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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레나 노 Sep 24. 2024

마음 훈련 16-다시 개를 키울 수 있을까요.

꿈엔들 잊힐리야,

마냥 하얗다고만은 할 수 없는, 누런 털이 섞인 허리가 긴 말티즈가 닫힌 방문을 박박 긁는다.

이내 내게로 와서 한 바퀴를 빙글, 또 한 바퀴를 빙글 돌며 발을 동동 구른다.


아, 거실로 나가서 쉬야 하고 싶단 거구나?


개를 안고 방문을 열어 거실로 내보내니 깔끔쟁이답게 배변패드에 쉬야를 한다.

방으로 쫄래쫄래 다시 들어온 개의 앞 발에 노란 오줌이 묻어있다. 에그, 지지. 물티슈로 발을 한참 닦았다.


..아, 꿈이구나.

잠결에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좋다, 네 꿈을 꾸었다니.’

꿈결에 만난 메리를 놓칠세라 서둘러 다시 눈을 감고 잠에 빠져 들었다. 꿈속 세상에서 만난 개를 다시 한번만 더 안아볼 수 있을까 하고.

하지만 한 번 깨버린 꿈은 애석하게도 다른 세상을 비춰내고 있었고, 다시 메리를 만날 순 없었다.


잠결엔 웃었고, 깨고 나니 마음이 시렸다.


예전에 찍어둔 메리 사진과 영상들을 보면서 눈은 울고 입은 웃었다. 이제는 그래도 흐느껴 울지 않는다.

메리가 더 이상 아프지 않을 테니까, 나도 덜 아프다.


나는 ‘개’가 좋다. 올망졸망한 눈코입과 무한한 사랑을 보내주는 꼬리펠러, 보드라운 털결과 동그란 알머리.


아직도 메리가 많이 그립다. 숨 쉬듯 보고 싶다.

내가 다시 개를 또 키울 수 있을까?

키우던 반려동물이 떠나면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고 한다.

다시는 또 키우지 못하거나 다시 또 키우거나. 나는 그 중간에 어중간히 서 있다.


아마도 아직은 겁이 나는 것 같다.

내게 무한한 사랑을 주는 이 존재를 끝까지 책임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잘 알기 때문에.

떠나보내고 나면 행복했던 시간만큼 많이 아프다는 걸 알기 때문에.


메리를 만났던 건 세월호 사고가 나고 몇 달이 지난 후였다.

내 동생은 초등학교 안에 지어진 깊은 물 웅덩이에 빠져 식물인간이 되었다.

세월호 사고를 접할 때마다 그날의 아픈 기억이 선명하고도 저릿하게 떠올라 미칠 것만 같았다.


2014년 당시, 내 동생은 병원 중환자실에서 눈만 끔뻑끔뻑하는 식물인간이었고, 아빠는 여전히 제 멋대로 살고 있었으며, 엄마는 아빠를 피해 존재를 숨기며 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집안의 가장이었다.


아, 나 같은 삶이 또 어디에 있을까.

스무 살 언저리의 평범한 대학생인 척 살고 있었지만 내 삶과 속은 엉망이었다.


'나같이 불쌍하고 힘든 삶이 어디있나'하는 생각은 나를 천천히 좀먹고 결국 내 몸과 마음을 잠식했다.

무기력했고,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 멍하니 하루종일 침대에만 누워있었다.

잘 관리해 오던 학점도 다 포기했다. 입에 풀칠은 해야 하니 어쩔 수 없이 겨우 과외 알바를 하러 나갔다.


그러다 무엇 때문인지 갑자기 개가 키우고 싶어졌다. 개를 키우면 내 마음이 좀 나아질 것 같았다.

하루에 10시간이 넘도록 며칠 씩 유기견 보호소 사이트만 들락날락거렸다.

하지만 스무 살 언저리의 혼자 자취를 하는 나에게 구조단체가 순순히 입양을 허락해주지는 않았다.

