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든 되겠지 뭐, 다 잘 된다!
사람마다 상황을 대처하는 능력은 모두 다를 테지만 나는 보통 최악의 상황을 먼저 가정해 본다.
그리고 실제로 일어난 일이 그보다 별 것 아닌 것으로 지나가면 안도의 한숨을 내쉬곤 한다.
문제를 맞닥뜨렸을 때 최악을 가정하는 태도의 장점은 대처방법 A, B, C를 미리 생각해놓고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야 허둥지둥하지 않는다. 나중에 이렇게 할걸, 저렇게 할걸이라고 '껄껄맨'을 소환하지 않는다.
하지만 단점은 말 그대로 최악을 가정하다 보니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장을 본다는 것이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지레 겁을 먹고 '이러면 어떡하지, 저러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에 빠져 마음이 몇 날 며칠을 끙끙 앓는다.
며칠 전 화요일 오전에 예비신랑의 내시경 검사가 예약이 되어있었다. 비수면으로 진행하는 거라 보호자가 동행할 필요는 없었지만 그래도 굳이 따라나섰다. 이제는 한 식구이며, 서로가 서로의 보호자가 되어줄 것이니 그래도 내가 따라가 주면 조금이나마 든든하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병원 건물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병원이 몇 층인지 기억이 안 나 광고판을 보니 4층이었다. 엘리베이터 옆면에 있는 버튼에서 '4'를 누르고 고개를 돌려 앞을 쳐다보는 순간, 빨간 꽃무늬 옷을 입은 할머니가 닫히고 있는 엘리베이터 문에 무리하게 끼어들다가 어깨가 끼었다. 깜짝 놀라서 열림버튼을 누른 덕분에 할머니의 어깨는 엘리베이터 문으로부터 구출이 되었다.
그런데 할머니가 나를 오해하곤 큰소리로 화를 내기 시작했다.
"아니 사람이 타려는데 왜 ....."
"할머니, 저는 열림 버튼을 눌러드렸어요. 보세요, 저 계속 열림 버튼 누르고 있잖아요."
"아유 어깨야.. 내가 지금 옆구리가 아파서 병원에 가려는데.. 아유유 어깨야.. 전화번호 줘요!"
"..제가 전화번호를 왜 드려요? 저는 닫힘 버튼을 누른 적이 없어요. 열림 버튼을 눌러서 도와드린거라고요!"
평상시 큰소리를 내지 않는 나도 황당해서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평화주의 ISFP인 나에게 이런 갈등상황은 정말 당혹스러웠다.
"아니! 전화번호를 줘야 내가 병원에 가서 엘리베이터에서 다쳤다고 말했을 때 본 사람이 있다고 할 거 아녜요! 이해가 안 되세요?"
할머니는 눈을 세모낳게 뜨고서는 "이해가 안되세요?"라는 말을 두 번씩이나 하며 윽박질렀다.
아, 이걸 도와줘야 해 말아야 해.
좋게 말하면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도와줬을 나의 심성을 알 턱이 없는 할머니는 언성을 높이기만 했다.
우선 할머니가 나를 범인(?)으로 오해하지 않았으니 알려주기 싫었지만 이름과 번호를 적어드렸다.
그리고 켜켜이 쌓여온 나의 예민함 폭탄이 할머니를 성냥불 삼아 펑! 하고 터져버렸다.
'할머니가 나한테 전화해서 또 소리를 지르면서 이러네 저러네 나를 괴롭히면 어떡하지.'
'저 할머니가 돌변해서 나 때문에 다쳤다고 보험사에 진술을 해서 합의금 달라는 전화가 오면 어떡하지?'
'그럼 나는 있는 그대로 사실을 말해야겠다. 엘리베이터에 CCTV가 있나? 젠장, 없네.'
'만약 할머니가 경찰서에 가서 나를 고소하면 어쩌지? 결혼식장 들어가기 전에 경찰서 가게 생겼네.'
'CCTV도 없는데 경찰이 할머니 말만 믿고 할머니 편만 들면서 나를 범인 취급하면 어떡하지?'
안 그래도 정신없이 바쁜 요즘, 더 이상 다른 일에 신경 쓸 여유가 없는데 갑자기 마음에 큰 요동이 생기니 손쓸 새도 없이 불안함이 나를 칭칭 감싸고 옥죄었다.
예비신랑은 내가 쏟아내는 최악의 가정들을 가만히 듣다가 그런 일은 생기지 않으니 걱정 말라고 이야기해 주었지만 나는 이미 경찰서를 가는(?) 상상까지 끝마쳤기 때문에 평소에 좋아하던 뼈해장국도 그날따라 맛이 없었다. (나중에 다시 정신을 차리곤 예비신랑에게 기분 탓인지 뼈해장국도 맛이 없었다고 하니, 기분 탓이 아니라 정말로 맛이 없었다고 했다. 하하하, 다신 안 가야지.)
"메리가 보고 싶어."
나는 나의 힘듦을 차곡차곡 쌓아두었다가 메리를 보고 싶단 말로 힘들다는 말을 대신했다.
메리가 살아있을 때에도 힘든 일이 생기면 늘 '메리 끌어안고 힐링할거야.'라고 버릇처럼 말했다.
이제는 힘이 드는 순간이 올 때마다 내 힐링의 전부였던 메리가 보고 싶어 마음이 더 사무쳤다.
시험기간 대비로 지친 몸과 마음, 결혼식 준비로 인해 분주한 몸과 마음이 다 같이 터져 나왔다.
