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이든 진화든 우리 안으로 모여든다.
정공은 오랜만에 뒷동산에 올랐다.
가을바람이 산들산들 불어오니 너무 좋다.
그렇게 내려 쬐던 폭염도 바람 속에 어느새 따스함으로 살갗에 살짝 기대는 것 같다.
덥지도 않고, 그냥 포근한 기분이 되어 콧노래가 절로 나오며 발걸음도 가볍게 올레길을 내딛는다.
참으로 좋은 계절이 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나라 금수강산이 정말로 이처럼 살기 좋고 아름다운 나라인 줄은 진정 난 몰랐다.
지난주에는 아내와 함께 꼭 같은 길로 왔었는데, 오늘처럼 이렇게 날씨가 좋지 않았다.
오늘 아침, 아내 출근길부터 느낌이 왔었다.
"오늘도 수고하고~ 돈 많이 벌어오세요."
아내 출근길을 배웅하며 가볍게 한 마디 던졌다.
아내는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가벼운 한 마디에서 시작되는 하루가 이렇게 좋은 날씨까지로 이어준 것 같았다.
파아란 하늘부터 곳곳에서 모여드는 구름까지 모두가 아름답고 신비로웠다.
마음이 온통 즐겁고 행복해진다.
그렇지만, 늘 이렇게 즐겁고 행복한 나날이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전업주부로 집안 살림살이를 수행한 지, 여태까지 3년이 넘는다.
그런데도 아직 아내의 마음을 몰라주고 있으니, 가끔 혼날 때가 있다.
한 번은 새로 담근 김치를 사 오라고 아내가 명령했다.
명령수행하러 동네 반찬 가게를 어슬렁거리다가 김치 한 봉지를 사 왔다.
그런데 아내가 짜증을 내며,
"아니, 이렇게 짠 김치를 어떻게 먹냐! 어디서 사 왔어?" 하며 물었다.
"응, 당신이 말한 반찬가게에서 사 왔지......"
"아닌 것 같은데, 그 집은 반찬이 이렇게 짜지 않아~ 솔직히 말해!"
정공은 사실대로 말했다.
전문반찬집 옆에서 쪼그리고 앉은 할머니가 봉지 김치를 팔고 있었다.
그래서 물어봤더니, 금방 담은 김치라고 하며 김치 한 봉지를 건넨다.
동정심이 발동해서 사 왔지만, 이렇게 아내가 분노할 줄은 몰랐다.
"여하튼 당신이 다 먹던지, 버리던지 알아서 해!"라고 말하며 출근을 했다.
아내 출근하는 모습을 보고 배웅에 나섰지만, 아내는 쳐다보지도 않고 휑하니 가버렸다.
"얘들아! 엄마 왔어, 모두들 부대장님께~ 경례! 충~성!"
아내는 정공이 구호를 붙이며 거수경례하는 것을 보고 웃는다.
"아빠! 갑자기 왜, 엄마에게 경례하는 거예요?"
"갑자기가 아니란다, 항상 출퇴근 때 하지."
아이들이 의아해하는 표정이다.
"아빠! 그럼, 엄마한테 절대복종한다는 말이야?"
"그런 것도 있지만, 충성을 다한다는 의미이지."
"복종은 뭐고, 충성은 또 뭐야.........."
"복종은 상관, 즉 높은 분들께 의무적으로 따라야 하고~ 충성은 마음속에서 우러나와야 하는 것이지.
그리고 충성 속에는 항상 고마움과 감사함이 충만되어 있어야 하고.........."
"그럼, 아빠가 일천자와 월천자께 경례하는 것도 그런 이치야?"
"아이고야~ 우리 딸들이 이해를 다했네, 그렇지! 일천자는 온 세상을 밝혀주는 광명 그 자체이고,
월천자는 보름달 같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지."
"됐네요, 됐어~ 아이들에게 별의 별것을 다 가리키네........."
아내의 핀잔에 머쓱했다.
"아빠! 정말 귀엽죠?"
"그러네~ 그래서, 요즘 아기 냥이 케어한다고 바쁘게 다녔구나."
"내가 직장에서 처음으로 발견했을 때는 거의 아사직전이었지........."
"우리 딸이 생명을 살려주었네, 그런데 바쁜 직장생활에 아기 냥이 케어까지~ 힘들 텐데.........."
"최상의 방법은 입양하는 거야."
정공은 막내딸이 힘들어하는 게 안쓰러워, 한 번 입양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딸 집에는 5년 전에 동물보호소에서 데려온 어미 냥이가 영역을 지키기 위해 아기를 못살게 할 것이고,
우리 집은 엄마가 동물들 집안에 동거하는 것을 반대하니까 어렵고, 일단은 입양공고를 시작하기로 했다.
먼저, 지인들에게 입양을 권유하는 방식을 택했다.
"아빠는 절에 다니고 스님들도 많이 알고, 스님은 동물에게 잘하잖아요."
"안 그래도 스님들께 부탁할 생각이야, 잘 안되면 집에 데리고 와야지. 물론 엄마를 잘 이해시키고.........."
