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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종갓집 10화

아침에 퇴근하는 여자

술과 장미의 나날들.

by 위공

"오늘 우리 학교에 사람이 다쳐, 119 응급차에 실려 갔어."

"아니, 어떻게 다쳤는데?"

순덕이 퇴근하는 수재를 맞이하며 묻는다.

"응~ 청소 도우미가 갑자기 넘어졌어, 그래서 머리를 다쳐 피가 나는 거야."

"당신도 조심해! 차조심, 사람 조심, 계단 조심..."

"그런데, 도우미가 술냄새가 나는 거야."

"아니, 아침에 술냄새가 난다 말이야?"

"그래, 쓰러져서 신음하는데, 내가 달려가 괜찮냐고 물었지..."

"아침에는 술 먹지는 않을 거고, 밤새 술을 먹었는 모양이지."

순덕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다.


수재는 아침에 술이 덜 깨, 출근하기 싫은 시절이 생각났다.

그 당시에는 회식문화가 부어라, 마셔라, 위하여~ 건배 제창을 하며 거의 끝장을 보자는 식이었다.

여직원에게 술 따르게 하고, 거부하는 여성과 실랑이를 벌이며, 협박성 발언도 서슴없이 했었다.

그뿐만 아니었다. 2차 노래방에서는 여직원의 몸을 더듬다 여직원이 항의하며 퇴장했었다.

여하튼 저급하고 추태 부리는 직장 상사들 때문에 회식자리가 늘 말썽 나는 악의 근원지였다.


"수재! 너 노래 너무 많이 한다."

부장이 다가오며 마이크를 뺏으려 한다.

지위가 높으면, 노래방에서도 마구잡이다.

"이제 노래 시작하는데..."

결국 마이크 주고 제자리에 돌아와 앉았다.

"어이~ 김양! 이리 와 봐!"

결혼하고 아이까지 있는 여직원에게 자기 몸종 부리듯 한다.

"죄송해요. 지금 몸이 안 좋아서..."

"그럼 뭣하러 왔어! 이리 와 봐! 어디 아픈가 내가 봐주지."

싫다는 여성을 억지로 끌어안고 만지고 그랬다.


또 하나, 술 폐해 사건이 생각났다.

직장동료가 아침 출근하기 위해 주차장에서 차를 빼다가 다른 차와 접촉하는 일이 있었다.

상대방 차주가 "이 사람, 음주운전이네!" 하며 경찰에 신고했었다.

결과는 참담했다.

공직자 음주 운전은 그야말로 가혹했다. 중징계를 받았다.

공로연수가 취소되고, 그 기간에 하루도 빠짐없이 출근을 해야 했다.

또한, 감봉조치가 추가되어 수천만이 되는 급여도 날라 가버렸다.


어느 부서장은 늘 회식 날짜 잡고 달력에 동그라미 치며 즐거워한다.

거의 일주일에 한 번 꼴이다.

술 먹고 다음날 직장 출근하면 다들 숙취에 괴로워하며, 일 능률도 저조했다.

집에서는 가족들은 밤늦게까지 기다리다 잠이 들어, 대화조차도 못하는 나날이 많았다.

결국 직장은 집에 피해를 낳고, 가정은 평화와 행복이 깨지곤 했다.

직장은 직장대로, 가정은 가정대로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그 당시 직장 가는 것은 창살 없는 감옥에 가듯이, 출근하기가 싫었다.

지금은 술의 폐해는 없어졌지만, 다시 온다고 해도 결코 겪고 싶지 않은 지옥이었다.


"도우미 집안에 상당한 문제가 있다고 그랬어."

"아니, 누가 그렇게 잘 알아?"

수재는 교장선생님이 문병 가서 도우미 이웃 주민들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아내에게 자초지종 들려주었다.

"맨날 남편이 술에 취해 들어와 집안 물건들을 다 때려 부수고, 아이들까지 때린다나..."

"저~런, 폭행 남편 만나 고생이 많네, 정말 안됐네..."

"그런데 남편이라는 사람이 성범죄 전과자래?"

"아니, 뭐라고?"

