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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종갓집 13화

삼강오륜(三綱五倫)

부모님 유산.

by 위공

수재는 어버이날만 오면 기쁨보다는 슬프고 아픈 기억으로 침울해진다.

부모님 생전, 어머니께서 벌금을 못 내겠다고 버티다가 구치소에서 구류를 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구치소에서 풀려 나온 날이 어버이날이었다.

그 당시에는 대통령 선거기간이라, 동네 많은 집들이 불법으로 증축 및 개축을 했다.

어머니도 자식들 결혼을 위해서라도, 집을 새로 지어야만 했다.

무허가이지만, 이층 집을 지어 3년 연속 세 아들을 장가를 보냈다.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 법원에서 벌금을 내라고 통지서가 날라 왔다.


"당신은 가만히 있어요. 돈도 내가 빌렸고, 집도 내 명의로 했으니, 잡혀가도 내가 갈 거요."

만류하는 아버지에게 어머니는 결심한 듯, 단호했다.

"어머니! 다른 방법을 찾아보고, 정 안되면 벌금을 내도록 하지요."

수재는 안타까워, 어머니에게 사정을 했다.

"돈이 어딨어? 집 짓는다고 빌린 돈도 절반도 못 갚았어!"

"법원에서 공문서가 발송되면 어쩔 수 없이 내야 해!"

아버지는 또 빚을 내서라도 벌금을 내자고 어머니를 설득한다.

"당신은 재판한다고 벌여 놓은 돈, 다 까먹고 무슨 쓸데없는 소리 하는 거요?"

10년 전에 고모가 이웃집과 이권다툼을 벌여, 아버지가 개입해 법정에서 졌는 일을 거론했다.

"어쨌든 당신은 빠져요!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깐..."


10년 전에는 아버지가 열심히 일해서 모은 돈이 제법 되었다.

그런데 고모와 이웃집이 다 같이 집을 짓다,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서로 언쟁을 벌이다 옆집 아저씨가 고모 멱살을 잡고 폭행하려는 장면을 아버지가 목격하고, 달려가서 그 사람과 격투를 벌였다.

그래서 쌍방 폭행사건으로 법정까지 서게 되었다.

결국 재판 비용으로 벌인 돈을 다 까먹고 말았다.

그뿐만 아니었다.

동생 수열이가 배를 탔는데, 부산 앞바다 해상에서 침몰되었으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목숨은 건졌지만, 그 충격으로 배를 타지 않았고, 장기간 직업을 못 구해 생계가 막막했다.

막내 수기도 다리가 부러지는 중상을 당해,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고 있었다.

그래서 수재는 보다 못해, 직장에서 퇴직금 담보 대출을 해서 급한 생계비를 마련하였다.

거듭되는 악재 속에 집안 경제상황은 최악이었다.

이런 상황 속에 법원에서 불법 건축에 대한 벌금이 나온 것이다.

수재는 마지막 비상 수단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은 목돈이 필요했기에, 퇴직금을 마련하기로 했다.

반대하실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부모님께 설득을 했다.

아직 젊어, 또 직장을 구하면 된다고 하며 퇴직을 하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역시 부모님께서는 단호히 반대했다.

부모님 자신들이 어떻게 해서라도 돈을 구해 보겠다며, 한사코 말리는 바람에 퇴직 신청은 보류되었다.


수재는 어버이날에 어머니를 데려가라고 연락이 와서 구치소에 갔었다.

그에 앞서 수재가 백방으로 뛰어, 남은 벌금을 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어요."

울음을 터뜨리며, 어머니를 반겼다.

"괜찮다! 살아보니 밥도 잘 나오고, 대우도 잘해주더라."

우는 장남과는 달리, 어머니는 오히려 환하게 웃었다.

어머니에게 두부를 드리고 일단, 집으로 모셨다.

아버지도 미안한 듯, 고개를 푹 숙이며 말없이 어머니를 뒤따라 왔다.

어머니가 가족회의를 주관했다.

"다들 염려해준 덕분에 이번 일을 잘 처리했다."

더 이상 빚은 얻지 말고, 남은 빚 청산을 위해 모두 노력하자고 하셨다.

'여자는 약하다. 그러나 어머니는 강하다'라는 이 말이 어머니에게 딱 어울린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 우리 집은 친가, 외가 할 것 없이 친척들로 붐볐는데, 마치 하숙집 같았다.

고종 사촌 친지들이 내려와 기거하면서 취직자리를 구했고, 외사촌들도 북적이며 한 지붕 세 가족이 되었다.

다들, 집안에 폐를 끼쳤지만, 도움을 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지만 어머니께서는 한마디 불평도 없었고, 오히려 친지들 편안하게 웃으며 대했다.

그리고 어머니께서 쌀장사, 사과장사, 생선장사 등 안 해본 장사가 없을 정도로 악착같이 돈을 벌었다.

장사를 끝내고 집에 들어오면 물 받고 빨래하고 나면 새벽 2시가 넘는다고 했다.

그리고 잠시 눈을 붙이고 새벽 4시에 일어나야 했다.

이런 힘든 생활은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는 시골에서 내려오셔서 부두 막노동 등 닥치는 대로 일하셨다.

할머니를 모시고 있는 상태라 더욱 어려웠다.

