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어본 자가 맛을 안다
맛있는 녀석들, 그들이 앉은 식당 테이블은 비좁아 답답하고, 음식을 담은 그릇은 야박하게 작아 보였다. 그러다 깨달았다. 김프로, 문 선생, 민경장군 그리고 최애 이십끼형의 덩치는 보통을 넘고, 테이블이나 그릇은 충분히 크다는 걸.
맛있는 녀석들이 펼치는 상황극과 말잔치는 대단했다. 종합예술이었다. 국자로 한 입을 가뿐히 먹는 녀석, 먹는 방법을 수없이 파헤치는 녀석, 주문을 잘하는 녀석, 먹방에 1시간 20분짜리 개콘을 욱여넣는 녀석이 있었다.
먹방도 먹방이지만 그들의 어록은 심신을 안정시키는 아로마 테라피이자 소화를 촉진하는 활명수였다. 손바닥만 한 암기노트에 적어 슬프거나 우울할 때 한 번씩 들쳐보자. 잠시 잠깐 배시시 웃게 될 것이다.
김준현
오장육부 중 유일하게 위장은 뇌에서 관여한다. 더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늘어난다.(위장복음 1장 2절)
내 손 가는 곳이, 먹길이니라.
이유 없는 반찬은 없다.
케첩은 지우개를 찍어 먹어도 맛있다.
문세윤
혀는 제3의 손이다.
부먹 찍먹 고민할 시간에 하나라도 더 먹어라.
반찬이 짜다고 불평하지 말고 밥을 더 먹어라.
김민경
아무리 먹어도 배는 터지지 않는다.
유민상
돼지라고 놀리지 마라.
너는 한 번이라도 맛있었던 적이 있었느냐.
- 생선구이편, 가시 모티프 송
잔가시 잔가시 잔가시야 (이상은 담다디 버전)
하나부터 열까지 다 널 위한 잔가시 (아이유 잔소리 버전)
여보 안녕히 잔가시게 (김광석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버전)
가시처럼 깊게 박힌 기억이 (버즈 가시 버전)
놀라야 웃음이 나오고, 놀라는 것은 한 번뿐이다. 그래서 코미디는 가차 없이 찰나적이다. 농담만큼 금방 낡아 버리는 것도 없다. <캐시 박 홍 지음, 마이너 필링스>
그날, 그 음식에 취해 뱉은 찰떡같은 말들이었다. 파안대소는 한 번뿐이다. 재탕, 삼탕 하는 순간 분위기는 썰렁해진다. 직업인으로서 그들의 성실을 의심하고 나태를 확신할 것이다. 글이든 개그든 짓는 일은 어렵기만 하니까.
맛있는 녀석들은 가을이면 제육대회를 하고, 겨울이면 명란운동회를 하고, 코로나19에 맞춰 전국 택배 맛집음식을 먹어댔다. 또 어떤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들고 나올지 궁금했다.
사람들이 먹방을 보는 이유는 대리만족이 44.5%, 단순 흥미가 27%, 정보탐색이 16.3%라고 한다. 대리만족이라면 유튜브에 차고 넘치는 먹방을 보면 된다. 먹방 유튜버들과 비교하면 맛있는 녀석들은 깨작거리는 소식좌에 가깝다.
음식을 앞에 두고 만담을 하고 삼행시를 하고 성대모사를 하고 주크박스처럼 상황에 맞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먹어본 자로서 맛을 알려주고 맛있게 먹는 팁을 보여주는 정도이다. 주인공은 음식이지만 배경이 되는 소품으로 물러나기도 안다. 음식과 사람, 사람과 음식이 천의무봉,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모습을 즐겨봤다.
하지만 원년 4인방 이후 흥미를 잃은 상태이다. 첫정이라 그런가. 동생들에게 놀림받으면서도 허허 웃는 이십끼형 유민상과 상냥한 말투로 마지막 순간까지 처음처럼 주문하는 김민경이 있던 그때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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