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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네피에 Oct 18. 2023

진실된 수리공 ZPT

초단편

"작은 드로이드 매장을 운영했는데요. 난리 통에 가게를 닫게되서, 남은 부품 좀 처분하려고요."


남자는 ZPT의 수리점 밖을 둘러보더니 모자를 눌러썼다. 거리는 한산했고 다른 가게에도 인기척이 없었다. ZPT가 말이 없자, 남자가 들고 온 캐리어 지퍼를 급히 열기 시작했다. 결국 남자는 지퍼에 힘을 주다가 '찌직' 하는 소리와 함께 뒤로 나동그라져 부품 선반에 부딪혔다. 선반이 요동쳤고, 차가운 금속마찰음이 고요한 거리와 상가에 울려 퍼졌다.


남자는 당황해 ZPT와 가게 밖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ZPT는 작업대 의자에 앉아 턱을 괴고 남자를 보고있었다. 그때 작은 외눈박이 드로이드 하나가 나타나 작업대 위로 머리를 빼꼼히 내놓고 남자를 바라봤다. ZPT는 외눈박이를 번쩍 들어 의자에 앉혀놓고는 남자에게 말했다.


"언제 나라가 뒤집어질지 모르는 판국에, 출처는 궁금하지 않아요."

"맞아요. 우리는 부품 많이 많이 필요해요."


ZPT가 멋대로 떠드는 외눈박이를 노려보자, 외눈박이가 얼른 양손으로 입을 가렸다. 남자는 바닥에 널브러진 부품들을 주어 담아 조심스럽게 작업대 위로 올렸다. 진공포장 비닐팩에 담긴 부품들은 총 세 개. 드로이드 팔과 안구, 귀였다. ZPT는 부품들을 하나씩 들고 왼쪽의 고급 기계눈으로 살피기 시작했다.


"팔은 성인 드로이드용, 안구랑 귀는 아동 드로이드 용. 각 5천 그로늄. 흥정은 안됩니다."


남자는 모자를 고쳐 쓰고 팔짱을 끼더니 생각에 잠겼다. 잠시 후 남자가 작업대에 한 손을 얹고 말했다.


"2만 그로늄에 하시죠. 상황이 상황인지라 급해서 그러니 부탁 좀 합시다."


남자가 다른 손을 점퍼 안쪽 주머니에 넣더니 '딸깍'하는 소리를 냈다. ZPT는 작업대에서 물러나 남자를 노려보았다. 기계눈이 남자의 얼굴을 인식해 수배자 명단과 대조를 시작했다. '일치하는 데이터 없음'. ZPT는 외눈박이를 들어 자신과 남자 사이 작업대에 바리케이트를 치듯 앉혀놓고 말했다.


"오늘 우리 외눈박이 생일하자. 아저씨가 생일 선물 가져오셨네."

"정말요? 감사합니다. 아저씨."


외눈박이가 남자를 껴안으려 하자, 남자가 얼른 작업대에서 떨어졌다. 외눈박이는 시무룩한 표정이 되어 ZPT를 바라보았다. ZPT가 작업대 밑에서 그로늄이 랑이는 천 주머니를 꺼내며 말했다.


"이번은 이렇게 넘어가도록 하지. 다음에 또 이러면, "


ZPT의 기계눈에서 레이저 포인터가 켜지더니 남자의 이마에 꽂혔다.


"가디언."


ZPT의 말과 동시에 수리점 구석 천장에 달려있던 CCTV옆으로 소형 이온 포탑이 고개를 내밀었다. 순식간에 포탑의 레이저 포인터가 남자 이마의 붉은 점을 쫓아가 중첩되었다.  


"발포 명령 대기 중."


남자는 포탑의 안내를 듣고는 안주머니에서 손을 빼 양손을 위로 올렸다. ZPT가 말했다.


"중지. 대기 모드 전환."


포탑이 다시 천장 속으로 들어가는 동안, ZPT는 떨고 있는 남자에게 다가가 남자의 점퍼 안주머니에 그로늄을 집어넣었다. 남자의 점퍼 밖으로 꺼낸 ZPT의 손에 소형 레일건이 들려 나왔다. ZPT가 말했다.


"이건, 우리 약속에 대한 계약금으로 하지."


남자는 급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모자와 점퍼를 단단히 여미고 가게를 떠났다. ZPT가 어질러진 부품 선반을 정리하는데, 외눈박이가 다가와 물었다.


"ZPT, 저 아저씨한테 왜 그렇게 무섭게 해요?"



