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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네피에 Oct 12. 2023

지구 621

초단편

*인간들의 언어연구를 겸하기 위해, 621번 지구의 언어를 사용하여 작성하였습니다.


1. 서론

우리 TZ33 관리자 양성학교는 다른 학교들보다 인간의 심리구조에 대한 이해를 중점적으로 가르치는 것으로 유명하다. 주변의 TZ32나 TZ34가 각각 인간의 유전자 구조나 기술 발전사에 중점을 두는 것과는 다르게, 우리 학교의 경우 인간 심리의 추상적인 측면을 탐구하는 것을 선호한다.


이에 따라 나는 우리가 실험을 위해 생성한 지구 1049개 중 가장 흥미롭다고 여겨지는 지구 621번을 893, 487, 1011번 지구(이하 번호로 지칭)와 비교하여 621의 인간들이 가진 독특한 심리적 특성을 탐구해 볼 것이다. 보다 가까운 지점에서 관찰하기 위해서 인간들에게 물리적으로 관찰되거나 영향을 주고받지 않는 5차원 이동문을 사용하였으며, 담임교수님께서 조사용으로 직접 생성해 주셨기 때문에 교칙에 위배되지 않음을 밝힌다.


2. 본론

우선 621 인간들을 다른 지구와 비교할 주제는 (1) 시간, (2) 사랑, (3) 죽음 등으로 정했다. 비교하는데 훨씬 더 흥미로운 주제들이 여럿 있었지만, 비교가 가능한 특성을 가진 지구가 한정적이었기 때문에 해당 주제로 결정하게 되었다. 조사방식은 직접관찰조사의 형태로 진행되었다.



[1] 시간 (621지구 -893지구)

실험용으로 관리되는 지구들 중 몇몇에는 연구의 편의성을 위해 시간이라는 조건이 적용되어 있다. 이들은 초기에 이 개념에 대해서 인식하지 못했다. 하지만 탄생과 성장, 발달, 노화,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자신들이 가진 삶의 패턴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후부터 시간이라는 개념을 구축하고 단위로 나누어 통용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시간은 인간의 삶 대부분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621과 893은 시간이라는 개념에 있어서 대부분 동일한 체계를 구축했지만, 실험지구 설계 엔지니어가 미묘한 차별을 주어 아주 흥미로운 심리차이를 보여주고 있었다.


먼저 621의 경우, '~까지'라는 종착적 개념에 중점을 두도록 설정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621의 인간들은 모든 시간적 개념을 끝에 맞추는 방식으로 이해한다. 예를 들어 621의 인간들이 만남시간을 정할 때는 '오후 1시까지 XX역에서 만나자'라는 식으로 약속한다. 그리고 그 시간이 되면 약속된 장소에서 만남을 이루려고 하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 만난다라는 개념이 자체가 없다. 언제든지 만나져 있고, 동시에 헤어져 있기 때문에 만남을 약속하는 621 인간들의 행위 자체로도 충분히 흥미롭다.


하지만 여기서 621 인간들이 재밌는 부분은 '약속된 시간'을 잘 지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약속시간보다 늦게 도착해 갈등이 빚어지는 경우가 빈번하다. 이는 가정생활이나 직장생활에서도 드러난다. '4시까지 청소해 놔', '2시까지 자료 보내줘'라며 약속 시간을 정하지만, 시간을 맞추지 못해 갈등하거나 겨우 맞추고도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다. '~까지'라는 시간개념은 결국 많은 621의 인간들을 스스로 실패하게 만들어버리고, 스트레스로 인해 암을 유발하기도 한다. (암은 621 지구의 인간을 죽음을 이르게 하는 난치병이다.) 극단적인 경우를 보자면, '8시까지만 게임하고 공부할게', '올해까지만 놀고 내년엔 취직해야지', '딱 오늘까지만 마시고 술 끊을게' 등이다. 무한하게 타인이나 스스로에게 '~까지'를 통한 약속을 정하고 있지만, 정작 '~까지'는 부정적인 결과를 불러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893의 경우 시간개념에 대한 경향성이 다르다. '~부터'를 강조하도록 설정되어 있다. 두 사람이 만나는 약속을 정하는 경우를 보면, '오전 10시부터 출발해서 거기에서 만나자'라는 식으로 시작하는 시간에 대한 약속이 루어진다. 이들은 각자 집에서 도착지까지 소요시간을 알고 있고, 둘 중 한 명은 반드시 먼저 도착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다 보니 먼저 도착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 올 때까지 자신의 할 일을 한다. 그래서 그런지 621에 비해서 갈등이나 스트레스가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정생활이나 직장생활에서도 차이점은 드러난다. '4시부터 청소 시작해 줘', '2시부터 자료를 만들어줘' 등으로 약속을 정한다. 이미 약속을 정할 때 서로의 상황과 능력에 대한 대략적인 기대치를 알고 있고, 언제부터 시작해야 자신에게 필요한 시간에 마무리가 될지 알고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인지 893의 인간들은 대부분 상황판단능력과 분석력이 대단히 뛰어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물론 이러한 경향은 결국 비효율적인 시간활용이라는 문제를 맞닥뜨린다. 그럼에도 이들은 효율성보다 '시작'한다는 것에 대해 신성한 의미를 두고 있는 듯하다. 대부분의 893 인간들은 무엇이든 미루는 법이 없다. 계획이나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바로 '지금부터'라는 태도로 행동으로 옮긴다. 그래서인지 621에 비해서 인류발전정도가 100년 이상 앞서있는 듯 하다.   