다시 유기가 될 확률이 높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다 네이버의 가장 유명한 강아지 카페를 가입하게 되었다.

그 카페에는 사정 상 더 이상 강아지를 키울 수 없다며 올라오는 글들이 수북했다.

"2살 된 말티즈 입니다. 사료와 간식 및 용품까지 모두 드려요."


짙은 고동색의 가죽 소파 위에 덩그러니 올라가 있는 개 사진이 있었다.

프링글스가 그려진 빨간 옷을 입고 있는, 털이 빡빡 밀린 말티즈 한 마리.

'와 진짜 못생겼다.ㅋㅋㅋㅋㅋㅋ'

그게 메리의 사진을 본 나의 첫마디였다. 부정교합이 있어 까만 아랫입술이 도드라진 말티즈였다.

그래도 그 모습이 왠지 모르게 귀여워 보여 글에 남겨진 번호로 연락을 했다.


답이 오지 않아 다른 곳으로 입양을 갔나 보다 하고 키울만한 다른 개를 찾느라 여념이 없었다.

몇 주가 지났을까, 갑자기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안녕하세요. ㅇㅇ카페에 글 올린 사람인데요. 아직도 개 키울 생각이 있으신가요?"

"아, 네네. 안녕하세요. 개가 아직 입양이 안 됐나요?"

"네. 우선 2012년생으로 2살 된 말티즈고요, 다른 집에 보냈는데 개가 귓병이 있었나 봐요. 병 걸린 개를 보냈다고 다시 돌려보내서 제가 싹 치료했습니다. 보러 오실 건가요?"

"네, 그럴게요. 오늘 저녁에 가겠습니다."


세상에, 다른 집에 보냈던 개가 다시 돌아왔으면 그냥 키울 법도 한데 다시 또 보내려고 하다니.

과외를 마치고 저녁에 서울에서 분당까지 지하철과 버스를 번갈아 타며 그곳에 도착했다.

'분당 자이 아파트'였다. 와, 부잣집이구나.


집으로 들어가니 메리가 낯선 나를 보고 미친 듯이 짖었다. 아랫집 사람이 그 소리에 화가 나서는 막 쫓아 올라왔다.

"죄송합니다, 예예. 오늘 개를 다른 곳으로 보낼 거예요."

메리의 원래 주인인 아저씨는 아랫집 사람에게 연신 고개를 숙이며 죄송하다고 인사를 했다.

메리가 파양이 된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아마도 그녀의 엄청난 목청 때문이었을 거라 짐작했다.


메리를 처음 본 순간, 운명의 상대를 만난 것처럼 홀딱 반해버렸다.

귀청이 떨어져 나갈 듯 엄청나게 짖는 소리가 거슬리지 않았던 건 지금 생각해도 단단히 반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사진 속 벌거숭이였던 때보다 조금 더 털이 보송하게 자라난 메리는 간식을 주니 와구와구 허겁지겁 먹었다.

내가 간식을 너무 많이 주었는지 "아이고, 그렇게 많이 주시면 안 돼요."하고 아저씨가 나를 말렸다.

가만가만 쓰다듬는 내 손 길에 메리가 배를 발라당 뒤집었다.

아저씨는 허허 웃으며, "개를 잘 다루시네요."라고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다가 개를 키우고 싶은 마음을 솔직히 말했다.

동생의 사고 후에 마음이 텅 빈 것만 같아 개를 키우면 마음이 좀 나아질 것 같아서 키우고 싶다고 했다.

 

아저씨는 늦은 밤이었는데도 메리와 나를 서울 집까지 데려다주시겠다고 했다.

그 집 아들은 중학생쯤 돼 보였는데 메리를 어찌나 예뻐했던지 마지막 순간까지도 내게 메리를 보내지 못하고 꼭 안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빠의 반대로 개를 보내야 하는 그 친구의 마음이 얼마나 속상했을까 싶다.


