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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종갓집 12화

할머니와 달걀

그래도 어린 시절이 좋았다.

by 위공

"야! 임~마! 누가 먹으랬어?"

갑자기 수재의 뺨을 철석 때렸다.

수재도 놀랐고, 선생님도 놀랐다.

수재는 엉겁결에 뺨을 맞은 것이 얼떨떨해서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선생님께서 동훈이를 매우 꾸짖었다.

동훈이는 화가 덜 풀렸는지, 씩씩대며 수재를 노려보고 있었다.

사건의 발단은 국민(초등) 학교 6학년 수학여행 때였다.

동훈이는 선생님 도시락을 준비해 온 만큼 부잣집 아들이었다.

6학년 2반 애들, 선생님과 함께 앉아 점심을 먹었다.

수재는 도시락 대신에 고구마 삶은 것으로 대처했다.

선생님은 그런 수재를 보며 김밥을 꺼내 건넸다.

수재는 처음엔 괜찮다며 거절했지만, 선생님이 자꾸 권유하는 바람에 받아먹었다.

선생님은 그런 수재를 바짝 당겨 앉히며 김밥을 주었다.

수재가 두 번째 김밥을 먹는 순간에 동훈이가 달려들어 수재를 때린 것이다.

6학년 경주 수학여행에 있었던 추억은 좋았는데, 이 사건으로 잠깐 침울했었다.

그렇지만, 더 즐거운 일이 많았다.

증기기관차가 꽤~액~ 경적소리 울리며 굴속 안에 진입할 때면 창문을 닫는다고 난리였다.

굴(터널) 밖에 나오면, 창문을 닫지 않은 칸에는 시커먼 연기가 들어와 콜록거리곤 했다.

시커먼 연기가 굴뚝 위로 치솟아 오르며, 힘차게 달리는 기관차가 그냥 신기하고 즐거웠다.


"수재야! 서커스 보러 가지 않을래?"

성근이가 학교 가는 길에 묻는다.

"응? 서커스는 왜?"

"머리가 둘 달린 뱀 인간도 나온대."

"야~아! 재밌겠다."

"수재야! 삶은 계란 먹어."

성근이가 삶은 계란을 줘서 기분이 좋아 서커스를 보러 같이 갔다.

그런데 입장료가 어린이 800원이고, 어른은 1500원이다.

돈이 없어, 잠시 머뭇거렸는데 성근이가 재촉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어머니께서 육성회비가 내라고 주셨던 돈이 있었다.

딱, 800원이었다.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서커스가 너무 보고 싶었다.

"에라이~ 모르겠다! 들어가자, 성근아!"

성근이와 들어가 버렸다.

집에 밤늦게 돌아왔는데, 어머니께서 회초리로 종아리를 엄청 때렸다.


"수재야! 닭장 문을 꼭 잠가라."

할머니께서 신신당부를 하셨다.

"할머니! 왜요?"

수재는 시치미를 뚝 떼고, 물었다.

"으~응, 닭이 눈을 먹으면 달걀을 낳지 못해, 알이 삭아서..."

사실은 수재가 닭장에 몰래 들어가 달걀을 모조리 먹었던 것이다.

할머니께서는 벽장 안에 수시로 무엇인가를 자꾸 꺼내길래, 뭔가 했더니 말린 감 껍데기였다.

종갓집에는 한 해 지내는 제사가 엄청 많다 보니, 제사용 곶감을 미리 준비해 벽장 안에 보관했었다.

그런데 곶감은 벌써 다 써버리고 없고, 말린 감 껍데기를 손자들에게 줄려고 남겨 둔 것이었다.

수재는 감 껍데기는 맛도 없었다.

그래서 수시로 먹을 것을 찾아 뒤지는 중, 닭장을 발견하고 달걀을 먹었다.

시골에서는 아이에게는 먹을 것이 없다.

배가 고파, 주린 배를 해결할 게 없는가, 늘 그런 생각뿐이었다.

어쨌든 할머니께 속인 것이 미안했고, 언젠가 고백할 것이라고 맹세를 했다.


한 번은 아버지와 논에 가서, 논을 매고 밭을 갈 때다.

점심시간은 멀었지만, 아버지가 새참으로 막걸리를 가지고 오셨다.

막걸리와 김치뿐이었다.

아버지는 딱 한 잔만 자시고, 내게 막걸리를 권했다.