[2] 사랑 (621지구-487지구)

'사랑'이라는 개념은 인간들에게만 부여된 독특한 개념이다. 모든 지구의 모든 생명체들 중 인간만이 사랑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다. 인간을 제외한 다른 동물들은 모두 생존과 번식이라는 초목표를 위해서 행동하지만, 인간은 그 위에 사랑이라는 특수한 개념이 초초목표로 자리 잡고 있다. 우리의 경우 사랑을 이해하려면, 다른 차원에 중첩해 놓은 나 자신이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해지는 마음 정도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아무튼 621의 인간들은 사랑이라는 개념으로 인해 굉장히 특이한 심리적 특성을 보인다. 자식 사랑으로 목숨을 대신 희생하기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는 슬픔에 목숨을 버리기도 한다. 한 사람의 사랑을 얻기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치기도 하고, 모든 걸 다 줘도 사랑을 얻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인간에게 사랑이라는 개념은 굉장히 중요하다. 하지만 621과 487은 흥미로운 차이점을 보인다.


먼저 621의 경우 두 사람이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는 것이 사랑으로 향하는 시작점으로 설정되어 있다. 호기심-알아감-호감-사랑의 과정을 취하도록 설정된 것이다. 모든 경우가 다 사랑으로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서로 만남을 반복하고, 시간을 가지면서, 점점 더 사랑으로 발전할 확률은 올라가게 된다. 결국 사랑이라는 것을 서로 간에 확인하고 나면, 둘은 사랑하는 사이로 서로를 정의한다.


하지만 실제로 속 마음을 측정해 본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대부분의 연인들이 서로 사랑이라 여기는 감정은 서로 다른 것이거나, 같은 것이라도 정도의 차이가 큰 것으로 밝혀졌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은 상대방이 만들어주는 '편안함'을 사랑이라고 느끼고 있었는데, 반대쪽은 '시각적 아름다움'을 사랑이라고 느끼고 있었다. 또 다른 경우, 서로에게 동일하게 '시각적 아름다움'을 사랑이라고 느끼고 있었지만 한쪽은 그 만족의 정도가 90%이고 반대쪽은 40%인 경우도 있었다. 결국 이들은 이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헤어지거나, 결혼을 하더라도 이혼에 이르는 경우가 매우 많았다. 621은 사랑이라는 개념을 인지하기는 하지만, 그것의 정도를 예측하거나 종류를 나누지는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487의 경우 사랑은 621과 반대로 이루어지도록 설정되어 있다. 사랑-호감-알아감-호기심이라는 반대의 순서로 이루어지도록 설정되어 있다. 사랑은 대부분 아무것도 모르는 두 사람 사이에서 발생하며, 종류나 감정의 정도는 항상 정확히 일치한 100%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서로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사랑의 종류와 정도가 변하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더 이상의 모르는 것이 없는 상태. '내가 모르는 게 있나?'라는 호기심이 들 때면, 사랑은 모조리 사라져 버린다. 621의 시작단계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487 인간들은 이때 결혼을 결심한다. 자신들이 서로에 대해서 완전히 알고 있으며, 더 이상 무엇이 있는지 궁금하기까지 할 때 결혼을 하는 것이다. 이들은 호기심으로 인해 부부 역할로 관계를 변화시키고, 자식을 낳음으로써 부모의 역할로 진화하는 것이다. 487의 인간들은 서로 잘 모른 채 사랑에 빠지기 때문에 초기에 빈번한 갈등을 맞닥뜨린다. 서로를 알아가고 맞추는 것은 상당한 고난이 따르며, 맞지 않으면 결혼을 포기한다.