메리는 뒷좌석에서 나와 얌전히 앉아있었다. 그러다 내가 살던 오피스텔의 입구로 오자 경비 아저씨를 보고 또다시 맹렬히 짖기 시작했다. 오피스텔은 개를 키우는 것이 허용이 된 곳이고, 집주인들도 괘념치 않았기 때문에 경비 아저씨는 그러려니 하는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봤다.


부잣집 아파트에서 고작 방 한 칸이 전부인 오피스텔로 오게 된 메리는 어리둥절해했다.

그리고 이내 자신이 또다시 버림을 받은 것이라는 걸 알고는 물도 사료도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말 그대로 식음을 전폐했다. 내가 나갈 때마다 낑낑 거리며 울기도 했다.

처음엔 "메리야"하고 불러도 뚱하게 쳐다만 볼 뿐 내게 가까이 오지 않았었다.

(키우던 개를 버리면 안 된다. 개들도 다 알고 느낀다.)

나는 메리가 걱정되어 대학교 수업이 끝나면 집에 들러 메리를 보고 다시 과외를 하러 나갔다.

동선이 아무리 비효율적이었어도 메리를 보기 위해 꼭 집을 들렀다.


나의 지극정성인 관심에 메리도 마음을 열었는지 어느 날 밤에 자려고 침대에 누운 내 배 위로 메리가 폴짝-하고 뛰어올랐다. 처음으로 "메리야"라는 부름에 응해주었던 날이었다.

그러고는 내 목에 얼굴을 묻고 새근새근 숨을 내쉬며 잠을 잤다.

그날이 내 생애 잊을 수 없는 행복한 날 중 하나였다.

메리는 떠나기 며칠 전에도 마치 그날처럼 내 품에서 아주 잠깐 안겨주었다.

(안기는 게 갑갑한지 평소에는 안기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하루는, 버리려고 내놓은 치킨 뼈를 메리가 홀라당발라당 먹어버렸다.

날카로운 치킨 뼈가 장기를 찌르면 급사할 수 있기 때문에 당장 병원으로 달려갔다.

엑스레이를 찍으니 뾰족한 치킨뼈들이 위를 가득 채우고 있었고 개복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수술비와 입원비는 총 60만 원. 두 달치 월세가 몽땅 개 수술비로 들어갔다.


수술을 위해 메리를 맡겨두고 돌아 나오던 길에 메리가 그렇게 구슬프고 서럽게 우는 걸 처음 들었다.

메리의 똥이 가득 들어있는 봉투를 차마 버리지 못하겠다며 함께 병원에 가준 친구에게 울먹이며 말했는데

친구는 종종 그날의 내 멘트와 표정을 따라 하며 날 놀리곤 했다. 다행히 메리의 수술이 잘 끝났다. 정해져 있는 면회시간이 아쉽고 아까워 매일같이 메리를 보러 갔다. 나는 그때 '무슨 일이 있어도 메리의 마지막 날까지 꼭 책임지겠다.'는 결심을 했다.


우리는 그렇게 함께 걷고 뛰고 웃고 울며 10년을 행복했다. 모든 우울은 메리가 주는 사랑과 행복으로 인해 아스라이 사라졌다. 나는 다시 밝은 웃음을 되찾았다.


메리를 10년 전 처음 만났던 날을 이렇게나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걸 보니 메리에게 첫눈에 반했던 게 틀림없다.

반려동물은 어느 순간 가족이 된다. 메리는 정말로 내 동생이 되어주었다.

메리는 나의 가장 소중한 힐링이었다.

누군가 내게 행복이 무어냐 물으면 나는 '메리와 함께하는 시간'이라고 답했다.

