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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진 Jul 26. 2024

밥 한번 먹자는 말이 부담스러워서

한끼줍쇼의 성공과 실패

밥 한번 먹자’, 고 말하는 이들은 정말 만나서 밥을 한번 먹었을까. 우연히 만나 악수를 하고 어깨를 한번 툭 치고는 애써 아쉬운 표정을 감추며 ‘밥 한번 먹자’고 한다. 상대는 그러자고, 연락하자면 손가락으로 전화 거는 시늉을 한다, 카톡의 마무리 문장을 찾다가 ‘언제 밥 한번 먹자,라는 나름 무난한 멘트를 날린다. 하지만 그 문장은 벌린 상어의 입, 묶지 않은 쌀자루, 뚜껑을 덮지 않은 딸기잼 같은 문장이 되곤 한다. 밀린 숙제처럼 찜찜하다. 묶어야 한다.  닫아야 한다.


그럼 ‘커피 한잔 하자.’는 말은 괜찮은가. 그것도 만만치 않다. 언제, 어디서 만나는 게 서로에게 부담이 없을까. 상대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을 무엇일까. 집중해서 듣고 따뜻한 시선을 보내고 싶은데.     

© chiarapinna, 출처 Unsplash

어릴 적 내가 살던 동네는 땅굴을 파고 들어가서 살 수 구조가 아니었다. 개방형 주거 시스템과 집단 라이프 스타일에 맞추어 살아야 했다.     

어스름한 저녁, 어느 집에서 된장찌개를 먹는지 고등어조림을 먹는지 눈을 감고도 맞힐 수 있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누구네 부엌에서 풍기는 냄새인지 정확한 지점을 포착할 수도 있었다. 소리 소문 없이 몰래 먹는 방법을 누군가 발명해 낸다면 틀림없이 노벨상을 받거나, 적어도 동네 영웅이 되었을 것이다.

창문을 모두 닫고 ‘뽁기’를 해 먹어도 어느새 골목길은 설탕과 소다가 뒤섞인 냄새로 달큰했다. 냄새는 러너의 발을 가지고 있었다. 중간 마당에 사는 재민이 엄마가 어느새 재민이를 등에 없고 집 앞을 기웃댔다.

“너희들 탄불 아궁이는 제대로 닫았냐? 시방 문 닫고 뭐들 하는 짓거리여. 엄마 없다고 아주 신이 났구먼. 퍼뜩 문 열어.”
동네방네 돌아다니며 콩 놔라 팥 놔라 잔소리하기가 특기인 재민이 엄마에게 딱 걸렸다.

비밀이 없는 곳, 은밀함이 꽃필 수 없는 곳, 감추고 싶은 것이 있어도 즉시 발각되는 곳이었다.
<미진, 집이라는 그리운 말>     
   


여러 가지 논란과 코로나19 여파로 중단된 JTBC ‘한끼줍쇼’는 사람들이 마음속에 품은 향수와 개인화된 현실 사이의 거리를 보여줬다. 신개념 야외 구걸 다큐 프로그램이라는 설명에 피식 웃음이 났다. 뭘 구걸까지야. 높은 문턱을 넘고 싶어 낮출 때까지 낮춘 제작진의 입장을 엿볼 수 있었다.

jtbc 한까줍쇼

담장을 넘어 서로를 보듬고 정을 나누고 싶지만 그건 이상에 가까웠다. 하루를 마친 개인은 자신의 사적 공간에 들어가 용히 쉬고 싶다.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라니, 생각해 볼 일이다. 화장을 하고 외출복을 입고 사회인으로서 남에게 보이는 모습과 집안에서의 내 모습은 다르다. 민낯에 늘어진 티셔츠를 입은 채 난장판이 된 집을 공개하는 건 무시무시한 일이다.  

