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어떤 주제에 대해 처음 글을 쓸 때는 머릿속에 수많은 군중들이 있는 것처럼 여러 가지 생각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피어오른다. 대부분은 이런 현상을 두고 머릿속이 정리되지 않아 글을 쓸 수 없다며 어려움을 호소한다. 그럴 때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방법은, 그냥 생각나는 대로 메모하듯 써보는 것이다. 여러 가지 생각을 모두 받아 적어 본다. 어렵다고? 완벽주의를 약간 떨쳐내기만 한다면 그리 복잡한 일은 아니다.
친구 혹은 동료 그 외의 편한 사람과 통화하면서 펜을 들고 낙서를 해본 일이 있는가? 아니면, 중요한 통화를 하면서 기억해두어야 할 물건 이름이나 지명, 전화번호를 기록하는 일도 제법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친구와 편하게 통화를 할 때처럼, 일단 마구 적어보자.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생각을 모두 다 쓸 수는 없다. 어떤 생각은 짧게 마무리되어 그칠 것이다. 그러나 좀 더 생각해 볼 만한 몇 가지 생각들은 순간적인 느낌 정도에 머무르지 않고 계속해서 나래를 펼칠 것이다. 생각이 얼마나 길게 나래를 펼치는지 확인해 보자. 그러니 짧게, 핵심적인 단어 몇 개 만이라도 꼭 메모하자. 잊어버리면 아무리 떠올리려 해도 생각나지 않을 수 있다.
순간적으로 스쳐가는 생각도 굳이 부정하지 않는다면 제법 독창적인 시선이 될 수 있다. 아마도 부정한다면 그것과 관련해 자기 내면에 강한 세계관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신문 기사에서 좋은 소식이든, 나쁜 소식이든, 놀라운 소식이 당신의 주의를 끄는 이유는, 그런 세계관이 재구축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빠르게 뻗어나가는 생각들을 잡아 기록하기 벅차다면, 마인드맵 같은 도구를 이용하면 수월하다. 이것은 어떤 주제에 대한 아이디어 수집과도 같다. 마인드맵을 '브레인스토밍'을 하는 도구로 활용하는 것을 종종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는 당신이 읽고 있는 이 글을 매주 연재할 때에도, 주인공과 스토리가 있는 글을 기획할 때에도 마인드맵을 활용해 생각들을 펼쳤다가 정리한다.
마인드맵을 쓴다고 해서 생각이 정화되는 것은 아니다. 마인드맵을 쓰는 이유는 스쳐가는 나의 생각들을 모두 펼쳐 한눈에 알아보기 위함이다. 나래를 길게 펼치는 생각이 있다면, 핵심적인 내용을 기억하고 있을 때, 그것에 대해 가장 잘 말하고, 또 글로 쓸 수 있는 상태임을 시각적으로 알려준다. 아마도 가장 길게 썼다는 것은 가장 확신을 가지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혹은 어떤 욕망이나 결핍으로 인해 형성되었던 나의 역린에 스스로 다가가려는 중일 수도 있다.
이왕이면 나의 마음을 정화하는 글쓰기를 위해 당신의 역린에 조금 더 다가가보면 어떨까. 그것은 당신의 오래된 상처를 헤집을 수도 있지만, 오히려 유연하게 만들어 줄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헤집은 상처가 너무 크다면, 당장은 굳이 파헤치려 하지 말고 내 마음이 준비가 될 때까지 시간을 두는 것이 좋다.
당신의 역린은 당신 내면에 지닌 마음의 응어리다. 그것을 쓰고, 들여다보고, 공감하고, 흘려보내라. 응어리를 풀어내는 글쓰기는 치유와 성장을 통해 마음의 변화를 미리 끝냄으로써 지나치게 감정적이거나 비약적인 논리를 펼치는 상태를 정화하고 정돈할 수 있다. 마음을 정화한 후에 다시 같은 주제로 글을 쓴다면, 그만큼 내 글의 군더더기가 사라져 있을 것이다.
