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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네피에 Oct 17. 2023

메타벌's

초단편

#1회/15538회 (D+1)

2033년 10월 17일 화요일

 

너는 오늘 많은 사람들을 만나 기분 좋은 술자리를 가졌다.

네가 꾸준하게 활동했던 작가 모임이다.

너는 어제 마신 술 때문인지 머리가 깨질 듯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술자리로 향했다.

저녁까지 이어진 숙취로 인해 세상이 빙글거렸는데도, 너의 발걸음은 매우 가벼웠다.  

술자리에 도착하자마자 술을 한잔 걸쳤더니, 숙취가 씻은 듯이 사라졌고 흥이 올랐다.

가만히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네가 어떤 상을 받은 것 같았다.

그 상이 얼마나 좋은 건지 아직 모르지만, 네가 느낀 감정으로 미뤄보아 대단히 큰 상인 듯하다.

이런 기록이 과연 의미가 있는 걸까. 사실상 15538일이 얼마나 긴지도 모르겠다.


#3664회/15538회 (D+532)

2035년 5월 9일 금요일


네가 어버이날에 고급스러운 식당을 예약한 것은 이때가 처음인 듯하다.

1인 당 가격을 들었을 때 너의 귓불이 뜨거워졌고, 심장이 쿵쾅거렸다.

너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놀라는 표정으로도 알 수 있었다.

누나와 매형은 안 놀란척했지만, 내심 무언가 너에게 좋은 일이 있음을 직감한 눈치였다.

나는 이미 미래의 너를 경험했고, 따뜻한 성품이나 가족에 대한 아낌없는 사랑도 느꼈다.

그런 네가 출간을 앞둔 첫 번째 책 때문에 이토록 행복해하는 것을 느끼니 새삼 흥미롭다.

너는 서프라이즈를 위해 안 좋은 표정을 연기했다. 스스로도 웃기는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가족들은 너의 출간 소식에 놀랐고 기뻐했다. 연기가 먹혔다고 생각한 너는 소름이 돋았다.  

출판사 관계자와 출간을 확정 짓던 날이 내 마음에 걸린다.

'이 책은 아마 수많은 사람들에게 치유와 희망을 선물할 거예요.'

어쩌면 내가 저지른 한순간의 잘못이, 많은 사람을 불행하게 만든 것 같아 씁쓸하다.


#10032회/15538회 (D+1236)

2037년 4월 24일 토요일


너는 오늘 결혼했다. 나는 27년 동안 너의 여생을 뒤죽박죽 오가며, 매일 너로 눈을 떴.

그러다 오늘에서야 너의 결혼식을 만났다.

너의 사랑스러운 아내 뱃속에는 너의 딸이 있을 것이다.

네가 아내를 대하는 방식을 보니, 아직 모르는 게 확실하다.

너의 딸은 나중에 어린이들의 기억에 남을 좋은 선생님이 된다.

그때의 뿌듯함은 극에 달한다. 너는 이 아이로 인해 전에 없는 행복을 느낀다.

나는 자식이 없었는데도, 너로 인해 부모의 맘을 알았다.

이런 사실을 알리가 없는 너는 정신이 없었다. 결혼식을 치르느라 혼이 쏙 빠졌다.

방금 본 사람 얼굴도 기억 못 하는 너는 이미 땀이 등허리를 적셨다.

모든 사람들이 축하를 전했고, 너는 긴장한 탓에 어깨가 뭉쳤다.

내 삶에서는 없었던 축하가 너의 결혼식장엔 가득했다.

물론 너의 남은 삶에서는 수없이 많이 봐온 얼굴들이긴 하다.

너를 향해 보이는 미소, 칭찬, 그리고 존경과 사랑의 눈빛들.

나는 이미 27년 동안 겪어온 것들이지만 너는 모르겠지. 유감이다.


#15538회/15538회 (D-day)

2033년 10월 16일 화요일


드디어 그날이다. 나에게는 너의 여생과 함께하는 마지막 날이다.

내가 술에 취해 처음으로 너를 만난 날, 너도 술이 취해 처음으로 나를 만난 날.

둘 다 기분 좋게 술에 취했지만, 나의 잘못으로 네가 생을 마감한 날이다.

나는 형이 집행된 후 가상의 공간으로 격리되었다.

그리고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법원이 측정해 구성한 너의 여생을 경험했다.

이곳의 시간이 현실과 다르다고 하니, 현실은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다.  

사실 내 육신이 살아있는지 죽었는지도, 나는 잘 모른다.

어쨌든 너의 죽음에 대한 형벌은 끝이 났다.

너에게는 어떤 식으로도 도움이 되지 않겠지만, 너의 가족에게는 의미가 있겠지.

이 정도면 내가 한 잘못의 죄를 충분히 뉘우쳤다고 생각한다.

물론 앞으로도 200년쯤은 더 죄를 뉘우쳐야 할 것 같다.

내 차에 치인 사람은 아직 둘이 더 있으니까.

딱 한 번의 실수로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염치없지만, 다들 어딘가에서 잘 지내고 있기를 바란다.

이 벌을 다 마치면 죽게 해준다고 하니, 한번 만나서 회포나 풀었으면 좋겠다.  


#1회/33650회 (D+13616)

2071년 2월 2일 수요일


너는 나의 두 번째 피해자이자 벌이다. 법원에서 측정한 너의 여생은 90년이 넘는다.

나로 인해 일찍 세상을 떠난 것이 미안하다.

충분히 오랫동안 반성할 테니까, 편히 쉬면서 잠시만 기다리고 있기를 바란다.

너는 오늘 44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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