그래도 일단 결혼하고 나면 대부분 갈등 없이 행복한 가정을 꾸린다. 태어난 자식 역시 어린 시절 가장 큰 사랑을 받으며, 부모와 자식은 서로에 대해 알면 알수록, 성장할수록 사랑이 사라지며 서로에게 완전한 독립성을 가지는 방향으로 발전한다. 487에서 이혼율이 낮은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621의 인간들은 사랑이 식었다며, 혹은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며 불륜을 하거나 이혼에 이르는 것과는 달리. 487의 부부들은 결혼을 결심한 단계에서 이미 사랑이라는 감정이 없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물론 487의 인간들도 새로운 사람을 사랑하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가정을 뒤로하거나, 자신의 모든것을 위험에 빠뜨리는 등의 어리석은 행위를 하는 경우는 드물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지 조심스럽게 추측해 보자면, 621의 인간들은 사랑을 시작할 때마다 그 사랑이 영원하기를 바라는데 반해 487의 인간들은 그런 기대가 없어서 그런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사랑은 먼저 시작되었다가 서로에 대해 알아갈수록 사라지는 것이 정해져 있다. 누구를 다시 사랑하든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굳이 가정을 깨거나 관계를 망가뜨릴 이유가 없는 것이다.



[3] 죽음 (621지구-1011지구)

죽음이 존재하는 두 지구의 인간들은 모두 죽음을 다양하게 해석하고 있다. 소멸이라고 생각하는 인간들도 있고, 새로운 곳으로의 이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으며, 환생이라는 순환의 개념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떤 것으로 생각하든 사실 큰 의미는 없다. 이들 모두 죽음에 이르면 우리가 생성한 세계관을 인지하게된다. 그리고 죽음이라는 것 자체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알게된다. 아마도 인간들은 죽음이 그저 우리가 진행하는 연구의 촉매제라는 것이 허탈할 것이다.


그래도 죽음이라는 조건이 없었다면, 인간들의 발전 속도는 100배는 늦춰졌을 것이고, 우리의 실험연구는 난항을 겪었을 것이다. 마치 우리가 당했던 연구처럼 말이다. 물론 죽음이 없는 지구도 존재한다. 그 지구 중 하나는 아직 불 피우는 방법을 발견하지 못했고, 또 다른 경우 지능과 직립보행이 오히려 퇴화하여 바닥에 기어 다니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경우도 있다.   


먼저 621의 경우 죽음은 삶의 가장 강력한 동기로 보인다. 몇몇 인간들은 죽음을 극복하기 위해서 특히 더 안간힘을 쓰기도 하는데, 이런 사례야 말로 죽음이 삶의 강력한 동기라는 것을 방증한다. 이곳의 일반적인 인간들은 대부분 삶이 유한하다는 것을 어린 시절부터 받아들인다. 그래서 남들에게 인정받는 좋은 삶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궁금해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안간힘을 쓴다. 물론 이러한 생각 자체가 없는 경우도 많다. 그저 평범하게 남 부럽지 않게 사는 것을 목표로 삼기도 한다. 하지만 평범이라는 기준은 대부분 각 사회계층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삶을 가리키고 있다. 이들 중 몇몇은 죽음 뒤에 또 다른 삶이 없다는 것을 알아챈 것 같다. 이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추상적인 조직을 만들어 다음 생에 대한 가능성을 설파하고 이득을 취하는 행태를 보인다. 그래서인지 621의 인간들은 살아있는 동안 죄를 짓지 않으려는 경향을 보인다.


621의 인간들은 크게 네 부류로 나눠진다. 사는 동안 더 나은 수준의 삶을 추구하는 부류가 있고, 현재에 만족하며 이상을 꿈꾸지 않는 부류가 있고, 죽으면 다 끝이라는 마음으로 자신과 다른 사람의 삶을 망쳐버리는 극단적인 부류도 있다. 마지막 네 번째 부류는 좀 특이한 경우인데, 자신의 삶을 희생하면서 남들의 삶을 더 나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는 인간들이다. 아마도 621의 사회는 이 네 번째 부류 덕분에 발전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들의 발생배경은 세 번째 부류라는 사실이 아이러니다.   


1011의 경우 무언가 설계 엔지니어의 실수가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스스로 기술적 진보를 이루어 알게 된 것인 모르겠지만, 이들은 자신들이 언제 죽을지를 알고 있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방식으로 죽을지는 알지 못하지만, 몇 살에 죽을지를 알고 있는 모양이다. 이에 대해서는 설계 엔지니어들이 오류 수정작업에 착수하거나 1011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정리될 것이라 예상되는데, 나는 1011을 그대로 놔두고 지속적인 연구를 진행하는 것도 좋다고 여겨진다.


우리의 경우 생물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들이 말하는 생물학적인 죽음이 없다. 하지만 스스로 우주에서 소멸하거나 다른 대상을 제거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과 비슷하며, 이것은 결국 매우 우주스러운 일이다. 신기하게도 1011의 인간들이 알고 있는 죽음나이는 생물학적 노화로 인한 죽음 나이가 아니다. 어떤 방식으로 어떤 상황에서 죽을지는 몰라도, 자신의 생이 몇 년 뒤에 끝나는지를 아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아는 우주스러움보다 더욱 신비로운 우주스러움이다. 이들은 태어나자마자 자신의 생이 끝나는 날이 언제인지 알기에, 자신의 삶의 길이에 맞는 일을 찾곤 한다.


