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종갓집 03화

계급사회

강자와 약자

by 위공

"따르릉~ 따르릉!"

갑자기 날카로운 전화벨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놀라서 잠을 깨고 수화기를 받으며,

"여보세요~ 여보세요?" 누군지 궁금했다. 이 깊은 밤에,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전회기를 타고 들려왔다.

"아~ 내 차가 주차장에 있어요. 차를 지금 빼려고요."

짜증이 머리끝까지 올라왔다.

"아니, 지금 시간이 몇 시인 줄 알아요?" 짜증스럽게 말했다.

"밤 11시요~ 11시! 곧, 자정이요!"

주차장 개방 규정시간을 말했다.

"안내문에 09~18시라고 쓰여 있잖아요."

"못 봤습니다." 그럴 수도 있다는 듯, 퉁명스러운 말투였다.

"아~ 진짜, 짜증 나네."

"짜증 나면 그냥 두세요!" 미안하다는 말보다는 다분히 명령조다.

"잠 다 깨워 놓고, 기다리세요!" 어이가 없지만, 나간다고 말했다.

옷을 주섬주섬 입고, 모자 쓰고 렌턴과 열쇠를 챙겨 나갔다.

주차장 스텐 여닫이 문 밖에 키가 180 정도, 40대 초반 나이로 보이는 남자가 서 있었다.

내가 문을 열기가 무섭게 성큼성큼 들어와, 차를 몰고 가버렸다.

"이런~ 싸가지, 에~이 재수 없네." 투덜거리고 다시 문을 잠그고 왔다.

막상 잠자리에 누워, 잠을 청했지만 잠은 오지 않고, 눈만 말똥말똥했다.

다시 잠자리에 벌떡 일어나, 평소 읽던 책을 보며 잠이 오기를 기다렸다.


수재는 잠을 설치고 집에 오자말자, 자리에 누워 모자란 잠을 자려고 했다.

"일찍 왔네요? 뭣~ 좀 잡숫고 자세요." 순덕은 아침 준비하며 물었다.

"아니, 암만 생각해도 성질나네~ 나~ 원~ 참!"

"무슨 일이 있었어요?"

"나이도 새파란 게, 싹수가 없어!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수재는 간밤에 있었던 일을 쭉 얘기를 했다.

"조심하세요! 뉴스도 못 봤어요? 경비 폭행도 하고, 무서워~" 몸을 움츠리며, 주의를 당부했다.

"경비라고 얕잡아 보는 거야~ 경찰관, 검사, 사장 등 이런 사람에게는 과연 그러겠어?"

"무시하는 사람이 문제지, 경비원이라고 그러면 안 되잖아요."

"어쨌든 경비원, 미화원, 원자 붙는 사람은 아랫사람으로 취급하는 세상이야!"

이어서 친구가 경비하고 있는 아파트에서 있었던 갑질 이야기도 해주었다.

"이 아파트 입주민은 경비에게 호주머니 손 넣지 말라고 하며, 경비실 안에서도 고개 숙이지 말라고 해~"

"아니, 자기네들이 무슨 경비대장이야, 그리고 경비가 자기네 몸종이야?" 순덕은 격양된 어조로 말했다.


다시 학교 이야기가 이어졌다.

"청소 도우미 아주머니도 뭐라고 하고, 내가 만만한가 봐."

"청소 아줌마는, 또 왜요?"

"아니, 고양이 밥 주지 마세요. 이러잖아~"

일반 사료만 줄 때는 한 톨도 남김없이, 깨끗이 먹어 치웠던 녀석들이, 그날은 멸치를 주었다.

아내가 국수 맛국물 끓여내고 남은 건더기를 내게 냥이들 먹이라고 준 것이다.

"그런데 그 녀석들이 야시같이 대가리, 똥은 남기고 살만 쏙 빼먹다 보니, 밥그릇 주위가 지저분했던 거야~"

내 말이 끝나자 말자,

"호호호~ 정말 야시네요~ 야시!" 웃으면서, "그래서요?" 묻는다.

"알았어요! 아줌마! 이렇게 말했더니, 이번에는 아줌마, 아줌마 하지 마세요! 이러잖아?"

그다음이 계속 궁금하다고, 순덕은 재촉했다.

"여사라고 하세요! 여사! 이렇게 말을 하더라고~"

"당신이 잘못했네요. 아줌마가 뭐예요?" 오히려 청소 도우미가 옳다는 말이다.

순덕은 남편 이야기를 듣고 정식으로 호칭을 불러야 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되도록이면 사료를 먹이도록 권장했다.

"고 녀석들 사료도 비싼 것, 싼 것 알더라고~"

"아니? 어떻게?" 궁금해서 묻는다.

"다이소 가니, 마트보다 떠 싼 게 있어, 사 와서 먹였어."

상학이는 가리지 않고 잘 먹는데, 장미는 비싼 것만 먹는 이야기를 해줬다.

상학이는 길고양이고, 장미는 가출한 집고양이였기에, 집주인에게 길들여진 먹이 탓이라고 설명을 덧 붙였다.

어쨌든 아내가 수시로 챙겨주는 멸치도 주긴 주되, 먹고 난 후, 내가 깨끗이 주위를 청소해야 만 했다.

어떻게 보면 학교 경비는 아파트 경비보다는 수월하고 갑질은 거의 없다.

그리고 길고양이 돌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하루라도 그 녀석들이 안 보이면,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수재는 책임이 중하지만, 경비하는 것에 대해 보람을 느껴왔는데, 최근에 들어 일부 사람 때문에 우울했다.

요즘 사회 분위기가 경비를 우습게 보는 경향이 예사롭지 않았다.

'같은 경비인, 한 친구는 정장 차림에 007 가방 들고 출근한다고 해서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지금 일련의 일을 겪다 보니, 그 친구를 이해한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지금 이 사회는 빈껍데기 같은 형식과 고압적 권력에 익숙한 사회야!'라고 확신이 갔다.

변해가는 사회 분위기를 직시하며, 따뜻한 가족과 친지, 이웃사촌을 중요시 여겼던 우리네 문화와 풍습이 아쉬웠다.

옛날에는 소나 말을 타면서 체온, 숨소리를 교감하며, 여유 있는 생체리듬과 동물에 대한 사랑까지 느꼈었다.

요즘 사람은 자동차를 타면서, 조급해지고 성질 또한 날카롭게 변질되어 차갑고 딱딱한 기계와 같다.

수재는 지난날을 회상하면서, 더 이상 이 사회가 약자를 배려하지 않고 강자만 키우는 세상이라 생각을 하며 씁쓸했다.


keyword
이전 02화맏 며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