀고, 어머니께서 비로소 말을 했다.

"돈이 어디 가지 않는다. 옛날에는 3년 상이 었는데, 지금은 고작 삼일장이야! 그리고 아직 한 달도 안 됐어!"

어쨌든 없는 살림에 돈이 문제였다.


아버지는 어질고 유순하셨지만, 늘 삼강오륜이나 따지고 집안 살림과 경제적 문제는 대부분 어머니가 맡아하셨다. 물론, 아버지도 부지런하시며 농사일과 노동일을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하셨다. 아버님 상 당하고 늘 우울한 어머님을 보면서, 순덕은 안타까운 마음이 가득했다.

"당신 형제들 참 낯짝도 두껍다." 안방에 들어오며 순덕은 기다렸듯이 말한다.

"이번에 들어온 부의금 대부분이 당신 직장 동료들에게서 나온 돈이야!"

"..." 수재는 듣기만 한다.

"그리고 이 집도 내가 힘들게 시집 생활하면서 이만큼이라도 유지해왔어, 도대제 자기네들이 한 일이 뭐야?"

"지금은 어머니 건강을 염려할 때야." 한마디 거든다.

"나도 어머님을 생각해서 참았어, 둘째 동서에게 뭐라 할 건데..."

"당신이 잘했어, 어머니는 지금 힘들게 버티고 계신 거야."

"알아, 아버님을 많이 의지했는데, 기댈 곳이 없어 무기력해진 것 같아..."

"부모님 생각하는 사람은 당신밖에 없어." 모처럼 부부가 의견 일치를 본다.


아버지 상을 치르고 6개월 정도 지난겨울이었다.

형제들이 다시 모였다.

어머니께서 기력이 떨어지고 결국 중병으로 눕고 말았다.

"내가 모이라고 한 것은 어머님 병중이지만, 앞으로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서야." 수재가 침울하게 말했다.

"전문 요양병원에 가셔야 할 것 같아." 순덕도 거든다.

"거기는 비용이 많이 들 텐데..." 둘째 정애가 또 돈문제에 민감하다.

"비용이 많은 게 문제가 아니라, 어떡하면 병간호를 잘할 수 있느냐지." 순덕이가 둘째를 빤히 보며 말한다.

"그래도 비용이 많이 들면 문제지요." 계속 돈문제다.

"동서! 지금 어머님 병이 위중하다 했잖아! 비용은 나중에 말해!" 한마디 일침을 놓는다.

"..." 모두들 조용하다.

"특별히 좋은 의견이 없으면 내가 알아보고 병원을 택해서 연락할게." 순덕은 마침표를 찍는다.

"..." 역시 모두들 말이 없다.


큰집을 나오면서, 정애가 수기에게 참았던 말을 쏟아붓는다.

"아니, 돈이 문제지~ 돈만 있으면 무엇이던 다되는 세상이야."

"그리고 형님이 부의금 다 차지했으니, 비용 문제는 형님 부부가 알아서 하라고 해! 알았지!" 수기에게 정색을 하며 말한다.

"그래도 형제들과 의논해야지." 수기는 마지못해 말한다.

"의논은 무슨 의논이야! 의논은 다했어! 형님이 알아서 한다잖아? 그리고 우리는 돈 없어!"


셋째 영란은 수열에게 넌지시 말한다.

"자기야!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

"나는 큰 형수님 말처럼 어머님 간병을 어떻게 잘하느냐지." 별 의견 없다는 듯 말한다.

"아니, 둘째 형님 돈문제 말이야." 역시 셋째도 돈에 민감하다.

"돈문제는 똑같이 비용을 분담하면 되잖아." 흔쾌히 말한다.

"무슨 소리하는 거야? 큰집에서 아버님 부의금 다 차지했으니, 알아서 해야지."

"큰 형님이 부담이 많이 될 텐데..." 갸우뚱하며 말한다.

"당신은 되도록이면 아무 말하지 마! 알았지?"


수재는 요즘 정말 부모님께, 특히 아버지께 할 말이 많다.

마음속 편지를 써내려 갔다.


존경하는 아버지!

오래오래 사시길 바랬는데, 저희 불효자식들 때문에 고생만 하시다가... 정말 죄송합니다. 호강 한 번 시켜드리지 못하고 머리 숙여 사죄합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자식들 앞에 힘든 내색을 하지 않으셨던 아버지.

어머니에게 항상 에헴! 하며 큰기침해도 늘 자상하셨던 아버지.

무조건 남자는 일을 해야 한다며 근면함을 몸소 보여 주셨던 아버지.

제가 처음 취직이 되었을 때, 아버지께서 힘내라고 닭을 푹 고아 백숙을 직접 만들어 주셨던 아버지.

어머니께서 처음 쌀밥 해서 차려 주셨고, 그렇게 먹고 싶었던 쌀밥을 차마 입안에 넣을 수 없었던 아버지.

아버지는 숟가락을 들다 말고 "입맛이 없어 밥을 못 먹겠다."며 끝내 먹지 않고 일어나, 일하러 가셨어요.

우리 삼 형제가 그 쌀밥을 먹기 위해 달려들기를 아버지는 미리 알고 계셨었지요.

몸이 아프거나 힘들어도 한 번이라도 병원이나, 병석에 누워 있을 겨를이 없으셨던 아버지.

오늘날까지 어머니에게 한 번이라도 화를 내거나, 자식들에게도 매를 대지 않으셨던 아버지.

시골 농사일, 도회지 노동 등 온갖 일도 척척하셨던 아버지.

약주 좋아하시며 생선회 즐겨 드셨고 가끔 사다 주시면, 동네 친구분들 다 불러 놓고 아들 자랑하셨던 아버지.

아버지 자신보다, 어머니와 자식들을 더 생각하셨던 아버지.

그렇게 자식들을 사랑했던 아버지.

지금 생각하니, 눈물이 나고 가슴이 먹먹합니다.

아버지! 너무 일찍 우리와 이별을 하셨어요

자식들 키우고 먹여 살린다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이제야 헤아렸습니다.

아버지께서는 평소 말씀이 없으셨고, 가족들과 대화도 제대로 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갑작스러운 이별은 너무 애통합니다.

달리 유언은 없었지만, 아버지께서 살아오셨던 것처럼 착하고 성실하게 어머니와 형제들 두루 잘 보살피며 살아갈 것을 아버지께 맹세합니다.

요즘 세상에 착하고 성실하게만 사는 것이 힘든 세상이지만, 아버님 뜻이 그러기에 유언처럼 받들겠습니다.

아버지! 고생만 하시고 가셨지만, 어머니와 자식들을 무한하게 사랑하신 것을 가슴 깊이 새기며 감사합니다.

아버지! 이제는 아버지께서 힘들어하시며 고생한 이 세상, 모든 것을 털어버리고 잊어 주세요.

다음 세상에는 좋은 곳, 편안한 곳에 다시 태어 나시길 간곡히 빌겠습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2010. 6.30. 큰아들 수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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