메리가 좋아하던 작은 놀이터를 걸으며 엉엉 울다가 집에 돌아와 메리 영상을 보며 목놓아 울었다.
사실 마음이 무너졌던 건 그 할머니 때문이 아니었다.
물론 할머니 때문에 당혹스럽긴 했지만 늘 최악을 가정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내 못난 버릇이 나 스스로를 더 힘들게 만들고 있었다.
지하 깊은 곳으로 땅굴을 파고 그곳에 나를 가두어 놓고선 문제가 해결되면 그제야 빼꼼 고개를 내밀고 바깥세상으로 나오는 이 지긋지긋한 사고방식.
어제는 본식 드레스를 고르러 가는 길이었는데 지하철에서 낯익은 지역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이 지역번호는 필히 아빠와 연관이 되어있는 것이리라,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아니나 다를까 OO카드 채권담당자라고 했다.
아빠가 떠나고 한정승인을 진행할 때도 나는 계속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온갖 대비책을 마련하느라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이렇게 되면 저렇게 하고, 아.. 만약 그게 잘 안되면 어떡하지?'
내 마음 한 구석에 계속 불안함으로 남아있던 그 카드사에서 드디어 오늘 전화가 온 것이었다.
"OOO님의 따님 맞으시죠? 보내주신 내용증명서랑 한정승인 판결문을 보니 적극재산이 있어서 안배해 주셔야겠는데요."
"네? 장례비 공제 후 배당할 재원이 없어 청산불가하다는 한정승인 판결을 받았는데요."
"서류에 그런 내용이 없는데요?"
"아니요.. 있을 겁니다. 다시 한번만 살펴봐주세요."
나는 심장이 가슴팍을 뚫고 터져 나올 듯이 쿵쾅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지하철 소음과 내 심장이 뛰는 소리에 휴대폰 통화 소리를 높여야 했을 만큼 심장이 빠르고 세게 뛰었다.
담당자가 서류를 다시 검토하는 그 순간에, 역시나 또 최악의 상황들을 가정하기 시작했다.
세상의 모든 불행의 화살촉이 나를 겨냥하고 있는 것만 같아 손이 덜덜 떨려왔다.
"아~ 여기 나와있네요. 네, 알겠습니다."
20초가량의 짧은 시간 동안 정말로 지옥과 천국을 다녀왔다.
"저, 혹시 그럼 문제가 될 상황은 없는 건가요?"
"네~ 관련 내용 전산에 등록해 놓겠습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자마자 그 자리에서 절로 기도가 나왔다. 눈을 감고 기도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랫동안 저를 불안하게 했던 문제가 염려했던 것보다 간단하게 잘 처리가 되었어요.'
예비신랑은 이번에도 덜덜 떠는 나를 보며 "거봐, 잘 해결될 거라고 했잖아."라고 안심시켜주었다.
걱정해서 문제가 해결되면 걱정을 일억오천만 번도 더 하겠다. 하지만 걱정은 문제를 해결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스트레스만 줄 뿐이다.
그걸 알면서도 걱정의 실타래는 나를 놓아주지 않고 내 손가락에 늘 칭칭 감겨 있다. 친구들은 이런 나를 보고 '걱정인형'이라고 말한 적도 있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매사에 걱정이 많은 것이 믿음이 작다는 걸 증명하는 것 같아 스스로를 자책하기도 했다.
나는 왜 이렇게 좁고 낡은 새장 안에 갇혀 덜덜 떨기만 하는 걸까.
나에게는 날개가 있으니 새장 문을 열고 나가 날개를 펼치기만 하면 된다.
세상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모든 일은 어떻게든 해결이 된다. 다 방법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세상의 모든 문제보다 더 크신 그분을 나는 진심으로 믿는다.
그분은 간장종지처럼 작고 여린 내 마음을 정금같이 단단하게 빚어내시고 계신가 보다.
그렇다면 세상에 '걱정'하고 '염려'하고 '불안'해 할 일이 하나도 없다.
지금까지 걱정했던 일들을 꾸역꾸역 꺼내어보면 일어나지 않은 일들이 더 많다.
걱정하던 일이 일어났더라도 생각보다 가볍게 해결되어 지나간 일이 '억수로' 많다.
마음 훈련, 이라는 브런치 북의 제목을 정해놓고서 정말 고치고 싶었던 고질병을 드디어 고쳐낸다.
최악을 먼저 생각하느라 걱정과 불안에 빠져 허우적거리기 싫다.
최악도 최선으로 바꿀 수 있는 그분을 믿으며 앞으로 담대히 걸어 나아간다.
걱정이 들어찬 자리에 기대를, 불안을 머금은 마음엔 기쁨을.
최악을 가정하지 않아도 모든 일은 결국 잘 해결되고야 만다는 것.
생각의 꼬리를 잘라내고 나의 기분과 마음을 평온하게 잘 유지하는 것.
자고 일어나면 아무것도 아닐 일 때문에 소중한 하루를 망가뜨리지 않는 것.
1%의 불안한 마음으로 인해 99% 퍼센트의 잔잔한 마음에 돌을 던지지 않는 것.
오랜 시간 스스로를 가두어온 못난 버릇의 새장 문을 삐그덕 연다.
새장 문 앞에서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몸을 한 번 부르르 턴다.
날개를 쭉 펴고 힘차게 날아오른다.
'어떻게든 되겠지 뭐, 다 잘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