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충동적으로 여행을 결심하고 비행기 티켓을 끊고 나면, 그때부터 가슴이 방망이질을 하며 두근댄다. 설레는 건지, 두려운 건지, 어떤 마음에서인지는 모르지만 한동안 붕 떠있는 기분으로 D-Day를 기다린다. 티켓팅부터 여행의 시작이고, 여행을 준비하고 정보를 얻으면서 이미 마음은 그곳에 향해있다. 드디어 출발!
솔직히 나에게는 여행 징크스가 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방을 너무 깨끗이 치우면 안 된다. 불안했다.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와서 정리할 수 있도록 책상 위의 책 한 권이라도 비뚤게 놓아야 안심이 되었다. 그것은 첫 여행을 다녀온 때부터 줄곧 이어져 온 습관이다. 여행을 즐기는 만큼 두려움이 컸다. 모 여행작가는 길에서 객사하는 것을 소망한다지만 나는 길에서 잘못되는 건 죽어도 싫었다. 겉으로는 대범한 듯하면서도 속으로는 소심한 무언가가 있다. 그 조심성이 지금껏 나를 살려왔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가끔은 필요 이상으로 너무 조심스럽다는 생각도 든다.
두근두근 설렘 반 걱정 반 고민 가득한 시간은 비행기가 착륙하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라진다. 무사히 착륙했으니 말이다. 안내방송을 해줄 때에 곧바로 현지시간으로 시곗바늘을 돌려놓는 것부터 여행의 시작이다. 공간이 바뀌고 시간마저 달라지니 진정 다른 곳에 와 있다는 느낌이다.
오늘은 여행을 할 때 하게 되는 것들에 대해 떠올린다. 매일매일 해가 뜨고 지지만, 평소에는 잘 안 쳐다보던 일출과 일몰에 관심이 많아진다. 해 뜨는 풍경을 바라보며 새로운 희망을 품기도 하고, 해지는 풍경을 바라보며 지금까지 지나온 시간을 되짚어보기도 한다. 여행지의 들뜬 기분으로 희망을 갖고, 차분한 마음으로 과거를 정리하는 데에는 일출과 일몰이 제격이다.
잘 알려진 맛집보다는 아무런 정보 없이 느낌 가는 대로 들어가 보는 것을 선호한다. 발길 닿는 대로 가보는 거다. 나만의 맛집을 만들 속셈이었지만, 이탈리아에서는 들어가는 곳마다 실패하고 속이 뒤집어져서 중국음식으로 연명한 적도 있다.
파리 여행에서 골목길을 걷다가 지치기 직전, 눈앞에 보이는 카페에 들어가서 커피 한 잔으로 나를 달래기도 했다. 사실 커피는 맛없었다. 커피보다는 그곳의 분위기를 맛보는 심정이었다.
어느 곳에 여행을 하든 꼭 가는 곳은 현지 시장, 기차역, 도서관이다. 시장에 가면 활기찬 삶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숙소에서 과일을 종류별로 시식하는 소소한 행복은 덤. 기차역에서 어디론가 향하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상상하는 것도 삶의 활력을 느끼는 방법이다. 이들의 움직임을 보며 살아있는 에너지는 느끼게 되니 말이다. 도서관에 들어가 보면 미래를 향해 달려가는 젊은 혈기를 느낄 수 있다.
'나에게 엽서 부치기'도 괜찮은 방법이다. 예전에는 다른 사람에게만 보냈지만, 그렇게 하면 나에게 남는 여행지의 추억은 없어지니, 나에게도 하나 보낸다.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렇게 하면 여행 후에 집에 돌아와서 뜻밖의 선물을 받는 듯한 기쁨이 있으니 해볼 만하다.
여행 징크스 하나 더! 샅샅이 살펴보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다시 그곳에 왔을 때 볼 것 하나쯤은 남겨 둔다. 그래야 또 와야겠다는 명분이 생기니까. 그렇게 또 갈 기회를 만들기도 하니까. 그렇게 남겨둔 곳들이 언젠가 갈 수도 있겠다는 희망이 된다.
그리고 또 뭐가 있을까? 마냥 부푼 꿈을 꾸어본다. 여행을 떠올리면 너무나 아득한 과거로 시간여행을 하는 듯하다. 어느 미래에 또 여행을 할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힘든 상황이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나만의 여행법을 정리해두고 여행을 꿈꾼다면, 그 꿈들이 모여서 언젠가는 이루어질 때가 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