인생그래프를 그려본 일이 있는가? 5살, 10살, 15살 등 5살 단위나 미취학시절, 초등학생 시절, 중학생 시절, 등 특정 시기마다 인생의 시간을 나누고 당시의 행복 지수를 점수로 매겨 그래프를 그리는 것이다. 나 같은 경우는 미취학 시절에 점수가 10점 만점에 8점이었고, 중학생 시절에는 -5점, 20대 사회초년생 시절에는 -8점이었으며, 라디오 작가로 활동한 시절에는 8.5점, 첫 아이가 태어났을 때는 10점이었다. 만약 그려 본 적이 없다면 즉시 한번 그려보기를 바란다.
어떤 시기의 행복지수를 떠올릴 때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시의 환경이나 특정 사건을 떠올리며 점수를 매기게 되는데, 이 인생그래프를 한 달이나 1년 뒤에 다시 그려보면 상당한 부분의 점수가 올라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지나고 보니 지금의 나에게 별일이 아니었을 수도 있고, 그때 괴로운 일이 있었으나 생각지 못한 부분에서 감사한 점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미화되었다는 말로 퉁치고 싶지 않다. 당시에는 분명히 괴로워 죽을 것 같았는데, 어떻게 이미 일어나 '과거'가 된 고통이 덜 아프고, 미화될 수 있단 말인가? 만약 그때의 일이 그렇게 괴롭기만 한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고 느껴진다면, 그것은 시간이 지나 나의 마음이 깊고 넓어졌기 때문이고, 새로운 시각으로 보는 눈이 생겼기 때문이다.
덜 아파졌다거나, 나에게 고통을 준 사람을 용서한 것이 아니다. 일어난 사실은 왜곡되지 않는다. 생생했던 감각과 구체적인 상황들이 조금씩 잊힐지언정, 괴로움과 분노 같은 것들은 사라지기보다 내 마음속의 다른 공간에 '보존'된다고 해도 좋겠다. 언제든 어떤 계기로 인해 되살아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그러니 과거가 미화된다는 말을 접어두자. 인생그래프의 점수들이 높아졌다면 '상대적인 평가' 때문에 더 큰 고통이나 행복이 찾아와 과거의 점수를 누그러뜨렸을 수도 있고, 과거에 머무르기보다 미래에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고도 볼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당연히, 글 속에 과거의 내 이야기를 불러오더라도 글의 주제와 흐름에 꼭 필요한 부분을 가져오지 않겠는가?
군더더기가 빠지고 정돈된 중심생각이 당당히 자리를 차지하면 수많은 가지가 빠져나간 나무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 빈자리는 더욱 구체적으로 나래를 펼치는 이야기로 채워질 것이다. 또, 마음이 정화됨으로 인해 나의 일상이 새삼 행복하고, 감사한 일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상태에 도달하면, 당신의 글쓰기는 정화하기 전과 후로 나뉘게 될 것이다.
문장력이야 어찌 되었든, '무엇에 대해 글을 쓸까?'가 일단락 해결 되었지 않은가. 군더더기를 없애고 중심생각을 잡아냈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몰라 횡설수설하는 일은 줄어들 것이다. 군더더기를 없앤다는 것은 잡생각을 무시하거나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정말로 힘주어 말해야 하는 이야기를 선별해 글 속에서 제대로 풀어놓는 것이다.
말이든 글이든, 구구절절 자세하게 반복적으로 늘어놓는 것은, 타인에게 공감을 얻지 못할까 불안한 마음 혹은 순전히 자신이 털어놓고 싶은 욕구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도 정화를 거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응어리를 풀어내고 한차례 흘려보내는 작업을 하고 나면, 나에게 스스로 공감했기 때문에, 구태여 구구절절 늘어놓는 일도 줄어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