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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레나 노 Sep 28. 2024

마음 훈련 17-‘감사하는 것‘에도 연습이 필요합니다.

마음을 회복하는 약, 감사

금요일 아침에 눈을 뜰 때부터 묘하게 기분이 좋지 않았다. 요즘 일이 바쁜 데다가 청첩장 모임 때문에 하루도 쉬질 못해서인지 몸은 자꾸만 침대 아래로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신혼여행 잔금을 내는 날이라 그동안 모아둔 돈으로 실수 없이 잘 결제했다.

그런데 내 마음은 어딘가 뿔이 나있었다.

평소라면 여행에 대한 기대감에 마음이 붕붕 떴을 텐데 꼬리가 축 처진 강아지마냥 기운이 없었다.


잔금 결제를 잘했다는 연락을 예비신랑에게 남겨놓고LH 신혼부부 임대주택 공고를 살펴보고 있었는데

오랜만에 8년째 알고 지내는 부동산 사장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oo부동산인데요~ 오랜만이에요, 결혼 준비는 잘 돼 가요? 신혼부부가 살만한 좋은 매물이 나와서~"


지금 사는 집 근처에 아파트 급매가 나왔다는 아주 좋은 소식이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 무리해서 아파트를 매매할 생각은 없었다. 우리는 서울시 주택공사(SH)에서 시행하는 신혼부부 장기전세를 신청해 두었기 때문에 그 결과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씀드렸다.

만약 당첨이 안되면 12월에 다시 전화드리겠다는 말에 부동산 사장님은 그게 꼭 당첨이 됐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먼 나라 이야기 같은 아파트 매매에 대한 전화를 끊고 다시 LH 공고를 보는데 아주 좋은 집이 하나 있었다.

무려 18평의 아파트를 월 임대료 20만 원대에 살 수 있었다. 보증금은 대출받아야 하겠지만 아주 좋은 기회임에 틀림없었다. 다만, 1세대를 뽑는다는 것이 문제였다. 아주 치열한 경쟁률이 나오겠지.


어디서부터 쌓여온 무력감이었을까, 그 무력감은 순식간에 거대한 그림자가 되어 나를 덮쳤고 짓눌렀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모든 것에 감사하던 나였다.

숨 쉬는 것도, 걷는 것도, 허락된 일상과 모든 순간에 감사했다.

그런데 한 순간이었다, 마음에 감사함이 온 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불평이 화르륵 차오르는 것은.


가난이 나를 쉽사리 놓아줄 것 같지 않은 지독한 두려움이 들어 코끝이 아려왔다.

그러니깐 이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이미 부를 손에 쥐고 태어난 사람들을 보면 나 따위는 도저히 쉽게 벗어날 수 없는 것만 같아서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가 쉽지 않았다.


'LH, 나는 여전히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구나.'


사실은 전혀 불평할 일이 아니었다.  

LH의 전세임대 대출 덕분에 지금 집에서도 이자를 저렴하게 내고 살 수 있으니 정말로 감사한 일이다.

LH든 SH든 당첨이 되어서 월에 나가는 이자를 줄이면 돈을 더 모을 수 있으니 그야말로 좋은 기회인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걸 알면서도 마음은 왜 가라앉는 걸까.


출근길 지하철 에스컬레이터를 올라오면서 '하나님, 저는 자꾸만 가난의 굴레를 못 벗어날 것 같아요. 나름대로 애써보는데도 계속 제자리인 것 같아요.‘라는 기도 아닌 기도를 속삭였다. 그러다 그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이 또 바보 같아서 눈물이 핑 돌았다.

하나님은 그럴 때마다 나에게 반문하신다.

'너 정말로 지금 네가 가난하니?'


그렇지 않다.

가만 생각해 보면 지금의 나는 가난하지 않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내 경제적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자면 그 수치가 어디쯤에 머물러있는지 몰라도,

가난했던 나의 어린 시절에 비하면 지금의 내 삶은 하나도 가난하지 않다.

그러니 타인과의 비교는 무의미한 것이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비교했을 때 상황과 환경이 나아졌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할 수 있는 일이다.

게다가 신은 이 맘 때쯤 내 마음이 무너질 걸 아셨다는 듯, 다음 달부터 오를 월급으로 걱정을 잠재워주셨다.

그렇게 바라던 소원을 들어주신 덕분에 그나마 이 바쁘고 정신없는 시간들을 버틸 의욕과 의지가 생겼다.


'그래, 감사하자.' 그렇게 겨우 마음을 다잡았는데 하필이면 오늘따라 몇몇 아이들이 속을 썩였다.

