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혼자, 관광은 님과 함께.
"수재야! 여행가지 않을래?"
갑자기 뜬금없이 묻는다.
"웬 여행? 좋은 곳이 있어?"
관심을 보인다.
용해가 부인상 치르고 1여 년 넘게 두문불출하였다.
30년 넘게 직장생활에 매달려, 오로지 일과 직장밖에 몰랐던 세월이 무심하였다.
두 자녀 결혼과 함께, 정년을 기다리지 못하고 명예퇴직을 하였다.
남은 여생을 그동안 직장일로, 하고 싶어도 못했던 여행을 아내와 함께 가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아내와 멋진 여생의 꿈은 산산조각이 난 것이다.
명퇴하고 석 달도 채 지나지 않았을 때, 부인이 갑자기 심장마비로 하늘나라로 가버렸다.
아내를 잃은 슬픔의 기억이 좀 지나자, 그런 아픔은 잊고 여행을 하며 세월을 낚고 싶었다.
"수재야! 넌 순덕 씨와 중매로 만났댔지?"
"그래, 그럼 넌 연애결혼했어?"
"꼭 연애라기보다, 지인 소개로 만나 사귀다 보니 결혼했지."
"그럼 중매반, 연애반이네."
"하하하! 그래, 반반이지."
용해가 오랜만에 호탕하게 웃는다.
어느새 차는 여수를 지나고 있었다.
멀리 아스라이 보이는 내만에 조그만 섬들이 따닥따닥 붙어 정겹게 느껴졌다.
잔잔한 수면 위로 통통배 한 대가 물보라를 일으키고, 물살을 가르며 양식장으로 가고 있었다.
고만고만하고 아담스러운 한 폭의 동양화 같았다.
수재는 용해와 함께 오랜만에 여행을 오니, 마음이 들뜨고 기분이 최상이었다.
용해가 제의해서 이렇게 여행을 왔지만, 어떻게 보면 진작 이런 세월을 즐겼어야 했다.
먹고사는 문제에 매여, 좋은 세월과 아름다운 강산을 보고 즐기지 못한 게 늘 한이였다.
그런데 용해가 늦게라도 이런 기회를 만들었으니 고마웠다.
물론 용해도 우울한 일상을 벗어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인 끝에 생각해낸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수재야! 저쪽 자리에는 남자 한 명에 여자 두 명이 일행인 모양인데, 복도 많재?"
살짝 귀에다 말하며, 눈을 찡긋해 보인다.
"......"
수재는 할 말이 갑자기 생각나질 않았다.
"우리 둘이라도 즐겁지, 꼭 여자가 있어야 되냐."
관광버스 가이드가 일어나서, 전달할 말이 있다고 한다.
"중간에 잠시 정차해서 식사를 한 후, 곧 자리를 재배치할 거예요."
그리고 커플이 있는 사람은 제외하고, 나머지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네 명이서 한 조로 해서 식당, 리조트, 등 단체 이용에 수월케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가이드의 안내가 끝나자, 용해가 수재에게 귓속말을 전해왔다.
"수재야! 우리 옆자리 노부부가 대화하는데, 자기래 크크크"
수재는 옆자리를 쳐다보며 말했다.
"뭐 어때? 자기라는 게..."
"수재야! 전에 한 번 순덕 씨가 사량 하냐고 물었댔지?"
"응~ 언젠가 뜬금없이 묻길래, 이 사람 왜 이러지? 이랬지 아마..."
"하하하! 멋없이 답이 그게 뭐냐?"
"그럼 어떻게? 늘, 나를 못마땅하게 생각해서 달달 볶는데..."
"아니야! 너를 사랑하니깐, 순덕 씨도 남편 사랑을 확인해보는 거야."
"몰라, 강력한 야당 총재 느낌은 받아도, 사랑하는 마누라로 느끼는 감정은 글쎄..."
"강력한 야당이 있어야 독재가 없지."
"그래, 맞긴 맞아! 독재자의 최후는 항상 비참하였지."
어느덧 차는 목포에 들어서고 있었다.
"용해야! 드디어 목포의 눈물, 그 바다에 왔다."
"바다가 참 아름답네~ 저 바다 위에 눕고 싶어!"
