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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종갓집 14화

인수인계

사람이 제일 중요한 거야.

by 위공

"왜 안 오지? 전화를 해볼까..."

근무교대시간이 다되었는데, 사람이 안 보여 전화를 했다.

"아! 내가 말을 안 했군요. 월차휴가입니다."

"젠장~ 그럼, 미리 전화를 할 것이지..."

투덜대며 퇴근 준비를 하는데, 옆 동료가 묻는다.

"시간 되면 가면 되지, 꼭 사람을 봐야 되는 거요?"

"그럼, 교대시간에 인수인계도 없이, 혼자서 간다는 말이요?"

"인수인계는 당직 근무일지 등 서류가 있잖아요."

내가 잘못된 것인지, 지금 말하는 동료가 문제가 있는 건지,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그리고 인수인계 말이 나오니, 퇴직 전 근무했던 직장시절이 생각났다.


과장직을 수행할 때다.

원래는 과장 자리의 직급은 서기관(4급)으로 사무관인 내가 자리에 맞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임자가 갑자기 명퇴했다고 나를 그 직책에 앉혔다.

얼떨결에 과장이 되어 그 직책을 수행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막막했다.

전임자가 도망가듯 사라지고, 사람도 없는 가운데 인수인계를 한다고 했다.

매뉴얼이라고 내민 서류를 보고 업무를 시작해야 했다.

과원들에게 수시로 물어보고 관련 도서를 검색하고 매일같이 늦게 퇴근했다.

모르는 것은 시간이 가면 차차로 알게 되기에 큰 문제는 아니었다.

어쨌든 관리자기 된 것이다.

관리자가 되면 인사관리, 시설관리, 회계관리 등 관리를 해야 할 게 많다.

전에는 과장이 시키는 것만 했지만, 지금은 처지가 바뀌어 내가 과원들을 다스려야 했다.

근무 평정할 때면, 과원들을 등급을 나누고 서열을 정하는 것이었다.

기본적으로 근무 점수는 대동소이하다.

다만, 성실과 근면성에는 다소 차이가 나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출퇴근 시간에 가장 역점을 두는 것도 이 때문이다.

출근대에 일찍 오는 사람은 퇴근 때도 늦게 나간다.

그래서 출퇴근 시간을 면밀히 체크해 나갔다.

그런데 좀 의아 했던 일이 벌어졌다.

직장과 집이 가장 가까운 사람은 진작 늦게 오고, 직장과 집이 먼 사람이 제일 먼저 오는 것이다.

그래서 분석을 했더니, 직장이 가까운 사람은 늦더라도 뛰어가면 된다고 안일하게 생각한다.

그렇기에 늦어지기 일쑤고, 먼 사람은 아예 여유를 가지고 일찌감치 출근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퇴근시간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그래서 과원들이 다 올 때까지 조회를 하지 않고 기다렸다.

"과장님! 조회시간이 다되었는데 준비를 할까요?"

선임 팀장이 묻는다.

"아니야, 아직 한 사람이 오질 않았어, 기다리자고..."

내 눈으로 직접 확인을 하지 않고는 절대 업무 진행을 하지 않았다.

이런 습관은 다른 과에서 출근 문제로 사람을 찾다가 엄청난 사건이 벌어졌던 그 이후로 생겨났다.


"과장님! 큰일 났어요."

평소 딴 과에 관심이 많던 주무관이 빅뉴스를 전해왔다.

그 큰 사건이란 게 출근부터 전개되었다.

부서 업무가 비슷해, 우리 과와 교류가 많고 과원들도 대부분 서로가 잘 아는 사이였다.

아침 출근 때 분명 봤다고 하는데, 사람이 행방불명된 것이다.

그래서 그 과원들은 물론, 우리과원들도 모두 힘을 합쳐 실종된 사람을 찾으러 다녔다.

오전 10시가 넘어서고 있었다.