아버지를 쳐다보며, 좀 먹기가 그랬지만, 한 잔 들어가니 짜릿한 게, 기분도 좋고 배고픔도 잊었다.

그래서 한잔 한잔 먹다 보니, 주전자를 다 비웠다.

술이 얼떨떨 취했지만, 아버지는 모른 체했다.

그때가 중학교 2학년 시절이었다.

농사일이 얼마나 힘들고 척박한 지, 소도 꼼짝달싹 않고, 멍하니 서서 쉬고 있었다.

아버지가 매를 때려도 꿈쩍도 하질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가 막걸리를 여물통에 부어 줬더니, 소가 잘 먹었다.

그리고는 소도 술에 취했는지, 술김에 취기와 함께 일을 하기 시작했다.


달걀 관련 또, 에피소드가 있다.

제사를 많이 지내다 보면, 풍성한 계절엔 제사상이 꽉 차고, 넉넉하다.

그래서 제사 때는 먹을 것이 많아 제사 때만 손꼽아 기다리는 것이다.

명절보다 제삿날이 많다 보니, 당연히 제사는 배부르게 먹는 날로 기억되었다.

그러나 제사가 늘 풍성하고 넉넉지는 않았다.

흉년이 들 때나, 물가가 비싸고 어려운 한 해를 넘겨야 할 때도 있었다.

이럴 때이면 제사상에도 올릴 것이 없어, 어른들 고민이 많았다.

그래서 마지못해, 삶은 달걀도 곱게 모양을 빚어 제사상에 올렸다.

제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끝나자 말자 잽싸게 달걀부터 챙겨 허겁지겁 먹었다.

그러다 보니 체해서 며칠간 토사 광란으로 고생을 엄청했었다.

지금도 달걀을 좋아하지 않고, 잘 먹지도 않는다.

어릴 때 너무 힘들게 겪은 음식이길래, 쳐다보기 싫었다.

어쨌든 달걀뿐만 아니라, 먹을 것이 없어 어린 시절은 배고픈 생각밖에 나질 않는다.


최근에 TV를 시청했는데, 충격적이고 슬픈 아동학대 장면을 보았다.

먼 나라 이야기지만, 나에겐 끔찍하고 전율이 날 정도였다.

그래서 나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와 부모님을 잘 만났다고 생각이 들었다.

네팔에서 있었던 실제 이야기다.

8살 먹은 아이가 자기 몸보다 더 큰 짐을 지고, 이마에도 메고 간다고 낑낑댄다.

그 힘든 에베레스트 캠프까지 옮겨 주는데, 네파가 안쓰러워 자기가 물통을 하나 들어준다.

아이는 아버지 노름으로 빚 대신 팔려간 아이다.

또 한 아이는 마찬가지로 부모의 학대로 이웃집으로 도망가서 거기서 학교를 다니고 있다.

물론, 네팔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옛날에 그랬던 시절이 있었다.

노름으로 탕진한 토지며, 소까지, 심지어 마누라, 자식까지 팔았다.

그런데 이러한 나쁜 유산들 중, 아동학대가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 안타까웠다.


이렇듯, 어린 시절이 힘들고 배가 고팠지만, 그래도 어린 시절이 좋았다.

걱정도 없고, 하루하루가 새로운 일로, 늘 즐겁고 재미가 솔솔 나는 나날이었다.

오늘은 어린이날이다.

5월의 푸른 날처럼 피어오르는 희망과 즐거움과 행복을 찾아보자.

"조선의 소년 소녀 단 한 사람이라도 빼지 말고 한결같이 '좋은 사람'이 되게 하라."

방정환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슬기롭고, 씩씩하고, 건강하고, 예쁜 마음 등 들어도, 들어도 좋은 말이다.

그러니까, 어린이날 하루라도 이런 마음을 가져보자.

헤르만 헤세가 말했듯이,

"어린 시절의 기억은 인생의 보물 창고."라고 했다.

즉, 어릴 때가 인생에 있어서 정말 중요하다는 말이다.

오늘만큼은 즐겁고 순수한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 보자.

즐거우면 더 즐겁게 동요라도 한 번 불러보자.

동요는 그리움의 이름이고, 순백의 이름이며 동심의 이름이다.

또한, 동요는 우리의 영혼을 회복하는 노래이다.

순수성을 일깨워서 더욱 좋다.

내가 좋아하는 동요는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이다.

노래 가사도 좋지만, 가족들과 함께 영원히 살고픈 마음이길래 더욱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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