"그럼, 우리 바닷가에 한 번 가볼까?"
"가이드에게 물어봐야지."
"맞네, 다음 코스도 어디인가 알아보고..."
용해가 확실히 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에는 '이빨이 따 빠지고, 발음이 잘 안 되고...' 늙는 게 서글프다고 했다.
실제로 '귀도 어두워져 잘 안 들린다.'라고도 했다.
그런데 요즘은 아예, 근심 가득한 말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아내와 사별한 후, 용해는 의식적으로 즐겁게 살려고 하는 것 같다.
말하는 것이나, 행동 등 발랄하고 생기 있게 보이려고 애쓴다.
수재는 용해와 시간이 얼마나 주어질지는 모르겠지만 남은 여생, 같이 여행을 계속 다니며 인생을 즐겨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꿈틀거렸다.
살아온 것은 그렇게 즐겁지만은 않았고, 돈과 명예, 사랑도 한순간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지는 대 자연의 파노라마가 인생에서 최대의 묘미다.'
차는 시내에 들어섰다.
다들 내려 맛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네 명이서 한 조를 이루었는데, 가이드가 우리 조에 같이 자리를 함께 했다.
시내 구경도 하고, 쇼핑도 하며 잡동사니 등 볼일도 끝나고 차에 올랐다.
"없으신 분 손들어 보세요. 다 왔죠?"
가이드는 자리배치를 다시 하고 물었다.
용해는 부럽다는 산악회 여성과 동석이 되었다.
수재는 짝이 없어, 가이드가 짝이 되어 주었다.
"안녕하세요? 송이라고 불러주세요. 한송이~"
수재는 고개를 돌려 용해를 쳐다보았다.
용해는 한 눈을 찡긋하며 윙크를 보내왔다.
"오빠! 오늘 제가 애인이 되어 드릴게요."
"정수재라고 합니다. 전, 아내가 있는 몸인데..."
순간, 버스 안에는 한바탕 웃음바다를 이루었다.
"오빠는 순진하네~ 여행은 혼자, 관광은 님과 함께!"
슬쩍 어깨를 기대며 손을 꼭 잡는다.
"뭐를 그리 한 보따리 가져와요?"
"응! 용해가 나보고 다 가져가랬어."
"뭔데, 봅시다."
순덕은 남편이 들고 있는 봉지를 풀며 말했다.
"뭐가 이리 구질구질한 게 많아~ 음료수, 사과, 비스킷..."
"남도 맛 구경 다녀왔는데, 먹거리를 많이 줬어."
"그런데, 이건 뭐야? 여자 손수건 같은데..."
"어! 그 가이드 것이네, 왜 거기서 나오지..."
순덕은 갑자기 수재를 째려보며 말한다.
"당신? 바른대로 말해봐! 묻지 마 관광 다녀왔지?"
"몰라, 묻지마는... 그냥 남도 맛 여행 다녀왔어."
무덤덤하게 말한다.
그리고 그 손수건의 출처에 대해 자초지종 들려주었다.
"묻지 마 관광이네~ 여행은 무슨 여행..."
"묻지 마 관광 그게 뭔데?"
"당신 다녀온 게~ 짝짜꿍 여자랑 같이 다녀온 것이 묻지 마 관광이지."
"아니야! 난 가이드랑 같이 앉았어."
"알았어! 알았다고..."
순덕은 더 이상 왈가불가 따지지 않았다.
40년 가까이 장기근속하고 퇴직기념으로, 그 정도 관광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이 들었다.
공로연수기간에도 혼자서 등산 다니고 보기가 딱해서, 어디라도 관광 다녀오라고 말을 하고 싶었다.
도무지 밖으로 다니는 남편이 아니길래, 순덕 자신이 그렇게 떠밀듯 보냈던 것이다.
"여보! 우리 신혼여행 한번 더 갈까?"
순덕은 남편을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무슨~ 이 나이에 신혼여행?"
"참~ 무드 없네, 이 양반..."
순덕은 더 이상 의논을 포기하고 남편에게 최종 통보를 했다.
"혼자서 여행을 가던지, 둘이서 관광가던지 알아서 해!"
"어라? 그 가이드와 똑같은 말을 하네."
"여행은 혼자서, 관광은 님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