갑자기 다급하고 불길한 경고음을 울리며 119 구급차가 사내로 들어왔다.

사내 공원 숲길로 들어선 응급차 요원 2명은, 곧바로 들것을 들고 숲 길안으로 뛰어갔다.

우리 옆과 요원 주무관을 들것에 싣고 응급차로 오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병원 응급실로 직행하였다.

안타깝게도 병원에 가기 전에 이미 숨이 끊어졌던 것이다.

나무에 목을 매어 자살을 한 것이다.

수사관들이 현장에 라인을 치고 조사하며, 그 일대는 공포의 자리로 매김 하였다.

수사가 시작되자, 자살 원인과 그 주무관의 사생활 일부도 공개되었다.

일단 장례를 치르고 고인의 명복을 빌며, 장례식장에서 많은 뒷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사건의 전모를 이러하였다.


고인의 사생활을 얘기해서 뭣하지만, 고인은 두 집 살림을 하고 있었다.

본처와 이혼을 하지 않았는 상태에서, 두 번째 부인과 동거에 들어갔었다.

둘째 부인의 자녀와도 사이가 좋았다고 한다.

그렇지만, 말단 공무원인 고인으로서는 두 집 살림을 유지하기가 버거웠다.

이런 어려움을 교묘히 파고든 업체가 있었다.

건설업체로 아파트 투기에 불법을 공공연히 자행하며 청탁과 뇌물로 고인을 유혹했었다.

고인의 사생활을 추적하며 자신들의 입지에 최대한 유리하게 끌어들인 것이다.

고인의 둘째 부인에게 새 아파트 분양 특혜를 주었고, 자신들의 요구대로 들어준 대가였다.

고인에게도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까지 사례금을 수시로 건네주었다.

박봉에 시달렸던 고인은 일거에 두 가지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는 그야말로, 수렁에 빠진 순간에 구명줄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고인은 공직자 신분을 순식간에 잊어버렸던 것이었다.

업체의 농간 속에 결국 비리 공직자로 검찰 내사를 받았던 것이다.

그날도 검찰 출석요구를 앞두고, 직장에는 출근하고, 고민 끝에 사내 공원 숲에서 죽음을 선택한 것이었다.


"그런데 누가 찾았대?"

고인과 절친한 선임 주무관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고개를 서서히 들었다.

눈물과 괴로운 심정으로 뒤범벅된 충혈된 눈을, 우리는 차마 볼 수가 없었다.

그는 울고, 또 울면서 급기야 장례식장을 뛰쳐나갔다.

"입사 동기라고 하네요."

옆에서 또 한 주무관이 말했다.

"아마, 저 친구 곧 사표 낼 거예요."

"........"

모두들 말없이 한동안 침울하다.

"과장님! 일어나시죠?" 시간이 늦어서..."

"그래, 다들 수고가 많았어, 내일 출근해야지."

술이 취한 건지, 침울한 분위기에 몸이 가라앉은 건지, 일어나며 휘청거렸다.

"과장님! 저희가 모실게요, 어이~ 택시 불러!"

선임 팀장이 과장을 택시에 태우고, 자신도 탔다.

"과장님! 술이 좀 되세요?"

"아니, 술을 아무리 먹어도 오늘은 취할 것 같지 않을 것 같네."

"그럼, 과장님! 술도 깰 겸 이야기 좀 하고 갈까요."

"그러지."


직장 회식하면, 늘 2차로 가는 호프집이 보였다.

홀안에는 손님이라고는 팀장과 둘 뿐이었다.

"과장님! 죽은 사람은 어쩔 수 없고, 지금 산사람이 더 문제예요."

"응? 누가 말이야?"

"예, 둘째 부인과 자녀들입니다."

"어쩔 수 없지! 본처와 이혼도 하질 않았지?"

"그러니깐, 더 골치가 아프죠."

"그럼, 뭐야? 생계비 때문인 거야?"

