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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레나 노 Sep 21. 2024

마음 훈련 15-연락이 어려운 소심이는 웁니다.

모바일 청첩장, 세계 3대 난제.

바야흐로 그때가 도래했다.

‘청첩장 돌리기.’


평소 자주 연락하고 지내던 친구들과 가까운 지인들에게는 식사를 대접하며 청첩장을 건넸다.

받는 이들이 봉투를 열고 청첩장을 꺼냈을 때 미소 지었으면 좋겠다는 자그마한 바람이 있었다. 모두들 내 바람에 응답하듯, 우리와 비슷한 모습을 한 귀여운 일러스트가 그려진 청첩장을 보며 미소를 보내주었다.


먼 거리에 살아 청첩장을 직접 줄 수 없는 친한 친구들에게는 우편으로 보냈다. 배달의 민족 기프티콘과 함께. ‘우리 사이에 뭐 이런 걸 보내냐’는 말이 돌아왔지만, 나는 ‘우리 사이’이기 때문에 더 보내고 싶다고 했다. 소중한 사이일수록 더 챙겨주고 싶었으니깐.


한 때는 체면치레 때문에 친하지 않은 주변 사람들을 챙기느라 여념이 없었다.

정작 소중한 사람들은 ‘이해해주겠지.’ 라고 생각하며 뒤 편으로 두고서.

지금 생각하면 헛된 일인가 싶다가도, 사람 인연은 어찌 될지 모르니 좋게 마무리 짓길 잘했단 생각도 든다.

하지만 나이가 들 수록 진짜 내 편인 사람들을 더욱더 잘 챙기고 싶어졌다.

내가 놓으면 놓아질 사람들을 애써 챙기는 일은 그만하기로 했다.


현재진행형인 청첩장 돌리기 보다도 더 어려운 모바일 청첩장이라는 난제가 남아있다.

세계 7대 불가사의 같은 세계 3대 난제, '모바일 청첩장. 누구에게까지 보낼 것인가.'

올해 1월에 먼저 결혼한 한 친구가 모바일 청첩장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보내야 할지 고민이라고 했었다.

그 친구는 모바일 청첩장을 보냈을 때 상대방의 반응이 어떨지 걱정이 된다고 했는데 나는 매우 공감했다.


'살다보니 바빠서 연락을 자주 하진 못해도 서로 좋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지인들에게는 어떻게 해야하지?'


이 고민을 지켜보던 다른 친구가 ‘어떤 반응을 하던 그건 그 사람의 선택이야. 마음 쓰지 말고 일단 그냥 보내.’ 라는 조언을 해줬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모바일 청첩장을 돌려야 하는 시기가 되었다. 나는 '소심이'답게 마음이 착잡해졌다.

마음 같아선 다 식사 대접을 하고 싶은데 그러기엔 시간적 금액적 제약이 있지 않은가. 게다가 상대방도 식사까지는 부담스러워 할 수도 있는 일이다.


모바일 청첩장 화면을 만지작만지작 거리며 망설였다. 마치 시골 소년이 전학 온 도시 소녀에게 편지를 전하지 못하고 그 주위만 맴맴 도는 것처럼, 나도 카카오톡에 떠 있는 그들의 이름 주변을 한참 맴돌았다.


친구 목록은 389명,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이 숫자 속에서 내내 헤엄치듯 고민을 하고 또 고민을 했다.

아주 연락이 끊긴 사람들과 연락하기는 멋쩍은 옛 직장 상사들과 제자들, 교회 사람들을 빼면 사실 몇 없다.

연락이 뜸했지만 결혼 소식을 알려야 할 것 같은 지인들에게는 모바일 청첩장을 핑계로 안부인사만 삐죽 하기는 어려운 마음이었다. 소박하지만 커피에 조각 케이크라도 함께 보내며 결혼 소식을 전하는 건, 내 마음이 편하고자 택한 방법이었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반갑게 맞아주는 축하 인사들로 가득해 연락하길 잘했다는 흡족한 마음이 든다.


단 한 명, 막내 작은 엄마를 제외하고.

막내 작은 엄마는 어째서인지 나를 그다지 예뻐하지 않았다. 막내 작은 엄마와 우리 집은 딱히 왕래할 일이 없었다. 며칠 전 추석에 인사를 드리기로 했던 때에도 막내 작은 엄마는 자리에 나오지 않았다. 20년 만에 엄마를 만나기로 한 셋째 작은 엄마가 설레는 마음으로 막내 작은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둘째 큰 형님은 두세 번 밖에 뵙질 않아서요." 라고 떨떠름해했다는 말이 들려왔다. 그래도 예의를 지키고자 모바일 청첩장을 보내드리며 안부를 여쭈었는데 그마저도 '읽씹'을 당했다.


오호라, 통재라. 상대의 반응에 민감한 나로서는 은근히 신경 쓰이는 일이었다.

친구도 아니고, 지인도 아니고, 친척 어른의 이런 반응은 당황스러운 일이지만 '사람' 대 '사람'으로 생각하자면 그럴 수도 있을 거라고 이해하기로 했다.

결이 맞지 않는 사람과 굳이 해야 하는 연락은 참 어렵고도 불편한 일이다.


마음 편히 연락하는 일이 어렵다고 느낀 건 언제부터였을까.

아마도 상대방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들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처음으로 '연락'에 대해 마음이 어려웠던 순간은 스무몇 살 언저리의 밤이었다.


늦은 밤 과외를 마치고 자취하던 원룸으로 돌아가던 날이었다.

