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왜 오늘도 카레야? 다른 건 없어?"
"아유, '그냥' 좀 먹어. 카레가 싫은 거야?"
“아니, ‘그냥’ 해 본 말이야….”
일상에서 우리는 ‘그냥’이라는 말을 남발하다시피 쓴다. '악의 없음'이나 '쑥스러움', '배려'를 내포하지 않는다. 어떤 나쁜 의도나 좋은 의도도 없는, 오히려 '이것저것 따지지 않는', '무의식'을 강조하는 말로 쓰인다.
"어머님, 이거. 내려갈 때 간식이라도 사 드세요."
"괜찮다! 뭐 이런 걸 다."
"아유, '그냥' 넣어두세요."
딱히 하고 싶은 말이 없을 때, 이 상황에서 대답을 어떻게 하느냐가 다른 것 보다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될 때 쓴다. 대체로 이런 메시지를 품고 있다. ‘내가 봐도 내가 좀 비합리적이지만, 일단 넘어갑시다.’
친하지도 않은 작가 선배 중 한 사람이, 사무실로 들어오는 나를 향해 '어떻게 앞머리를 사선으로 자를 생각을 할 수가 있어?'라고 큰소리로 말한 적이 있다. 물론 당시에는 앞머리를 그렇게 자르는 사람이 흔하지 않기는 했지만, 그렇다 해도 이게 그렇게까지 다수의 관심이 집중될 만한 일일까 싶었다. 괜히 뒤통수가 뜨거워져서 나는 대충 이렇게 얼버무렸다.
"하. 하. 하. '그냥'요."
좋게 보는 시선도, 신기하게 쳐다보는 시선도 아니었다. 아마도 그는 나를 거슬려했던 것 같다. 당시 대부분의 막내 작가들은 그렇게 '그냥' 타박받으며 일했다.
'그냥'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문장이 몇몇 브랜드의 광고카피가 된 적도 있다. 나는 우리의 일상에서 '그냥'이 자주 사용 되는 모습이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보기도 전에 스스로를 비합리적인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는 안타까운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합리적이지 않은 것'들은 개인적 감수성이나 예술성 때문이라는 오명을 쓰기도 한다.
"아들, 오늘은 숙제를 왜 안 했니?"
"그냥…."
어쩌면, 그것은 어떤 두려움 앞에서 무모함이나 반항, 무책임한 선택을 순간적으로 가려줄 보호막인지도 모른다. '악의 없음'이나 '쑥스러움', '배려'를 내포하지 않고, 어떤 나쁜 의도나 좋은 의도도 없는, '이것저것 따지지 않는', '무의식'을 강조하는 말이라고 해도, 좀 더 면밀히 들여다본다면 진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그냥'이라는 말을 물 쓰듯 쓰고 있을까. 물이 귀한 줄 모르거나, 자신의 진짜 감정을 하찮게 취급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래서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볼 시간도, 표현해 보려 노력할 시간도 내주지 않아서가 아닐까. 내 마음을 치유하는 글을 쓰고 싶다면 글쓰기를 하면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할 곳은 바로 여기가 아닐까.
'그냥'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봤다.
사전에 나와있는 것을 토대로 예문을 만들어 보자면 이렇다.
1. 저 산맥은 그냥 저 자리에서 오천 년을 살았네.
2. 비에 젖은 생쥐 같은 모습이었지만 그냥 내버려 두었다.
3. 처음엔 그냥 걸었어.
1과 2에 있는 '그냥'은 삭제해도 되는 단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굳이 써야 하는 이유를 댄다면 두 글자라도 좀 더 늘여서 뒤에 올 이야기를 좀 덜 사소하게 만드는 은근한 ‘강조’ 효과가 있다고 볼 수 있겠고, 이러한 강조 효과는 말로 했을 때 살짝 그 효과가 커지는 한다. (‘아, 쫌!’과 ‘아, 그냥 쫌!’을 비교해 보시길.) 그러니 글로 썼을 경우에 마찬가지로 강조 효과가 있지만 '그냥'이 군더더기라는 게 확실하게 느껴진다.
3에 있는 '그냥'은 자신의 모든 감정을 뭉뚱그리는 말이다. 이유를 수백 수천 가지 댈 수도 있고, 오직 단 하나, '너' 만이 그 이유라고 말할 수도 있는데 ‘그냥’이라는 말을 쓴 이유는 별 의미 없다고. 너에게 무언갈 바라서가 아니라고. 이미 너의 마음이 떠났어도 어쩔 수 없으니, 안타까움과 슬픔은 오로지 나의 몫이라는 뜻이 들어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뒤의 오는 말들이 반전과 감동으로 느껴진다. 임종환의 ‘그냥 걸었어’ 노래 가사를 후렴구까지 들어보면, 사실은 엄청 엄청 간절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글쓰기 근육을 위해, 창의적인 사고, 생각하는 힘을 기르기 위해 평소에 스스로에게 왜?라는 질문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일상적으로 본인이 스스로 하는 행동에 대해서도 왜? 하고 그 이유를 물어보자. 꼬리에 꼬리를 물어 질문하고 스스로 답을 찾는 연습을 해보자.
이것은 내 마음에 솔직해지는 연습이기도 하다! 평소에 발견하는 모든 이유들에 대해 '그냥' 하고 얼버무리다 보면 정말로 '그냥저냥' 글 쓰게 될지도 모른다. 치유를 위한 글쓰기를 위해 언어 습관과 생각 습관은 정말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