입양공고가 시작된 이후로, 예상과는 달리 스님들은 저마다 어려운 상황이 도사리고 있었다.
J 스님은 사찰에서 진돗개와 어미 고양이를 키우고 있어, 아기를 받기 어렵다고 직접 말씀하셨다.
E 스님은 절이 많은 길고양이들의 집이 되어버려, 역시 아기가 온전치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결국 집으로 데리고 와야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어머! 이쁜 고양이네~ 어디에서 왔어요, 입양했나요?"
동네 아주머니가 유달리 관심이 많다.
이웃집 푸들 강아지 주인이다.
"아직 정해지지 않았어요, 그냥 데리고 왔죠."
정공은 아내에게 말은 하지는 않았지만, 잘 될 거라고 생각이 들었다.
사실 아내는 동물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생각보다 이성이 아주 냉철한 사람이다.
항상 하는 말이 있다. 그냥 동물을 좋아한다고 해서 막연히 키우는 게 위험한 발상이라고 한다.
그러다 개인 사정이 생기면 반려동물은 언제라도 유기를 해버린다고 했다.
그래서 유기 동물이 엄청 늘어나는 게, 작금의 세태이다.
이러한 슬픈 상황은 미국이나 한국 등 동서양을 막론하고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리고 아내는 나보다 스케일이 더 크다.
넓은 정원이나 시골에서 동물을 키워야 한다는 게 평소 생각이다.
동물도 사람처럼 자유와 행복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며, 그런 환경 속에서 키우고 싶다고 했다.
그러니 스케일이 크다는 것이다.
"나는 동물들이 좁은 공간에 갇혀 사는 게 얼마나 불쌍한지 몰라요."
아내는 오히려 동물들이 마음껏 뛰놀게 바라는 진정한 동물보호주의자이다.
정공은 이러한 동물 사랑은 본가에서든 처가에서든 한결같이 닮은 꼴이라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는 고양이를 좋아했고, 장모님은 강아지를 좋아했다.
3대에 걸쳐 동물 사랑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아빠! 절에서 무슨 공부를 해?"
막내딸이 뜬금없이 묻는다.
"절에서~ 가만있자, 뭘 배우지........ 그렇지! 스님은 안락행을 가르치고 있지."
"안락행이 뭐야?"
"왜, 우리가 바다를 보면 가슴이 뻥 뚫리고 시원하고 편안하지~ 그런 이치야."
정공은 언젠가 스님께서 강의한 내용이 생각났다.
"낙상(樂相)은 '즐거운 모습' 또는 경계가 즐거움'이다.
안락(安樂)은 안심락상(安心樂相)의 준말이니,
'마음이 편안하고 경계가 즐겁다'는 뜻이다.
<아미타경>에서 '중생들은 갖가지 괴로움이 없고
단지 모든 즐거움만을 받는다."
딸은 무슨 말인지 몰라,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그냥, 아빠가 엄마에게 즐겁게 잘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간단해."
"맞네, 아빠엄마가 바다를 좋아하고 우리도 바다를 엄청 좋아하잖아."
"그렇지! 바다는 할머니도 좋아하지, 마치 부처님 마음 같이 편안하지."
큰딸이 맞장구를 친다.
"맞아, 바다는 엄마고 아빠야! 더러운 물이 든 깨끗한 물이든 다 받아들이고~
때로는 성난 파도가 몰아칠대면 무섭지만, 보배들이 무진장 있어 우리에게 제공하지.........."
막내도 이어서 거든다.
"주변에서 구름처럼 모여드는 사람들이나 동물들도 많이 있어요."
정공은 아이들 말에 전적으로 동감하며 한 마디 했다.
"그렇지! 그렇고말고~ 바다에는 무수한 갈매기가 모여들고, 고등어 떼도 모여들고, 돌고래도 모여들고........."
정공은 이와 같은 우리들의 진아(眞我)를 감득하였다.
그리고 긍정적인 생각이 우리네 인생에서 아주 조화롭게 펼쳐진다는 것을 느꼈다.
이러한 조화로움이 균형을 잘 잡아갈 때 좋은 가정, 좋은 사회, 좋은 관계가 이루어진다.
또 조화로운 삶은 우리 사회, 우리 가정, 우리 자신을 긍정의 우리라는 한 곳으로 모이게 하는 것이다.
정공은 바다를 보며 일어나는 벅찬 마음을 게송(偈頌)으로 긍정의 우리를 찬탄했다.
"무량한 바다와 광명 가운데~ 우러러 바라보니,
모두가 즐거움이고 행복이며 우리 모두 부처님이로다.
우리들의 영원한 생명, 지극한 행복, 무량대복, 한량없는 신통을 보았도다.
바다가 청정이고 광명이니, 지혜와 자비가 무량한 광명의 물결로 정토를 이룬다.
자연과 생명이 베푸는 은혜의 물결이다.
우리 모두 부처님의 지혜를 찬탄하고, 다 같이 아미타불 대원의 바다에 들어가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