부품선반에서 배터리와 연결선을 집어든 ZPT가 작업대로 돌아오며 말했다.


"거짓말이거든."

"뭐가요?"

"자기가 드로이드 판매점 했다는 거."

"왜 그런 거짓말을 해요?"

"사람들은 원래 그렇단다. 하루에 500번도 넘게 거짓말을 하지. 어떤 거짓말은 알면서 넘어가기도 하는데, 어떤 거짓말은 그냥 넘기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 저 자식은 아마 푼돈 좀 벌려고 어디서 드로이드 부품을 훔쳤을 거야. 여기 와서 하는 짓을 보면, 아마 이번이 처음일 거다."


ZPT가 작업대 위의 부품들을 한꺼번에 들어 부품선반에 옮겨 놓고는, 드로이드용 안구만 다시 들고 작업대로 돌아왔다. ZPT가 외눈박이에게 말했다.


"누워라, 이제 너도 완성된 드로이드가 되는 거란다."


ZPT는 작업대에 누워있는 외눈박이의 안면 덮개를 떼어내고는, 비어있는 눈 쪽의 전선을 쭉 잡아당겨 겉으로 빼냈다. 새 안구를 이리저리 살펴보던 ZPT는 씁쓸한 표정을 짓더니, 가져온 배터리와 안구를 연결해 놓고 팔짱을 꼈다.  


"호환되는 안구 이긴 한데, 자체 전력이 있어야 셋업이 되겠구나. 조금 기다려야겠다."

"ZPT, 드로이드도 거짓말을 해요?"

"그럼. 드로이드 자체가 거짓말인데."

"어째서요?"

"사람끼리 사는 게 지겨우니까, 사람 같은 기계를 만든 거잖냐. 그리곤 사람처럼 일하길 요구하지. 그게 거짓말이 아니고 뭐냐. 드로이드는 인간이 한 거짓말 중에 최악의 거짓말이라고 볼 수 있지."

"그럼 저도 거짓말이에요?"

"아니다. 그건 너 하기에 달려있는 거야. 내가 알려준 대로 시키는 일 열심히 하고, 주인님 말만 잘 들으면 진실된 드로이드가 될 수 있어. 그런데 네가 나쁜 생각을 가지고 꾀를 부려 사람에게 해를 입히면, 결국 어디선가 조각조각 해체되서 다시 저 부품선반으로 돌아오게 되겠지. 거짓말이 되고 싶진 않지?"

"진실이 되고 싶어요."

"그래 착하구나. 이제 충전 다됐다. 새 안구 셋업만 하면 끝나니까. 너도 어엿한 드로이드가 되는 거다. 진실된 드로이드가 되라는 뜻으로 멋진 심장을 하나 넣어주마."

"드로이드도 심장이 필요해요?"

"항상 진실된 마음을 잊지 말라는 의미에서 특별히 달아주는 거니까. 어떤 주인을 만나던 잘 따르고, 진실되게 행동해야 한다."

"네, ZPT."


ZPT가 뒷문을 열고 창고로 들어가더니, 기계 심장을 들고 돌아왔다. 외눈박이의 눈에 안구를 장착하고, 가슴덮개를 열어 조심스럽게 기계심장을 장착한 ZPT는 기계심장의 일련번호를 자신 손목에 달린 단말기에 입력했다. 'ZPT#1032'.


"다 됐다. 이제 창고로 가서 완성된 드로이드 옆에 가서 서라."


외눈박이가 종종걸음으로 걸어가 뒷문을 열고 창고로 들어갔다. 따라 들어간 ZPT는 창고의 불을 켰다. 외눈박이와 비슷하게 생긴 아동 드로이드 여러 대가 창고 입구를 향해 서있었다. 외눈박이는 대열의 빈 곳을 찾아 줄을 섰다.  


"1032, 대기모드 전환."
 

다른 드로이드처럼 외눈박이의 눈에서 빛이 사라지고, ZPT는 단말기로 리스트를 보며 아동 드로이드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그때, 단말기에 전화가 걸려왔다. '주인님'이란 발신자를 확인한 ZPT는 창고 문을 닫고 밖으로 나와 수신 버튼을 눌렀다.


"피노키오 15대, 준비됐습니다."

"고생했다 제페토. 정부군은 지금 피노키오 자폭테러에 속수무책이야. 정말 큰 공을 세웠어."

"주인님을 모시는 드로이드로써 진실되게 행동하려고 노력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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