"예! 과장님. 도울 방법이 없겠습니까?"

"우리 동료들이 당연히 도와야지..."

"연금이 나오니, 둘째 부인도 혜택을 받을 수 있는지..."

"안될걸, 본처와 이혼하면 몰라도..."

"둘째 부인이 정말 불쌍해요. 그 형님만 믿고 두 딸과 재미있게 여생을 보내려고 했는데..."

"그래, 안됐어~ 어쨌든 내가 최대한 알아볼게..."


인수인계가 정말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명백히 알았다.

특히, 공직자 업무 인수인계는 직접 사람을 확인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절감한다.

이번일을 느끼며, 최근에 언론보도에 났던 비슷한 사건이 생각났다.

학교에 나오지 않는 문제 학생이 있어, 담임선생님이 직접 집에 갔지만, 집에 문은 잠겨져 있고, 인기척은 없어 그냥 돌아왔는데, 나중에 알려진 이야기로는 학생이 굶어서 죽었다는 것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사회적 책임인가를 두고 말도 많았다.

사람이 없는 것 같고, 문은 잠겼다고 그냥 돌아올 수밖에 없었지만, 좀 더 알아볼 수 있어야 하는 아쉬움이 많았던 사건이다.

사람을 직접 보고, 확인을 하지 않고는 돌아올 수 없다는 철저한 사명감이 있었다면 그런 비극은 최소한 막을 수 있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슬픈 이야기 속에, 정말 빛 같은 이야기가 생각났다.

우리 둘째 딸 중학교 시절이었다.

부모와 같이하는 학습의 날에 참석했었다.

평일이라 일을 가는 학부모가 많아서인지, 시간이 다되어 가도 학부모님이 보이질 않는다.

한참만에 어머님 2분이 오셨다.

어머님과 나랑, 셋뿐이라 썰렁한 분위기다.

담임 송선생님과 이야기 중에, 어머님 두 분이 이구동성으로 의견을 개진했다.

"선생님! 그 양아치 애를 딴 반으로 내 보내세요."

선생님은 어이가 없다는 듯,

"아니, 아이가 반애들에게 아무 말도 않고 그냥 착해요."

"그래도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아이 때문에 우리 아이가 망쳐요."

"그럴 순 없어요. 딴 반에 보낸다 해도 그 반에서도 마찬가지로 반대할 거예요."

"더 이상 말을 못 하겠군요. 교장선생님께 건의하겠어요."

"그렇게 하셔도 전, 변함이 없어요. 이건, 선생님의 권한이자, 책임입니다."

송선생님의 단호한 의지가 보였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선생은 바다와 같아요. 흙탕물이던, 깨끗한 물이던, 다 받아 함께 어우러져야 해요."


어머님들이 양아치라고 퇴출하라고 하는 그 아이의 부모님은 어디론가 가출해버렸다고 한다.

할머니가 데리고 있는데, 거의 식사는 못하는 실정이라, 송선생님이 아이를 특별 관리한다고 했다.

학교에서 안타까운 이야기만 들었지만, 어떻게 전개될지는 몰랐다.

학교를 나오며 송선생님 말씀이 계속 뇌리에 꽂혔다.

"그 애는 제가 할머니에게 말씀을 드려서 특별관리를 허락받으셨어요."

할머니에게 맡겨진 아이를 선생님이 직접 숙식까지 챙기며, 돌보겠다고 아예, 아이를 인수인계받은 셈이다.

정말 훌륭한 선생님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송선생님의 아이 특별관리는 사람을 어떻게 인수인계를 하는가를, 명백히 보여주는 모범사례다.

할머니로서도 인수자가 선생님이고, 인계하는 입장에서도 더 이상 좋을 수가 없을 것이다.

앞으로 아이의 장래도 잘 될 것이라, 예상이 된다.

어쨌든 인수인계가 가장 잘 이루어진 케이스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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