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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네피에 Oct 20. 2023

할머니 로망은 Korean Zombie

초단편

"쿠와아아아악!"


이제 다 끝이다. 도대체 왜 요양병원에 좀비가 나타난지는 모르겠지만 간호사와 직원, 어르신들 모두 좀비가 되어버린듯 했다. 다행히 좀비들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게 어르신들이었고, 그다지 빠르진 않아 도망칠 기회는 있었다.  문제는 2층에서부터 도망친 할머니와 내가 옥상 말고는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 상황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할머니는 아이처럼 웃으며 내 손에 이끌려 다니는게 신난 눈치였다.


"할머니, 빨리!"


우리 할머니는 치매다. 이미 상당히 많이 진행되어서 나나 부모님을 못알아보는건 물론이고, 가끔씩은 하루종일 허공을 바라보는 일도 많았다. 몇달 전까지만 해도 가끔 나를 알아보긴 해서, 병원에 올때면 할머니가 좋아하는 VFC도 같이보고 그랬다. 할머니는 이종격투기를 쌈박질이라고 불렀다. 매번 눈을 질끈 감으면서도 손에는 주먹을 꽉 쥐었고, 유독 한 선수를 좋아했다. 할머니는 격투기 광인 나에게 매번 '쟈 별명이 뭔지 아나, 코리안 좀비라 카드라'라며, 그의 유혈낭자한 경기들을 보고 또 봤다. 근데 진짜 좀비라니. 그래서 할머니가 저렇게 신난건가.


"옥상! 옥상으로, 할머니!"


병원 5층 옥상.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었다.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옥상 모서리를 돌며 아래를 내려다보는데, 녹슨 철제 비상계단이 보였다. 낡은건 물론이고, 당장이라도 부숴질것처럼 앙상해보였다. 이건 절대 안될 일이었다. 할머니는 절대 여기로 탈출할 수없다. 어떡하지. 고개를 돌려 할머니를 봤다. 그때 잠긴 옥상 문 안쪽에서 좀비들의 쉰소리가 들렸고, 잠시 후 '끼긱'하는 소리와 함께 철제문 아래쪽이 벌어졌다. 그 사이로 손톱이 다 빠진 채 피투성이가 된 좀비의 손이 허우적댔다. 아무 생각없이 그 손을 잡으려던 할머니를 끌어당기다가 철푸덕 주저앉아버렸다. 결단을 내려야한다.


"할머니 있잖아. 저기 계단이 있는데, 할머니는 아마 못내려갈거 같에. 나도 약간 위험할거 같긴 해, 근데 여기 있으면 할머니랑 나랑 둘 다 위험할거 같에서 내가 먼저 병원 밖으로 가서 사람들을 불러올게."


할머니는 내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한다. 그래도 이것이 마지막이 될 수 있으니 어떤 말이라도 해야했다. 옥상문이 점점 더 벌어졌다. 그 사이로 간호사 좀비의 얼굴이 비집고 나왔다. 눈물이 나는 걸 꾹참고 할머니를 꼭 껴안았다.


"할머니 혼자 두고 가서 미안해. 나중에 꼭 우리 같이 할머니 좋아하는 정창선 경기도 하루종일 보고, 같이 VFC 보러 미국가자."

"알았다, 알았다. 준식이 니 먼저 가그라."


하필 이때 할머니가 잠깐 정신이 든것처럼 보였다. 아마도 나를 었을 때의 아빠랑 헷갈린것 같았다. 그때였다. '쿠콰캉' 하는 소리와 함께 옥상문이 부숴졌다. 좀비들이 들이닥쳤다.


"고마 가라. 이쁜 우리 갱아지."


할머니가 나를 밀었다. 나는 얼떨결에 철제 계단으로 뛰기 시작했다. 두려움을 무릅쓰고 녹슨 계단에 매달리듯 몸을 싣다가, 다시 옥상쪽을 쳐다봤다. 할머니가 나를 보고 방긋 웃고 있었고, 좀비들 서넛이 할머니를 물어뜯고 있었다. 그 중 한둘이 내쪽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허둥지둥 철제 계단에 발을내딛었다. 2층 쯤내려와서 고개를 들어 위를 보려는데, 얼굴에 핏방울이 뚝 하고 떨어졌다. 좀비들이 따라 내려오고 있었다. 그 모습에 놀란 나는 발을 헛디뎠고, 균형을 잃고 화단으로 떨어졌다. 나뭇가지들이 다다다닥 부러지며 내 몸을 할퀴었고, 나는 화단에 널브러졌다. 계단을 따라 내려오던 좀비들이 하나 둘 화단으로 몸을 던지기 시작했다. 이제 모두 끝이구나. 이럴거면 그냥 할머니랑 같이 있을걸. 나는 눈을 감았다. 그때였다.



'붕, 탁. 팍팍-팍. 투닥 투닥닥 퍽.'  

"성훈아... 이쁜... 우리...갱아지...오데있노"


할머니의 이상한 목소리에 나는 눈을 떴다. 화단 사이로 보니, 병원복이 갈기갈기 찢긴 근육질의 좀비가 보였다. 서있는 자세를 보아하니 마치 운동 선수같은 아우라를 풍기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켜 화단을 헤치고 그곳으로 향했다. 한 걸음 가까워질때마다 나는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건 할머니였다. 좀비가 된.

나는 놀라며 조심스럽게 할머니에게 다가갔다.


"할머니, 이게 어떻게."

"내도... 모른다... 여가... 병원이가..."


할머니의 피부는 온통 초록빛을 띠었고, 피부나 이빨을 보니 분명히 좀비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나를 알아봤다. 좀비가 되면 인간이었을 때의 기억이 사라진다던데, 할머니는 치매라서 다시 돌아왔나보다. 무엇보다 놀라운건 초근육질이 되었다. 할머니가 다가와 나를 쓰다듬으며 안아주었다. 단단한 근육과 완력이 느껴졌다.


