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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진 Jul 19. 2024

6시 내 고향, 집 나간 웃음을 찾아드려요

내가 고마워서 그래

kbs 6시 내 고향의 청년회장을 아시나요? 가수는 노래를 잘하고, 연기자는 연기를 잘하면 된다지만 6시 내 고향의 청년회장은 뭐든 잘해야 한다.      

꼬마 자동차, 붕붕이 고속도로를 지나 어느 마을 읍내 정류장에 멈춘다. 어르신 대여섯 분이 언제 올지 모를 버스를 기다리는 중이다. 한 명당 검정 봉지 서너 개는 기본이다. 장에서 산 자반고등어에 노란 믹스 커피 한 박스 그리고 영감님이 좋아하는 참외도 들어있다.


"저 사람 누구지?"


어르신들이 신기하게 쳐다본다. 눈썰미 좋은 한 분이 알아봤다. 


“저, 저, 저 청년회장 아니야? 6시 내 고향에 나오는 이.”

“맞아, 맞아.  티브이에 나오는…….” 


박수를 위아래로 치며 격하게 반기신다. 한껏 기분이 좋아진 청년회장 손헌수가 필살기 엉덩이춤을 춘다. 이에 뒤질세라 흥에 겨운 어르신 몇 분이 벌떡 일어나 맞춤을 추면 그 일대에 한바탕 춤판이 벌어진다.      


“모셔다 드릴까요?”


청년회장은 어르신이 어디로 가는지 묻고, 같은 방향으로 가는 분들과 함께 붕붕이로 모셔다 드린다. 차 안에 유키즈온더블록 못지않은 토크의 장이 열린다. mc는 청년회장이다. 사람이 그립고 말 상대가 아쉬운 어르신들의 속 이야기가 거침없이 흘러나온다. 


"관절이 다 닳아 걷질 못해 그게 아쉬어."


"허리에 철심을 박았는데 괜히 한 것 같아, 여적지 죽겠어."


"간이식을 받지 못해 죽은 아들 생각을 하면 아직도 원통햐. 내 건 안 된대. 의사가 해보지도 않고 그랴.”


나이 40에 혼자가 된 어르신은 자식 여섯을 키워 시집 장가를 보내고 지금은 손자들을 키우는 중이다. 큰 손자가 코레일 입사 시험을 본단다. 긴장하지 말고 시험 잘 봐. 할머니가 맛있는 거 해줄게.” 어르신의 목소리에 사랑과 염원이 그득하다.  


뇌출혈로 쓰러진 남편을 보기 위해 매일 요양 병원을 오가는 어르신은 소망한다. "퇴원해서 딱 2년만 같이 살고 갔으면 좋겠어."


애달프지 않은 사연이 없다. 우리 청년회장의 미션은 그들을 웃게 하고 시름을 잊게 하는 것이다. 어르신들은 오래 묵은, 도저히 헤어날 길 없는 마음의 슬픔과 끈질긴 몸의 고통을 잊는다. 어르신의 까르르 웃음소리가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달린다. 붕붕이도 달린다.


청년회장이 가는 곳에 춤이 있다. 요란스레 엉덩이를 흔드는 이 춤의 별명은 ‘혈압 낮추기 댄스’다. 오남용 부작용 걱정 없는, 무해하고 건강한 처방이다. 지팡이를 짚고 엉거주춤 걷던 어르신이 갑자기 지팡이를 내던지고 격렬하게 춤을 춘다. 딸을 먼저 보내고 도저히 웃을 수 없었다는 어르신이 박장대소하며 덩실덩실 춤을 춘다. 임영웅 열정 팬이라는 어르신을 청년회장 팬으로 만드는 댄스다.      


집까지 모셔다 드린 청년회장은 어르신이 미처 하지 못하고 밀어둔 크고 작은 일들을 해결한다. 올어라운드 플레이어다. 6시 내 고향 4년 차 경력자답게 빛의 속도로 낫질을 하고 외발 손수레에 무거운 짐을 가득 싣고 사뿐히 고랑을 누빈다.