    

문을 열고 ‘한끼줍쇼’라고 외치는 일행을 맞이한 사람들은 대체로 소박했다. 대가족이거나 좋아하는 연예인을 만나 신이 난 아이가 있거나 혼밥을 하는 젊은이가 살았다.

jtbc 한끼줍쇼

대가족이 둘러앉아 밥을 먹는 집은 기본적으로 밑반찬이 푸짐했다. 김치만 해도 여러 종류고 갖가지 젓갈, 염장된 나물, 된장이나 고추장에 무친 무말랭이까지 냉장고에 차곡차곡 쌓여있다. 김치찌개 하나만 더하면 푸짐한 한상이 차려졌다. tvN <응답하라 1988>의 배경인 쌍문동 덕선네치타 여사네 밥상과 비슷했다.


세월이 묻은 교자상에 한끼줍쇼 팀과 가족들이 둘러앉았다. 할아버지는 살아생전 연예인과 마주 앉아 밥을 먹으니 흐뭇하다. 할아버지의 고향 이야기에서 피난시절 이야기, 젊은 시절 고생한 이야기, 말로 다할 수 없는 세월을 겪으며 자식들을 키운 이야기, 평생의 신념으로 삼은 성실에 대해, 그리고 배우자와 평생 회로 한 비법을 풀어냈다. 밥은 대게 잡곡밥이고 집에서 만든 반찬은 모두 맛깔스럽다.

tvN 응답하라 1988

단칸방에서 자취를 하는 대학생이나 직장인 역시 수월했다. 그들은 외롭고, 잠시 잠깐 스쳐 지나갈 곳에 머무는 터라 보이는 것에 별 의미가 없다. 졸업을 하면 떠날 곳이고, 취업을 하면 직장이 있는 곳으로 갈 것이고, 계약 만기가 되면 조금 더 넓은 곳으로 옮길 예정이다. 현실은 어렵지만 미래는 밝을 것이다. 이경규, 초대 손님인 서장훈과 방 한 칸에서 배달음식을 시켜 먹었다.     

  

한 끼 먹기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수십 번 '한끼줍쇼'를 외쳐야 했다. <한끼줍쇼>가 다시 방영된다면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해가 지는 저녁 무렵, 남의 집 초인종을 누르고 한 끼를 같이 먹자고 한다면.


'제가요, 왜요, 누구신대요, 제가 티브이를 잘 안 봐서, 바빠서 이만 …….'

무차별적으로 걸려오는 스팸전화쯤으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반대로 제작진 측에서 유명 셰프를 동반하고 한 끼를 제공할 테니 함께 먹으며 마음만 나누자고 하면 어떨까. 글쎄, 별로 다르지 않을 듯하다. 부담스럽게. 사생활을 공개함으로 발생할 번거로움을 무릅쓸까. 자신의 사적인 부분을 보이고 싶다면 자신이 주체가 되어 선별한 내용 화면 보정해서 sns에 올리면 될 일이다.     


누군가가 내 집 초인종을 누르며 ‘한끼줍쇼’라고 말한다면 나 역시 그러겠노라고, 선뜻 말하지 못할 듯하다.

밥 한번 먹자, 커피 한잔 먹자는 말에 잠시 멈칫하는 소심한 나를 대신해 성격 좋은 나의 이웃이 대문을 열고 소박한 찬에 밥 한 끼 대접했다는 소식을 듣는다면 흐뭇할 것 같다. 낮은 담장을 그리워하는 마음과 나를 지키는 담장을 높이 올리고 싶은 마음이 나란히 공존하는 모양이다. 양가감정*이 이런 걸까. 한끼줍쇼는 두 감정 사이 어디쯤에 길을 야 하지 않을까. 다시 방영된다면 말이다.



*양가감정[ambivalence, 兩價感情] 동일 대상에 대해서 정반대의 상대적인 감정을 동시에 향하는 정신상태를 말한다. 예를 들면 사랑과 증오가 동일 대상을 향해서 동시적으로 존재하는 감정 상태이다.     



#에세이

#예능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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