영어 공부도 제대로 하지 않았으면서 다른 암기 과목을 공부하겠노라고 결석을 하기도 하고,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공부에 집중하지 않고 자꾸 떠들었다.


‘아, 정말 지친다.’


퇴근하기도 전부터 몸과 마음의 에너지가 모두 바닥을 향해 있었다. 그 덕에 퇴근길 걸음걸이는 말 그대로 거북이걸음처럼 아주, 아주 느렸다.

예비신랑에게 전화를 걸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결국은 내 못난 마음이 또 그를 푸욱 찔렀다.


"지금 결혼 준비 하면서 내가 돈을 더 내고 있잖아. 나는 어릴 때부터 가장으로 살았는데 지금도 여전히 가장으로 사는 것 같아서 지쳐.”


결혼에 들어가는 비용을 내가 더 내겠노라고 쿨하게 얘기했을 땐 언제고 나는 밴댕이 소갈딱지가 되어버렸다. 사실은 나도 안다. 내가 돈을 더 낸다는 것에 화가 난 게 아니었다. 일이 힘들고 몸이 지치니 마음이 덩달아 날카롭게 삐죽빼죽해져 그 가시를 엉뚱한 곳에 꽂아 넣고 있었던 거다.


예비신랑은 "자기는 돈을 '더' 내는 거지만, 나는 돈을 '다'내는 거라구~ 액수로 보지 말고 '더'와 '다'의 비율을 생각해봐주라구~" 라는 우스갯소리로 답했다.

오랜 고시 준비로 모은 돈이 없는 예비신랑은 매 달 급여를 모두 다 결혼준비에 털어 넣고 있었다.

내 못난 말에 자존심이 상할 법도 한데 오히려 내게 고맙고 미안하다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 내 마음에 돋쳐있던 가시가 쏘옥 들어갔다.

그는 나를 다루는 법을 아주 잘 아는 사람이다.

맞다, 우리는 이 결혼을 다툼 없이 즐겁게 준비해 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불완전한 나를 잘 다독여주고 감싸주는 그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런 사람과 결혼을 한다니, 이 또한 감사한 일이다.


감사는 타오르는 등불의 기름과도 같아서 너무나도 빠르게 사라져 버린다.

계속해서 의식적으로 감사하지 않으면 마음은 이내 곧 비교와 불평, 불만이 가득한 지옥이 되어버리고 만다.


어디서부터 마음을 다시 회복해야 할까.

단단히 꼬이고 뭉쳐버린 목걸이 줄을 풀듯이,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이 문제를 찬찬히 풀어가 본다.


도저히 감사가 떠오르지 않을 땐 가장 기초적인 것부터 감사해 본다. 가장 당연한 것부터.

‘살아있음에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다음은 오늘 해 낸 일들 중 잘 마무리된 것을 찾아 감사해 본다.

‘신혼여행 잔금을 그동안 모아뒀던 돈으로 잘 해결해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는 앞으로 이루어졌으면 하는 일에 대한 기대감으로 미리 감사를 해본다.

‘SH 신혼부부 장기전세에 당첨이 될 것 같아 감사합니다. 만약 당첨되지 않더라도 분명 더 좋은 집을 예비해 두셨으리라 믿어요.‘


그리고 보너스로는 내 힘으로 애쓰지 않았지만 거저 주어진 것을 마주할 때마다 감사해 본다.

‘오늘 날씨가 좋아서 감사합니다. 하늘이 예뻐서 감사합니다.’


어제 출근길 에스컬레이터에서는 가난을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았다면, 오늘은 똑같은 곳에서 가난 따위가 나를 무너뜨리지 못할 거란 자신감이 생겼다.

어제는 그냥 지나쳤던 나무의 초록빛 잎사귀가, 오늘은 햇빛을 받아 유난히도 아름답게 반짝였다.


마라톤 선수처럼 긴 호흡을 가지고 감사해 본다.

마라톤 선수들은 숨이 가빠져오고 더 이상 달릴 수 없을 것만 같은 순간이 찾아올 때, 절로 움직이는 다리에 몸을 맡긴다고 한다. 그들의 몸이 연습해 왔던 것을 기억하고, 멈추지 않고 뜀으로써 완주를 할 수 있다.


감사하는 것에도 연습이 필요하다.

몸과 마음이 또다시 지쳐 무너지는 순간이 오더라도, 반복되는 연습을 통해 새겨진 감사는 나의 인생을 완주하도록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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