10년 이내로 삶이 정해진 자들은 지능과 신체의 성장발달을 다 이루기도 전에 생을 마감한다. 10년에서 20년 이내로 사는 이들은 가장 안타깝다. 성장과정에서 느끼는 급격한 신체변화와 심리적인 소용돌이 속에서 갑자기 죽음을 맞이한다. 이들 중 많은 수가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비관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20년에서 30년 이내를 사는 이들은 노화가 시작되기 전에 정점에 도달하는 삶을 추구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운동선수를 들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부모들은 아주 어린 나이부터 피나는 노력을 요구하여, 그들의 삶이 역사에 남기를 원한다.


30년에서 40년을 사는 이들은 마지막에 언급하기로 한다.


40년~50년을 사는 이들부터 결혼이라는 행위를 염두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래도 자신이 사망하기 전에 자식이 성인이 된 모습을 볼 수 있다는 희망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운이 나쁠 경우 태어난 자식의 수명이 자신보다 짧기도 하기에, 그 사실을 비관하여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다.


50년 이상을 사는 사람들은 국가에서 앞장서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학자이나 연구자로 양성하여 인류발전에 이바지할 인재로 키운다. 물론 종종 이러한 국가적인 관심을 거부하는 인간들도 많다. 현재는 많은 국가들이 그들의 의사를 존중하는 추세로 변하고 있지만, 사회적으로는 이기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차별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70년 이상 사는 사람들 때문에 각 국가나 사회구성원들은 골머리를 썩고 있다. 이들은 매우 방탕한 생활습관과 행동양식을 보여주는 경우가 빈번하다. 이들은 먹을 복이 있다던지, 운이 좋다던지 해서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삶이 영위된다. 국가로서는 정말 큰 골칫거리다.


30년에서 40년을 사는 이들은 매우 특별하한 경우다. 이들은 아이를 낳아 아이가 자신보다 장수한다해도 성인이 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사망한다. 오히려 애매하게 선택지가 다양한 30년에서 40년의 수명을 가진 이들은, 결국은 어떤삶을 선택해도 시간적인 여유, 부족이라는 문제가 동시에 발생해 아쉬움이 남는 경우가 많다.   


전체적으로 생의 길이에 따른 분포비율을 따지자면 20년 이하가 24%, 50년 이하가 48%, 60년 이하가 14%, 70년 이하가 11%, 70년 이상은 3%다. 물론 의도적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하거나, 누군가에 의해서 사망하지 않는 사람들의 경우다.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하려는 마음을 먹거나, 누군가가 본인에게 살의를 품으면 그 순간 이들 죽음나이는 사라지고 인지되지 않으며, 언제 죽을지 모르는 극심한 패닉에 빠져든다. 487의 인간들이 자신이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이유로 우울증에 빠져 자살하거나, 공황을 일으켜 심장마비로 사망한 경우가 많은데, 이 사실을 621의 인간들에게 들려준다면 그들은 배를 잡고 웃을 것이다. 1011의 상황을 621과 비교해 보고 있자면, 이건 아마도 오류나 실수가 아니라 설정 엔지니어 중 누군가가 재미로 장난을 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3. 결론

인간들은 굉장히 흥미로운 존재다.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서 삶의 태도나 방식이 완전히 달라진다. 우리의 경우 마음이라는 것, 즉 생각이라는 것은 전 차원의 우리들에게 공유되기에 개성이나 경이로움을 경험하는 것이 어렵다. 물론, 이러한 방식으로 인해서 예상치 못한 재앙이 적다는 것이 장점일 것이다. 그러나 인간들은 무언가를 안다는 사실만으로도 다양한 개성을 드러낸다. 또한 그 사실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서 또다시 수없이 많은 개성을 보여준다. 그런 중에 비교 기준으로 삼은 621은 특별하다. 이들은 비교된 다른 지구들과는 달리, 스스로의 생태계와 많은 부분 닮아있는 듯하다. 생명이 탄생하고 노화를 통해 죽음으로 향하는 형태처럼 621의 인간들은 모든 세상의 일을 새싹이 트고, 나무가 자라, 열매가 맺는 것처럼 생각한다. 시간의 개념에서도 그렇고, 사랑의 개념, 죽음의 개념에서도 그 이미지는 두드러진다.


언젠가 지구 621은 지구와 인간이라는 종족이 하나가 아님을 깨달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왜 이렇게 많은 지구들을 연구하고 있는지도 이해하게 될 것이다. 나는 그때가 매우 기대된다. 그들이 무엇인가를 인지하고, 그것을 자신들의 방식으로 이해할 때, 인간의 개성은 무궁무진하게 발현된다. 아주 흥미로운 지점이다. 마치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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