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진정 여행을 좋아했던 것일까?

by 호접몽


살면서 중요한 시기에 나를 일으켜 세운 것은 여행이었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 집 안에 있기보다는 여행 중인 경우가 많았다. 새로운 결심을 해야 할 때도, 지치고 힘들어 번아웃 상태에서 삶의 의욕을 되살리고자 떠난 것도 여행이었고, 모든 순간 여행이 나를 살렸다. 그렇다고 믿고 살았다, 지금까지는.



그런데 코로나 19로 여행은커녕 주변마저 돌아다니기 조심스러워지자 나는 아예 집에서 책을 읽거나 블로그를 하는 시간이 늘었고, 이 시간이 돌아다니는 여행보다 편안하고 의미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먼저 요즘에는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원 없이 읽는다. 내 평생 이렇게 책에 탐닉했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그동안 시간이 없다며 못하던 것들도 척척 해내고 있다. 행복한 마음으로 말이다.



이쯤 해서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나는 정말 여행을 좋아했던 것일까?'




얼마 전, 어느 간호사의 번아웃 극복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나를 돌보는 법을 잊어버린 나에게』를 읽다가 그제야 진지하게 여행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이 책의 프롤로그를 읽으며, 나는 내 얘기인 줄 알았다. 그만큼 그 마음이 너무나도 이해가 되는 것이었다.



암으로 아빠를 잃은 저자는 남편을 잃은 엄마의 슬픔이 더 클 거라는, 즉 슬픔의 차이가 있다는 착각 속에서 자신의 슬픔은 온전히 수용하지 못하고 꽁꽁 묻어 둔다. 그러면서 점점 씩씩한 척, 당당한 척, 괜찮은 척하면서, 참고 견디며 자신의 감정을 외면하고 살았던 것이다. 그렇게 누적된 것이 어느 순간 뻥 터져서 번아웃으로 커다란 구멍이 남아버린 것일 테다.






무엇을 해도 만족하지 못하는 마음, 불안한 마음, 두려운 마음이 도대체 어디서 온 걸까? 나는 내 안의 물음들이 올라올 때마다 새로운 환경에 가면 답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새로운 곳에 가서 찾아도 그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나는 그렇게 열심히 제자리를 빙빙 돌고 있었다.

『나를 돌보는 법을 잊어버린 나에게』 51쪽







저자는 기회가 되면 어디든 상관없이 멀리 떠나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그 당시 여행이란 낯선 경험을 통해 성장하는 진정한 여행이 아닌 현재를 벗어나기 위한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어쩌면 내가 번아웃에 시달렸던 것은 바로 내가 내 마음을 들여다보지 않았던 것 때문이었고, 그럴 때 여행을 찾은 것은 그저 현실도피의 일환이었을지도 모른다.



'현실도피'라고 쓰고 보니, 무언가 서글픈 감정이 끓어오른다. 그게 최선이었냐며 과거의 나를 부정하는 듯 마음 한켠이 아려온다. 사실 지금도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 앞에서 나는 설레는 것이 아니라 당황하니 말이다.



오늘은 좀 더 근원적인 부분에서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다. 나는 정말 여행을 좋아한 것이었냐고, 왜 그렇게 여행을 하고 싶었던 것이냐고. 한참을 생각에 잠긴다. 과거의 내가 답한다. 그 당시에는 그게 최선이었다고. 그래서 삶의 의미를 찾고 힘을 얻어서 살아간 것 아니었냐고 말이다. 한때 나에게 여행은 삶의 활력소였다. 진심 그랬다.



어쨌든 지금은 여행을 '했다 치고' 일상을 여행처럼 바라보는 눈이 필요한 때이다. 나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큰일이 있었고, 그 이후에는 다시 찾은 일상에 익숙해져 여행의 기억이 전생처럼 아득하지만, 시간이 더 흐르면 그마저도 희미해져버릴까 봐 두려워진다.



그 옛날 판도라의 상자를 열던 그 마음과 소설 『신세계에서』에서 1,000년 후 신세계에서 금단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는 그 마음처럼, 여행을 해서는 안 되는 이 시기여서 그런지 금기의 문을 여는 듯한 생각이 든다. 두려움인지 설렘인지 모를 감정이 나를 휘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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