하루도 쉬지 않고 과외를 4-5개씩 하며 돈을 벌던 때였다. 내 상황을 모르는 동아리 친구는 ‘돈독이 올랐다.’고 했었고, 고향 친구는 ‘돈 많이 버니 좋겠네.’라고 했다. 나의 힘듦이 그들에겐 부러움이었다.

그들은 아무것도 몰랐다.


나는 정말로 돈이 없었다. 아빠는 여전히 도박에 빠져 있었고, 엄마는 식물인간인 동생을 돌보느라 일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대학 입학을 위해 서울로 올라오던 날, 경제적인 독립을 강제적으로 하게 되었다.

내 통장엔 고작 몇 천 원이 전부였고, 과외 알바를 구하기 전까진 컵라면을 겨우 사 먹었다.


그렇게 치열하게 살던 어느 날, 동생이 입원해 있던 병원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동생의 병원비가 몇 달 동안 밀려있다는 얘기였다. “그럴리가요? 동생 병원비는 정부에서 지원받는 금액을 자동이체로 지불하게 해두었는데요.” 알고 보니 그 돈을 아빠가 도박장에 홀랑 털어다 놓는 바람에 동생 병원비가 밀려있던 것이었다.


미칠 노릇이었다.

대학 등록금은 다행히 장학금으로 해결했지만 생활비에 더해서 동생 병원비까지 벌어야 한다니.

결국 수업이 끝난 평일에도, 쉬고 싶던 주말에도 과외와 학원 파트타임으로 돈을 벌었다.


유난히 마음이 지치고 힘들어 누군가에게 그 마음을 털어놓을까 싶었다. 한참을 핸드폰 연락처를 뒤적거려도 마땅히 전화를 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아니, 있기는 했다. 내가 전화를 걸면 얼마든 반갑게 전화를 받아줄 친구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부담을 주기 싫었다는 게 문제였다. 내가 지고 가는 무거운 마음을 꺼내 보였다가 괜스레 상대의 마음도 무거워질까 봐 조심스러웠다.


이런 고단함을 털어놓아도 현실은 바뀌지 않으니, 누군가에게 힘들다고 투정을 부리는 것 마저 체력을 쏟는 일로 여겨졌다. 용돈을 받는 친구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봤자 나만 초라해지는 기분이었다.

체념과 푸념을 섞어 친구들에게 떠들고 나면 이야기가 끝날 즈음엔 피차간에 감정적으로 피로해지는 것만 같아서 내 속마음을 진솔하게 털어놓는 일을 멈췄다. 어쩌면 '소심해서'가 아니라 '부담을 주기 싫어서'였던 것 같다.


나이가 들면서는 누군가와 연락을 할 때 느끼는 마음의 부담감이 더욱 심해졌다. 체력적으로 피곤해지니깐 마음도 몸을 따라 쉽게 예민해지는 듯했다. 내가 하는 연락이 혹시라도 상대에게 부담이 될까 봐 멈칫거리다 멋쩍은 마음 따라 세월은 흘렀다.


‘시절 인연.’

한 때는 죽이 척척 맞던 인연도 시절이 지남에 따라 불가항력적으로 멀어지곤 한다는 뜻의 단어다.


‘잘 지내? 오랜만에 생각나서 연락했어.’ 라는 말 뒤에는 <종교 권유, 보험 가입, 결혼 소식 아님>을 덧붙이는 게 미덕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하필 나는 '결혼 소식 아님이 아니라' 더 떨리는 마음이다.

왜 이리 연락하기가 어려운 걸까. 반대로 생각해 보면 나는 오랜만에 오는 모든 연락을 다 반갑게 맞이했다. 강아지가 꼬리풍차를 돌리듯이 아주 반갑게 답했다. 짐짓 나의 반응에 상대가 '괜히 연락했다'는 마음이 들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꼬리를 흔들었다.

하지만 늘 내 마음과 같은 사람만 있는 건 아니니까, 아마도 상대방이 나만큼 내 연락을 반가워할까에 대한 두려움과 그로 인해 상처받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이겠지. (아, 이건 소심이 맞는 것 같다.)

9명이 반갑게 맞아주어도, 막내 작은 엄마 같은 단 1명의 차가움이 마음에 더 시리게 남을지도 모를 일이니 말이다.


청첩장을 돌리면서 또는 결혼을 하면서 관계가 많이 정리되는 것 같다는 결혼 선배님들의 말이 이제야 얼추 이해가 된다. '나와 당신이 서로 생각하는 마음의 거리가 이정도였군요.' 를 확인하는 과정인 것만 같아서 떨리긴 하지만, 내 주변에는 좋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다시 한번 떠올려본다.

모바일 청첩장을 보내지 않고 카톡 프사를 쓱 바꾸었을 때, 왜 말을 안 했냐고 서운해할 그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마음을 넘겨짚으면서까지 신경 쓰지는 말자. 우리의 인연의 선을 내 마음대로 정하지 말아 보자. 혹시라도 나와 멀찍한 거리를 유지하고 싶은 누군가가 있다면 우리의 인연은 그 시절까지였던 것으로 생각하면 될 일이다, 아쉽겠지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은 마음과 서운하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 사이의 묘한 시소 타기.

내 마음은 어느 한쪽으로 기울고 있다.


'오랜만이야. 잘 지내지? 나 결혼을 하게 되었어! 부담을 줄 순 있지만 혹시라도 나중에 알게 되면 서운 할까 봐 서운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연락했어. 진작 연락했어야 했는데 미안해. 부담 갖지 않아도 괜찮고, 식장이 머니까 못 와도 괜찮아! 그냥 결혼을 핑계 삼아 오랜만에 너에게 연락하고 싶었어. 어떻게 지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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