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누구나 쉽게 쓰는 '자기 공감의 지도'

by 이지영

하루에도 수십 번씩 스쳐 지나가는 감정들이 있다. ‘왜 이렇게 피곤하지?’부터 시작해서, ‘나는 왜 자꾸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할까?’, ‘이게 정말 내가 해도 되는 일일까?’ 이런 생각들은 마치 마음속의 문턱에 쌓인 먼지 같아서,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금세 흩어지고 만다. 내가 어떤 감정을 느꼈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는 금방 잊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감정이나 생각이 스치면 그 마음의 문턱에 잠시 멈춰 서서, 가만히 자신에게 말을 건네는 순간이 필요하다. '괜찮아, 그럴 수도 있어.'부터 시작해서, '이 감정은 어쩌면 나에게 말 걸고 있었는지도 몰라.' 하고 생각해 보는 여유를 나에게 주는 것이 좋다.

생각할 여유가 필요한 바로 그 순간, 자기 내면에 말을 걸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글쓰기의 첫 문장을 쓰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백지와 펜을 마주하는 것보다는 빈칸을 채우도록 하는 '질문'이 있다면, 우리는 긴 시간을 들이지 않고 오히려 대화하듯 나의 내면에 편안하고 빠르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멋지거나 무거운 문장을 짜내지 않아도 된다. 나의 아픔에 직면하는 용기만 있으면 된다. (다시 말하지만 감정적으로 너무 힘들 때는 무리하지 않기를 권한다. 언젠가는 직면하고 쓸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글쓰기 앞에서 주저하지 않기를 첫 문장의 시작이 너무 어렵지 않기를, 글쓰기가 일상의 작은 숨처럼 다가오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길의 입구에, 나는 세계명작동화를 놓기로 했다. 어릴 적 반복해서 들었던 동화, 책장 안에 꽂혀 있던 그림책, 오늘날에도 재생산되거나 재해석되는 애니메이션과 영화 속 장면들이 지금도 우리 마음 어딘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글쓰기를 어려워한다. 생각이 너무 많아지고, 그것을 종이 위에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몰라, 첫 문장 앞에서 멈추어버린다. 그럴 땐 생각보다 느낌이 먼저여야 한다. 우리 주변에 생각하지 않고도 느낄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바로 '익숙한 것'이다. 우리는 익숙한 것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금발머리 소녀는 곰 가족의 집에 들어갔고,

백설공주는 일곱 난쟁이의 집에서 지냈으며,

피터팬은 웬디의 집 창문을 열고 들어왔다.


이야기의 줄거리, 캐릭터의 말투, 심지어 그 장면의 분위기까지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 이야기는 이미 우리 안에 존재하는 기억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음 장에서는 세계명작동화를 이야기의 틀로 삼아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느낌의 세계’로 먼저 들어갈 것이다.


“금발머리 소녀가 왜 그 집에 들어갔을까?”

“백설공주는 난쟁이들의 집에서 무엇을 얻었을까?”

“피터팬은 왜 웬디에게 자꾸 돌아왔을까?”


이런 질문은 우리에게 사고보다 공감을 먼저 끌어내고, 이야기 속 인물에 대한 해석은 곧 자기 이야기로 전이되는 지점까지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돕는다.


세계명작동화는 그 자체로 시간의 검증을 거친 서사다. 수많은 시대를 지나며 읽혀온 이야기들은 그만큼 많은 감정과 욕망, 상처와 회복의 서사를 품고 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법한 감정의 단서들이 숨어 있다.


미운오리새끼와 백설공주에는 외로움이, 피터팬과 신데렐라에는 소속감이, 푸른 수염의 아내와 라푼젤에는 두려움이, 잠자는 숲속의 공주와 미녀와 야수에는 회복에 대한 희망이 내재되어 있다.


고전에는 오랜시간 사랑받아온 안정감 있는 서사와 이야기의 깊은 맛이 있다. 그러므로 그 이야기들을 다시 들여다보는 일은, 곧 자신의 감정을 투영하고 안전하게 바라보는 일이 된다.


당신은 등장인물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자신의 감정을 ‘말해도 괜찮은 것’이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처음엔 재미있는 줄거리를 따라 동화 속 주인공에게 감정이입했다가, 나중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 내면에 도달하는 것이다.


이후부터는 각 장마다 한 편의 세계명작동화를 중심에 두고, 그 이야기를 찬찬히 들여다보며 ‘나의 마음은 지금 어디쯤 와 있는가’를 질문 할 것이다. 쓰는 사람의 속도가 가장 중요하다. 다섯살 난 어린아이 달래듯, 내면의 속도에 맞춰 질문을 받아들이면 된다..


“나는 언제 마지막으로 나를 위해 멈춰 섰는가?”

“나는 지금 나의 욕망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나는 누군가의 집에 머물러 있지는 않은가?”


이런 질문들은 억지로 생각을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 깊이 잠들어 있던 자기 공감의 씨앗을 깨우고, 그 씨앗이 글로 싹트게 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시작과 끝, 그 안의 갈등과 눈물과 희망을. 그래서 낯설지 않게 다가갈 수 있고, 글쓰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시작할 수 있다.


자기 공감의 지도를 조금씩 써내려가보자. 글쓰기가 어렵지 않도록, 자기 공감이 갑작스럽지 않도록, 치유가 강요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지금부터 세계명작이라는 ‘지도’를 펼칠 것이다.


이 책은 그 지도 위에 각자의 삶을 그려나가는 작업이다. 글을 쓰는 동안 당신은 자기 자신과 대화하며 조금씩 주도권을 되찾게 될 것이다. 그 시작은, 곰 가족의 집 문을 열고 들어가는 금발머리 소녀의 발걸음이었을 수도 있고, 난쟁이들의 집 창가에 앉아 있는 백설공주의 고요한 오후, 혹은 마법처럼 열린 창문으로 날아든 피터팬의 바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제, 이 이야기들은 당신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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