할머니 돌아가실 때 까지는 시골로, 도회지로 번갈아 오가며 다녀 셨다.

이렇게 부모님과 처자식들을 위하여 몸부림쳤다.

어떻게 보면 부모님 두 분 다, 일을 위해 태어나신 분 같았다.

요즘 사람들의 견해나 시각에서 볼 때, 의식주 해결에 급급해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스트레스일 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트레스 자체를 못 느끼며, 그냥 열심히 일하며 묵묵히 살아가는 것이다.


"아니~ 왜, 자는 아이들 깨우고 그래요? 술이 취했으면 들어가 주무세요."

"우리 새끼들~ 오라, 우리 장남이 깼네?

아버지가 약주 한 잔 드시고 와서 어머니와 티격태격 다투고 있었다.

"일어났으니, 내가 시험을 한 번 해보자! 삼강오륜을 아느냐?"

수재는 잠이 덜 깼지만, 아버지가 묻길래, 주섬주섬 생각나는 대로 말했다.

"군위 신강, 부위자강, 부이 부강, 군신유의, 부자유친..."

"어이구~ 역시, 우리 장남이네, 우리 가문이 살아있네! 살아있어."

아버지는 호탕하게 웃으며, 수재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그만, 들어가세요!"

어머니가 밀자, 아버지가 마루에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이쿠야! 이 사람이 남편 잡네..."

그리고는 아버지는 방에 들어가 코를 골며 주무셨다.

다음날 아침 어머니는 긴장하며 아버지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마룻바닥에 얼굴이 살짝 긁힌 자국 표시가 났다.

"어라? 내 얼굴이 왜 이랬지?"

아버지는 거울을 보며 어머니에게 물으셨다.

"그걸, 어떻게 알아요? 어디서 술을 먹고 넘어졌겠죠."

아버지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밖으로 나가셨다.


한 번은 아버지가 벽장 속에 무엇인가 조심스럽게 꺼내 보여주었다.

보물처럼 보자기로 곱게 싸인 것을 풀었다.

보자기를 풀자, 그 속에 있었던 것은 상장이었다.

대통령 리승만이라고 적혀있고, 직인이 날인되어 있었다.

아버지가 상장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결코 부정한 방법이나 정직하지 않는 일은 하지 않았고, 오로지 정당한 노력의 대가로 받은 피와 땀의 결정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머니가 애지중지하는 재봉틀을 더 이상 사용을 할 수 없는 몸이 되자, 아내에게 재봉틀을 물려줬다.

최근까지도 아내가 어머니의 피와 땀이 배어 있는 소중한 재봉틀을 사용하고 있었다.

어머니와 아내는 서로가 편하고, 처지를 잘 이해하는 것 같다.

이러한 고부간의 사이는 '고부간 갈등'이라는 요즘 시쳇말이 무색할 지경이다.

어머니가 가시는 곳은 늘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확고한 가치관, 일에 대한 열정, 깨끗한 이미지 등이 사람들에게 어필이 된 것이다.

그래서 친가, 외가 친지들이 어머니에게로 몰려들었다.

어머니 또한 사람들을 좋아하고, 사람을 받아들이는 심성이기에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무리 세상살이가 어렵고 힘들어도 내색하지 않고 강한 의지로 대처하는 어머니의 생활 방식이 더욱 사람들에게 감동적으로 전해졌던 것이다.


세월 앞에 장사가 없다고, 힘든 삶을 영위해 나가는 과정에서 어머니는 병이 났다.

50대 후반에 골다공증이 심해, 척추를 비롯해 골수 관련 모든 뼈조직이 성치 못했다.

날이 갈수록 극도로 몸이 쇠약해졌고, 수시로 영양제나 뼈주사를 맞았다.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그리고 아내가 어머니를 극진히 모시는 것을 보며 늘 고맙게 생각한다.

아픈 어머니를 모시고 목욕탕이며, 병원으로 빠짐없이 다니곤 했다.

어쨌든 부모님 유산은 상장과 재봉틀이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무엇보다 부모님의 성실과 근면한 본성을 고스란히 자식에게 물려주었다.

"이 세상에는 공짜는 없다. 공짜를 바라는 사람은 거지나 도둑, 강도들 뿐이다."

어머니가 늘 강조하는 말씀이다.

우리가 지금 잘 살아가는 것도 부모님의 이러한 정신적 유산 때문이다.


요즘 사람들 물질적으로 풍요롭지만, 꼭 즐겁거나 행복하지만은 않다.

가치관 혼란, 정체성 상실, 우울과 짜증나는 일상, 가족간 불화 등 많은 부정적인 요소를 내재하고 있다.

이러한 부정적인 요소는 인간성보다는 부자, 출세, 명예, 최고를 지향하는 물질만능주의와도 무관치 않다.

무엇보다 인간성 회복이 우선되어야 올바른 가치관과 윤리, 도덕 등이 정립될 것이라 생각한다.

인간성 회복은 옛날부터 지금까지 변함없는 삶의 가치로 여겨져 왔다.

나는 '삼강오륜' 속에 녹아있는 정신이야 말로 진정한 삶의 가치라 생각한다.

어쩌면 이 시대가 가장 필요하며, 절실한 요구는 '삼강오륜' 정신일지도 모를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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