"악, 할머니 아파."

"미안타...이쁜...우리 갱아지..."

"크아아악"


배회하던 좀비들이 투닥거리는 소리를 듣고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때, 확성기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F-15K 슬램 이글 폭격 명령 대기 중, 2분 전!"


요양병원에서 약간 떨어진 산 중턱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군인들이 바리케이트를 설치하고 있는것 같았다. 나는 다급히 할머니를 붙들고 말했다.


"할머니, 여기 폭파시킨데 빨리 도망쳐야돼!"

"그래... 고마... 가자..."


할머니와 나는 달리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나보다 달리기가 훨씬 빨랐다. 우리가 뛰니까 좀비들도 우리를 따라 뛰기 시작했다. 열명이 넘는 좀비들이 피가 뚝뚝떨어지는 날카로운 이빨을 들어내고 우리를 향해 질주하고 있었다. 요양병원 진입로까지 달려왔는데, 바리케이드를 설치하던 군인들이 할머니를 보고 기겁을 하며 총을 꺼냈다.


"우리 사람이에요!!"


내 말을 듣고 혼란스러워하던 군인들은 얼른 총을 집어넣더니 줄행랑치기 시작했다. 할머니와 나는 바리케이트에 막혀 멈춰서서 뒤를 돌아봤다. 벌써 코앞까지 좀비떼가 달려오고 있었다. 갑자기 할머니가 가시돋힌 철제 바리케이트를 손으로 찢었다. 나는 할머니의 괴력에 놀라 온몸이 덜덜 떨렸다.


"이쁜... 갱아지... 고마... 가라..."


할머니가 나를 잡아 바리케이트 구멍으로 밀치더니, 다시 구멍을 여몄다.  


"할머니! 같이 가!"


할머니는 달려오는 좀비 떼를 향해 자세를 잡았다. 분명했다. 할머니가 제일 좋아하던 VFC 정창선 선수의 자세였다. 나는 바리케이트 가시에 손이 베인 것도 모른채 할머니를 애타게 불렀다.


"할머니! 같이 가자, 제발!"


할머니가 파이팅 포즈를 잡고 고개를 돌리며 씨익 웃었다.


"개안타... 할무이... 쌈박질... 마이봤다아이가"



좀비 떼의 맨 앞에 있던 남자 보호사 좀비가 육중한 몸으로 할머니에게 달려들었다. 할머니는 가벼운 스텝으로 왼쪽으로 돌아나가며 강력한 레프트 훅을 턱에 꽂았다. 보호사 좀비의 턱이 부숴지며 날카로운 이빨들이 옥수수 알갱이마냥 하늘에 흩날렸다. 바로 그 뒤에 있던 허리꺾인 간호사좀비가 할머니에게 달려들었고, 할머니의 배를 물어뜯으려했다. 할머니는 침착하게 간호사 좀비의 목을 잡고 안면에 니킥을 꽂았다. 피가 터지며 코뼈와 광대뼈가 움푹 들어간 간호사 좀비는 앞뒤 구분을 못하고 이리저리 휘청거렸다. 그 다음에 한놈, 그 다음에 또 한놈. 할머니는 침착하게 좀비들에게 펀치와 킥을 날렸다. 하지만 점점 더 많은 수의 좀비들이 할머니에게 달려들었고, 할머니는 속수무책으로 바리케이트에 밀려 피를 흘리기 시작했다. 그때 하늘에 전투기가 나타났다.


"폭격 20초 전!"


확성기 소리를 들었는지, 할머니는 혼연의 힘을 짜내 피투성이가 된 주먹을 날렸다. 그 모습은 할머니가 가장 좋아하던 정창선 선수의 은퇴경기 같았다. 좀비들은 아무리 맞아도 다시 일어섰지만, 할머니도 좀비였기때문에 상관없었다. 할머니가 때리고, 맞고, 넘어지고, 일어서고, 다시 때리고를 반복하는 20초 동안이 나에겐 영원처럼 느껴졌다. 할머니가 가드를 올리고 슬쩍 나를 쳐다보더니 처음으로 괴물같은 소리를 질렀다.


"성훈아!!! 니 빨리 안가나!!"


나는 울먹이며 할머니의 반대편으로 뛰기 시작했다. 한참 뛰다가 고개를 돌렸는데, 요양병원 뒤편 하늘에서 전투기 두대가 '쿠와앙'소리를 내며 급강하 하고 있었다. 점점 가까워지던 전투기에서 큼직한 미사일 두발이 '툭' 하고 떨궈졌다. 미사일은 요양병원 바로 위에서 한번 '펑'하고 터지더니 수많은 파편으로 갈라졌다. 요양병원과 좀비들, 그리고 할머니에게 융단이 깔리듯 화염이 덮혔다. 나는 엎드려 울먹이는 것 말고는 할 수있는것이 없었다.


"전방에 뭐가 있습니다!"



자욱한 흙먼지와 잿빛 연기가 서서히 걷힐 때쯤. 무언가가 절뚝거리며 걸어나오고 있었다. 나는 알 수 있었다. 그건 할머니였다. 온몸이 화염에 그을려 검은 형체 뿐이었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순간 할머니와 함께 응원했던 VFC 정창선 선수의 경기입장 장면이 겹쳐보였다.

귀에는 그의 입장음악 'Zombie'가 울려퍼졌다.


다가오는 할머니를 향해 군인들이 총을 난사했다.

빗발치는 총알 수십개를 온몸으로 받아낸 할머니는 결국 바닥에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그리고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할머니는 진짜 '코리안 좀비'로 우리 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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