"택시운전을 했는데, 술 취한 여자 승객을 성폭행하다가 체포되어 교도소에 수감된 전력이 있대."

"어머! 무서워, 늑대 같은 남편을 만났구나."

"매일같이 도우미에게 술을 강제로 먹이고 이상한 성행위를 요구하며 반항하자, 막 때리고 그랬다고 하네."

"완전, 미치광이고 변태성욕자네."

"폭행과 함께 비명소리, 고함소리로 동네가 시끄러워 경찰에 신고했더니, 그 작자가 웃겨... "

수재가 계속 말을 잇는다.

"오히려 경찰이 폭행한다고 고래고래 고함지르며, 변호사 부른다고 하면서 난리법석을 떨었대."

"일단 경찰서로 연행되고 도우미는 뜬눈으로 밤새다가, 아침에 학교에 와서 사고가 난 거야 "

"불쌍하네~ 산다는 것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그렇게 죽지 못해 살고 있나 봐."


수재는 계속 이야기를 이어갔다.

도우미는 남편에게 시달려 아이와 함께 친정으로 갔지만, 남편은 찾아와 친정어머니까지 죽여버린다고 행패를 부렸다고 한다.

이혼은커녕, 어디를 가던 지구 끝까지 찾아온다고 협박을 하며 겁을 주었다고도 했다.

아이들 교육은 시켜야 했기에, 고심 끝에 친정 형제들의 도움으로 아이들 방과 후 형제들 집에서 당분간 기거하기로 했었다.

어쨌든 친정집의 도움으로 아이들 교육문제는 일시적이지만 한숨을 돌렸다.

도우미 자신은 집으로 돌아와 남편과 함께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나마 자신이 그렇게 희생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이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들만 무사하다면 어떤 희생도 감수하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남편이 아이들을 더 이상 찾지 않고 자신에게 해괴한 짓만 요구하길래, 자포자기로 되어 버렸다.

아침이면 남편은 술에 취해 잠에 곯아떨어져 자고 자신은 술이 취했지만, 정신을 챙겨 학교로 나오는 일상이 계속되어 왔었다.


한 번은 남편이 학교까지 쫓아온 일이 있었다.

교장선생님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만류하였고,

"일을 해야 돈을 벌고 그래야 살 수 있지 않겠어요?"

간신히 설득해서 돌려보냈다고 한다.

그 후로부터는 학교에는 찾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도우미는 지옥 같은 집을 탈출하고 싶고, 남편으로 부터 벗어나고 싶었으나, 현실의 장벽은 높았다.

폭력과 술에 찌든 집으로 들어가기가 싫었지만, 학교에는 오지 않기에 조금 위안이 되었다.

도우미는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감옥소 같은 곳에 아침에 나올 수 있다는 점이다.

집에서 학교로 오는 것이 지옥 같은 그곳을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었다.

술로 밤을 지새우고, 아침에 퇴근하는 여자가 되어 버린 도우미.

고통의 감옥에서 퇴근하며 새로운 세상으로 갈 길은 구원의 학교였던 것이었다.

어쨌든 교장선생님 말씀처럼 학교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많으니, 희망을 가지고 새로운 삶의 길을 찾도록 하는 게 최고의 방편일 것으로 생각된다.


무조건 술로써, 모든 일을 해결하려고 하고 여자만 보면 성적 행동을 서슴지 않는 직장상사들이나, 도우미 남편의 공통점은 그들, 삶 자체가 술과 장미의 나날로 인생을 망치는 것이었다.

자기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피해를 입히고 일상적인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점이 심각했다.


수재는 여태까지 청소도우미에게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동안 무관심으로 일관했었다.

상학 중학교에서 같이 근무를 하지만 서로 다른 일을 하고, 근무시간도 다르기 때문에 대면할 일이 없었기에, 관심을 가질 수가 없었다.

지금, 이런 딱한 사정을 듣고 보니 조금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바로, 옆 동료가 비참한 생활을 하는데, 수수방관하기에는 비겁하고 옹졸한 사람일 것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내가 도울 일이 무엇인가 곰곰이 생각해보기로 했다.

도우미가 새로운 삶을 찾는데, 조금이나마 힘이 되어주고 도움을 주기로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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