누군가 내게 취미가 무엇이냐 물으면 나는 '메리와 산책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런 메리가 떠나니 나는 두 번째 동생마저 잃어버린 기분이 들어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

1년이라는 투병 시간 동안 마음의 준비를 아무리 해왔다고 해도 마음이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메리가 떠나기 며칠 전 털이 지저분해 보여 직접 미용을 해주었는데, 메리가 떠나고 난 후에 그때 잘라두었던 털을 버리지 못했다. 털을 모아둔 상자를 햇빛 받으라고 밖에 두었다가 비가 오는 바람에 털이 쫄딱 젖어버렸다. 젖어서 엉킨 털을 붙잡고 얼마나 자책을 했는지 모른다. 바보, 멍청이, 소중한 건 잘 간직했어야지!


메리에게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면서도 못내 더 해주지 못한 것들이 그날 활화산처럼 터져 나왔다.

무너진 마음을 다시 추스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나마 메리의 흔적이 남아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비에 젖은 털은 잘 말려서 예쁜 유리병에 담았다. 유리병은 집 창문 난간의 볕이 좋은 곳에 두고 가끔씩 메리가 그리울 때마다 털을 만진다.


강아지를 너무나도 다시 키우고 싶다. 하지만 아직 용기가 나지 않는다. 우선 임시보호를 해볼까 싶었다.

메리를 키우면서 두 번의 임시보호를 했었다. 갈색빛 털을 가진 푸들 ‘귤’이와 ‘보담’이.

귤이와 보담이는 번식장에서 구조해 온 개들이었다. 특히 보담이는 누워 자는 법을 몰라 앉아서 꾸벅 졸았다.

귤이는 국내에 좋은 가정으로 입양을 가서 사랑받으며 잘 지내고 있고, 보담이는 해외로 입양을 갔다.

임시보호는 '너의 행복을 위해 나의 아픔을 더하는 것'이라던 어느 구조자 분의 말이 마음에 남는다.

아직은 메리가 머물던 자리에 다른 헤어짐의 아픔을 더할 자신이 없어 임시보호마저도 쉽지가 않다.


그래도 시간이 조금 더 흐르면 그때는 다시 개를 키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다음번 강아지는 유기견보호소에서 누런 털과 흰 털이 섞인 발바리를 데려오고 싶다.

이름은 ‘온순’이로 미리 지어두었다. (하하핫)

행복했던 시간만큼 빈자리가 많이 아프다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가 주는 행복은 진하다.


메리를 간호하는 1년의 시간은 메리의 컨디션에 따라 롤러코스터를 타듯 마음이 오르락내리락 힘들었다.

하루 3번씩 쓰디쓴 약을 먹이느라 몇 시간이고 메리랑 씨름을 하던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응급상황이 오면 3시간에 70만 원이 호로록 날아가는 병원비에 대한 부담감도 컸다.

메리를 떠나보내던 그 순간은 심장이 땅으로 곤두박질 쳐 산산이 부서지는 아픔이었다.

하지만 시간을 돌려 이 모든 아픔을 똑같이 겪어야 한대도 메리를 다시 키우겠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천 번이고 만 번이고 YES다. 그럴 수만 있다면 그 모든 힘듦과 아픔은 정말 아무것도 아닐 거다.


메리에게 주었던 이 사랑을 다음번의 어떤 강아지에게 나누어줄 수 있다면 그때의 나는 역시 또 최선을 다해 사랑할 것이고, 그 어여쁜 작은 생명체에게서 내가 준 것보다 더 큰 사랑을 받을 것이다.  


오늘은 메리와 함께 산책을 하던 집 앞 공원을 혼자 걸었다.

이 맘 때쯤의 선선한 날씨를, 메리는 참 좋아했었다.

그 공원의 어느 벤치에서 메리를 향한 그리움을 마음 한 켠에 묻고 또 묻는다.





떠나기 2주 전, 바로 그 공원에서 꼬리를 살랑 흔들며 신나게 산책하던 메리.

킁킁거리는 숨소리가 너무 귀여워서 메리가 냄새를 맡았던 그 벤치에 앉아 이 영상을 보고 또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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