덜렁거리는 문의 경첩을 조이고, 고장 난 문고리를 새로 달고, 삭아서 물이 새는 수도꼭지를 교체하고, 방치된 폐비닐을 정리하는 일은 식은 죽 먹기다. 허리 수술을 한 남편을 대신해 농사일을 도맡아 하는 어르신은 할 일이 산더미다. 밭에 거름 포대가 수북이 쌓여있다. 넓게 펼쳐진 밭을 본 청년회장의 동공이 흔들린다. 잠시 후 청년회장이 힘차게 외친다. 

“미션 완성”

깊게 박힌 말뚝을 뽑는 일도 만만치 않다. 청년회장이 진땀을 흘린다. 몇 개 뽑지 않았는데 금세 어깨가 시큰거린다. 그동안 이 힘든 일을 어떻게 하셨느냐고 어르신에게 묻는다.


“그냥 참았어. 손이 안 쥐어져, 그랴도 내 자식은 손 안 쥐어지는 일 안 시키려고 참았지.”


어르신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도와줘서 고맙다고, 감사하다고, 고생했다고, 미안해서 어쩜 좋으냐고, 청년회장의 손을 놓지 못한다.


“예뻐 죽겠어. 전화번호 주고 가, 서울 가면 보게.” 


붕붕이가 마을 어귀에서 사라질 때까지 하염없이 손을 흔드신다.      


이게 다가 아니다. 읍내 정류장에 한 어르신이 넋을 놓고 앉아 있다. 역시나 검정 봉지 몇 개와 함께. 7년 전 딸이 죽고 도저히 웃을 수 없다는 어르신은 가슴이 답답해 뭐라도 들고 장에 나오신단다. 밭에서 딴 쑥, 호박잎이 봉지에 들었다. 청년회장이 예상하는 판매액을 묻는다. 앉아계시라고 제가 싹 다 팔아 오겠다고 말한다. 


청년회장이 커다란 봉지를 양손에 들고 나선다. 떡집에 들어가 쑥을 팔고 시장 상인들과 한바탕 춤을 추며 남은 채소를 모두 판다. 돈을 손에 쥐고 어르신이 기다리고 있는 버스 정류장으로 간다. 기대한 것보다 많은 돈을 본 어르신이 5천 원을 청년회장에게 도로 준다. 


"애썼어, 고마워."


6시 내 고향을 보면 부모님 생각이 절로 난다. 엄마가 돌아가신 지 17년이 지났다. 처음에는 그렇게 애달프더니 지금은 혼자 지내는 아빠에게 안부 전화 한 번 하기도 힘들다. 걱정하지 말라고, 잘 지낸다고, 네 걱정이나 하라는 아빠의 말을 진심으로 믿는다. 아니 믿고 싶다. 아빠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잘 지내고, 나는 내 걱정만 하면 된다고. 나는 안에서 줄줄 새는 바가지라서 밖에서도 다르지 않다. 세월이 흘러도 왜 내 코는 늘 석자인지, 왜 주변을 두루 살피지 못하는지. 집 나간 양심을 급 찾는다. 


친절하라.
당신이 마주치는 사람 모두가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스토리텔링 바이블 - 알렉산드리아 필로> 


주말에는 아빠를 뵈러 갈 생각이다. 김치냉장고에 방치된 묵은 김치로 김치찌개를 한 솥 끓여 소분하고, 누렇게 변색된 커피잔은 뽀득뽀득 닦고, 냉동실에서 화석이 된 고등어는 녹여 숭덩숭덩 썬 무를 넣고 고등어조림을 해야겠다. 그리고 시간이 남으면, 아빠 앞에서 막내딸의 둠칫둠칫 엉덩이 춤을 보여 드려야겠다. 

"아빠, 이 춤 알아? 혈압 낮추기 댄스야. 따라 해 봐."  



#6시내고향

#부모

#친절

#시사교양프로그램

#티브이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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